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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부분적인 팩트보다 총체적인 결론 본문

사회주의/우익 이데올로기 비판

부분적인 팩트보다 총체적인 결론

OneTiger 2019. 12. 21. 19:56

스테고사우루스는 동물입니다. 이게 사실인가요? 네, 이건 사실입니다. 이건 이른바 '팩트'입니다. 스테고사우루스는 동물이고, 분명히 이건 팩트입니다. 아무도 이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것을 부정한다면, 그 사람은 사기꾼일 겁니다. 분명히 스테고사우루스는 동물입니다. 아무리 수구 꼴통 정치인들이 헛소리들을 꽥꽥 질러댄다고 해도, 심지어 수구 꼴통 정치인들조차 스테고사우루스가 동물이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합니다. 스테고사우루스가 동물인 것처럼, 시노케라톱스는 동물입니다. 이게 사실인가요? 네, 맞습니다. 분명히 이건 사실입니다. 이건 이른바 '팩트'입니다.


시노케라톱스는 동물이고, 분명히 이건 팩트입니다. 아무도 이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것을 부정한다면, 그 사람은 사기꾼일 겁니다. 분명히 시노케라톱스는 동물입니다. 아무리 수구 꼴통 정치인들이 헛소리들을 꽥꽥 질러댄다고 해도, 심지어 수구 꼴통 정치인들조차 시노케라톱스가 동물이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합니다. 시노케라톱스가 동물인 것처럼, 람베오사우루스는 동물입니다. 이게 사실인가요? 네, 이것 역시 '팩트'입니다. 람베오사우루스가 동물인 것처럼, 플레시오사우루스는 동물입니다. 플레시오사우루스처럼, 분명히 아르켈론은 동물입니다. 이건 '팩트'입니다.



스테고사우루스와 시노케라톱스와 람베오사우루스와 플레시오사우루스와 아르켈론은 동물입니다. 심지어 수구 꼴통 정치인들조차 이것들이 동물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스테고사우루스부터 아르켈론까지, 동물들에게는 아주 뚜렷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게 무엇인가요? '멸종'입니다. 스테고사우루스는 멸종했습니다. 시노케라톱스는 멸종했습니다. 람베오사우루스, 플레시오사우루스, 아르켈론은 멸종했습니다. 멸종은 아주 뚜렷한 공통점입니다. 스테고사우루스부터 아르켈론까지, 이것들은 동물이고, 동시에 이것들은 멸종했습니다. 아하, 여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사실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동물들은 멸종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떤 동물도 절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건 아주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스테고사우루스와 시노케라톱스와 람베오사우루스와 플레시오사우루스와 아르켈론은 동물입니다. 이런 동물들에게 멸종은 아주 뚜렷한 공통점입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멸종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동물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건 '팩트'입니다. 아무도 이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세상에는 동물들이 있어."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사기꾼일 겁니다. 어떻게 동물들이 존재할 수 있나요? 스테고사우루스부터 아르켈론까지, 분명히 동물들은 멸종했습니다. 이건 정말 팩트입니다.



물론 이런 주장은 그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도토리 점심 도시락을 챙기는 작은 아기 다람쥐부터 깊고 깊은 바닷속의 대왕 오징어까지, 생물 다양성은 수많은 동물들을 낳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동물은 존재하지 않아!" 이 주장은 편협합니다. 이 주장이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주장은 오직 중생대 동물상만 언급합니다. 분명히 중생대 동물상에서 스테고사우루스와 시노케라톱스와 람베오사우루스와 플레시오사우루스와 아르켈론은 동물입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이건 팩트입니다. 하지만 중생대 동물상보다 생명 진화 역사는 훨씬 장대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생명 진화 역사를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습니다. 이 주장은 오직 중생대 동물상만 언급하고 동물들이 멸종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당연히 이런 결론은 엉터리입니다. 이런 주장이 엉터리인 것처럼, 만약 우리가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엉터리 결론에 빠질 겁니다. 우리는 비단 중생대 동물상만 아니라 다른 엉터리 결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화 <어벤저스>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영화 <트랜스포머>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영화 <스타 워즈>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어벤저스>와 <트랜스포머>와 <스타 워즈>는 유명하고 비싼 블록버스터들입니다.



"와, 세상에! <어벤저스>와 <트랜스포머>와 <스타 워즈>는 사이언스 픽션이야. 이것들은 유명하고 비싼 블록버스터들이야! 사이언스 픽션은 유명하고 비싼 블록버스터들이야!" 이런 결론이 논리적인가요? 심지어 이런 결론은 다음과 같이 발전할지 모릅니다. "영화 <어벤저스>는 신나게 때리고, 부수고, 죽인다. 영화 <트랜스포머>는 신나게 때리고, 부수고, 죽인다. 영화 <스타 워즈>는 신나게 때리고, 부수고, 죽인다. 사이언스 픽션은 신나게 때리고, 부수고, 죽인다. 사이언스 픽션은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다." 이런 결론이 논리적인가요? 이런 결론은 또 다른 주장으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영화 <어벤저스>에서 주된 등장인물들은 백인 남자들이다.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주된 등장인물들은 백인 남자들이다. 영화 <스타 워즈>에서 주된 등장인물들은 백인 남자들이다. 사이언스 픽션에서 주된 등장인물들은 백인 남자들이다. 사이언스 픽션은 유명하고 비싼 블록버스터이다. 사이언스 픽션은 신나게 때리고, 부수고, 죽인다. 사이언스 픽션은 백인 남자들을 편애한다." 이런 결론이 논리적인가요? 분명히 이런 주장에는 '팩트'들이 있습니다. 골수 하드 SF 독자들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나, <어벤저스>와 <트랜스포머>와 <스타 워즈>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이건 팩트입니다.



<어벤저스>와 <트랜스포머>와 <스타 워즈>는 전투에 치중합니다. 만약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아이언맨과 헐크와 토르와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무도 때리지 않고, 아무것도 부수지 않고,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면, 관객들은 극장을 찾지 않을 겁니다. 위대한 초인 영웅들은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살인은 필수적입니다. 살인 없이, 초인 영웅들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적어도 전투는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초인 영웅들이 거창한 미사여구들을 떠든다고 해도, 결론은 폭력과 전투입니다. 결국 초인 영웅들은 피를 봐야 합니다. 관객들은 초인 영웅들이 피를 보거나 폭력에 이르기 원합니다.


거창한 미사여구들은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발판입니다. 폭력과 전투를 정당화하기 위해 캡틴 아메리카는 거창한 미사여구들을 들이댑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백인 남자입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전형적인 백인 남자입니다. <어벤저스>와 <트랜스포머>와 <스타 워즈>에서 백인 남자들은 주연 등장인물입니다. 옵티머스 프라임 역시 백인 남자 같습니다. 적어도 옵티머스, 재즈, 범블비, 아이언하이드, 라쳇은 여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어벤저스>와 <트랜스포머>와 <스타 워즈>가 외계인들과 로봇들을 내세운다고 해도, 결국 주된 등장인물들은 백인 남자들입니다. 다들 가부장 신화를 추종합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이 블록버스터인가요? 사이언스 픽션이 전투, 폭력을 선호하나요? 사이언스 픽션이 가부장 신화, 백인 우월주의를 추종하나요?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영화 <반지 원정대>를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오해합니다. <반지 원정대>는 사이언스 픽션보다 중세 유럽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반지 원정대>와 사이언스 픽션 사이에는 아주 뚜렷한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어벤저스>와 <트랜스포머>와 <스타 워즈>가 외계인들과 로봇들과 초능력들을 내세우는 것처럼, <반지 원정대>는 유사 인간 종족들과 악마들과 마법들을 내세웁니다. 이것들은 짜릿한 전투, 신나는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어벤저스>와 <트랜스포머>와 <스타 워즈>처럼, <반지 원정대>는 비일상적인 것들을 내세우고, 전투, 폭력은 주된 비중을 차지합니다. 만약 <반지 원정대>에 전투와 폭력이 없다면, 관객들은 극장을 찾지 않았을 겁니다. <반지 원정대>에서 주연 등장인물들은 백인 남자들입니다. 제목처럼, '반지 원정대'는 핵심입니다. 프로도부터 보로미르까지, 반지 원정대에서 오직 백인 남정네들만 득실득실합니다. <반지 원정대>는 백인 남정네 천국입니다. 아무리 <반지 원정대>가 유사 종족들을 들이댄다고 해도, 핵심은 백인 남자이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반지 원정대>가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착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소설 <프랑켄슈타인>보다 영화 <반지 원정대>가 사이언스 픽션에 가깝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총제적인 시각이 아닙니다. 분명히 <어벤저스>와 <트랜스포머>와 <스타 워즈>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비싼 블록버스터로서 세 영화들은 아주 유명합니다. 세 영화들은 폭력을 중시하고, 세 영화들에서 백인 남자들은 주된 역할을 맡습니다. 아무도 이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수구 꼴통 정치인들이 소리를 꽥꽥 지른다고 해도, 꽥꽥 소리를 지르는 것 이외에 수구 꼴통 정치인들에게 아무 재주가 없다고 해도, 심지어 수구 꼴통 정치인들조차 이런 팩트들을 인정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어벤저스>와 <트랜스포머>와 <스타 워즈>는 사이언스 픽션의 '전부'가 아닙니다. 스테고사우루스와 시노케라톱스와 플레시오사우루스와 아르켈론이 동물상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어벤저스>와 <트랜스포머>와 <스타 워즈>는 사이언스 픽션의 '전부'가 아닙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하드 SF 소설입니다. 하지만 <안드로메다 성운>은 유명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닙니다. 이 소설은 짜릿하고 신나는 전투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백인 남자 전형에서 <안드로메다 성운>은 벗어납니다. 비록 이 소설에 시대적인 인종 차별, 성 차별이 있다고 해도,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을 타파하기 위해 이 소설은 노력합니다.



비디오 게임 <코이>는 환경 아포칼립스입니다. 빛의 물고기가 신화적이기 때문에, <코이>는 사이언스 픽션보다 판타지에 가까운 것 같으나, 그렇다고 해도 <코이>는 전형적인 환경 아포칼립스 설정을 따릅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코이>를 생태학 SF, 환경 아포칼립스 울타리에 집어넣는다고 해도, 이건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빛의 물고기가 신화에 가깝다고 해도, 사이언스 판타지 역시 신화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판타지에서 신화는 드문 소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코이>는 사이언스 픽션, 적어도 사이언스 판타지가 될 수 있습니다. <코이>와 <어벤저스>는 모두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하지만 <코이>와 <어벤저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들이 있습니다. <코이>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닙니다. <코이>는 인디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코이>에서 백인 남정네들은 득실거리지 않습니다. <코이>는 빛의 물고기들과 연꽃들과 다른 수중 생명체들과 어떤 소녀를 보여줍니다. 백인 남정네들보다 소녀는 훨씬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코이>에서 전투, 파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코이>는 신선하고 청아한 음악, 화려한 연꽃들, 맑고 투명한 강물, 싱그럽고 생생한 녹색 자연을 강조합니다. 그림체는 단순하나, 비단 잉어들은 역동적입니다. 이런 <코이>는 사이언스 픽션에 속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벤저스>가 천문학적인 비용을 퍼부었고 천문학적으로 흥행했다고 강조할지 모릅니다. <어벤저스>가 천문학적이기 때문에, <코이>보다 <어벤저스>는 사이언스 픽션을 대표합니다. <코이>가 환경 아포칼립스, 사이언스 판타지에 속한다고 해도, <어벤저스>와 달리, <코이>는 사이언스 픽션을 대표하지 못합니다. <코이>가 인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코이>를 무시하고 대표적인 사이언스 픽션으로서 <어벤저스>를 내세울지 모릅니다. <어벤저스>는 비단 <코이>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이언스 픽션들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논리적인 주장인가요? 천문학적인 흥행과 대표적인 SF 사이에 필수적인 연결 고리가 있나요? 분명히 <어벤저스>는 천문학적으로 흥행했습니다. 하지만 왜 <어벤저스>가 흥행했나요? 그 자체로서 천문학적인 흥행이 존재하나요? 사람들은 그 자체로서 정전(正傳) 문학 평론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이상한 사고 방식입니다. 하늘에서 정전 평론은 뚝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소설을 정전이라고 평가하기 때문에, 정전 평론은 나타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묻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자체로서 정전 문학 평론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자체로서 창작물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현실과 창작물은 떨어지거나, 현실보다 창작물은 우선합니다. 현실은 뒷전이 되고, 창작물은 우선이 됩니다.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누군가가 어떤 소설을 호의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정전 문학 평론이 나타남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 자체로서 정전 문학 평론이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문학은 당파성을 드러내거나 좌파적으로 기울어지지 말아야 해. 문학은 인간의 본질을 파악해야 해. 문학은 얼마나 개인의 자유가 중요한지 이야기해야 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문학이 인간의 본질, 개인의 자유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서 이런 사고 방식이 존재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수 우파들이 지배하기 때문에, 이런 사고 방식은 나타납니다. 문학 평론이 오직 인간의 본질만 떠드는 동안, 당파성과 계급 투쟁이 희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로서 정전 문학 평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전 문학 평론처럼, 그 자체로서 천문학적인 흥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이 뒷전이고 창작물이 우선이라고 믿으나, 창작물은 뒷전이고 현실은 우선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어벤저스>보다 <코이>는 훨씬 감동적인 사이언스 픽션일 겁니다. 이런 감동 '배후'에 무엇이 있나요?



과학자들은 홀로세 대멸종을 경고합니다. <코이>가 환경 아포칼립스인 것처럼, 여섯째 대멸종은 현실이 될지 모릅니다. 시노케라톱스와 플레시오사우루스와 아르켈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수많은 야생 동물들은 사라질지 모릅니다. 적어도 플레시오사우루스와 아르켈론은 자연적으로 사라졌으나, 두 해양 파충류와 달리, 수많은 야생 동물들은 인위적으로 사라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르 표범이 멸종한다고 해도, <어벤저스>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벤저스>는 홀로세 대멸종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벤저스>와 달리, 생태학 SF, 환경 아포칼립스로서 <코이>는 소녀와 빛의 물고기를 보여줍니다.


비록 <코이>가 얄팍한 환경 운동을 주장한다고 해도, <코이>는 생태 철학을 강조합니다. 적어도 <어벤저스>보다 <코이>는 환경 아포칼립스를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코이>에서 소녀는 빛의 물고기를 돌봅니다. <코이>에서 등장인물들 관계는 전투, 폭력보다 돌봄을 중시합니다. <코이>는 싱그러운 녹색과 맑은 강물과 돌봄을 제시합니다. 비록 이 게임이 자세한 줄거리를 전개하지 않는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는 이것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벤저스>보다 <코이>는 훨씬 감동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어벤저스>가 천문학적으로 흥행했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만약 천문학적인 흥행이 대표적인 사이언스 픽션을 위한 기준이 된다면, 이건 상품 물신주의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조지 오웰과 소설 <1984> 배후에 미국 중앙 정보부와 자본주의 세뇌가 존재하는 것처럼, 그 자체로서 천문학적인 흥행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만약 소규모 SF 동호회에서 <어벤저스>가 개인 연재 소설이고, <코이>가 엄청나게 비싼 AAA 게임이라면, <어벤저스>보다 <코이>는 훨씬 유명해질 겁니다. <어벤저스>에게 여러 장점들이 있다고 해도, <어벤저스>가 엄청난 비용을 퍼붓기 때문에, <어벤저스>는 유명해집니다. <어벤저스>보다 엄청난 홍보 비용은 우선합니다.


어떻게 영화 투자자들이 엄청난 제작/홍보 비용을 퍼부을 수 있나요?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영화 투자자들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퍼붓습니다. 그래서 세계화 자본주의가 정당한가요? 여섯째 대멸종, 홀로세 대멸종을 막기 위해 인류 문명은 모든 비용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여섯째 대멸종을 막나요? 아니, 오히려 자본주의는 온갖 환경 오염들을 저지릅니다. 이런 자본주의 속에서 <어벤저스>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퍼붓습니다. 비단 <어벤저스>만 아니라 <모아나>와 <고지라: 괴수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아나>와 <고지라: 괴수왕>은 모두 생태 철학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세계화 자본주의와 홀로세 대멸종 속에서 <모아나>와 <고지라: 괴수왕>은 많은 제작 비용/홍보 비용을 퍼붓습니다. <모아나>를 제작하기 위한 조건과 <모아나> 주제는 대립합니다. 왜 이런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납니까? 세계화 자본주의가 정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관객들이 모아나와 마우이와 테 피티와 헤이헤이를 감동적으로 관람한다고 해도,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모아나>는 막대한 액수를 퍼붓고 막대한 액수를 법니다. <모아나> 내부는 어머니 자연을 이야기하나, <모아나> 외부는 어머니 자연을 파괴합니다. <고지라: 괴수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너무 모순입니다.


<고지라: 괴수왕>이 모순인 것처럼, 억압적인 자본주의 속에서 <어벤저스>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억압적인 자본주의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세계화 자본주의와 제작 비용 없이, <어벤저스>가 존재하지 못함에도, 세계화 자본주의가 홀로세 대멸종을 일으킬지 모름에도, 현실은 뒷전이 되고, 창작물은 우선이 됩니다. 이건 너무 편협한 시각입니다. <어벤저스>에는 여러 측면들이 있고, 블록버스터는 근본적인 매체, 형식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블록버스터 매체, 형식은 비롯합니다. 만약 <어벤저스>를 옹호하기 위해 관객들이 이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건 너무 편협한 시각이 될 겁니다.



[하늘에서 대표적인 사이언스 픽션이 뚝 떨어지나요? 대표적인 SF '배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나요?]



만약 우리가 부분을 전체라고 착각한다면, 우리는 편협한 함정에 빠질 겁니다. 19세기 미국 농장들을 보세요. 흑인들은 무식하고 열등합니다. 백인들은 부유하고 자유롭습니다. 모든 흑인이 무식하고 열등하지 않고, 모든 백인이 부유하고 자유롭지 않다고 해도, 분명히 상대적으로 많은 흑인들은 무식하고 열등합니다. 상대적으로 많은 백인들은 부유하고 자유롭습니다. 이건 팩트입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아무도 이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19세기 미국 농장에서 분명히 흑인들은 무식하고 열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깜둥이 새끼들은 무식하고 열등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게 타당한가요?


흑인들은 무식하고 열등합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이건 팩트입니다. <어벤저스>가 사이언스 픽션인 것처럼, 아이언맨이 SF 등장인물인 것처럼, 이건 사실, 팩트입니다. 아이언맨이 SF 등장인물인 것처럼, 흑인들은 무식하고 열등합니다. 아무도 이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백인들은 부유하고 자유롭고, 흑인들은 무식하고 열등합니다. 그래서 백인은 긍정적이고, 흑인은 부정적입니다. 이건 타당한 결론…인가요?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9세기 미국에는 노예 제도가 있습니다. 노예 제도 속에서 백인은 긍정이 되고 흑인은 부정이 됩니다. 우리는 노예 제도를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노예 제도 사회에서 백인들이 자유롭게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노예 제도 사회가 자유롭다고 찬양해야 할 겁니다. 소비에트 연방 역시 비슷합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억압적인 독재 국가입니다. 이건 사실, 팩트입니다. 아이언맨이 SF 등장인물인 것처럼, 소비에트 연방은 억압적인 독재 국가입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이것을 부정하기 원하나, 소비에트 연방이 억압적인 독재가 아니었다고 해도, 소비에트 연방에는 치명적인 한계들이 있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보다 미국은 훨씬 낫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수구 꼴통 정치인들 역시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니, 뭐, 수구 꼴통 정치인들은 쌍수를 들고 이것을 인정합니다. 수구 꼴통 정치인들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소비에트 연방에게 치명적인 한계들이 있었다고 인정합니다. 미국은 자본주의이고, 소비에트 연방은 사회주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비에트 연방이 국가 자본주의라고 분류하나, 그렇다고 해도 소비에트 연방은 사회주의 혁명을 거쳤습니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소비에트 연방은 치명적인 한계들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긍정이고, 사회주의는 부정입니다. 이게 사실, 팩트인가요? 이게 타당한 결론인가요?



모든 동물이 멸종한 것처럼, 때리고 부수고 죽이기 위한 백인 남자 아이언맨이 사이언스 픽션인 것처럼, 흑인이 무식하고 열등한 것처럼, 소비에트 연방은 치명적인 한계들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가 부정이 되나요? 이 세상에 동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이 가부장 백인을 추종하는 것처럼, 깜둥이 새끼들이 부정이 되는 것처럼, 악랄한 빨갱이들이 부정이 되나요?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회주의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부터, 이미 서구 자본주의는 폭력적으로 수탈했고 착취했습니다. 이런 폭력 속에서 사회주의는 저항했습니다.


폭력적인 자본주의 속에서 사회주의가 나타났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극심한 폭력에 맞서야 했습니다. 극심한 폭력 속에서 사회주의는 파리 코뮌처럼 학살을 당하거나 소비에트 연방처럼 치명적인 한계들을 드러냅니다. 심지어 단 한 순간조차 자본주의 폭력에서 사회주의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사회주의는 상대적인 약자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강자를 편들고 약자를 모욕합니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았음에도, 강자가 식민지 수탈과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과 냉전을 일으켰음에도, 사람들은 강자를 편들고 약자를 모욕합니다. 이건 총체적인 결론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총체적인 시각을 갖추고, 강자를 비판하고, 약자를 편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소비에트 연방이 탈선했는지 이해하고 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소비에트 연방을 1번 깐다고 해도, 우리는 서구 제국주의를 100번 까대야 할 겁니다. 임금 노동 제도는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서구 제국주의를 열심히 까대지 않는다면, 임금 노동 제도를 빙자하는 임금 노예 제도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코이>는 현실이 될 테고, 빛의 물고기는 소녀를 슬프게 그리워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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