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만약 머나먼 외계 생태계를 발견한다면…. 본문
최근에 놀라운 소식이 하나 떴습니다. TRAPPIST-1에서 발견한 행성들 덕분에 천문학계가 많이 들떴나 봅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학계의 상황을 잘 모르지만, 여러 과학 뉴스들은 이번 행성 발견이 꽤나 고무적이라고 말합니다. 지구와 비슷한 행성들을 7개 찾았고, 그 중에 몇몇 행성에서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까요. (유로파 탐사도 그렇고, 이게 너무 앞서간다거나 연구비를 위한 연극이 아니냐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물론 지구와 비슷한 행성들을 발견했다고 해도 거기에 뭔가 생명체가 산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설사 생명체가 살아도 인간처럼 문명을 갖췄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행성의 생태계가 아주 원시적이라고 해도, 35억 년 전의 지구 생태계와 비슷하다고 해도, 일단 우리가 외계 생태계를 발견한다면 엄청난 사건일 겁니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 이외에 다른 누군가가, 다른 생명체들이 있다는 걸 깨달은 셈이니까요. 언젠가 그 원시적인 생명들이 보다 고등한 생명들로 진화하고, 그 중에 어떤 생명은 문명을 이룰지 모릅니다. 아니, 문명을 이루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가능성만 생각해도 참 아찔합니다.
어쩌면 이런 소식을 좀 더 남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구의 자연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이 급속도로 감소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합니다. 산업 자본주의는 매연을 뿜고, 폐수를 방류하고, 방사선 물질을 퍼뜨리고, 수은과 미세 플라스틱을 축적하고, 삼림을 대량 벌채하고, 온실 가스를 내뿜습니다. 인류는 예전부터 꾸준히 자연 환경을 바꿨고, 사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생존을 위해 주변 환경을 바꿉니다. 인류도 그럴 따름이죠. 산업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인류는 수많은 동물들을 멸종시켰고 나무를 엄청나게 베었습니다.
문제는 이 자본주의 체계가 이전의 그 어떤 체계보다 광범위하게 생태계를 바꾼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은 당장 온실 가스를 감축하고 핵발전소를 멈추고 생물 다양성을 복원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번번이 거대 자본의 힘 앞에 부딪힙니다. 생물 다양성을 복원하고 싶다면 기업을 규제해야 하는데, 기업들은 규제의 ㄱ자만 들어도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난리를 부립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환경 보호론이 빨갱이들의 사악한 음모라고 매도합니다. (뭐, 생태 사회주의자도 기업 규제를 외치니까 빨갱이가 맞겠죠.)
녹색 성장이나 녹색 경제는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은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말 그대로 생태계를 꾸준히 보존하기 위한 방법론입니다. 하지만 거대 자본은 지속 가능성보다 발전에 방점을 찍습니다. 그리고 발전하기 위해 계속 자원을 채굴하고 주변을 오염시키고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죠. 지속 가능성이라는 개념은 희미하게 사라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녹색 성장은 그저 자본주의를 좀 더 온건하게 보이려는 표어에 불과합니다.
아니, 어떤 기업이나 정부는 정말 녹색 성장을 실현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녹조 현상 덕분에 강물이 녹색으로 물들었으니까요. 이제 녹색 경제라는 용어의 남용을 막기 위해 차라리 빨갱이 경제라는 용어를 퍼뜨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흠, 그러면 유럽 좌파당의 말처럼 정말 21세기의 빨강색은 녹색이 되겠군요. 어쨌든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함에도 이상 기후의 위협은 조금씩 다가오는 실정입니다. 비관적인 과학자들의 예상처럼 정말 해수면 상승이나 극심한 가뭄, 기타 재해가 일어날지 잘 모르겠습니다.
설사 그런 재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겠죠. 하지만 이상 기후의 위협을 제외해도 각종 환경 오염과 멸종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최재천 교수 같은 양반은 여러 번 생물 다양성을 걱정하고 보존하자고 외쳤죠. 세계적으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렇게 외칠 겁니다. 데이빗 스즈키는 아마 가장 유명한 사례가 아닌가 싶군요. 더불어 미세 먼지와 미세 플라스틱, 셰일 가스나 타르 샌드 채굴, 방사선 중독, 각종 화학 물질 등은 굳이 미래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위협이죠.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만 바라봐도 무수한 미세 먼지를 볼 수 있으니까요. 인간들도 살기 힘든 마당인데, 야생 동물들은 오죽할까요. 미세 먼지가 야생 동물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좋지 않다면, 동물들에게도 당연히 좋지 않겠죠. 더군다나 동물들은 인간처럼 집안에서 마냥 쉴 수 없으니까요. (야외에서 일하는 농민과 노동자는 사실 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신세입니다.) 따라서 생물 다양성은 훨씬 줄어들겠죠. 그렇게 생태계가 바뀌고 생물 다양성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은 풍성한 자연 환경을 볼 수 없을지 모르죠.
우리는 지금 생물 다양성이 붕괴된다고 말하지만, 100년이 지나면 사람들은 21세기가 그나마 자연과 가까웠다고 말할 겁니다. 요르겐 렌더스 같은 과학자는 이런 상황을 슬프게 바라봅니다. 비단 과학자로서만 슬프지 않을 겁니다. 자연 생태계를 쾌락으로 즐기는 심미안이 있기 때문에 슬프겠죠. 자연 생태계는 우리의 건강이나 먹거리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생명은 주변 환경에 정신적인 영향을 받기 마련이고, 자연 환경은 정신적인 쾌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 시인들은 빼어난 경치를 즐기며 풍월을 읊었죠. 요즘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 유산을 보기 위해 애씁니다.
하다못해 뒷산의 짙푸른 수목을 바라봐도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그래서 레이첼 카슨은 자연계에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겠죠.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도 기가 막힌 자연 풍경을 볼 때마다 스크린샷을 찍습니다. 혹은 그 대장관을 넋 잃고 바라봅니다. 비록 그 자연 풍경은 그림의 떡이지만, 뭐 어떻습니까. 아마 2015년인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봤는데, (자세한 근거나 원리는 없었으나) 자연 환경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그러더군요.
자연 환경은 정신적인 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광대하고 풍성한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못할지 모릅니다. 아무르 호랑이는 그저 북부 극동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가 아닙니다. 힘과 민첩함, 신비로움, 흉포함, 아름다운 줄무늬와 날카로운 발톱을 자랑하는 역동적인 생명입니다. 21세기는 첨단 기술이 진보하는 시대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에게서 어떤 영감을 받습니다. 독거 노인들은 종종 텃밭을 키우면서 정서를 치유한다고 말합니다. 텃밭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면, 이 장대하고 엄청난 지구 생태계는 얼마나 많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겠어요. <압주> 같은 비디오 게임이 괜히 인기를 끌겠습니까.
물론 자연 생태계가 무조건 온유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연에는 윤리가 없죠. 각종 기생충이나 전염병도 분명히 자연 생태계의 일부입니다. 살을 파고드는 벌레들과 피를 토하게 하는 바이러스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생충만큼 호랑이의 신비함 또한 분명히 가슴 뛰는 현실이죠. 게다가 우리 인류의 기술은 이제 기생충이나 전염병을 상당수 물리쳤습니다. (아직 혜택을 받지 못하는 몇 십 억 명의 사람들이 있지만, 소수 재벌들의 자본주의 체계가 문제죠.)
이처럼 우리는 자연 환경에서 어떤 영감을 받고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광대한 레드 우드부터 아무르 호랑이를 거쳐 작은 곤충들까지 우리에게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게서 직접 영감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무르 호랑이가 모두 사라진다면, 어떻게 호랑이의 신비로움을 느끼겠어요. 아, 물론 가상 현실이 발달할지 모르죠. 사람들은 증강 현실 프로그램 속에서 아무르 호랑이를 만날지 모르죠.
어쩌면 사람들은 그 증강 호랑이에게서 어떤 영감을 받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증강 현실을 벗어나는 순간, 실제 세상을 마주할 겁니다. 그 세상에는 야생 호랑이가 없겠죠. 정신적인 유산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 차이는 상당히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각종 영상물에서 공룡을 봐도 실제 공룡을 보는 것과 전혀 다르겠죠. 생명의 존재 유무는 그렇게 쉽사리 넘어갈 문제가 아닐 겁니다. 아마 급진적인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호랑이가 사라지는 세상으로 몰아넣겠죠.
자본주의는 파괴적으로 지구 생태계를 바꾸는 중입니다. 그리고 혁명이 아니라면, 앞으로 계속 지구 생태계를 바꿀 겁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싶습니다. 자본주의가 건드리지 못하는 생태계, 자본주의가 절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생태계, 생물 다양성이 급속하게 감소하지 않는 생태계…. 그런 생태계를 한 번쯤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그런 생태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인류가 알기에 생명은 지구 고유의 현상이고,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처럼 현대 산업은 지구 곳곳에 손을 뻗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외계 생태계를 발견한다면, 그때부터 생명 발생은 고유한 현상이 아니라 통계적인 현상이 됩니다. 우리가 외계 생태계를 발견한다면, 이 우주에 그런 생태계가 훨씬 많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외계 생태계를 보고, 비록 지구 생태계는 생물 다양성을 잃었으나, 이 우주에는 아직 풍성하게 작동하는 생태계들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런 생각에서 일말의 위안을 받을 수 있겠죠. 뭐, 꽤나 현실 도피적인 생각입니다. 닿을 수 없는 외계 생태계를 그리워하는 것보다 현재 지구 생태계, 우리가 숨쉬는 현실을 유지해야 할 겁니다.
그런 도피적인 생각이 아니라도 생태계가 지구 고유의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흥분되는 소식입니다. 현실에 마법이 존재한다면, 이 광대하고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체계는 분명히 마법일 겁니다. 그런 체계가 다른 행성에도 있다면, 그런 체계가 이 우주에 널리 퍼졌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겠죠. 물론 그 외계 생태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풍경이 아닐 겁니다. 전혀 다르겠죠. 솔직히 우리는 외계 생태계의 풍경을 전혀 짐작할 수 없습니다. 우주 생물학자들도 감히 상상하지 못합니다. 여기처럼 식물계, 동물계, 미생물계로 나뉠지…. 탄소 기반 생명체일지, 동물들이 (존재한다면)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할지….
저는 <별을 쫓는 사람들>이나 <우주 소년 케무로>, <듄>, <스타타이드 라이징>을 참 좋아하지만, 외계 생태계가 그렇게 생겼을 리 없죠. <알파 센타우리>나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는 그저 뻔하고 뻔한 스페이스 오페라일 뿐이죠. 하지만 외계 생태계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달라도 어쨌든 그건 생명들의 순환적인 체계입니다. 뭐, 우리가 보기에 역겹거나 이해가 안 갈지 모르지만, 그 자체만으도 대단하겠죠.
그런 소식이 좀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그게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