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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마이 어스>와 '진지한 SF 덕질' 본문

SF & 판타지/바이오 돔과 테라포밍

<마이 어스>와 '진지한 SF 덕질'

OneTiger 2022. 5. 25. 20:00

[이 바이오 돔은 훨씬 진지한 논의, 행성급 환경 보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바둑, 등산, 철도, 우표, 아이돌, 맛집….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취향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취향들은 우월과 열등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취향들보다 어떤 취향들은 우월하지 않습니다. 어떤 취향들보다 어떤 취향들은 열등하지 않습니다. 바둑보다 등산은 우월하지 않습니다. 등산보다 바둑은 열등하지 않습니다. 철도, 우표, 아이돌, 맛집, 다른 여러 취향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취향은 객관적인 사실(과학)보다 주관적인 감정(문화)입니다. 취향이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취향은 논쟁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SF 우월주의는 다른 취향보다 SF, 사이언스 픽션이 우월하다고 주장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SF, 사이언스 픽션에 속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개인 방어막 발생기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주 문명 시대에서 미래 전사는 개인 방어막 발생기를 장착합니다. 방어막은 총알을 막습니다. 방어막이 총알을 막기 때문에, 더 이상 미래 전사들은 총기들을 사격하지 않습니다. 만약 두 방어막이 부딪힌다면, 두 방어막은 상쇄할 겁니다. 미래 전사들은 방어막들을 두르고 도검들을 챙강챙강~ 부딪힙니다. 우주 문명 시대에서 주된 전투는 총격전보다 칼싸움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미래 전투가 칼싸움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미래 칼싸움이 진지한가요?



미래 첨단 기술들이 개인 방어막 발생기를 제조할까요? 개인 방어막 발생기 때문에, 미래 전사들이 도검들을 챙강챙강~ 부딪힐까요? 더 이상 미래 전투가 총격전이 아닐까요? 으음, 글쎄요, 미래 칼싸움을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미래 칼싸움이 가능할 거라고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미래 첨단 기술들은 개인 방어막 발생기를 제조할지 모릅니다. 아니면 개인 방어막 발생기는 그저 상상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아무리 첨단 기술들이 발달한다고 해도, 방어막 발생기는 나타나지 않을 테고, 여전히 미래 무장은 총기일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미래 칼싸움을 예언하지 않습니다.

 

총격전보다 칼싸움이 훨씬 역동적이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는 그저 미래 칼싸움을 이야기할 뿐인지 모릅니다. 으음, 미래 칼싸움은 과학적인 전망보다 그저 역동적인 활극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래 칼싸움을 진지하다고 느끼지 않을 겁니다. 미래 칼싸움처럼, 생체 우주선 역시 과학적인 전망이 아닌지 모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생체 우주선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생체 우주선은 SF 생태학에 속합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생체 우주선이 SF 생태학에 속하나요? SF, 사이언스 픽션은 비(非)현실 세계와 첨단 기술들을 결합합니다. 우주선은 첨단 기술들을 요구합니다.



첨단 기술들이 발달하기 전에, 우주선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13세기 중세 사람들은 우주선을 건조하지 않았습니다. 첨단 기술들이 발달한 이후, 우주선은 나타납니다. 20세기 이후, 첨단 기술들이 발달했기 때문에, 우주선들은 나타났습니다. 우주선은 첨단 기술들을 만족합니다. 하지만 생체 우주선은 항해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주선이 유기체라면, 만약 우주선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이 우주선은 생체 우주선일 겁니다. 현실에서 인류 문명은 생체 우주선을 키우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예외 없이, 모든 우주선은 기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 생물권을 생체 우주선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아아, 생물 다양성은 경이로워. 지구 생물권은 생체 우주선이야.", 이건 객관적인 사실보다 문학적인 비유입니다. 지구는 우주선이 아닙니다. 지구는 행성입니다. 현실에서 생체 우주선은 항해하지 않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생체 우주선은 항해할 수 있으나, 현실과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릅니다. 현실과 스페이스 오페라가 다르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는 비현실 세계입니다. 생체 우주선은 비현실 세계를 만족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첨단 기술들+비현실 세계이고, 생체 우주선이 두 조건(첨단 기술들, 비현실 세계)을 만족하기 때문에, 생체 우주선은 사이언스 픽션을 만족합니다.



여러 유기체들이 우주선을 구성하기 때문에, 생체 우주선은 작은 생물권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생물 다양성이 번성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지구를 생체 우주선이라고 비유하는 것처럼, 여러 유기체들은 생체 우주선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생체 우주선이 생물권에 가깝기 때문에, 생체 우주선은 생태학에 속합니다. 게다가 생체 장비는 자연 친화적일 수 있습니다. 보드 게임 <아나크로니>에서 조화 분파(패스 오브 하모니)는 자연 친화적인 세력입니다. 조화 일꾼은 파종기 강화복을 착용합니다. 파종기는 생체 강화복입니다. 티타늄 외골격 내부에서 덩굴들은 유사 근육 다발이 됩니다.

 

조화 일꾼은 강화복 덩굴들과 공생합니다. 강화복 덩굴들은 조화 일꾼을 보호합니다. 비록 파종기가 생체 강화복이라고 해도, 기계 강화복들처럼, 파종기는 효율적입니다. 세력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조화 분파는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합니다. 심지어 조화 사람들은 어머니 자연, 대지 모신 사상조차 따릅니다. 조화 사람들이 대지 모신을 따르는 것처럼, 생체 장비는 자연 친화적일 수 있습니다. 생체 우주선이 생체 장비이기 때문에, 생체 우주선 역시 자연 친화적일 수 있습니다. 생체 우주선이 사이언스 픽션을 만족하고, 생체 우주선이 생태학에 속하기 때문에, 생체 우주선은 SF 생태학입니다.



하지만 생체 우주선이 나타날 수 있나요? 만약 첨단 기술들이 발달한다면, 미래 문명이 생체 우주선을 키울까요? 생체 우주선이 외계 행성으로 항해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생체 우주선을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리 미래 첨단 기술들이 발달한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우주선들은 기계일지 모릅니다. 아무리 300년이 지나고 400년이 지나고 500년이 지난다고 해도, 여전히 미래 문명은 오직 기계 우주선들만 건조할지 모릅니다. 생체 우주선이 독특하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는 생체 우주선을 이야기하는지 모릅니다. 생체 우주선은 과학적인 전망보다 그저 독특한 발상에 불과합니다.

 

미래 칼싸움이 그저 역동적인 활극에 불과한 것처럼, 생체 우주선은 과학적인 전망이 아닌지 모릅니다. 생체 우주선처럼, 다른 SF 생태학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대 괴수는 SF 생태학입니다. 하지만 60m 야생 동물은 과학적인 전망이 아닙니다. 만약 60m 야생 동물이 구축함 어뢰들을 씹어먹고 원양 함대를 침몰시킨다면, 거대 괴수는 과학적인 전망이 절대 아닐 겁니다. 만약 미래 과학 탐사대가 다른 항성계를 연구한다면, 다른 항성계는 거대 괴수를 증명할지 모르나, 글쎄요, 많은 사람들은 거대 괴수를 진지한 연구라고 느끼지 않을 겁니다. 거대 괴수는 그저 신~나는 싸움박질에 불과합니다.


생체 우주선, 거대 괴수처럼, 어떤 SF 생태학들은 과학적인 전망이 아닙니다. 어떤 SF 생태학들은 진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주 바이오 돔은 과학적인 전망일 수 있습니다. 우주 바이오 돔은 진지한 연구일 수 있습니다. 만약 외계 행성에서 개척 과학자들이 바이오 돔을 조성한다면? 만약 외계 행성, 바이오 돔 내부에서 폐쇄 생태계가 순환한다면? 만약 우주 바이오 돔이 가능하다면, 폐쇄 생태계는 살아있는 자연일 수 있습니다. 외계 행성에서 자연이 살아있기 때문에, 개척 과학자들은 자급자족할 겁니다. 자연이 먹거리를 선사하는 것처럼, 인공 생태계(바이오 돔)는 먹거리를 선사할 겁니다.

 

비록 외계 행성이 불모지라고 해도, 자연(바이오 돔)이 살아있기 때문에, 외계 행성에서 개척 과학자들은 자급자족합니다. 외계 행성에서 인류가 자급자족하기 때문에, 외계 행성은 인류 거주지일 수 있습니다. 외계 행성이 인류 거주지이기 때문에, 인류는 확장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 외계 행성들에서 개척 과학자들이 여러 바이오 돔들을 조성한다면, 인류는 훨씬 확장할 겁니다. 만약 폐쇄 인공 생태계가 가능하다면, 비단 외계 행성만 아니라 우주 정거장 역시 인류 거주지일 수 있습니다. 만약 대규모 우주 정거장이 폐쇄 생태계 구역을 장착한다면, 대규모 우주 정거장은 인류 거주지일 겁니다.



평생 동안, 지구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처럼, 평생 동안, 우주 정거장에서 어떤 사람들은 살아갈 겁니다. 만약 대규모 우주 정거장이 인류 거주지일 수 있다면, 대규모 우주선 역시 가능할 겁니다. 다른 항성계는 너무 멉니다. 태양계부터 다른 항성계까지, 우주 항해는 200년을 넘어갈 겁니다. 심지어 우주 항해는 1,000년조차 넘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초공간 도약을 이야기하나, 초공간 도약은 과학적인 전망이 아닙니다. 만약 인류가 다른 항성계에 도달하기 원한다면, 우주선 사람들은 1,000년을 감당해야 합니다. 1,000년 동안, 어떻게 우주선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나요?

 

만약 우주선에서 폐쇄 생태계가 순환한다면, 생태계가 먹거리를 선사하기 때문에, 우주선 사람들은 자급자족할 겁니다. 1,000년 동안, 우주선 사람들은 자급자족하고 세대들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우주선 사람들이 세대들을 이어가는 동안, 우주선은 다른 항성계에 도달할 겁니다. 비록 항성계 항해가 너무 과도한 전망이라고 해도, 분명히 우주 바이오 돔은 진지한 과학적인 연구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주 바이오 돔이 가능할지 모른다고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주 바이오 돔을 황당무계한 공상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생체 우주선은 황당무계한 공상인지 모르나, 우주 바이오 돔은 다릅니다.



우주 바이오 돔은 생태계 테라포밍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생태계 테라포밍은 거시적인 과정입니다. 생태계 테라포밍보다 우주 바이오 돔은 작은 규모입니다. 비록 폐쇄 인공 생태계가 만만하지 않다고 해도, 적어도 생태계 테라포밍보다 우주 바이오 돔은 낫습니다. 우주 바이오 돔은 생태계 테라포밍을 시도하기 위한 준비 단계일 수 있습니다. 생태계 테라포밍은 생물 다양성을 요구합니다. 바이오 돔이 생물 다양성을 키우기 때문에, 바이오 돔은 테라포밍 초기 과정일 수 있습니다. 우주 바이오 돔처럼, 생태계 테라포밍은 과학적인 전망입니다. 생태계 테라포밍은 황당무계한 공상이 아닙니다.

 

비록 생태계 테라포밍이 너무 어려운 업적이라고 해도, 생체 우주선과 달리, 많은 사람들은 생태계 테라포밍을 황당무계한 공상이라고 느끼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아무리 생태계 테라포밍이 과학적인 전망이라고 해도, 인류 문명에게 새로운 자연을 조성하기 위한 명분이 있나요? 만약 외계 행성에서 바다 거북이 헤엄친다면, 오오~, 이건 아주 경이로울 겁니다. 만약 외계 행성 바다가 형형색색 산호초를 자랑한다면, 만약 외계 행성 바다가 풍요로운 생물 다양성을 자랑한다면, 이건 아주 경이로울 겁니다. 생태계 테라포밍은 이 경이로운 장면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윤리적인가요?



21세기 초반 오늘날, 기후 변화는 지구 생물권을 파괴합니다. 기후 변화가 지구 생물권을 파괴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커다란 고통에 빠집니다. 만약 기후 변화가 훨씬 심각해진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은 훨씬 치명적인 고통에 빠질 겁니다. 심지어 기후 변화 피해자들은 10억에 다다를지도 모릅니다. 왜 기후 변화가 심각한가요? 왜 인류 문명이 기후 변화를 막지 못했나요? 대답은 세계 시장 경제입니다. 시장 경제에게 돈벌이는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시장 경제는 돈벌이에 환장합니다. 돈벌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세계 시장 경제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많은 에너지 소비는 오염으로 이어집니다.

 

세계 시장 경제는 이 착취적인 소비를 멈추지 못합니다. 돈벌이를 위해 세계 시장 경제가 너무 많은 상품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비록 행성급 오염이 심각하다고 해도, 세계 시장 경제는 에너지 소비를 멈추지 못합니다. 자연보다 상품, 돈벌이, 이윤 축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장 경제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비록 생물 다양성이 감소한다고 해도, 시장 경제가 돈벌이에 환장하기 때문에, 시장 경제와 환경 보호는 공존하지 못합니다. 시장 경제와 환경 보호는 대립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너무 지배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시장 경제를 옳다고 착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성급 오염을 경제 발전이라고 착각합니다.



특히, 보수 우파 지식인들은 행성급 환경 오염을 경제 발전이라고 정당화합니다. 비록 기후 변화가 너무 심각하다고 해도, 보수 우파 지식인들은 세계 시장 경제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시장 경제를 떠받들기 위해 우파 지식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비록 기후 변화 피해자들이 10억에 다다른다고 해도, 우파 지식인들은 시장 경제가 절대적이라고 거짓말합니다. 10억 피해자들처럼, 심지어 소비에트 연방보다 세계 시장 경제는 훨씬 처절한 실패이기조차 합니다. 하지만 우파 지식인들은 이 처절한 실패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처절한 실패를 경제 발전이라고 포장합니다.

 

자본주의가 너무 지배적이기 때문에, 인류 문명은 기후 변화를 막지 못했습니다. 만약 외계 행성에서 미래 문명이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시장 경제가 환경 오염이기 때문에, 외계 생태계 역시 환경 오염들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아무리 외계 생태계가 환경 오염들을 피한다고 해도, 인류 문명에게 새로운 자연을 조성하기 위한 명분이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인류가 지구 생물권을 복원하기 전에, 인류는 새로운 자연을 조성하기 위한 명분을 얻지 못합니다. 인류가 우주 바이오 돔, 생태계 테라포밍을 시도하기 전에, 인류는 지구 생물권을 복원해야 합니다. 세계 시장 경제는 복원을 방해할 겁니다.

 


시장 경제가 복원을 방해하기 때문에, 지구 생물권을 복원하기 위해 인류 문명은 시장 경제를 타파해야 합니다. 적어도 인류 문명은 시장 경제를 비판해야 합니다. 인류 문명은 보수 우파 지식인들을 엉터리 사기꾼들이라고 비판해야 합니다. 우주 바이오 돔부터 행성급 환경 오염까지, SF 생태학은 이것들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기후 변화 피해자들이 10억에 다다를지 모르기 때문에, 이 논의들은 아주 중요합니다. SF 생태학이 이것들을 논의하기 때문에, SF 생태학 역시 중요합니다. 이건 필연적으로 모든 SF 생태학이 환경 보호를 고민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건 필수적인 규칙이 아닙니다.

 

Viktor Onzenoort van은 <바이오 돔> 동영상을 구상했습니다. 이 동영상은 풍요로운 생물 다양성을 선사합니다. 오오~, 이 동영상은 경이롭습니다. 하지만 <바이오 돔>이 기후 변화를 고민하나요? <바이오 돔>이 인류에게 새로운 자연을 조성하기 위한 명분이 있는지 고민하나요? <바이오 돔>이 보수 우파 지식인들을 비판하나요? 빅토르 반이 <바이오 돔>을 구상하는 동안, 빅토르 반이 세계 시장 경제를 비판했나요? 어쩌면 빅토르 반은 세계 시장 경제를 비판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바이오 돔>은 보수 우파 지식인들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보수 우파 비판은 필수적인 규칙이 아닙니다.



하지만 SF 생태학은 보수 우파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클레어 바에 왓킨스는 <골드 페임 시트러스>를 썼습니다. <골드 페임 시트러스>는 이른바 기후 문학(Cli-Fi)입니다. 킴 스탠리 로빈슨은 <뉴욕 2140>을 썼습니다. <골드 페임 시트러스>처럼, <뉴욕 2140>은 기후 문학입니다. 킴 스탠리 로빈슨은 비단 <뉴욕 2140>만 아니라 <오로라> 역시 썼습니다. <오로라>는 대규모 우주선이 폐쇄 인공 생태계를 장착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골드 페임 시트러스>가 환경 오염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오로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킴 스탠리 로빈슨은 시장 경제를 비판합니다.

 

<골드 페임 시트러스>, 기후 문학, <오로라>, 시장 경제 비판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골드 페임 시트러스>부터 시장 경제 비판까지, 이 주제들이 이어지기 때문에, 심지어 마르크스-레닌주의조차 이것들과 이어질 수 있습니다. 비록 킴 스탠리 로빈슨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반대한다고 해도,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세계화 자본주의와 대립하기 때문에, <골드 페임 시트러스>와 우주 바이오 돔과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이어집니다. 비록 <바이오 돔> 동영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도, <바이오 돔>과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이어집니다. 분명히 이것들은 논리적인 고리들입니다.



SF 생태학이 10억 피해자들을 걱정하기 때문에, SF 생태학은 진지합니다. 비록 생체 우주선이 황당무계한 공상이라고 해도, SF 생태학은 진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SF 생태학을 좋아한다면, SF 생태학은 '진지한 덕질'일 수 있습니다. 다른 취향들은 어떤가요? 다른 취향들이 '진지한 덕질'인가요? 바둑이 진지한 덕질인가요? 바둑이 행성급 환경 오염을 고민하나요? 철도가 진지한 덕질인가요? 철도가 대지 모신 사상을 따르기 원하나요? 아이돌이 진지한 덕질인가요? 아이돌 그룹들이 기후 변화를 논의하나요? 위클리는 아이돌 그룹입니다. 위클리는 <My Earth>를 불렀습니다.

 

"Maybe 우린 Dumb Dumb 못 참겠어. 땀땀 빨라지고 있나 봐. 땀땀 이젠 지겨워지려 해. 더 타오르고 있지. 불이 붙어버려. Every every one 마이너스. 지켜줘 My Earth." <My Earth>는 기후 변화를 걱정하는지 모릅니다. '못 참겠어 땀땀'은 살인적인 폭염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빨라지고 있나 봐'는 하키 스틱 곡선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더 타오르고 있지. 불이 붙어버려'는 지구 온난화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Every every one 마이너스'는 마이너스 성장, 탈성장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지켜줘 나의 지구'는 기후 정의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My Earth>는 행성급 보호를 주장하는지 모릅니다.



<골드 페임 시트러스>처럼, <My Earth>는 환경 오염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My Earth>가 행성급 환경 보호를 주장한다고 해도, 위클리에게 환경 보호가 핵심 주제인가요? 비단 위클리만 아니라 다른 아이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주소녀 설아부터 비비지 엄지까지, 아이돌들에게 환경 보호가 핵심 주제인가요? SF 생태학에게 환경 보호는 핵심 주제일 수 있습니다. <골드 페임 시트러스>처럼, 적어도 SF 생태학은 환경 오염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입니다. 영화 <고지라: 킹 오브 몬스터즈>처럼, 심지어 고지라, 모스라조차 환경 보호를 주장합니다.

 

비록 거대 괴수가 황당무계하다고 해도, 심지어 거대 괴수조차 환경 보호를 주장합니다. <고지라: 킹 오브 몬스터즈>처럼, SF 생태학은 환경 오염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일 수 있으나, 아이돌 그룹들에게 환경 보호는 핵심 주제가 아닐 겁니다. 자연 생태계, 생물 다양성, 행성 생물권, 계통 분류학, 영양분 순환, 생명체 진화를 논의하기 위해 아이돌 팬 클럽들은 아이돌 그룹들을 덕질하지 않습니다. 아이돌 덕질은 진지하지 않습니다. 아이돌 덕질과 달리, SF 생태학은 진지한 덕질입니다. 이 차이에서 SF 우월주의는 비롯합니다. SF 우월주의는 아이돌보다 SF 생태학이 진지하다고 주장합니다.



<My Earth>에서 'Every every one 마이너스'는 마이너스 성장, 탈성장을 가리키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이 가사는 지구 온도가 내려가야 한다고 뜻하는지 모릅니다. '마이너스'는 경제보다 온도인지 모릅니다. 비록 '마이너스'가 온도를 가리킨다고 해도, 온도를 낮추기 위해 인류 문명은 마이너스 경제, 탈성장을 추구해야 합니다. 시장 경제가 돈벌이, 많은 매출에 환장하기 때문에, 시장 경제와 탈성장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시장 경제와 탈성장이 대립하기 때문에, SF 생태학은 보수 우파 지식인들을 엉터리 사기꾼들이라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My Earth>보다 <바이오 돔>은 훨씬 우월합니다.

하지만 취향은 논쟁 대상이 아닙니다. 취향은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아무리 SF 생태학이 진지한 덕질이라고 해도, <바이오 돔>이 보수 우파 지식인들을 비판하지 않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SF 생태학은 진지한 덕질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아무리 SF 생태학이 진지한 덕질이라고 해도, SF 생태학은 학술적인 논의가 아닙니다. 만약 SF 생태학이 학술적인 논의가 아니라면, SF 우월주의는 성립하지 않을 겁니다. SF 생태학은 학술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 단계일 수 있습니다. 덕질은 학술을 위한 흥미로운 초기 단계일 수 있으나, 여전히 SF 생태학은 객관적인 과학보다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 생태학은 과학입니다. 아이돌 덕질과 생태학 연구 중에서 어떤 것이 우월한가요? 생태학이 과학이고, 아이돌 덕질이 문화(취향)이기 때문에, 아이돌 덕질보다 생태학 연구가 우월한가요? 그건 아닙니다. 과학과 문화가 다른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과학과 문화는 우월과 열등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록 생태학 연구와 아이돌 덕질이 우월과 열등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도, 아이돌 덕질보다 생태학 연구는 '우선'할 겁니다. 아이돌 덕질보다 생태학 연구는 우월하기보다 '우선'합니다. 아이돌 없이, 얼마든지 인간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살아가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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