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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비전>과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의 서술 트릭 본문

SF & 판타지/어떻게 읽는가

<로봇 비전>과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의 서술 트릭

OneTiger 2019. 1. 23. 19:48

※ 이 게시글에는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로봇 비전>과 모리스 르블랑이 쓴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의 치명적인 결말 누설이 있습니다.

 

 

모리스 르블랑이 쓴 소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는 추리 소설입니다. 셜록 홈즈가 유명한 탐정이라면, 아르센 뤼팽은 신출귀몰한 도둑일 겁니다. 추리 소설 세상에서 아르센 뤼팽은 가장 유명한 도둑 무리에 속할 수 있겠죠.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상당히 많으나, 소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에서 아르센 뤼팽은 데뷔합니다. 이건 다소 이상한 데뷔입니다. 소설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데뷔하자마자 첫째 소설에서 뤼팽은 경찰에게 붙잡힙니다.

 

모리스 르블랑은 아르센 뤼팽을 장기 시리즈로 끌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추리 소설이 열풍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르블랑은 아르센 뤼팽을 쓰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물론 첫째 소설에서 뤼팽이 경찰에게 붙잡힌다고 해도, 뤼팽은 호락호락 붙잡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소설에서 아르센 뤼팽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동시에 이 소설에서 아르센 뤼팽은 주도적으로 나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진실이 무엇일까요?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를 썼을 때, 모리스 르블랑은 일종의 꼼수를 부렸습니다. 독자는 소설을 꼼꼼하게 읽겠으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독자는 이런 함정으로 쉽게 빠질지 모릅니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에서 가장 커다란 문제는 작가와 독자가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는 1인칭 화자 소설입니다. 소설 화자는 어떤 배에 탑니다. 이 배에는 아르센 뤼팽이 있습니다. 경찰은 배에 전보를 보내고 배에 아르센 뤼팽이 탔다고 통보합니다. 소설 화자는 다른 탑승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탑승객들은 누가 아르센 뤼팽일지 궁금해합니다. 탑승객들은 누가 신출귀몰한 도둑인지 수군거립니다. 독자는 누가 아르센 뤼팽인지 추리하고 싶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추리 소설에서 작가는 실마리들을 제공해야 합니다. 작가와 독자는 공평하게 두뇌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물론 하드 보일드 탐정 소설을 비롯해 여러 추리 소설들과 범죄 소설들은 공평한 두뇌 싸움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필립 말로가 삐딱하게 폼을 잡고 실마리들을 감춘다고 해도, 독자들은 불평하지 않을 겁니다. 하드 보일드 탐정 소설은 공평한 두뇌 싸움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건 하드 보일드 탐정 소설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는 1905년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독자들은 공평한 두뇌 싸움을 기대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에서 모리스 르블랑은 실마리들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누가 아르센 뤼팽인지 추리하지 못합니다. 단서들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진짜 아르센 뤼팽은 소설 화자입니다. 소설 화자는 변장한 뤼팽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뤼팽을 체포하기 전까지, 소설 화자는 자신이 아르센 뤼팽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설 화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무시합니다. 물론 소설 화자는 '나는 아르센 뤼팽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설 화자는 '사실 나는 변장한 아르센 뤼팽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정체가 아르센 뤼팽임에도, 아르센 뤼팽은 계속 자신이 평범한 탑승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건 자기 암시나 자기 최면일지 모릅니다.

 

철저하게 변장하기 위해 아르센 뤼팽은 자신이 아르센 뤼팽이라는 사실을 계속 부인했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소설 속에서 이런 자기 암시나 자기 최면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모리스 르블랑은 아주 제한적인 상황과 제한적인 생각을 조명합니다. 소설 화자가 범인이고, 소설 화자가 계속 속내를 공개함에도, 모리스 르블랑은 결정적인 단서를 내놓지 않습니다. 이건 꼼수죠. 솔직히 이건 서술 트릭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같은 소설과 달리,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에는 오직 소설 화자의 한 가지 시점만 있습니다. 따라서 이건 서술 트릭보다 꼼수에 가까울 겁니다.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소설 작가는 범인의 시점을 보여주고 범인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는 다른 등장인물들이 많았고, 소설 작가는 다른 등장인물들을 이용해 범인의 정체를 감출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이건 서술 트릭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서술 트릭의 정석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다릅니다. 이건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가 무조건 공평한 두뇌 싸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독자들은 이걸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연애 이야기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에게는 논리적인 탐정 소설이 되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가장 긴장이 넘치는 절정 부분을 위해 이 소설은 꼼수를 부렸습니다.

 

어쩌면 뤼팽 독자들은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가 훌륭한 서술 트릭을 이용했다고 반박할지 모르나, 이건 서술 트릭보다 '의도적인 누락'에 가깝습니다. 이게 서술 트릭이 될 수 있을까요? 이것과 비슷한 사례로서 SF 독자들은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로봇 비전>을 언급할 수 있을 겁니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처럼, 소설 <로봇 비전>은 1인칭 시점입니다. 소설 화자는 자신의 생각을 계속 드러냅니다. 동시에 소설 화자는 자신의 정체를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설 결말에서 마침내 소설 화자는 자신의 정체를 생각합니다. 사실 소설 화자는 인간이 아니라 로봇입니다. 독자는 소설 화자가 인간이라고 생각했겠으나, 소설 화자는 인간이 아니라 로봇입니다. 그래서 결말은 꽤나 충격적입니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와 <로봇 비전>에는 아주 커다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와 <로봇 비전>은 모두 1인칭 시점입니다. 소설 작가는 소설 화자의 정체를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계속 늘어놓음에도, 소설 화자는 자신의 진짜 정체를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설 화자의 생각이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고, 소설 화자가 계속 생각을 늘어놓음에도, 소설 화자는 자신의 정체를 절대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습니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처럼, <로봇 비전> 역시 '의도적인 누락'을 이용합니다. 하지만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와 <로봇 비전>이 모두 '의도적인 누락'을 이용한다고 해도, 양쪽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아르센 뤼팽은 인간이나, 로봇은 인간이 아닙니다. 아르센 뤼팽과 로봇은 모두 허구입니다. 양쪽 모두 가상의 등장인물이죠. 열렬한 홈즈 독자들이 셜록 홈즈가 살아있다고 믿는 것처럼, 열렬한 뤼팽 독자들은 아르센 뤼팽이 정말 살아있다고 믿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르센 뤼팽은 허구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설정한 로봇 역시 허구입니다. 하지만 아르센 뤼팽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독자들은 아르센 뤼팽에게 딴지를 걸 수 있습니다. 반면, 로봇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의도적으로 소설 화자의 정체를 누락시켰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아이작 아시모프가 꼼수를 부렸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런 독자들은 충격적인 결말을 위해 아시모프가 꼼수를 부렸다고 간주할 겁니다. 문제는 로봇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로봇은 인간이 아니고, 따라서 로봇은 인간과 다르게 사고할 겁니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의식해야 할 수 있으나, 로봇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르센 뤼팽과 로봇이 모두 허구라고 해도, 아르센 뤼팽보다 로봇은 훨씬 비일상적인 요소에 가깝습니다. 사실 <로봇 비전>에서 소설 화자는 꽤나 어중간한 입장입니다.

 

소설 화자는 인간형 로봇이고 인간들과 어울립니다. 어떤 관점에서 로봇은 인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인간들은 로봇이 로봇이라고 철저하게 의식합니다. 로봇은 여기에 반박하지 못합니다. 로봇 3원칙이 보여주는 것처럼, 로봇은 인간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설 화자는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습니다. 소설 화자는 그저 어떻게 인간들이 행동하는지 (객관적으로) 서술할 뿐입니다. 이건 의도적인 누락이 아닙니다. 이게 의도적인 누락이 될 수 있다고 해도, 아이작 아시모프는 SF 설정과 의도적인 누락을 합쳤고 서술 트릭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와 <로봇 비전>이 소설이 아니라 만화나 연극이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였다면, 분위기와 감성은 꽤나 많이 바뀌었을 겁니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와 <로봇 비전> 양쪽에서 주인공 화자는 1인칭 시점으로 계속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습니다. 글자들을 이용하기 때문에 소설은 추상적인 생각을 늘어놓기에 좋습니다. 만화, 연극, 애니메이션, 영화는 훨씬 불리합니다. M. 나이트 샤말란이 감독한 <식스 센스>를 보세요. 이런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자신의 생각을 길게 늘어놓고 싶다면, 무리한 독백은 필수적일 겁니다. 반면, 소설은 자연스럽게 생각들을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소설 작가들은 소설 화자를 이용해 충격적인 결말을 제시합니다.

 

자신의 속내를 늘어놓음에도 소설 화자가 자신의 정체를 '누락'시킬 때, 소설은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을 의식합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자신을 계속 의식합니다. 따라서 소설 화자가 자신의 정체를 '누락'시킬 때, 이건 야비한 꼼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걸 훌륭한 서술 트릭으로 승화하고 싶다면, 소설 작가는 다른 요소들을 활용해야 합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SF 설정(로봇 3원칙)을 이용했고 훌륭한 서술 트릭을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와 <로봇 비전>에 공통점이 있다고 해도, 양쪽은 다릅니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에는 오직 누락만 있으나, <로봇 비전>에서 SF 설정은 서술 트릭을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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