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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하인라인과 계급 수탈 본문

사회주의/우익 이데올로기 비판

로버트 하인라인과 계급 수탈

OneTiger 2017. 12. 3. 19:40

종종 SF 독자들은 로버트 하인라인이 헛갈린다고 말합니다. 로버트 하인라인이 SF 소설들 속에서 다채로운 모습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인라인은 <스타십 트루퍼스>에서 군인들이 운영하는 사회를 묘사했고, <낯선 땅 이방인>에서 자유로운 히피를 묘사했습니다. 한편으로 자유인들이 억압적인 지배자들에게서 맞서는 혁명 역시 그렸죠.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나 <코벤트리>는 그런 소설입니다. 이런 소설은 군인들과 폭력을 예찬하는 <스타십 트루퍼스>와 전혀 다르게 보이고요.


한편으로 로버트 하인라인은 철저하게 미국적인 가치를 숭상하는 것처럼 보이나, <마법 주식 회사 Magic, Inc> 같은 소설에서 자본주의와 대의 제도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듯합니다. 사실 로버트 하인라인은 민주당의 주의회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타십 트루퍼스> 같은 소설과 민주당의 이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이 온건하고 평화롭고 인간적인 정당이기 때문에 군인들을 예찬하는 밀리터리 SF 소설과 민주당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겠죠.



하지만 저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언제나 일관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인라인은 자유로운 개인을 철두철미하게 강조하는 작가입니다. 어느 것도 자유로운 개인을 억압해서는 안 되고, 개인은 자신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는 동시에 최대한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로버트 하인라인은 <코벤트리>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을 강조했고, <스타십 트루퍼스>에서 자유를 자발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외쳤죠. 이 밀리터리 SF 소설에서 시민들은 군대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입대하고 참전합니다. 뒤보아 선생 같은 인물은 꽤나 중요하게 등장하고, 언제나 일장연설을 늘어놓습니다.


머로더 강화복을 입은 기동보병이 아라크니드를 때려잡는 것만큼 이런 일장연설들은 상당히 무게가 있습니다. 아니, 일장연설이 머로더 강화복보다 더 중요할지 모르겠군요. 하인라인은 지도자가 사람들을 강제로 군대에 끌고 가는 것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병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인라인은 사람들이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그것을 지키기 바랐어요. 이 양반은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을 언제나 묘사했고, 그런 묘사는 여러 소설들에서 똑같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로버트 하인라인은 혼란스러운 인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 독자들은 하인라인이 혼란스럽다고 말하죠. 왜 독자들이 그렇게 느낄까요? 왜 독자들은 하인라인이 모순적이라고 느낄까요? 저는 독자들이 '계급 수탈'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죠. 개인의 자유. 좋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소중하죠. 문제는 우리 인류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사회 속에 철저한 수직적인 계급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자유는 소중합니다. 하지만 이런 수직적이고 계급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개인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지킬 수 있을까요.


대기업 남자 회장과 가난뱅이 시골 엄마는 똑같은 개인입니다. 하지만 두 개인이 정말 똑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윤을 축적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대기업 회장은 가난뱅이 시골 엄마를 수탈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 회장은 매연을 뿜거나 산업 폐기물을 버리거나 땅을 빼앗거나 여러 방법들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가난뱅이 시골 엄마가 거기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들은 별로 없습니다. 아니, 전혀 없죠. 계급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사회에서 밑바닥 계급들은 자유를 지키지 못합니다.



문제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이런 계급 수탈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인라인은 <스타십 트루퍼스> 같은 소설에서 전쟁을 주구장창 떠드나,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구조를 지적하지 않습니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나 <코벤트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독재적이고 억압적인 정부를 몰아낸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 프랑스 대혁명이 보여준 것처럼 자유를 부르짖는 혁명은 오직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만 허용했을 뿐입니다. 파리 코뮌처럼 가난한 인민들이 자유를 외칠 때, 그런 인민들은 비참하게 죽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코벤트리> 같은 소설은 이런 역사에 관심이 없겠죠. 그저 몽상 속에서 모든 개인이 똑같다고 외칠 뿐입니다. <마법 회사>도 비슷합니다. 하인라인은 악덕 자본가를 비판할 뿐이고, 자본가 계급에는 관심이 없어요. 하인라인은 악덕 자본가를 싫어할 뿐이고,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수탈하는 측면을 분석하지 않아요. 아울러 민주당은 아주 철저하게 보수 우파적인 정당이고, 따라서 로버트 하인라인과 잘 어울리는 정당입니다. 버니 샌더스 같은 인물이 민주당에서 입지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뻔하겠군요.



<달의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나 <코벤트리>가 혁명을 외치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이걸 좌파적인 소설로 구분합니다. 혁명만 외치면, 그게 좌파일까요. 솔직히 좌파와 혁명은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좌파 사상은 혁명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겠으나, 좌파가 이야기하는 핵심은 그게 아니에요. 게다가 철저한 보수 우파 역시 혁명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왕정을 싫어하는 보수 우파는 당연히 왕정 사회에서 혁명을 외칠 수 있죠. 좌파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그저 혁명이 아닙니다. 계급이 존재하고,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수탈한다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어떤 독자들은 <코벤트리>와 혁명과 좌파 사상을 서로 연결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엉뚱한 연결이죠. 그래서 독자들은 로버트 하인라인이 헛갈린다고 말할 겁니다. 계급 수탈을 외면하기 때문에. 아니, 사실 계급 수탈을 아예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계급 수탈은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나, 학교 선생님들이나 대학 교수들은 이를 거의 언급하지 않아요. 자칭 지식인이라는 인간들도 계급 수탈을 무시하죠. (그러면서 시장 경제가 곧바로 자본주의라는 헛소리를 신나게 지껄이죠.) 대부분 학생들은 계급 수탈이 빨갱이들이나 지껄이는 반동적인 사상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계급 수탈은 인류 문명에서 항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로버트 하인라인이 헛갈려 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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