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디스아너드>와 생산 조건으로서 과학 본문
안내원: 자, 보세요! 여기는 유명한 도나우 강입니다.
여행자: 와, 이 강은 대단해요! 하지만 저는 다뉴브 강을 보기 원해요.
이 대화에서 여행자는 지리를 착각합니다. 이름이 다르기 때문에, 여행자는 도나우 강과 다뉴브 강이 다르다고 착각합니다. 비단 이 여행자만 아니라 다른 여행자들 역시 두 강이 다르다고 착각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비록 여행자들이 도나우 강과 다뉴브 강을 착각한다고 해도, 도나우 강은 바뀌지 않습니다. 여행자들이 착각하든, 착각하지 않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은 유유히 흐릅니다. 언어 해석은 이 강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뭐라고 여행자가 부르든, 여행자가 이 강을 도나우라고 부르든, 다뉴브라고 부르든, 다른 뭔가라고 부르든, 이 아름다운 강은 바뀌지 않습니다.
비단 도나우 강만 아니라 다른 것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한 사람들은 수마트라 호랑이(동물)를 호랑이(단어)라고 부릅니다. 호랑이가 남한 표준어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들은 수마트라 호랑이를 호랑이(단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수마트라 사람들은 호랑이(단어)를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뭐라고 사람들이 말하든, 수마트라 호랑이(동물)는 호랑이입니다. 남한 사람들이 호랑이(단어)를 말하든, 다른 지역 사람들이 다른 이름들을 말하든, 언어는 야생 동물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언어와 상관없이, 언제나 호랑이는 호랑이입니다. 스테고사우루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류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스테고사우루스는 나타났습니다. 인류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스테고사우루스는 사라졌습니다. 스테고사우루스가 진화하고 번성하고 사라지는 동안, 아무도 스테고사우루스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스테고사우루스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비록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고 해도, 스테고사우루스는 번성했습니다. 인간이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스테고사우루스가 멸종했나요? 그건 아닙니다. 단어와 상관없이, 스테고사우루스는 진화했고 번성했고 사라졌습니다. 뭐라고 인간이 골판 공룡을 부르든, 이 단어는 쥐라기 생태계를 바꾸지 않습니다.
인간이 스테고사우루스(단어)를 부르기 전에, 이미 스테고사우루스(공룡)는 나타났습니다. 인간은 단어를 만들었으나, 단어보다 스테고사우루스(공룡)는 우선합니다. 이미 스테고사우루스가 나타났기 때문에, 스테고사우루스를 부르기 위해 인간은 단어(스테고사우루스)를 만들었습니다. 스테고사우루스(공룡)에서 스테고사우루스(단어)가 비롯했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단어에게 골판 공룡은 생산 조건입니다. 공룡에게서 단어가 비롯했기 때문에, 공룡이 생산 조건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단어보다 공룡은 근본적입니다. 공룡 없이, 단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공룡보다 단어는 표면적입니다.
언어는 문화에 속합니다. 사람들이 언어를 만들기 때문에, 언어는 문화에 속합니다. 인간이 문화를 만들기 때문에, 인간은 문화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문화를 다양하게 해석한다고 해도, 이건 근본적이지 않습니다. 비록 여행자가 도나우 강과 다뉴브 강을 착각한다고 해도, 유럽 지리가 바뀌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인간이 단어(문화)를 다양하게 해석한다고 해도, 이건 표면적입니다. 언어와 달리, 스테고사우루스(공룡)는 문화에 속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스테고사우루스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나타나기 전에, 스테고사우루스는 나타났고 사라졌습니다.
생물 다양성 진화 역사에서 스테고사우루스는 비롯했습니다. 이건 문학적인 표현이나, 어머니 자연은 스테고사우루스를 낳았습니다. 인간이 스테고사우루스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문학적인 표현이 어머니 자연을 비유하는 것처럼, 스테고사우루스는 자연 생태계에 속합니다. 스테고사우루스는 문화보다 진화 역사에 속합니다. 인간이 스테고사우루스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언어와 달리, 인간은 스테고사우루스를 다양하게 해석하지 못합니다. 스테고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는 다릅니다. 아무리 인간이 스테고사우루스를 트리케라톱스라고 부른다고 해도, 골판 공룡은 세뿔 공룡이 아닙니다.
뭐라고 인간이 부르든, 골판 공룡과 세뿔 공룡이 다른 것처럼, 인간은 스테고사우루스를 다양하게 해석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스테고사우루스는 스테고사우루스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도나우 강(단어)을 말하고, 어떤 사람들이 다뉴브 강(단어)을 말하는 것처럼, 대상(유럽 지리)보다 주체(사람들)가 중요하기 때문에, 언어는 주관적입니다. 언어가 문화에 속하는 것처럼, 문화는 주관적입니다. 언어와 달리, 언제나 스테고사우루스는 스테고사우루스입니다. 뭐라고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든, 주체와 상관없이, 이 골판 공룡은 바뀌지 않습니다. 주체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이건 객관적입니다.
언제나 스테고사우루스가 스테고사우루스이기 때문에, 이건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이건 과학입니다. 문화(언어)는 주관적이나, 과학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입니다. 이 관점에서 주관적인 문화와 객관적인 과학은 대조적입니다. 문화가 주관적이기 때문에, 문화보다 객관적인 과학은 근본적입니다. 호랑이(동물)에게서 호랑이(단어)가 비롯하는 것처럼, 과학에서 주관적인 문화가 비롯하기 때문에, 심지어 문화에게 객관적인 과학이 생산 조건인 것처럼, 보편적인 과학은 근본적입니다. 보편적인 과학이 근본적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근본적인 대안을 찾기 원한다면, 우리는 과학을 연구해야 합니다.
이건 문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주관적인 문화보다 보편적인 과학이 중요하다고 해도, 분명히 문화는 중요합니다. 소통하기 위해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언어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언어 없이, 우리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언어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처럼, 문화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문화 없이, 우리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문화가 주관적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문화 현상들은 다양할 수 있으나, 아무리 구체적인 문화 현상들이 다양하다고 해도, 문화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문화 없이, 우리가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문화는 아~주 중요합니다.
문화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을 문화로 치환하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뭔가가 과학이라고 해도, 우리는 이것을 문화로 치환하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우리는 문화를 과학으로 치환하는지 모릅니다. 문화가 우리 인생에게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문화가 과학이라고 착각하고 문화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착각하는지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문화를 과학이라고 착각한다면, 우리는 커다란 함정에 빠질 테고, 이건 비참한 결과를 유발할 겁니다. 문화와 과학을 구분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이 문화인지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문화 연구는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문화 연구가 아~주 중요하다고 해도, 만약 우리가 오직 문화 연구에만 매달리고 문화를 근본적이라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커다란 함정, 비참한 결과를 피하지 못할 겁니다. 문화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이 과학인지 구분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지 모릅니다. 언어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이 언어 해석이라고 간주하고, 모든 것이 언어 해석이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과학은 사라집니다. 과학이 사라지기 때문에, 과학 연구는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어떤 사람들은 과학을 해체합니다. 이건 '과학의 죽음'입니다.
과학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제 모든 것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관성과 상대성만 바라봅니다. 우리가 오직 주관성과 상대성만 바라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과학의 죽음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오직 주관성과 상대성만 바라본다면, 과학의 죽음 역시 주관적이고 상대적일 겁니다. 과학의 죽음이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이 죽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죽음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대상(과학의 죽음)보다 주체(우리 사고 방식)는 중요하고, 우리 사고 방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과학이 살아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과학이 살아있다고 해석하는 것처럼, '과학의 죽음' 이론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습니다. 이 이론에게 심각한 모순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문화 연구보다 과학 연구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문화 연구가 아~주 중요하다고 해도, 호랑이(언어, 문화)에게 호랑이(야생 동물, 과학)가 생산 조건인 것처럼, 문화 연구보다 근본적인 과학 연구는 우선합니다. 사이언스 픽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어가 문화에 속하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문화(예술)에 속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문화(예술)에 속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 평론(문화 연구)은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평론가가 이 장르를 열심히 분류한다고 해도, 이건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건 SF 평론에게 아무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화 연구가 아~주 중요한 것처럼, SF 평론은 아주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평론가가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원한다면, 평론가는 사이언스 픽션을 뛰어넘고, 문화(예술) 연구를 뛰어넘고, 과학을 연구해야 합니다. 만약 문화 연구 속에서 평론가가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평론가는 함정에 빠질 테고, 이 대안은 너무 얄팍할 겁니다. 만약 평론가가 근본적인 대안을 원하지 않는다면, 문화 연구, SF 장르 분류는 전부일 수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디스아너드>는 거대 보행 병기를 보여줍니다. 거대 보행 병기는 SF 설정입니다. 하지만 <디스아너드>는 오직 거대 보행 병기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게임 주인공을 비롯해 여러 등장인물들은 마법들을 부립니다. 심지어 이 마법은 야생 동물에게 빙의할 수 있습니다. 이건 SF 설정이 아닙니다. 빙의 마법은 판타지 설정입니다. <디스아너드>는 SF 설정과 판타지 설정을 함께 보여줍니다. 이 게임이 두 장르 설정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이건 사이언스 판타지입니다. <디스아너드>처럼, '사이언스+판타지'라는 장르 명칭처럼,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별로 멀지 않습니다.
비단 <디스아너드>만 아니라 <오더 1886> 역시 사이언스 판타지입니다. 이 비디오 게임 역시 비행선을 비롯해 여러 산업 기술들, 과학 기술들을 과장합니다. <오더 1886>이 산업 기술들, 과학 기술들을 과장하고, 다른 사이언스 픽션들 역시 과학 기술들을 과장하기 때문에, <오더 1886>은 사이언스 픽션에 속하거나 사이언스 픽션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오더 1886>은 오직 산업 기술들만 과장하지 않습니다. 이 게임은 늑대인간들을 보여줍니다. 늑대인간은 판타지 설정입니다. <오더 1886>이 SF 설정(비행선)과 판타지 설정(늑대인간)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이건 사이언스 판타지입니다.
<오더 1886>이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합치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별로 멀지 않습니다. <디스아너드>와 <오더 1886>을 비롯해 다른 여러 사례들 역시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별로 멀지 않다고 보여줍니다. 하지만 테크노 스릴러들은 사이언스 판타지에 반대하는지 모릅니다. 테크노 스릴러들이 어렵고 전문적인 이론들을 늘어놓기 때문에, 이것들과 판타지는 비슷하지 않습니다. <디스아너드>와 <오더 1886>이 과학을 과장하는 것처럼, 테크노 스릴러들은 과학을 과장합니다. 만약 잠입 전문 특수 부대가 은폐장 강화복들을 입는다면, 이 설정은 과학을 과장할 겁니다.
군사 테크노 스릴러는 특수 부대가 개조 탐지견을 운영한다고 묘사할 수 있습니다. 개조 탐지견이 유전 공학을 과장하기 때문에, 테크노 스릴러는 사이언스 픽션에 속하거나 사이언스 픽션과 비슷합니다. <디스아너드>와 <오더 1886>과 테크노 스릴러는 과학을 똑같이 과장합니다. 하지만 테크노 스릴러는 마법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만약 테크노 스릴러가 전문적인 군사 지식들과 마법 주문들을 함께 묘사한다면, 이건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울지 모릅니다. 만약 비디오 게임 <고스트 리콘: 퓨처 솔져>가 탐지견 무선 장치와 동물 빙의 마법을 함께 운운한다면…. 으음, 이건 개그 게임일지 모릅니다.
<고스트 리콘: 퓨처 솔져>가 야생 동물 빙의 마법을 묘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테크노 스릴러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가깝지 않다고 증명합니다. <디스아너드>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가까울 수 있다고 보여주나, <고스트 리콘: 퓨처 솔져>는 반대 분류를 제시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류가 옳은가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가까운가요? 아니면 두 장르가 가깝지 않은가요? 아니, 잠깐. 게임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문자 그대로 <퓨처 솔져>는 '미래' (분위기) 특수 부대를 묘사합니다. 반면, 게임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오더 1886>은 '과거' 19세기 기사단을 묘사합니다.
<퓨처 솔져>는 '미래'이고, <오더 1886>은 '과거(19세기)'입니다. <오더 1886>처럼, <디스아너드> 역시 미래보다 과거입니다. 근대 산업 사회가 나타나기 전에, 이른바 과거 전통 사회는 마법들을 상상했습니다. 과거 전통 사회가 마법들을 상상했기 때문에, 마법은 과거에 속합니다. 판타지 역시 과거에 속합니다. 마법, 판타지가 과거에 속하고, <오더 1886>과 <디스아너드>가 과거를 묘사하기 때문에, 두 게임은 마법, 판타지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두 게임과 달리, <퓨처 솔져>가 미래를 묘사하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가 대립하기 때문에, <퓨처 솔져>는 마법 주문, 판타지를 포함하지 못합니다.
<오더 1886>이 과거를 묘사하고, <퓨처 솔져>가 미래를 묘사하기 때문에, <오더 1886>과 <퓨처 솔져>는 대립합니다. 아무리 두 게임이 과학을 과장하고, 이게 공통점이라고 해도, 과거와 미래가 대립하기 때문에, <오더 1886>과 <퓨처 솔져>는 대립합니다. 어떤 분류가 옳은가요? <오더 1886>과 <퓨처 솔져>가 교집합(과장된 과학 기술)을 형성하나요, 아니면 두 게임이 대립(과거 대 미래)하나요? SF 팬들은 다양한 대답들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어떤 SF 팬들은 <오더 1886>과 <퓨처 솔져>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대답할지 모릅니다. 어떤 SF 팬들은 두 가지가 어울린다고 대답할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구분합니다. 아무리 스페이스 오페라와 중세 유럽 판타지가 비슷하다고 해도, 저는 두 가지가 다르다고 분리합니다. 저는 진보, 근대, 산업, 과학, 계몽주의를 강조하기 원합니다.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이 이것들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스페이스 오페라와 중세 유럽 판타지가 비슷하다고 해도, 중세 판타지보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진보, 근대, 산업, 과학, 계몽주의를 강조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을 편들기 원합니다. 하지만 이건 그저 주관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다른 SF/판타지 팬들은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와 중세 판타지에서 우주 바이오 돔 생태학자와 던전 탐험 드루이드는 환경 보호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태학자와 드루이드는 똑같은 환경 보호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드루이드가 자본주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유 무역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에, 이건 자연 생태계를 교란하고, 치명적인 전염병은 세계적으로 퍼집니다. 자유 시장 경제에서 모든 것이 상품화하기 때문에, 야생 동물들 역시 그저 돈벌이 나부랭이에 불과하고, 수인성 전염병은 인류 문명을 위기에 빠뜨립니다. 자본주의가 사유화(민영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공공 의료를 탄압하고 조롱합니다.
공공 의료가 약하기 때문에, 의료 인력들은 부족하고, 치명적인 전염병은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생태학자는 이것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반면, 만약 중세 판타지가 스팀펑크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드루이드는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전염병에 대처하지 못한다고 지적하지 못할 겁니다. 세계적인 전염병 시대에서 우리는 살아가나, 중세 판타지는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던전 탐험 드루이드보다 바이오 돔 생태학자를 편들기 원합니다. 하지만 언어가 문화에 속하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문화(예술)에 속합니다. 인간이 문화를 만들기 때문에, 인간은 문화를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사람들이 문화(SF/판타지)를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문화(SF/판타지)를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사람들이 SF/판타지를 다양하게 해석하기 때문에, 아무리 제가 스페이스 오페라와 중세 판타지를 분리한다고 해도, 다른 SF/판타지 팬들은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는 여러 분류들을 제시하나, 심지어 SF/판타지 팬들은 이 블로그의 모든 분류가 엉터리라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문화가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문화에게는 정답이 없고, 문화에게 정답이 없기 때문에, 다른 SF/판타지 팬들은 이 블로그의 분류들을 반박할 수 있습니다. 이 반박이 타당한 것처럼, 문화는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그저께 7월 20일 게시글은 생체 비행선과 우주 바이오 돔이 이어질 수 있다고 분류했습니다. 이 블로그는 비단 생체 비행선만 아니라 거대 괴수와 우주 바이오 돔이 이어지거나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과 우주 바이오 돔이 이어질 수 있다고 분류합니다. 비디오 게임 <레우스>가 생태계 상호 작용과 자연 환경 조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심지어 <레우스>와 바이오 돔조차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SF/판타지 팬들은 반박할지 모릅니다. "아니, 이게 무슨 뚱딴지 헛소리 나부랭이야? 어떻게 생체 비행선과 <레우스>와 우주 바이오 돔이 이어질 수 있지? 이것들은 그저 억지 연결들, 과잉 해석들에 불과해!"
생체 비행선과 우주 바이오 돔은 이어지지 않고, 우주 바이오 돔과 <레우스>는 이어지지 않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세 가지들에는 자연 생태계 가공이라는 공통점, 유사성이 있습니다. 왜 이 공통점, 유사성이 세 가지들을 분류하지 못하나요? 우주 바이오 돔에서 생태학자들이 살아있는 상호 작용을 고민하는 것처럼, 비디오 게임 <레우스>에서 게임 플레이어들은 살아있는 상호 작용을 고민합니다. '레우스'가 장대하다는 의미인 것처럼, 심지어 게임 플레이어들은 살아있는 상호 작용이 아주 장대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왜 이 생태학 고민과 감성이 우주 바이오 돔과 이어지지 못하나요?
이건 다소 심한 표현인지 모르나…, 심지어 '문화는 갖다붙이기 나름'인지 모릅니다. 여러 장르 분류들은 문화가 갖다붙이기 나름인지 모른다고 보여줍니다. 문화가 갖다붙이기 나름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저는 문화 연구가 갖다붙이기 나름인지 모른다고 느낍니다. 으음, 이건 다소 무리한 사고 방식인지 모르나, 종종 저는 문화 연구가 갖다붙이기 나름이라고 느낍니다. 이 블로그가 크고 작은 괴수들을 덕질하고, 크고 작은 괴수들이 문화(예술)에 속하기 때문에, 저는 문화 연구를 어느 정도 응원하기 원하나, 문화 연구(SF/판타지 분류)는 갖다붙이기 나름입니다. 반면, 과학 연구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입니다.
만약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생태학자들이 바이오 돔을 조성한다면, 스페이스 오페라는 마법 주문들을 묘사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생태학자들이 두루마리들을 꺼내고 마법 주문들을 웅얼웅얼 시전한다면, 이건 어색할지 모릅니다. 반면, 소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처럼, 스팀펑크는 과학과 마법이 공존한다고 묘사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마법이 공존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과학이고 어떤 것이 마법인지 구분하기는 헛갈립니다. 만약 스팀펑크 세계 속에서 생태학자들이 바이오 돔을 조성한다면, 그들은 과학과 마법을 결합하고 주문들을 웅얼웅얼 시전할 수 있습니다.
우주 생태학자들은 과학 기술들에게 기반하나, 스팀펑크 생태학자들은 과학 기술들과 마법 주문들을 결합합니다. 우주 바이오 돔은 과학이나, 스팀펑크 바이오 돔은 과학+마법입니다. 스팀펑크 바이오 돔에서 생태학자들은 어떻게 그리폰이 영양분 순환 체계에 개입하는지 연구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진보와 전통을 결합하고 과학과 마법을 결합합니다. 테크노 스릴러는 탐지견 무선 장치와 동물 빙의 마법을 함께 묘사하지 못하나, 스팀펑크에서 과학과 마법은 공존합니다. 스팀펑크는 사이언스 픽션에 가깝거나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바이오 돔 그리폰처럼, 예술(문화)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던전 탐험 드루이드보다 바이오 돔 생태학자를 응원하기 원합니다. 저는 마법과 과학이 다르다고 분리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예술(문화)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마법과 과학이 결합할 때, 종종 저는 이 조합이 아주 신비롭다고 느낍니다. 소설 <석조 하늘>에서 실 아나기스트는 아주 놀라운 첨단 과학들을 자랑합니다. 이 놀라운 첨단 과학들은 마법과 비슷합니다. 실 아나기스트에서 과학과 마법은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석조 하늘>에서 등장인물들은 마법을 직접 언급합니다. <석조 하늘>이 과학과 마법을 결합하기 때문에, <석조 하늘>은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오오~.
오오~, 노라 제미신은 천재 작가입니다. 노라 제미신에게 천재라는 수식어는 아깝지 않을 겁니다. <석조 하늘>과 달리, 이 그림(링크)은 온라인 게임 컨셉 아트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 역시 신비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목조 범선은 중세 판타지에 가까우나, 이 중세 판타지 범선은 첨단 장비들을 설치합니다. 아무리 이 범선이 우주를 향해 날아간다고 해도, 이건 어색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이 범선 그림이 과학과 마법을 결합하는 것처럼, 과학과 마법이 대조적이기 때문에, 이 조합은 신비로울 수 있습니다. 이 첨단 범선 그림처럼, 스팀펑크 바이오 돔에서 생태계 순환과 그리폰은 신비롭습니다.
하지만 스팀펑크 판타지와 테크노 스릴러가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초기 산업 도시와 미래 메트로폴리스가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19세기 근대화는 바뀌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문화에 속하기 때문에, SF 팬들은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19세기 근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19세기 근대화에서 사이언티픽 로망스는 비롯했습니다. 호랑이(단어)에게 호랑이(동물)가 생산 조건인 것처럼, 스테고사우루스(문화)에게 스테고사우루스(과학)가 생산 조건인 것처럼, SF(예술)에게 19세기 근대화(시대 변화)는 생산 조건입니다.
만약 평론가가 근본적인 대안을 찾기 원한다면, 평론가는 SF 그 자체보다 19세기 근대화, 시대 변화를 연구해야 합니다. SF 울타리 안에서 평론가는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으나, 비록 여행자가 이름을 착각한다고 해도, 도나우 강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이 통찰은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만약 평론가가 통찰 그 이상을 원한다면, 만약 평론가가 훨씬 근본적인 깊이에 닿기 원한다면, 평론가는 SF 울타리를 뛰어넘고 19세기 근대화, 산업 시대 변화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때 평론가는 어떻게 세계가 사이언스 픽션을 둘러싸고 어떻게 사이언스 픽션이 세계를 반영하는지 파악할 겁니다.
※ 게임 <오더 1886> 스크린샷 출처:
https://www.mobygames.com/game/playstation-4/order-1886/promo
※ 게임 <플래닛 주> 스크린샷 출처:
https://store.steampowered.com/app/1238440/Planet_Zoo_South_America_P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