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뒤 돌아보며>의 노동 조건과 성 평등 본문
소설 <뒤 돌아보며>는 사람들이 기본 소득을 받는 세상을 그립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기본 소득은 21세기 좌파들이 생각하는 기본 소득과 많이 다릅니다. <뒤 돌아보며>가 상정하는 노동이 21세기 좌파들이 상정하는 노동과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설이 제시하는 노동 조건은 굉장히 파격적입니다. 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노동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엄청나게 부여하고, 사람들은 수많은 기회들을 고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사람들은 돈을 지불할 때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뒤 돌아보며>에서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얼마든지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다양한 작업들을 체험할 수 있고, 온갖 경험들을 쌓을 수 있어요. 게다가 노동 종류에 상관없이 기본 소득은 인간적인 삶을 보장합니다. 화장실을 청소하거나 접시를 닦거나 길거리를 청소해도 사람들은 여유롭게 먹고 즐길 수 있습니다. <뒤 돌아보며>에는 비정규직이 없고, 임금 노예가 없고, 자본가에게 애걸복걸하는 노동자가 없어요. 사실 자본가 계급 자체가 없죠. 중요한 것은 여자들 역시 이렇게 여유롭게 먹고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여자들은 남편에게 매달리거나 자본가에게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기본 소득이 생계만 아니라 여유롭고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기 때문에 여자들은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요. 현실의 자본주의 체계는 어떨까요. 여자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하죠. 먹고 살기 위해 수많은 여자들은 남자들과 자본가들에게 매달리고, 심지어 몸뚱이를 팔아야 합니다. 돈이 없는 여자들은 쉽게 사창가로 흘러갑니다. 돈을 벌기 위해 약소국 여자들은 강대국으로 몰래 들어갑니다.
그러는 동안 인신 매매범들은 여자들을 납치하고 사창가에 팔아요. 설사 약소국 여자들이 강대국에 몰래 들어갔다고 해도, 밀입국 브로커에게 빚을 지게 되고 빚을 갚기 위해 몸뚱이를 팔지 모릅니다. 이건 극단적인 상황처럼 보이나, 약소국 여자들이 분명히 직면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비참하고 추악하고 폭력적인 현실이죠. 성 노예는 절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고, 현실에 엄연히 존재합니다. 강대국 여자들이 처한 상황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여대생이 편의점에서 일한다고 가정하죠. 남자 손님들이 여대생에게 추근댄다면, 여대생이 그걸 간단하게 뿌리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편의점은 매출을 올려야 하고, 소비자들을 끌어모아야 합니다. 아르바이트 직원은 넘치고 넘칩니다. 당연히 매출을 올리느라 혈안이 된 점장은 여대생보다 남자 손님을 편들겠죠. 모든 편의점 점장이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사례들은 분명히 존재할 겁니다. 회사에서 남자 상사가 여자 직원을 괴롭히는 상황 역시 특별한 사례가 아닐 겁니다.
만약 그런 여자들이 먹고 살 수 있다면, 함부로 국경을 넘지 않을 테고 사창가에서 몸뚱이를 팔지 않을 겁니다. 여자들이 먹고 살 수단이 있다면, 성 폭행을 방관하거나 참지 않을 겁니다. 남자 상사가 여자 직원을 해고해도, 편의점 점장이 여대생을 내보내도, 여자들은 상관하지 않을 테고 당당하게 저항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먹고 살 수단이 있기 때문이죠. <뒤 돌아보며>는 이런 가능성을 내비치는 소설입니다. 비록 이 소설은 페미니즘 소설에 해당하지 않으나, 어쩌면 페미니즘 소설조차 놓치는 부분을 지적했을지 모릅니다. 여자들 역시 먹고 살아야 합니다.
여자들이 성 폭행이나 성 차별을 고발할 때, 언론은 그런 여자들을 요란하게 조명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여자가 그런 요란한 조명을 받지 못합니다. 어떤 여자들은 조명을 받을지 모르나, 대부분 여자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습니다. 남자 상사가 여자 직원을 괴롭혀도, 여자 직원은 그걸 고발하지 못하고, 먹고 살기 위해 계속 참아야 할지 모릅니다. 정체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은 이런 사태를 해결할 수 있나요. 아니, 그렇지 못합니다. 정체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은 정체성이나 인권이나 연민을 주장할 뿐이고,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정체성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체성 문제 역시 중요합니다. 하지만 여자 역시 먹고 살아야 하는 유기체 동물입니다. 여자들이 정체성을 자각한다고 해도, 쌀밥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지 않습니다. 그래서 파격적인 노동 조건과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기본 소득은 중요합니다. 저는 정체성만 강조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뒤 돌아보며>를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이 소설은 19세기의 낡은 가치관을 드러내나, 몇몇 핵심적인 교훈을 시사합니다. 그건 먹고 사는 문제죠.
※ 남한 사람(남자)들은 여대생이라는 단어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남대생이라는 단어는 별로 쓰이지 않으나, 여대생은 엄청나게 사랑을 받는 단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