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노틸러스 잠수함의 광기 어린 충각 돌격 본문
소설 <해저 2만리>는 노틸러스 잠수함이 어떻게 생겼다고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은 특정한 수치들과 내부 구조들을 살펴볼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몇몇 의문은 남습니다. 가령, 독자들은 어떻게 노틸러스가 충각을 수납하는지 잘 모를 겁니다. 독자들은 어떻게 충각이 생겼는지 모를 겁니다. 노틸러스에는 충각이 있고, 이 충각은 노틸러스가 장비한 유일무이한 무기입니다. 승무원들이 쏘는 소총들이 개인 화기이기 때문에 소총들 이외에 대함 무기는 유일무이한 충각입니다. 노틸러스에는 함포나 함재 쇠뇌가 없습니다.
쥘 베른이 <해저 2만리>를 썼을 때, 유럽 사람들은 이미 어뢰라는 개념을 고안했습니다. 노틸러스는 얼마든지 대포를 쏘거나 작살을 쏘거나 어뢰를 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물 속을 항해하는 잠수함으로서 대포나 어뢰는 노틸러스에게 어울리지 않는지 모릅니다. 수상 선박들은 노틸러스를 제대로 공격하지 못합니다. 수상 선박들은 물 속의 노틸러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설사 안다고 해도 쉽게 공격하지 못합니다. 노틸러스의 단단한 장갑판은 대포 공격을 무마할 수 있어요. 노틸러스는 아주 튼튼한 암살자입니다.
따라서 대포나 어뢰가 없다고 해도, 노틸러스는 충각만으로 상대 선박을 침몰시킬 수 있습니다. 노틸러스가 충각 전술을 밀어붙이는 장면은 꽤나 잔인하고 비극적인 장면들입니다. 상대 선박을 침몰시킬 때마다, 네모 선장은 오싹한 광기를 드러냅니다. 소설 화자(아로낙스 교수)는 네모 선장을 많이 동정하나, 광기 어린 충각 전술 때문에 결국 소설 화자조차 네모 선장에게 등을 돌립니다. 누군가는 네모 선장이 미친 복수귀라고 비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네모 선장은 아주 끔찍한 복수귀입니다. 하지만 네모 선장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는 왜 네모 선장이 그렇게 광기에 빠졌는지 이야기해야 할 겁니다.
네모 선장이 사이코패스일까요? 네모 선장이 아무 이유 없이 선박들을 침몰시키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비의 섬>에는 자세한 속사정이 나오나, <신비의 섬>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독자들은 네모 선장이 제국주의에 희생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네모 선장이 광기에 빠진 이유는 제국주의 때문입니다. 따라서 네모 선장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는 제국주의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배 계급에게 굽실거리는 억압적인 계급 구조가 아니라 서로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 구조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네모 선장을 비판하지 못하겠죠.
네모 선장을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네모 선장은 힘이 없는 개인이고, 무엇보다 우리와 다른 존재입니다. 네모 선장은 현대 인류 문명에 속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네모 선장은 그렇게 바다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대 인류 문명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국주의를 쉽게 비판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제국주의 지배 계급에게서 계속 떡고물을 받아먹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베트남을 침략했고, 베트남 양민들을 학살했습니다. 남한은 그런 미국을 따르고, 그 덕분에 남한은 산업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싶다면, 우리는 그런 산업 개발에 따른 떡고물들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쉬운 행위가 아니고, 그래서 우리는 제국주의를 쉽게 비판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안들 역시 비슷합니다. 억압적인 계급 구조에서는 비슷한 사안들이 계속 벌어집니다. 메갈리아나 워마드를 욕하기는 쉽습니다. 그들은 지배 계급, 기득권 남자들이 아닙니다. 메갈리아나 워마드가 생기는 이유는 기득권 남자들이 강간 범죄를 무시하고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메갈리아나 워마드를 욕하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기득권은 자신의 권력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남한 사회에서 기득권은 권력을 버리지 않고, 계속 메갈리아나 워마드를 나쁜 계집년들이라고 욕하죠.
억압적인 계급 구조에서 기득권이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극단적인 저항들은 계속 나타납니다. 네모 선장의 충각 전술과 욕설들이 난무하는 메갈리아는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네모 선장과 메갈리아가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광기 어린 충각 전술은 끔찍하고, 메갈리아는 폭력적인 집단입니다. 하지만 노틸러스와 메갈리아는 아무 이유 없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국주의가 약소국을 침략했기 때문에 노틸러스는 나타났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메갈리아는 나타났습니다. 노틸러스와 메갈리아는 파생적인 폭력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이고 선천적인 폭력을 비판해야 합니다. 제국주의와 가부장적인 구조는 근본적이고 선천적인 폭력이고, 우리는 이런 것들을 먼저 없애야 합니다. 하지만 기득권을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약자들을 욕하기는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메갈리아를 욕하고, 가부장적인 구조에 굽실거립니다. 저는 언젠가 이런 상황이 깨질 거라고 믿습니다. 언젠가 인류 문명은 가부장적인 구조를 깨뜨릴 겁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너무 느릴 겁니다. 기득권에게 굽실거리기가 너무 쉽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노틸러스가 충각 전술을 밀어붙이겠죠.
아, 여기에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충각 전술을 시도하고 싶다면, 노틸러스는 꽤나 빨라야 합니다. 충각이 상대 선박을 꿰뚫어야 한다면, 노틸러스는 아주 강하게 부딪혀야 합니다. 그래서 <해저 2만리>는 노틸러스가 시가 형태라고 계속 강조하는 것 같아요. 참다랑어가 증명하는 것처럼, 이런 시가 형태는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빠른 속도를 보장하죠. 2차 세계 대전의 유보트를 비롯한 잠수함들은 시가 모양이 아니었습니다. 기술적인 한계 때문이었죠. 스팀펑크 잠수함치고 노틸러스는 꽤나 진보적인 형태를 보여주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