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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꿀벌 가문 프로젝트>의 만담과 영성 본문

생태/동물들을 향하는 관점

<꿀벌 가문 프로젝트>의 만담과 영성

OneTiger 2019. 2. 2. 19:00



제이 호슬러가 그린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는 생태학 학습 만화입니다. 제목처럼 만화 주인공은 어떤 일벌 계급 꿀벌입니다. 니유키라는 꿀벌이 알에서 태어나고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만화는 니유키의 인생을 보여줍니다. 독자는 니유키의 인생을 따라가고, 그러는 동안 독자는 어떻게 꿀벌들이 살아가는지 알 수 있죠. 여러 생태학 학습 만화들이 그런 것처럼,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에는 의인화들이 많습니다. 만화 속에서 니유키를 비롯해 수많은 꿀벌들과 곤충들과 식물들은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떠듭니다.


심지어 그들은 표정들을 지을 수 있죠. 꿀벌들과 곤충들은 웃거나 놀라거나 슬퍼하거나 당황합니다. 진짜 곤충들은 표정들을 짓지 못합니다. 곤충들에게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안면 근육이 없죠. 하지만 만화 속에서 꿀벌들은 한숨을 쉬거나 웃거나 인상을 찌푸립니다. 이렇게 만화가가 곤충을 의인화할 때, 만화가는 곤충에게 인간적인 얼굴을 집어넣습니다. 만화가가 인간적인 얼굴을 집어넣을 때, 곤충에게서 곤충이라는 고유한 특징은 다소 사라집니다. 생태학 학습 만화들에서 곤충들은 곤충이 아니라 반인반수에 가깝죠.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만화는 의인화에 너무 치우치지 않습니다. 제이 호슬러는 꿀벌에게 '인간적인 얼굴'을 완전히 집어넣지 않습니다. 제이 호슬러는 인간적인 얼굴을 그리고 동시에 꿀벌이 드러내는 특징을 놓치지 않습니다. 의인화가 많지 않기 때문에, 아니면 의인화가 곤충이 드러내는 특징을 완전히 가리지 않기 때문에,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는 우화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이 만화에는 어느 정도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성향이 있습니다. 제이 호슬러가 꿀벌들을 그릴 때, 그건 그저 비유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만화 작가는 인간적인 측면을 집어넣고 동시에 자연 생태계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독자는 낄낄거리며 우화를 읽는 동시에 자연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죠. 제이 호슬러가 특징적인 그림체를 고안하지 않았다면,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는 우화와 자연 다큐멘터리라는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잡지 못했을 겁니다. 이건 오직 생태학 학습 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기입니다. 독자는 꿀벌의 인간적인 표정들을 볼 수 있고 동시에 꿀벌이라는 야생 동물을 볼 수 있죠. 비단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만 아니라 생태학 학습 만화를 그릴 때, 만화 작가들은 그림체를 고민할 것 같습니다. 생태학 학습 만화는 재미있는 우화가 되어야 하고 동시에 자연 다큐멘터리가 되어야 합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겠죠.



생태학 학습 만화는 독자의 흥미를 끌어야 합니다. 자연 과학 지식이 딱딱하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걸 재미있게 받아들인다면, 생태학 학습 만화는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과학 지식이 어렵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생태학 학습 만화는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태학 학습 만화를 재미있게 읽고 자연 과학 지식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겠죠. 이런 방법에는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우화적인 특징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면, 그건 진짜 과학 지식과 충돌할지 모릅니다.


애니메이션 <바다 탐험대 옥토넛>은 심해 동물들을 귀엽게 그립니다. 만약 <옥토넛> 시청자들이 진짜 심해 동물들을 본다면, 시청자들은 기절할지 모릅니다. 솔직히 심해 동물들은 별로 귀엽지 않죠. 적어도 심해 동물들은 일반적인 귀여움과 다소 떨어졌습니다. 따라서 생태학 학습 만화가 너무 우화에 치우친다면, 사람들은 우화에 빠지고 자연 생태계를 외면할지 모릅니다. 우화와 자연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생태학 학습 만화는 균형을 잡아야 할 겁니다.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는 효과적으로 균형을 잡았습니다. 꿀벌들은 인간적이나, 너무 우화에 빠지지 않고 꿀벌의 특징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그림체와 함께 유쾌한 분위기는 이 만화의 또 다른 장점입니다. 전반적으로 만화 분위기는 밝고 긍정적입니다. 곳곳에서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는 유쾌한 분위기를 발산합니다. 생태학 지식이 아니라 즐겁고 신나는 이야기가 목적이라고 해도, 독자는 만족스럽게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를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만화 주인공 니유키는 꽤나 수다스러운 꿀벌입니다. 애벌레 시절부터 니유키는 수다를 멈추지 않습니다. 당연히 만담들은 빠지지 않습니다. 니유키는 사고뭉치이고, 커다란 모험심과 호기심을 숨기지 않고, 이런저런 꿀벌들과 다른 곤충들을 만납니다.


니유키는 꽤나 사교적입니다. 꿀벌 사회에 정말 사교 무대가 있다면, 니유키는 많은 인기들을 끌 겁니다. 인기를 끌지 못한다고 해도, 사교 무대에서 니유키는 여기저기 간섭하겠죠. 꿀벌은 사회적인 곤충입니다. 따라서 만화 작가가 꿀벌 사회를 보여주고 싶다면, 만화 작가에게 수다스럽고 사교적인 사고뭉치 꿀벌은 좋은 선택이겠죠. 게다가 니유키는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하고 멋대로 벌집 밖으로 나갑니다. 이런 뜻밖의 여정에는 언제나 위험들이 있죠. 하지만 그 덕분에 독자는 니유키와 함께 자연 생태계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엉뚱하고 발랄한 농담들이 많음에도,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는 섬세함을 놓치지 않습니다. 벌집 밖에서 니유키는 뜻밖의 모험을 펼치나, 그걸 묘사하는 그림들은 섬세합니다. 제이 호슬러는 온갖 꽃들과 풀들과 나무들을 쉽게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떤 장면은 꽤나 장대한 자연 풍경을 선사합니다. 꿀벌은 작고, 꿀벌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이상 규모를 키우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섬세한 그림체와 드넓은 숲과 초원은 멋진 경관을 자랑합니다. 사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볼 때, 멋진 자연 풍경은 자연 지식을 뒷받침할 수 있죠.


멋진 자연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사람들은 자연 지식을 훨씬 친근하거나 감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자연 생태계를 향해 마음을 열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자연 다큐멘터리는 비단 자연 과학 지식만 아니라 생명애(바이오필리아)를 줄 수 있겠죠. 좋은 자연 다큐멘터리는 이른바 녹색 갈증을 풀 수 있습니다. 감동적으로 자연을 보여주고 싶다면, 자연 다큐멘터리는 멋진 풍경을 담아야 할 겁니다.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에는 멋진 자연 경관이 있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감상하는 동안, 독자는 자연 생태계를 향해 마음을 열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이런 풍경들을 그리기 위해 제이 호슬러는 자연 환경을 열심히 돌아다녔을지 모르죠. 여러 동물 기록들을 쓴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정말 자연 환경을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동물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싶다면, 자연 환경 속에서 작가들은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야 할 겁니다. 어쩌면 제이 호슬러는 그저 사진들이나 동영상들을 참고했을 뿐인지 모릅니다. 숲 속을 그리기 위해 작가가 무조건 숲 속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법칙은 없습니다. 그런 법칙이 있다면, SF 작가들은 절대 외계 식생을 묘사하지 못하겠죠.


제이 호슬러가 무슨 방법을 선택했든,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는 자연 생태계를 섬세하게 그립니다. 그 속에서 꿀벌들과 다른 곤충들이 서로 부대끼고 싸우고 협력하고 울고 웃을 때, 독자 역시 울고 웃을 수 있을 겁니다. 의인화는 자연 생태계를 편파적으로 묘사할 수 있으나,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에서 의인화는 편파적인 시각보다 따뜻하고 유쾌한 시각으로 흘러갑니다. 이런 분위기는 정말 좋습니다. 독자가 꿀벌 생태나 자연 생태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도,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는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겠죠. 무엇보다 이 만화에는 꿀벌 신화가 있습니다. 꿀벌들에게는 신화가 있고, 신화에는 우주 창조가 있고, 꿀벌들은 세상을 장대하게 바라봅니다.



전반적으로 만화 분위기는 밝고 가벼우나, 신화는 우주 생성과 소멸을 말하고 거시적인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죠. 결국 니유키 역시 그런 신화 속으로 들어갑니다. 어쩌면 제이 호슬러는 끊임없는 순환과 자연의 섭리가 신화라고 비유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니유키와 다른 곤충들과 식물들 역시 그런 끊임없는 순환 속으로 들어갑니다. 니유키라는 꿀벌은 영원하지 않으나, 자연 생태계는 계속 순환하고, 그건 충분히 신화가 될 수 있겠죠. 그래서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에는 영성이 있습니다. 과학적인 시선 역시 영성을 바라보고 감동할 수 있겠죠. 자연 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생명애와 녹색 갈증을 주장하는 것처럼, 생태학 지식은 그저 단편적인 사실들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 과학이 그저 수치 계산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환경 경제학자의 치졸한 속마음일지 모르죠. <꿀벌 가문 족보 제작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것처럼, 자연 생태계에는 신화와 영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걸 느끼지 못할 이유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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