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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깃털 달린 데이노니쿠스와 관념의 변화를 묘사하기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깃털 달린 데이노니쿠스와 관념의 변화를 묘사하기

OneTiger 2018. 1. 21. 20:04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게임 <사우리안>에 절망하죠. SF 소설들은 그런 '추상적인 사고'를 그려야 합니다.]



아서 코난 도일이 <잃어버린 세계>를 썼을 때부터 <사우리안>이 인기를 끄는 지금까지, 공룡은 언제나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SF 작가들 역시 공룡에 주목했고요. 하지만 공룡을 규정하는 고증은 수시로 변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생물학자들은 더 많은 사실들을 밝혔고, 그런 사실들은 SF 소설에 영향을 미쳤죠. 가령, <공룡과 춤>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표지 그림으로 삼았습니다. <공룡과 춤을>의 표지 그림은 깃털이 달리지 않은 티-렉스를 보여주죠.


하지만 요즘 많은 창작물들은 티라노사우루스가 깃털을 달았다고 묘사합니다. <쥬라기 월드> 같은 영화는 과거의 관습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깃털이 달리지 않은 티-렉스를 내보냅니다. 반면, 숱한 자연 다큐멘터리들과 창작물들은 깃털이 달린 티-렉스에게 지지를 보냅니다. 누가 옳을까요? 정말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깃털들을 달았을까요? 아마 어린 티-렉스는 분명히 깃털들을 달았을 겁니다. 반면, 성체 티-렉스는 오직 머리와 등에 깃털들을 달았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성체 티-렉스 역시 온 몸에 깃털들을 달았을지 모릅니다. 고생물학자들조차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고생물학은 상상 과학과 비슷합니다. 상상 과학은 논리적인 사고 과정이나, 결국 상상이라는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고생물학 역시 그렇습니다. 고생물학자들은 논리적으로 연구하나, 결국 상상이라는 장벽에 부딪힙니다. 고생물학자들은 어떻게 공룡이 무리를 지었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울었고, 어떻게 먹이를 먹었고, 어떻게 교미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생물학자들은 그저 화석들만 참고할 수 있습니다. 현생 동물들을 참고할 수 있으나, 정말 공룡이 현생 동물과 비슷하게 행동했는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해요.


비단 공룡만 아니라 다른 고생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고생물학자들은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아무도 그런 상상이 맞다고 장담하지 못하고, 그래서 여러 자연 다큐멘터리들은 서로 다른 고증들을 묘사합니다. 어떤 티-렉스는 전체적으로 밝은 깃털들이 있고, 어떤 티-렉스는 어두운 깃털들이 부분적으로 있습니다. 어떤 티-렉스는 여전히 깃털들을 달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인 파충류 괴수를 선호하는 공룡 팬들은 제발 티-렉스가 깃털들을 달지 않기 바랄 겁니다. 이미 여러 공룡 팬들은 깃털 달린 데이노니쿠스에게 절망했어요.



공룡 팬들이 깃털 달린 데이노니쿠스에게 절망하는 광경은 다소 우스꽝스럽습니다. 데이노니쿠스는 그저 육식동물에 불과합니다. 데이노니쿠스는 멋지고 용맹한 전사가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그저 쓸데없는 감정 이입에 불과합니다. 사실 수많은 사람들은 육식동물에게 용맹하다는 감정을 불어넣습니다. 숱한 관념들 속에서, 말벌이나 사마귀 같은 작은 곤충들부터 바다 악어나 백상아리 같은 커다란 야수들까지, 다들 용맹무쌍한 전사가 됩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이 존재하지 않은 시절부터) 육식동물들은 꾸준히 초식동물들을 사냥했습니다.


사냥은 그저 영양분을 얻기 위한 격렬한 활동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활동에 찬사를 보내고, 그걸 멋지게 포장하기 위해 애씁니다. 육식동물들은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이고 멋진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데이노니쿠스가 화려하고 예쁘장한 깃털들을 달았을 때, 공룡 팬들은 절망했을 겁니다. 멋진 전사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뭐, 솔직히 한때 저도 깃털 달린 티-렉스나 데이노니쿠스에게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데이노니쿠스가 용맹한 전사라는 관념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고증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만약 우리가 진짜 공룡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관념은 훨씬 크게 변할 겁니다. 공룡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관념들이 크게 변했다면, 공룡을 볼 수 있는 상황에서 관념들은 훨씬 크게 변하겠죠. 그건 어떤 변화일까요. 만약 우리가 정말 공룡을 되살리거나 중생대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뭐라고 생각할까요. 저는 SF 작가들이 그런 변화를 포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공룡 소설만 아니라 SF 소설들은 그런 변화를 드러내야 할 겁니다. 그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존재하지 않은 관념들을 상상한다…. 네, 어렵죠. 가끔 저는 SF 영화나 SF 게임이 꽤나 쉬운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SF 영화나 SF 게임은 그런 관념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없습니다. SF 영화가 화려한 시각 효과를 선보인다면, 다들 찬사를 내뱉을 겁니다. 시각 효과는 문자 그대로 시각적인 무엇입니다.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림이죠. SF 비디오 게임 역시 비디오라는 이름이 아무 이유 없이 붙지 않았을 테죠. 비디오 게임은 상당히 가시적인 매체입니다. 관념의 변화는 그런 것과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SF 영화나 SF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SF 소설을 쓰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SF 영화 제작자나 SF 게임 제작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시적인 그림과 추상적인 관념…. 똑같이 상상 과학이라고 해도 뭐가 더 묘사하기가 어려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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