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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제한적인 자연 본문

SF & 판타지/바이오 돔과 테라포밍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제한적인 자연

OneTiger 2019. 12. 15. 21:14

[많은 우주 개척/생존 게임들에서 배경 무대는 행성, 개척 기지입니다. 반면,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우리 중에는 범인이 있어!" 추리 장르가 고립된 배경 무대를 제시할 때, 이런 대사는 단골 손님이 됩니다. 어떤 추리 장르들은 제한적인 공간, 제한적인 등장인물들을 제시합니다. 무인도, 깊은 숲 속, 외딴 저택, 선박 항해처럼, 이런 배경 무대들은 폐쇄적입니다. 무인도는 고립되었고, 문명은 무인도에 닿지 못합니다. 악천후 때문에, 전화선이 끊어졌기 때문에, 아무도 무인도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문명은 무인도에 개입하지 못합니다. 무인도에서 심각한 사건이 나타난다고 해도, 외부 사람들은 심각한 사건에 끼어들지 못합니다. 오직 무인도 사람들만 사건에 끼어들 수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 배경 무대는 거대 도시들입니다. 다마스쿠스 같은 거대 도시들은 오픈 월드가 됩니다. '오픈' 월드라는 용어처럼, 거대 도시는 폐쇄적이기보다 개방적입니다. 개방적인 도시는 폐쇄적인 분위기를 강조하지 못할 겁니다. 만약 개방적인 도시가 폐쇄적인 느낌을 강조한다고 해도, 도시보다 무인도 같은 고립된 장소는 폐쇄적인 느낌과 훨씬 잘 어울립니다. 무인도에서 아무도 벗어나지 못하고, 아무도 무인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만약 무인도가 별로 넓지 않다면, 폐쇄적인 느낌은 훨씬 강해질 겁니다. 무인도 사람들은 제한적인 등장인물들입니다.

 

 

고립된 배경 장소로서 무인도는 외부 세계를 차단합니다. 무인도는 폐쇄적인 느낌을 강조합니다. 아무도 나가지 못하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무인도가 별로 넓지 않기 때문에, 무인도는 외부 세계를 '차단'합니다. 외부 세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고 해도, 무인도 사람들에게 외부 세계는 희미한 공간입니다. 당장 무인도 사람들은 외부 세계와 만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 닥친다고 해도, 무인도 사람들은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배경 장소로서 무인도가 외부 세계를 '차단'하기 때문에, 무인도 사람들은 '우리'가 됩니다. 무인도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가 됩니다.

 

"우리 중에는 범인이 있어!" 이 유명한 대사는 제한, 차단, 고립을 가리킵니다. 무인도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운명이 됩니다. 오월동주(吳越同舟)처럼, '배'는 하나의 운명을 가리킵니다. 오월동주에서 '배'가 하나의 운명을 가리키는 것처럼, 배경 장소로서 무인도는 하나의 운명이 됩니다. 소설 <식스 웨이크>는 정말 오월동주를 묘사합니다. 소설 <식스 웨이크>에서 우주선은 무인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세대 우주선은 폐쇄적입니다. 우주선 외부에는 오직 막막한 우주만 존재합니다. 우주선에서 아무도 나가지 못합니다. 우주선 외부에서 아무도 우주선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세대 우주선은 하나의 운명이 되고, 우주선 사람들은 '우리'가 됩니다.

 

 

아무리 세대 우주선이 지구 출신이라고 해도, 더 이상 지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구는 외부 세계입니다. 하나의 운명으로서, 고립된 배경 무대로서, 심각한 사건 장소로서 세대 우주선은 외부 세계, 지구를 '차단'합니다. 세대 우주선이 외부 세계, 지구를 차단하기 때문에, 우주선 사람들은 '우리'가 됩니다. 우주선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오월동주처럼, 그들은 똑같은 배를 탔습니다. "우리는 한 배를 탔어." 이 문구에서 '배'는 오직 물리적인 실체 선박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배'는 운명을 가리킵니다. <식스 웨이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대 우주선 사람들은 한 배를 탔습니다.

 

"우리는 한 배를 탔어." 여기에서 '배'는 물리적인 실체, 세대 우주선을 가리킵니다. 문자 그대로 우주선은 '배'입니다. 동시에 '배'는 하나의 운명을 가리킵니다. 세대 우주선에서 사람들이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우주선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주선과 사람들은 하나의 운명입니다. 우주선과 사람들은 '우리'가 됩니다. '우리'는 외부 세계, 지구를 차단합니다. 세대 우주선에서 사건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외칩니다. "우리 중에는 범인이 있어!" '우리'가 '차단'하기 때문에, 이 대사에는 짜릿한 감성이 있습니다. 무인도부터 세대 우주선까지, '우리'에게는 제한적인 감성, 짜릿함이 있습니다.

 

 

고전 3대 추리 소설로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고립과 제한과 차단을 전형적으로 보여줍니다. 만화 <명탐정 코난>에서도 고립된 배경 무대는 주된 소재입니다. <명탐정 코난>은 온갖 고립된 배경 무대들을 보여줍니다. 소설 <식스 웨이크>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 역시 고립된 배경 무대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만약 독자들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좋아한다면, 독자들은 <식스 웨이크>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중에는 범인이 있어!"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만화 <명탐정 코난>과 소설 <식스 웨이크>에서 이 대사는 똑같이 짜릿합니다.

 

이건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만화 <명탐정 코난>과 소설 <식스 웨이크>가 완전히 똑같은 감성을 풍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및 <명탐정 코난>과 달리, <식스 웨이크>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어떤 만화 독자들은 <식스 웨이크>처럼 <명탐정 코난> 역시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이런 주장은 논리적입니다. 쿠도 신이치는 이상한 약물을 마시고 에도가와 코난이 됩니다. 비일상적인 약물 때문에, <명탐정 코난>은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만화 독자들은 <명탐정 코난>이 SF 장르보다 추리 장르에 가깝다고 반박할 겁니다.

 

 

<명탐정 코난>에게 SF 요소가 있음에도, 왜 어떤 만화 독자들이 <명탐정 코난>이 추리 장르에 가깝다고 반박하나요? 비단 <식스 웨이크>만 아니라 <강철 도시>, <쿼런틴>, <시인장의 살인> 같은 소설들은 추리 장르에 가깝습니다. 이런 소설들과 <명탐정 코난>이 똑같이 사이언스 픽션인가요? 하지만 <식스 웨이크>를 비롯해 <강철 도시>, <쿼런틴>, <시인장의 살인>에는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으로서 이런 소설들은 세상을 뒤집습니다. 이런 소설들에서 이미 세상은 뒤집어졌거나 나중에 세상은 크게 뒤집어집니다. 이런 소설들은 뒤집어지는 세상, 전복을 보여줍니다.

 

19세기 서구 근대화 이후, 자연과 문명은 크게 뒤집어집니다. 문학 작가들은 이런 대대적인 격변에 주목하고 사이언티픽 로망스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에게 '전복'은 핵심 사항입니다. <강철 도시>, <쿼런틴>, <시인장의 살인>, <식스 웨이크>에서 이미 세상은 뒤집혔거나 나중에 세상은 뒤집어집니다. 반면, <명탐정 코난>은 세상을 뒤집지 않습니다. 아무리 쿠도 신이치가 에도가와 코난이 된다고 해도, 인류 문명은 대대적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명탐정 코난>은 일상을 충실하게 따라갑니다. <명탐정 코난>은 평화로운 일상, 문명을 크게 뒤집기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에도가와 코난이 탐정 배지, 시계 마취총, 강화 근력 신발을 이용한다고 해도, 일상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명탐정 코난>은 문명, 일상을 적극적으로 유지합니다. 그래서 <명탐정 코난>과 <식스 웨이크>는 다릅니다. 어떤 만화 독자들은 <명탐정 코난>이 SF 울타리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어떤 만화 독자들은 <명탐정 코난>이 추리 장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양쪽 모두 옳을 겁니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을 겁니다. <명탐정 코난>은 SF 장르에 들어가거나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명탐정 코난>과 <식스 웨이크>는 다릅니다. <명탐정 코난>이 전복을 꿈꾸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는 범인이 있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명탐정 코난>과 <식스 웨이크>에게 이 대사는 똑같이 짜릿한 대사가 됩니다. 하지만 <식스 웨이크>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명탐정 코난>과 다릅니다. <식스 웨이크>가 사이언스 픽션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식스 웨이크>는 전복을 이야기합니다. <식스 웨이크>는 고립된 배경 무대, 차단을 보여주고, 동시에 <식스 웨이크>는 전복을 이야기합니다. <식스 웨이크>에서 '우리'는 단순한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전복적인 우리'입니다. <명탐정 코난>과 달리, <식스 웨이크>에서 '우리'에게는 전복, 뒤집어진 사회와 문명이 있습니다.

 

 

이건 전복을 이야기하기 위해 사이언스 픽션이 고립된 배경 무대를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거대하고 개방적인 도시를 제시하고 전복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이버펑크들은 거대하고 개방적인 도시, 메트로폴리스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세대 우주선은 폐쇄적입니다. 세대 우주선은 외부 세계를 차단합니다. 폐쇄적인 세대 우주선이 외부 세계를 차단하기 때문에, 다른 변수들은 세대 우주선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메트로폴리스가 거대하고 개방적이기 때문에, 메트로폴리스는 요란하고 산만하고 번잡합니다. 반면, 세대 우주선은 특정한 상황에 치중할 수 있습니다.

 

메트로폴리스가 요란하고 산만하고 번잡하기 때문에, 개방적인 도시, 메트로폴리스에는 많은 변수들이 있습니다. 반면, 세대 우주선이 고립된 장소이기 때문에, 세대 우주선은 변수들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고립된 배경 장소가 변수들을 차단하기 때문에, 전복은 훨씬 두드러집니다. 만약 <식스 웨이크>가 오직 거대하고 개방적인 메트로폴리스만 제시했다면, <식스 웨이크>는 복제 인간 관계들을 부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야외 공간보다 비좁은 방 안에서 성냥 불빛이 훨씬 빛나는 것처럼, 적어도 폐쇄적인 배경 무대(세대 우주선) 덕분에, <식스 웨이크>에서 복제 인간 관계들과 갈등들은 훨씬 두드러집니다.

 

 

어떤 관점에서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역시 '제한적인 배경'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역시 폐쇄적입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밖으로 아무도 나가지 못합니다. 아무도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외부 세계를 차단합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제한적인 자연, 제한적인 사회입니다. 바이오 돔이 작은 지구, 꼬마 지구가 되는 것처럼,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제한적인 자연과 사회입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건 변수들을 차단하고 자연과 문명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매력적입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이 제한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생태계 모식도를 그리는 것처럼,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간단한 생태계 모식도를 그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이 거대하다고 해도, 적어도 행성 자연 환경보다 바이오 돔은 작습니다. 행성 자연 환경은 너무 방대합니다. 기후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지구 온도 변화를 파악합니다. 과학자들은 몇 천 년, 몇 만 년, 몇 억 년을 파악해야 합니다. 몇 억 년은 너무 방대합니다. 심지어 몇 천 년조차 너무 방대합니다. 기후 변화 연구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빈틈들이 너무 많고, 기후 회의론자들은 빈틈들을 공격합니다.

 

 

방대한 연구에 너무 많은 빈틈들이 있기 때문에, 기후 회의론자들은 빈틈들을 공격하고 기후 변화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주장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합니다. 과학자들이 너무 많은 변수들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산업 발전이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쳤나요? 이것을 연구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산업 발전 이전의 지구 온도 변화와 산업 발전 추세를 파악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연 과학자, 천문학자가 산업 경제학을 깊게 파고들 수 있나요? 아니, 천문학자는 경제학자와 협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천문학자와 경제학자 사이에는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라는 골짜기가 있습니다.

 

천문학자와 경제학자가 협력한다고 해도, 경제학자는 18세기~21세기 초반 산업 발전을 파악해야 합니다. 경제학자는 어떻게 지구 행성 전체에서 산업 발전이 퍼지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이건 너무 방대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기후 회의론에 빠르게 반박하지 못했고, 기후 희의론자들은 헛소문들을 퍼뜨렸습니다. 프랑크 쉐칭이 쓴 테크노 스릴러 <변종>처럼, 전지구적인 연구는 전세계적인 지식인들과 운동권을 요구합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엑스컴이 범세계적인 연합이 되는 것처럼, 지구 기후를 연구하기 위해 지식인들은 범세계적인 연합이 되어야 합니다. 범세계적인 연합은 방대하고 어렵습니다.

 

 

반면,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입니다. 바이오 돔 온도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개척 생태학자가 몇 만 년을 거슬러야 하나요? 바이오 돔 온도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통제실 기술자가 전지구적인 산업 발전을 파악해야 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개척 생태학자와 통제실 기술자는 제한적인 규모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건 훨씬 쉽습니다. 이게 훨씬 쉽기 때문에,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자연과 문명을 훨씬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나중에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이 외계 행성에 도착하고, 테라포밍을 완료하고, 새로운 문명을 이룩한다고 해도, 우주선 사람들은 생태계 모식도를 응용하고 행성 환경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행성 환경 축소 판본입니다. 그래서 현실 속에서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다릅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무인도는 일상에 속합니다. 아무리 무인도가 고립된 지역이라고 해도, 무인도는 일상에 속합니다. 반면,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비일상적입니다. 어쩌면 세대 우주선에서 사람들은 사회주의 공동체를 이룩할지 모릅니다. 현실 속에서 세대 우주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주선 사람들이 사회주의 공동체를 이룩한다고 해도, 이건 오류가 아닙니다. 세대 우주선은 전복적입니다.

 

 

하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일상적이고,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이 전복적이라고 해도, 양쪽에는 똑같이 제한적인 배경 무대가 있습니다. 양쪽에 똑같이 제한적인 배경 무대가 있기 때문에, 현실 속에서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항해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많은 SF 팬들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보다 행성 테라포밍을 훨씬 좋아합니다. 테라포밍이 훨씬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에, SF 팬들은 생체 우주선보다 행성 테라포밍을 좋아합니다. <테라포밍 마스>는 아주 커다란 인기를 끕니다.

 

반면,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게임이 커다란 인기를 끄나요? 유명한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게임이 존재하나요? <산소 미포함>, <스페이스 콜로니>, <플래닛 베이스> 같은 우주 개척 게임들 역시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을 상정하지 않습니다. <산소 미포함>이 아주 유명한 게임인 것처럼, 우주 개척 게임들은 커다란 인기를 끕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주 개척 게임들은 붐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주 개척 게임들이 붐을 일으킨다고 해도,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주된 소재, 주된 배경 무대가 되지 못합니다. <산소 미포함>처럼, 우주 개척 게임들에서 주된 소재, 주된 배경 무대는 외계 개척 기지, 외계 행성입니다.

 

 

[흐음, 이런 개척 기지가 폐쇄 생태계, 제한적인 사회인가요? 이게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비슷한가요?]

 

 

물론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행성 테라포밍에게 근본적인 목표는 자연과 문명입니다. 양쪽 모두 자연과 문명을 고찰합니다. 다국적 기업 경영자가 외계 개척과 자유 시장 경제를 떠들 때,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행성 테라포밍은 자유 시장 경제가 외계 개척을 착취할 거라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행성 테라포밍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매진 어스> 같은 게임은 행성을 제시하나, 사실 이런 행성은 작은 지구, 꼬마 지구에 가깝습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이 그러는 것처럼, <이매진 어스>는 행성 환경을 작은 생태계 모식도로 전환합니다.

 

<이매진 어스>가 행성 환경을 제시한다고 해도, 이런 작은 생태계 모식도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비슷합니다. 포장지는 다르나, 알맹이는 비슷합니다. 통상적으로 21세기 초반 도시 시민들은 우물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시 시민들이 우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시민들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다고 운운할 수 있습니다. 우물은 포장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알맹이(무와 부재의 해석 함정)입니다. 포장지보다 알맹이는 훨씬 중요할 겁니다. 우물과 숭늉 속담처럼, <이매진 어스>의 행성 환경과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포장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알맹이(생태계 모식도)입니다.

 

 

본문 위의 <이매진 어스> 그림을 보세요. 그림 속에는 어떤 가이아 행성이 있습니다. 가이아 행성은 뚜렷한 지형과 식생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자라는지 일일이 셀 수 있습니다. 그림 속의 가이아 행성은 일반적인 행성보다 행성 형태의 생태계 모식도에 가깝습니다. <이매진 어스>는 게임 플레이어가 행성을 개척하고 경영한다고 홍보하나,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처럼, <이매진 어스>에서 '행성' 환경은 꼬마 자연, 작은 생태계 모식도에 가깝습니다. <산소 미포함> 역시 비슷합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이매진 어스>, <산소 미포함>은 모두 우주 개척 이야기입니다.

 

비록 <이매진 어스>와 <산소 미포함>이 코믹 SF, 스페이스 오페라이고,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테라포밍 마스>가 하드 SF, 우주 탐사물이라고 해도, 이런 것들은 똑같은 울타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 개척 울타리 안에는 어슐라 르 귄과 존 발리와 (무엇보다) 킴 스탠리 로빈슨이 있습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게임이 유명하지 않다고 해도, 생태학 SF 팬들은 우주 개척 장르를 전반적으로 좋아할 수 있습니다. (뭐, 바이오 돔이 좁아터졌기 때문에,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에서 호랑이 같은 커다란 포식자 야수는 살지 못할지 모릅니다. <타이토 에콜로지>는 그저 비디오 게임적인 연출에 불과합니다.)

 

 

홍차가 커피를 대체하고, 깐풍기가 양념 치킨을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산소 미포함>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을 대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만약 사람들이 양념 치킨을 먹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깐풍기를 먹고 대리 만족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히 깐풍기가 치느님에게 비교되지 않는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깐풍기와 양념 치킨 사이에는 여러 유사성들이 있습니다. 깐풍기와 양념 치킨 관계처럼,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산소 미포함> 사이에도 여러 유사성들과 비슷한 생산 조건이 있습니다. 양쪽 모두 생태계 순환과 역할 분담, 새로운 자연과 문명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비인기 분야이고, 이건 아쉽습니다. 하드 SF 소설들부터 우주 개척 게임들까지, 다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만약 스팀 같은 비디오 게임 플랫폼에서 게임 플레이어들이 우주 개척 게임을 검색한다면, 검색 결과는 오직 행성 개척, 외계 개척 기지, 우주선 건조만 줄줄이 보여줄 겁니다. 검색 결과에서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주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겁니다. 검색 결과에서 어떤 게임들이 우주선 건조를 제시한다고 해도, 이것들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게임이 아닐 테고, 생태 구역들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겁니다.

 

 

개방적인 도시가 훨씬 거대한 무대임에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고전 추리 소설입니다. 예전에 10월 13일 게시글(링크)이 설명한 것처럼, 흥미로운 이야기에게 규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규모가 변수들을 차단하기 때문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압도적인 인기를 끄는 것처럼, <명탐정 코난>이 고립된 배경 무대들을 중시하는 것처럼, 제한적인 규모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달리, 우주 개척 이야기에서 제한적인 규모는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우주 개척 이야기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을 완전히 외면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킴 스탠리 로빈슨이 <오로라>를 쓴 것처럼, 우주 개척 장르에서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드문 소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단어 '개척'에 웅장한 어감이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개척은 웅장한 규모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문명 개척, 콜로니, 프론티어 정신을 찬양하는 것처럼, '개척'은 제한적인 규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프론티어 정신 때문에 미국이 번영한다고 생각하고 프론티어 정신을 긍정합니다. 프론티어 정신은 웅장해야 합니다. 우주 개척 이야기 역시 웅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웅장하지 않습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세심합니다. 개척 생태학자는 생태 구역들, 폐쇄 인공 생태계를 세심하게 보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외부 문명을 '차단'하는 것처럼,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이 외부 세계를 '차단'하기 때문에, 만약 생태 구역들이 망가진다면,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끝장일 겁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개척자들은 정말 하나의 운명, '우리'가 되고, 그래서 개척 생태학자에게 세심한 보살핌은 아주 중요한 미덕입니다. 현실 속의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카를 마르크스와 나오미 클라인과 도나 해러웨이가 "인류 역사는 자연 역사에 속한다."고 말한 것처럼, 지구와 인류는 '우리'입니다.

 

지구에서 우리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지구와 인류는 하나의 운명, '우리'입니다. 찬란한 새로운 보금자리, 이른바 B 행성은 시기상조입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이 고립, 차단, 제한이기 때문에,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우리'를 훨씬 강조합니다. '우리'는 지구를 세심하게 보살펴야 합니다. 하지만 세심한 보살핌과 웅장한 프론티어 정신, '개척'은 어울리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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