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골드 페임 시트러스>를 비롯한 암울한 미래들 본문
[이런 소설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을 가리키겠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소설 <골드 페임 시트러스>는 클레어 베어 왓킨스가 쓴 환경 아포칼립스입니다.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에 가뭄이 캘리포니아 지역을 덮치고, 몇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을 묘사해요. 저는 <골드 페임 시트러스>를 읽어본 적이 없고, 그래서 뭐라고 자세히 비평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2015년 SF 소설들 중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더군요. 2015년에는 좋은 평가를 받는 또 다른 환경 아포칼립스 소설이 나왔죠. 파올로 바치갈루피가 쓴 <워터 나이프>입니다. <워터 나이프> 역시 가까운 미래에 가뭄이 사람들을 덮치는 상황을 다룬 것 같습니다.
<골드 페임 시트러스>와 <워터 나이프>는 똑같이 2015년에 나온 환경 아포칼립스이고, 좋은 평가를 받았고, 기후 변화가 어마어마한 가뭄을 밀어붙일 거라고 경고하죠. 비단 이런 두 소설만 아니라 기후 변화와 살인적인 가뭄을 다루는 환경 아포칼립스들은 많을 겁니다. 하지만 기후 변화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흔히 사람들은 가뭄과 사막화보다 해수면 상승과 홍수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드넓은 해안 지역들이 물에 잠길 테고, 해안 지역 사람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겁니다.
해수면 상승이 가장 유명한 이유는 아마 규모가 크기 때문일 겁니다. 바다가 해안 도시들을 집어삼키는 광경은 비극적인 장관이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죠. 소설 <뉴욕 2140>의 표지 그림을 보세요. 거대한 도시가 물에 잠겼을 때, 사람들은 쉽게 시선을 돌리지 못할 겁니다. 기후 변화가 정말 그렇게 뉴욕을 바꿀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 역시 그런 장면이 가장 극단적인 설정이라고 인정했고요.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가 위험하다고 계속 경고하나, 아무도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합니다. 과학자들은 점쟁이가 아닙니다.
어쩌면 기후 변화는 상대적으로 안전할지 모릅니다. 과학자들이 잘못 예측했고 기후 변화는 훨씬 작은 피해를 미칠지 모르죠. 하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한다고 해도, 기후 변화는 분명히 재난입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고, 우리는 재난을 그냥 놔둘 이유가 없습니다. 앞으로 재난이 닥쳐올지 모른다면, 당연히 우리는 거기에 대비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현대 문명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아요. 현대 문명을 장악한 체계가 자본주의이기 때문이죠. 자본주의는 우리가 기후 변화를 막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죠. 자본주의는 오직 단기적인 이윤에 관심이 있고, 우리가 기후 변화를 막을 때, 그런 이윤은 줄어들 겁니다.
우리가 기후 변화를 막고 싶다면, 여러 산업 분야들을 바꿔야 할 겁니다. 아무리 우리가 태양열 발전기들이나 풍력 발전기들, 수력 발전기들을 늘린다고 해도, 그건 장땡이 아닐 겁니다. 기업들이 마구잡이로 태양열 발전기들이나 수력 발전기들을 설치한다면, 그것들은 자연 경관을 해치고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칠지 몰라요. 어디에 발전기들을 설치할 수 있을지 우리는 신중하게 장소들을 골라야 할 겁니다. 당연히 이런 논의 과정은 자본주의 체계와 상극입니다. 이런 논의 과정은 협동 조합이나 종업원 지주 회사와 비슷하죠. 자본주의 체계는 자본가들이 직접 결정하고 노동자들에게 명령하는 구조를 좋아합니다.
게다가 태양열 발전기들이나 풍력 발전기들이 늘어난다면, 화석 연료 산업은 이윤을 크게 남기지 못하겠죠. 화석 연료 산업은 자본주의 체계를 떠받치는 기둥이고, 자본주의 체계는 당장 화석 연료 산업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을 겁니다. 식량 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식량 산업은 무모한 축산업으로 이어집니다. 무모한 축산업은 대부분 사람들을 위한 산업이 아닙니다. 그건 오직 단기적인 이윤만 노리는 산업입니다. 따라서 기후 변화를 막고 싶다면, 우리는 축산업을 크게 줄여야 할 테고, 자본주의는 그걸 싫어하겠죠.
자본주의는 환경 오염이 상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상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환경 오염을 돈벌이로 만듭니다. 미세 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 기업들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야 한다고 요란하게 광고합니다. 요란한 마스크 광고를 이용해 기업들은 사람들이 어서 돈을 소비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결국 자본주의가 자랑하는 경제 성장은 이런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재난에 관심이 없고, 만약 우리가 재난을 막고 싶다면, 자본주의는 우리를 방해할 겁니다. 그래서 여전히 세계 지도자들에게는 기후 변화를 막을 마음이 없어요. 사람들이 죽는다고 해도, 윗대가리들은 대기업들을 먼저 챙겨주기 원하죠.
요르겐 랜더스 같은 미래학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유럽이나 미국 윗대가리들보다 중국 윗대가리들이 좀 더 나을지 모릅니다. 중국 지도자들이 유럽이나 미국 지도자들보다 좀 더 대기업들을 휘어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피장파장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약자들은 죽어나겠죠. 중국 정부가 대기업들에게 참견한다고 해도, 그래서 중국이 피해자들을 줄일 수 있다고 해도, 결국 약자들은 죽어나갈 겁니다. 중국 정부는 밑바닥 계급에게 상관하지 않을 테고요.
이런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골드 페임 시트러스>나 <워터 나이프> 같은 소설은 SF 소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들은 너무 현실적인 소설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환경 아포칼립스보다 생태 유토피아가 더 보고 싶습니다. 이미 현실이 환경 아포칼립스처럼 보이기 때문에 저는 뭔가 좀 희망적인 것을 보고 싶어요. SF 소설을 접할 때조차 암울한 이야기를 접해야 한다면, 별로 재미가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