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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와 킹콩의 위상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고지라와 킹콩의 위상

OneTiger 2017. 2. 18. 12:11

영화 <콩: 해골섬>의 개봉일이 대략 한 달 남았습니다. 이 영화는 킹콩과 스컬 크롤러를 비롯한 각종 괴수들 때문에 화제지만, 해골섬 괴수들만이 전부는 아니죠. <콩: 해골섬>의 TV 예고편을 보면, 어떤 인물이 폭격 실험을 언급합니다. 그 실험은 사실 실험이 아니라 바로 고지라를 처치하기 위한 공격 행위였습니다. 2014년 가렛 에드워즈의 <고지라>에서도 이 사건을 언급하죠. <고지라>와 <콩: 해골섬>은 서로 똑같은 설정을 공유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들은 똑같은 세계를 기반으로 하고, 고지라와 킹콩은 똑같은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영화 배급사 레전더리 픽쳐스는 <콩: 해골섬>이 크게 흥행할 경우, 두 괴수의 쌈박질까지 계획하나 봅니다. 킹콩과 고지라의 싸움은 나름대로 흥미롭지만, 과연 킹콩이 고지라에게 상대가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과거 토호 영화에서도 킹콩이 모종의 과정을 거치고 덩치를 키웠기 때문에 고지라와 싸울 수 있었으니까요.


사실 설정만 아니라 '괴수의 위상'을 고려해도 킹콩과 고지라는 서로 다릅니다. 킹콩은 거대한 야수입니다. 덩치가 엄청나게 크지만, 어쨌든 제법 현실적인 야수입니다. 반면, 고지라는 초현실적인 존재이고, 동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동물처럼 생겼고 동물처럼 행동하지만, 그 속성은 자연 재해와 비슷합니다. 쓰나미, 태풍, 화산 폭발, 지진과 비슷하죠. 인간의 물리력으로 절대 막을 수 없어요. 고지라는 광범위한 피해를 끼치고, 활동 반경도 엄청나게 넓습니다. 예전에 <고지라> 예고편에서 '포스 오브 네이처'라는 문구를 봤는데, 고지라와 딱 어울리는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1954년 원작도 고지라를 수소 폭탄의 위력으로 은유했죠. 2014년 영화의 고지라, 이른바 레전더리 고지라도 인간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일단 나이부터 엄청나게 오래 먹었죠. 중생대 이전부터 살아온 놈이니까요. 각종 재래식 병기는 피해도 못 미칩니다. 고지라는 태평양을 단숨에 항해하고, 위력적인 방사열선까지 뿜을 수 있어요.


킹콩은 유명한 괴수입니다. 아마 고지라보다 킹콩이 훨씬 유명하겠죠. 등장 시기도 훨씬 앞섰고요. 하지만 아무리 킹콩이 유명해도 고지라를 이긴다면, 그건 뭔가 좀 어색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능력치 문제가 아닙니다. 각 영화에서 '괴수의 위상'이 다릅니다. 킹콩은 문명의 침입 앞에 쓰러지는 야생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그저 커다란 야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고지라는 대자연의 분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화력은 절대 고지라를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킹콩과 고지라가 싸운다면, 서로 다른 위상이 맞부딪히는 셈입니다. (뭐, 어차피 쌈마이 괴수물을 찍고 싶다면, 그런 위상을 꼭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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