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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게임 플레이어들은 계산기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게임 플레이어들은 계산기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OneTiger 2018. 9. 25. 18:55

[이런 게임을 플레이할 때, 사람들은 이상을 바라겠죠. SF 소설들은 이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바둑은 아주 대표적인 게임입니다. 윷놀이 역시 그렇고요. 바둑이나 윷놀이는 아주 단순한 시각적인 측면들을 보여줍니다. 시각적인 관점에서 바둑은 단순합니다. 가로와 세로 직선들, 하얀 돌들과 검은 돌들. 이런 것들은 바둑의 시각적인 측면을 이루는 전부입니다. 윷놀이 역시 마찬가지고요. 윷놀이에서 몇몇 개의 단순한 말,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지도, 막대기들 같은 윷들은 윷놀이의 시각적인 측면을 이루는 전부입니다. 다른 고전적인 게임들 역시 별로 다른 사정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종종 체스 같은 게임은 꽤나 고급스러운 외관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런 고급스러운 외관이 없다고 해도, 체스를 즐기기에는 아무 무리가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땅바닥에 네모들을 그리고 돌멩이들을 이용해 얼마든지 체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시각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게임들 역시 있습니다. 미니어처 전술 게임 <드라운드 어스>를 보세요. <드라운드 어스>는 각종 폐허들, 울창한 삼림들, 커다란 공룡들, 여러 모험가들 미니어처를 보여줍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오랜 시간을 소비해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런 미니어처들을 배치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런 미니어처를 단순한 나뭇가지나 돌멩이나 헝겊으로 대신하지 못합니다. 체스를 즐길 때, 우리는 고급스러운 체스 말들 대신 나뭇가지들이나 돌멩이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건 체스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드라운드 어스>를 플레이할 때, 우리는 삼림 미니어처나 공룡 미니어처를 나뭇가지들이나 돌멩이들로 대신하지 못합니다. <드라운드 어스>는 미니어처 전술 게임입니다. 우리가 미니어처를 감상하고 사용하기 때문에 <드라운드 어스>는 재미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미니어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드라운드 어스>는 재미를 잃을 겁니다.


미니어처는 <드라운드 어스>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들 중 하나입니다. 가격이 아주 비쌈에도, 미니어처들을 관리하기 어려움에도, 미니어처들을 휴대하기 불편함에도, 게임 플레이어들은 고집스럽게 미니어처 게임을 선호합니다. 심지어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수집이나 전시에 의의를 둡니다. 만약 어떤 게임 플레이어가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고 해도, 폐허들과 삼림과 공룡들과 탐험가들을 멋지게 배치하고 전시한다면, 그 게임 플레이어는 그걸 일종의 예술품이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광경은 미니어처 전술 게임이 아니라 홍수가 나고 공룡들이 활보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묘사한 것 같을 겁니다.



인터넷들을 둘러본다면, 우리는 그런 미니어처 전시품들을 쉽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워해머 40K> 같은 대작 게임은 정말 입이 딱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전시품들을 보여줍니다. 눈발이 휘날리는 거대한 성에서 임페리얼 가드 대군과 타이라니드 대군이 직면하는 광경은…. 누가 이걸 게임이라고 생각하겠어요. 바둑에서 바둑판과 바둑돌들은 그저 정보를 알려줄 뿐입니다. 하지만 미니어처 전술 게임에서 미니어처들은 비단 정보만이 아니라 시각적인 쾌감을 자극합니다. <워해머 40K>를 플레이할 때, 게임 플레이어들은 그저 전략을 짜기 원하지 않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육중한 기갑 부대가 굴러다니는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그런 기갑 부대의 지휘관이 되고 싶어합니다. <워해머 40K>가 멋진 베인 블레이드 전차를 내놓지 않는다면, 수많은 게임 플레이어들은 흥미를 잃겠죠. 비디오 게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텔라리스> 같은 게임을 보세요. 이런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할 때, 게임 플레이어들은 그저 전략을 짜기 원하지 않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설정을 원합니다. 유닛 비용을 계산하거나 자원 채취 분량을 고민하기 전에 게임 플레이어들은 우주 문명을 운영하고 지켜보기 원합니다. 유닛 비용을 계산하거나 자원 채취 분량을 고민하는 행위는 전략 게임의 주된 목적입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들은 오직 그것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미니어처 게임에 시각적인 쾌감이 없다면, 비디오 게임에 설정이 없다면, 게임 플레이어들은 그런 게임들을 플레이하지 않겠죠.



미니어처들이 시각적인 쾌감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건 그저 시각적인 쾌감으로서 끝나지 않습니다. 미니어처들에는 설정이 있습니다. 미니어처들은 이야기를 만듭니다. 육중한 베인 블레이드 전차는 그저 멋진 전차가 아닙니다. 이건 우주 인류 제국의 결전 병기이자 유물입니다. 그런 설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들은 베인 블레이드가 훨씬 로망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눈이 쌓인 성에서 임페리얼 가드와 타이라니드 대군이 대치할 때, 그건 비장미가 넘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워해머 40K>나 <드라운드 어스>에는 배경 설정과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배경 설정 따위를 모른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들은 얼마든지 미니어처 전술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배경 설정이 아니라 게임 규칙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게임 제작진들은 재미있는 배경 설정을 만드느라 애씁니다. 왜 배경 설정이 미니어처 전술 게임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함에도, 게임 제작진들이 그걸 만드느라 애쓸까요? 왜 <스텔라리스>를 플레이할 때, 게임 플레이어들이 특정한 종족 이야기를 설정할까요? 왜 미니어처 게임 플레이어들이 힘들게 미니어처들을 수집하고 관리하고 전시할까요? 이런 것들은 '이야기의 힘'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오직 단순히 게임 규칙만을 즐기기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이야기와 설정을 원합니다. 비록 그런 이야기와 설정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이야기와 설정을 기반에 깔기 원합니다. 이야기와 설정이 특별한 분위기를 조성할 때, 마침내 우리는 게임 규칙에 신경을 쏟습니다. <드라운드 어스> 같은 게임을 플레이할 때, <스텔라리스> 같은 게임을 플레이할 때, 우리는 그저 피해 굴림이나 유닛 비용을 계산하는 계산기가 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누가 계산기가 되고 싶어하겠어요?


우리는 SF 이야기 속의 어떤 이상이 되기 원합니다. 우리는 공룡들이 우글거리는 밀림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되거나 방대하고 낯선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사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도 우리는 어떤 이상을 그릴 겁니다. 오직 꼴보기 싫은 등장인물들만 잔뜩 나온다면, 왜 우리가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겠어요? 왜 등장인물들이 다치거나 사라질 때, 우리가 탄성을 지르겠어요? 사실 소설은 그저 글자 나부랭이들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설은 글자 나부랭이가 아니라 생생한 이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을 찾기 위해 소설이나 영화 같은 창작물을 소비합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스텔라리스>를 플레이하는 이유는 우주선 건조 비용을 계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주 문명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드라운드 어스>를 플레이하는 이유는 주사위로 피해 굴림을 계산하는 계산기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밀림과 공룡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되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드라운드 어스>와 <스텔라리스>의 근본적인 게임 플레이는 수치 계산이나, 표면적으로 우리는 대리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런 대리 만족을 위해 숱한 미니어처 게임들이나 비디오 게임들은 설정과 이야기를 도입할 겁니다. 그건 '이야기의 힘'입니다.


물론 우리는 소설이나 영화를 이용해 대리 만족할 수 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 역시 열대 밀림을 탐험하는 공룡 모험가나 외계 행성을 연구하는 과학 우주선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독자나 관객은 일방적으로 소설이나 영화를 따라가야 합니다. 반면, 게임을 플레이할 때, 게임 플레이어들은 직접 이야기와 상통할 수 있죠. <드라운드 어스>를 플레이할 때, 귀중한 첨단 장비를 수거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어는 공룡을 몰래 피하거나 공룡과 요란하게 싸움박질을 벌일 수 있습니다. 그건 게임 플레이어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게임은 매력적일 겁니다. 게임 속에서 게임 플레이어가 이야기와 상통할 수 있기 때문에.



물론 게임 플레이어가 이야기와 상통할 수 있다고 해도, 게임이 선사할 수 있는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시각이 있습니다. 시각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똑같이 17세기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유럽 사람들과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서로 다른 것을 이야기할 겁니다. 유럽 사람들은 17세기가 위대한 탐험의 시대였다고 이야기할 테고,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17세기가 끔찍한 식민지 수탈이었다고 이야기하겠죠. 똑같이 17세기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유럽 백인의 시각과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시각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자아냅니다.


이렇게 뭔가를 이야기할 때, 시각은 이야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야기를 듣거나 만들 때, 우리는 그런 시각을 고찰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게임에는 그런 고찰이 부족합니다. 그런 시각을 고찰하고 싶다면, 우리는 철학적인 문제들을 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철학은 추상적인 영역이고, 게임은 그런 추상적인 논의에 별로 어울리지 않죠. 추상적인 영역을 논의하고 싶다면, 우리는 언어, 텍스트를 이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게임은 텍스트를 이용하는 매체가 아닙니다. 미니어처 게임이나 비디오 게임은 훨씬 그렇습니다. 이름처럼 미니어처 게임이나 비디오 게임은 미니어처나 동영상을 중시하죠.



미니어처 게임이나 비디오 게임과 달리, 텍스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소설은 추상적인 영역을 논의할 수 있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이야기와 상통하지 못하나, 새롭고 낯선 관점을 배울 수 있어요. 게임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즐기는 동시에 여러 소설들을 읽는다면, 그들은 새로운 관점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여러 공룡 소설들을 읽는다면, <드라운드 어스>를 플레이할 때, 게임 플레이어는 공룡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겠죠.


그게 게임 플레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새로운 관점은 게임 플레이를 간접적으로 풍성하게 만들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게임 플레이어들이 계산기가 아니라 공룡 모험가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들이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에. 만약 게임 플레이어들이 피해 굴림을 계산하는 계산기가 되기 원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들에게는 새롭고 낯선 시각이 필요하지 않겠죠.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들은 계산기가 아니라 공룡 모험가가 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합니다. 그런 공룡 모험가에게 공룡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은 아주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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