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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거대 괴수와 살육 행위라는 자극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거대 괴수와 살육 행위라는 자극

OneTiger 2018. 6. 12. 19:15

[게임 <압주>의 엘라스모사우루스. 왜 살육이라는 관점에서 이런 거대 동물을 바라봐야 할까요.]



2014년 영화 <고지라>에서 고지라는 알파 프레데터, 최상위 포식자로서 등장합니다. 세리자와 박사는 계속 고지라를 프레데터라고 부르고, 정말 고지라는 다른 괴수들을 사냥하는 포식자 같습니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에는 포식자 이외에 초식동물들 역시 있습니다. 영화 속 고대 괴수 생태계에 초식동물이 있을까요? 글쎄요,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고지라>가 고대 괴수 생태계를 자세하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괴수는 오직 고지라와 무토 부부입니다. 영화는 다른 괴수들을 보여주지 않고, 관객들은 무슨 괴수들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만화 <고지라: 어웨이크닝>은 시노무라라는 괴수를 보여주나, 이 만화 역시 많은 정보들을 담지 않았어요. <고지라>를 봤을 때, 저는 이런 점이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대 생태계가 21세기에 나타난다면, 영화는 관객들에게 고대 생태계가 무엇인지 설명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오직 무토 부부에게 집중합니다. 영화 제목이 '고지라'임에도, 고지라조차 별로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는 <고지라>가 드러내는 가장 큰 단점일 겁니다.



<고지라>는 괴수 싸움을 많이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니, 이 영화는 일부러 그런 것을 감춥니다. 그래서 어떤 관객들은 <고지라>를 욕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괴수 쌈박질)보다 다른 것(고대 생태계 설정)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1954년 원작 <고지라>에서 고지라는 방사선 돌연변이 괴수였습니다. 하지만 2014년 <고지라>에서 고지라는 고대 생태계를 뒤흔드는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최상위 포식자는 혼자 존재하지 못합니다. 생태계는 그물망이고, 고대 생태계에는 다른 수많은 괴수들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고지라>는 그런 분위기와 설정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설정은 거대하나, 이 영화는 그런 거대한 설정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시각 효과가 많은 비용을 소모하기 때문에? 하지만 세리자와 박사가 설정을 줄줄이 설명했다면, 그건 제작 비용을 별로 소모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고지라>가 그런 설명을 곁들여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너무 설명 위주라면, 그건 별로 좋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고지라>에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상위 포식자를 보여주는 SF 설정은 생태계 그물망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겁니다. <고지라>는 그렇지 못했고, 저는 다른 무엇보다 이런 점이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는 <고지라> 그 자체가 나쁜 영화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묵시적이고 압도적인 장관들을 그렸고, 그런 장관들은 정말 좋았습니다. 흔한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달리, <고지라>는 호들갑을 떨거나 산만하게 떠들거나 게거품을 물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묵시적이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이는 흔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선사하지 못하는 미덕입니다. 하지만 영화 제작진은 그런 미덕에 너무 충실했고, 결과적으로 설명은 부족했습니다. 직접 괴수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도, 이 영화가 보다 거대한 생태계를 언급했다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괴수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가 반드시 시각 효과를 퍼부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만약 세리자와 박사가 사진이나 그림을 곁들이고 설명한다면, 그건 효과적인 기법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고지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영화 제작진은 아예 그런 고대 생태계조차 자세히 설정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이런 고대 생태계에 다른 초식동물들이 있을까요? 방사선 영양분이 흐르는 생태계에 '초식동물'이 있을까요? 코끼리가 호랑이보다 거대한 것처럼, 그런 초식동물들이 고지라보다 훨씬 거대할까요? 고지라가 그런 초식괴수에게 덤빌까요?



만약 지구 생태계처럼 고대 생태계에 초식괴수가 있다면, 그런 괴수는 고지라보다 훨씬 거대할지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척추 동물 세계에서 초식동물은 육식동물보다 거대합니다. 고래 상어 같은 육식동물은 아주 거대하고, 사실 어류 중에서 가장 거대한 부류입니다. 하지만 고래 상어는 여과 섭식자입니다. 고래 상어는 육식동물이나, 포식동물이 아니죠. 호랑이 같은 동물은 육식동물인 동시에 포식동물입니다. 호랑이는 적극적으로 먹이를 추적하고 살육합니다. 하지만 고래 상어는 적극적으로 먹이를 살육하지 않죠. 모든 포식동물은 육식동물이나,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아요.


저는 이런 거대 육식 동물들이 참으로 우아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수 거북 역시 비슷한 사례입니다. 장수 거북은 바다 거북들 중 가장 큽니다. 장수 거북은 해파리를 잡아먹는 육식동물이나, 능동적으로 먹이를 쫓지 않습니다. 그런 격렬한 활동과 거대한 몸집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정말 거대한 동물들은 능동적인 포식동물이 아니죠. 하지만 사람들은 고래 상어나 장수 거북보다 백상아리나 늑대 거북을 훨씬 좋아하죠. 왜? 그것들이 뭔가를 죽이기 때문에. 살육이 자극적이기 때문에.



만약 고래 상어나 장수 거북처럼, 고대 괴수 생태계에 초식괴수나 능동적이지 않은 육식괴수가 존재한다면, 그런 괴수들은 정말 압도적일지 모릅니다. 영화 제작진은 그렇게 설정할 수 있겠죠. 하지만 (능동적이지 않은) 그런 괴수들이 아주 거대하다고 해도, 그런 괴수들은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고래 상어와 장수 거북이 백상아리와 늑대 거북보다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처럼. 다들 자극적인 살육을 좋아하기 때문에.



※ 본문에서 저는 1954년 고지라를 방사선 돌연변이 괴수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틀린 설명이죠. 전략 병기 실험 때문에 고지라는 그저 수면으로 올라왔을 뿐이고 돌연변이가 아닙니다. 잘못된 정보를 이야기한 점, 사과 드립니다. (2018년 10월 22일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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