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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 판타지/어떻게 읽는가

SF 소설들의 첫문장들

OneTiger 2018. 10. 20. 11:29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고, 첫인상은 많은 것들을 좌우합니다. 첫인상이 좋을 때, 인간은 그 대상이 긍정적일 거라고 기대합니다. 첫인상이 나쁠 때, 인간은 그 대상이 부정적일 거라고 경계합니다. 이런 기대와 경계는 계속 그 대상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첫인상을 중시합니다. 겉모습은 전부가 아니고 내면은 겉모습보다 중요하나, 그렇다고 해도 첫인상을 좋게 꾸미기 위해 사람들은 노력하죠. 소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설 제목과 표지 그림은 첫인상이 될 수 있고, 독자들은 첫인상으로 소설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인상적인 제목과 표지 그림을 고민합니다. 여기에서 표지 그림은 다소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작가는 표지 그림을 직접 그리지 못하죠. 어떤 소설책들은 아예 표지 그림을 달지 않아요. 하지만 작가는 직접 소설 제목을 지을 수 있고, 표지 그림이 없다고 해도, 소설책은 제목을 선보여야 합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은 정말 기가 막힌 제목이 아닙니까.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독자는 할란 엘리슨이 아주 인상적인 제목을 지었다고 기억할지 모릅니다. 사실 할란 엘리슨은 정말 인상적인 작가죠.



소설 제목처럼, 소설 첫문장은 첫인상을 장식할 수 있습니다. 문학 평론가들은 무슨 첫문장이 좋은 문장인지 토론하고 왜 그것이 독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논의합니다. 흔히 문학 평론가들은 <오만과 편견>이나 <백경>이 인상적인 첫문장을 선보인다고 말하죠. "재산깨나 있는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왜 문학 평론가들은 이 첫문장이 좋다고 이야기할까요. <오만과 편견>은 연애, 사랑, 결혼 이야기입니다. 대놓고 처음부터 <오만과 편견>은 결혼을 이야기하죠. 소설책을 펼치자마자 독자는 결혼 이야기로 곧바로 들어가야 합니다. <오만과 편견>은 여유를 주지 않고 독자를 연애, 사랑, 결혼으로 끌어당기죠.


재미있게도 소설 속에서 주된 내용은 첫문장과 대조적입니다. 네, 부유한 독신 남자에게는 아내가 무조건 필요합니다. 그건 상식이에요. 그래서 소설 주인공이 이런 상식에 매달리나요. 아니, 소설 주인공이 이걸 부정하기 때문에 첫문장은 인상적입니다. 첫문장은 독자를 결혼 이야기로 곧바로 끌어당기나, 소설 속의 연애와 사랑과 결혼은 첫문장을 부정합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호평들을 받겠죠. 



<백경>은 이것과 다릅니다. "Call me Ishmael. 나를 이스마엘이라고 불러달라." 글쎄요, 이게 인상적인 첫문장이 될 수 있나요. 이 첫문장은 소설 화자를 소개합니다. 그렇게 <백경>이 장대하고 엄청난 기록임에도, 사실 <백경>에는 다른 화자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시점들이 꽤나 뒤죽박죽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백경>에서 소설 화자는 이스마엘입니다. 독자는 무조건 이스마엘의 시점을 통해 소설을 읽어야 합니다. 다른 경로는 없습니다. 소설을 읽기 위해 독자는 무조건 이스마엘을 거쳐야 해요. 그래서 이스마엘은 중요하고, <백경> 첫문장은 이스마엘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이스마엘이 중요한 소설 화자임에도, 이 소개는 다소 수상합니다.


이스마엘은 자신의 이름이 이스마엘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마엘은 자신을 이스마엘이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합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은 진짜 이름이 아닐 겁니다. 이스마엘이 누구일까요? 왜 이스마엘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원할까요? 게다가 소설 속에서 수많은 등장인물들에게는 오직 이름만 있습니다. 에이허브, 스타벅, 스텁, 플라스크. 에이허브가 성일까요, 아니면 이름일까요. 이스마엘은 이런 등장인물들과 함께 포경선 피쿼드에 탑승합니다. 피쿼드는 일반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피쿼드는 망망대해를 떠돕니다. 에이허브는 미친 지도자이고, 피쿼드는 고립된 사회죠. 결국 바다 괴수 모비 딕은 피쿼드를 침몰시키고, 이스마엘은 혼자 살아남습니다. 이스마엘은 꽤나 모호하고, 첫문장 역시 그렇죠.



주류 소설들을 평가할 때, 주류 문학 평론가들은 이런 방법을 동원합니다. 하지만 장르 소설들은? 이렇게 독자들이 SF 소설들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소설 <마션>에서 소설 주인공은 '나는 정말 좆 됬다.'고 말합니다. 독자가 소설을 펼치자마자 소설 주인공은 자신이 아주 좆 됬다고 말합니다. 네, 이제 소설 주인공은 좆 되었습니다. 화성에서 혼자 표류한다면, 누구나 자신이 아주 좆 됬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마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주 탐사 대원은 온갖 고생들을 겪어야 합니다. 이건 첨단 과학을 이용한 고생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첨단 과학이 나온다고 해도, 외계 행성에서 우주 대원이 혼자 고생하지 않는다면, <마션>은 커다란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겁니다.


외계 행성에서 우주 대원이 아주 지독하게 고생하기 때문에 <마션>은 진보와 첨단 과학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주 대원이 지독하게 고생하지 않았다면, 진보와 첨단 과학을 찬양하는 목소리는 희미해질 겁니다. 당연히 소설을 읽기 전에 독자들은 궁금해할 겁니다. "화성에서 우주 대원이 혼자 고립되었어? 그런 우주 대원이 정말 살아남을 수 있나? 그게 가능해?" 네, 그건 불가능할지 모르죠. 그래서 우주 대원은 자신이 아주 좆 됬다고 대답합니다. 이 짧은 첫문장은 독자들의 호기심과 소설 주인공의 위기를 곧바로 연결합니다. 그래서 소설은 독자들을 인정 사정 없이 끌어당길 수 있죠.



하지만 똑같이 화성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붉은 화성>은 훨씬 다릅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화성은 텅 비어있었다." 이 첫문장은 많은 것들을 암시합니다. 이제 화성은 더 이상 텅 비어있는 공허가 아닙니다. 이제 화성은 인류의 또 다른 주거 공간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첫문장은 일반적인 소설 서술 문장이 아닙니다. 이 문장은 논설 문장에 가깝죠. 종종 화성 거주지를 설명하기 위해 <붉은 화성>은 특정한 등장인물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화성 개척 도시라는 새로운 문명을 표현하기 위해 종종 <붉은 화성>은 개인적인 시점보다 거시적인 시점을 이용하기 원하고, 첫문장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특정한 개인들보다 화성 문명이라는 거시적인 공간을 훨씬 주목하는 것 같습니다. <붉은 화성>이 보여주는 첫문장은 별로 인상적이지 않으나, 전반적으로 이 소설은 건조합니다. 화려하고 번잡하고 요란한 분위기는 <붉은 화성>과 어울리지 않죠. 러시아 사람들을 비롯해 여러 민족들이 나오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천박한 미국 농담을 떠든다고 해도, 분위기는 요란해지지 않습니다. 첫문장이 너무 요란했다면, 소설 속의 주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마션>과 달리, 이런 첫문장은 독자들을 당장 끌어당기지 못하나, 그래서 이런 첫문장에게는 가치가 있겠죠. <붉은 화성>이 장대한 화성 문명을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밤에는 소리 없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 여덟 가지를 가르쳐주겠다." 와, 이건 굉장한 첫문장입니다. 사람을 죽인다? 소리 없이? 게다가 여덟 가지 방법으로? 이런 첫문장은 아주 자극적입니다. 누군가는 이 문장이 멋지다고 생각하고 화끈한 액션을 기대할 겁니다. 누군가는 이 문장이 소름이 끼치고 피비린내가 난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숱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전쟁 소설에 이런 첫문장은 아주 잘 어울리겠죠. 하지만 긍정적인 느낌과 부정적인 느낌 중에서 무엇이 훨씬 강렬할까요? 만약 작가가 영광스러운 전쟁과 승리를 찬양한다면, 이런 첫문장은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들은 살인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광스러운 전쟁을 찬양하고 싶다면, 작가는 살인을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애국심과 민족주의는 살인을 덮어야 합니다. 그때 작가는 전쟁이 영광스럽다고 찬양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첫문장에는 무자비한 살인이 있습니다. 게다가 여덟 가지 방법으로. 이런 첫문장은 전쟁 반대로 이어질 수 있어요. <영원한 전쟁>은 정말 격렬하게 전쟁이 나쁘다고 성토하죠. <영원한 전쟁>은 정말 인상적인 소설이고, 첫문장 역시 아주 인상적입니다. 이런 첫문장은 모범 사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75세 생일에 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아내의 무덤에 들렸고, 군대에 입대했다." <영원한 전쟁>처럼, <노인의 전쟁>은 SF 밀리터리 소설입니다. 양쪽 모두 전쟁 소설이죠. 하나는 영원한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노인의 전쟁입니다. 하지만 첫문장은 많이 다릅니다. 소설 주인공은 75세 생일과 아내의 무덤과 군대를 동시에 언급합니다. 왜 그럴까요? 비록 <노인의 전쟁>이 SF 밀리터리라고 해도, 내무반 생활처럼 연애와 사랑과 결혼은 중요합니다. <노인의 전쟁>은 <오만과 편견>이 아니나, 그렇다고 해도 연애와 사랑과 결혼은 중요합니다. 다른 전쟁 소설들처럼, 소설 후반부에서 인류 개척 방위군과 침략 외계인들은 아주 중대한 전투를 벌입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인류의 운명처럼 소설 주인공에게 사랑의 행방은 중요합니다. 아니, 어쩌면 사랑의 행방은 인류의 운명보다 훨씬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연애 소설들이 그런 것처럼, 풋풋한 두 연인이 사랑에 빠지고 속마음을 드러내고 고백하는 장면은 두근거리고 설레죠. 결국 소설 주인공은 개척 방위군보다 연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요. 게다가 이건 75살 노인의 우주적인 연애죠. <노인의 전쟁>은 우주 전쟁에 75세 노인의 청춘과 달달한 연애를 집어넣었고 성공적으로 데뷔했습니다. 첫문장은 그런 데뷔를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첫문장은 짧으나, 있어야 할 것은 모두 있습니다. (우주) 군대, 노인, 아내.



<뉴로맨서>가 선보이는 '꺼진 텔레비전 하늘 색깔'은 SF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첫문장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전에 이걸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저는 이걸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마션>과 <붉은 화성>과 <영원한 전쟁>과 <노인의 전쟁>과 <뉴로맨서> 이외에 다른 SF 소설들 역시 인상적인 첫문장을 선보일 수 있겠죠. SF 소설들 역시 인상적인 도입부를 선보일 수 있고 SF 독자들은 그걸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물론 SF 영화나 SF 비디오 게임 역시 인상적인 도입부를 선보일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도입부는 문장이 아니겠죠. 설사 SF 영화와 SF 게임이 문장을 선보인다고 해도, 그건 지배적인 분위기로 이어지지 않을 겁니다.


SF 영화와 SF 게임은 영상 매체이고, 문장은 텍스트입니다. 아무리 아서 클라크의 문장으로서 <엑스컴>이 시작한다고 해도, 결국 게임 플레이어들은 그저 3층짜리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야 하는지 고민할 뿐이겠죠. 소설은 텍스트로 시작하고 계속 텍스트들을 선보이나, 비디오 게임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아서 클라크의 도입부는 사라지고, 게임 플레이어는 저격수가 무슨 특기를 찍어야 하는지 고민하겠죠. 광대한 눈동자로서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시작하는 것처럼, 영상 매체는 영상을 이용해 도입부를 그리는 편이 낫겠죠. 영상 매체가 문장을 이용하고 멋지게 도입부를 장식한다고 해도, 그건 소설이 풍기는 느낌과 다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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