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설정과 소설 사이의 거리 본문
SF 세상에서 설정은 꽤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SF 소설들은 비일상적인 상황들을 묘사합니다. 비일상적인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SF 작가는 설정을 짜야 합니다. 주류 문학에게 이런 설정은 필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유람선 항해를 묘사하고 싶다면, 주류 문학 작가는 진짜 유람선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SF 작가가 장거리 세대 우주선을 묘사하고 싶다고 해도, 이 세상에는 진짜 장거리 세대 우주선이 없습니다. SF 작가는 그걸 상상해야 합니다. SF 작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요소, 비일상적인 요소를 상상해야 합니다. 판타지 작가나 공포 작가 역시 비일상적인 요소를 상상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판타지 작가나 공포 작가와 달리, SF 작가에게는 기준이 있습니다. SF 작가는 근대적인 진보를 의식해야 하고 거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라는 뿌리가 근대적인 진보에서 비롯했기 때문입니다. SF 작가가 그런 뿌리를 의식하지 못한다면, SF 소설은 쉽게 판타지 소설이나 공포 소설로 넘어갈지 모르죠. 그렇다고 해도 근대적인 진보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장르를 분명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SF 작가들은 얼마든지 판타지 소설들을 쓸 수 있고, SF 소설들과 판타지 소설들은 서로 겹칠 수 있어요.
하지만 수많은 작가들, 독자들, 평론가들은 SF 소설, 판타지 소설, 공포 소설을 구분합니다. 그래서 근대적인 진보는 효율적인 기준이 될 수 있어요. 근대적인 진보를 이용해 SF 작가는 비일상적인 뭔가를 상상합니다. 만약 SF 작가가 아주 기발한 것을 상상한다면, SF 설정은 훨씬 많은 호평들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SF 설정은 기발한 발상을 중시합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참신해야 합니다. 사실 그 자체로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는 행위는 새로운 것으로 이어집니다. SF 작가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것을 상상한다면, 그건 비일상적인 영역으로 높이 도약하지 못할 겁니다. 그건 훨씬 현실에 근접할 겁니다.
그래서 어떤 SF 작가들은, 특히, 테크노 스릴러 작가들은 일부러 현실적으로 상상합니다. 그들은 참신하고 기발한 것을 상상하지 않죠. 설사 발단이 참신할 수 있다고 해도, 절정 부분에서 테크노 스릴러 작가는 현실에 안착합니다. 하지만 그런 테크노 스릴러 작가들과 달리, SF 작가들은 훨씬 멀리 나가기 원합니다. SF 작가들은 현실에서 훨씬 멀리 나가고 아예 현실을 새롭게 뒤집기 원합니다. 그때 SF 작가들은 새로운 현실들을 창조합니다. 그래서 SF 작가들은 설정을 짭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종종 배보다 배꼽은 클 수 있습니다. SF 작가가 이런 설정 작업에 너무 빠진다면, SF 작가는 소설보다 설정에 매달릴지 모르죠. 하루 종일 SF 작가는 설정을 만들고 소설을 쓰지 못할지 모르죠. 수많은 SF 작가 지망생들은 이런 함정들에 빠질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정과 소설이 다르다고 강조하죠. 국내 SF 동호회들, 가령, JoySF 같은 곳에서도 그런 조언들은 드물지 않을 겁니다. 설정은 소설이 아닙니다. 분명히 설정이 풍부하다면, 작가는 구체적으로 새로운 현실을 묘사할 수 있을 겁니다. 풍부한 설정은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자체로서 설정은 소설이 되지 못합니다. 소설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까다롭습니다. 수많은 문학 평론가들은 소설이 무엇인지 논의하나, 아무도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해요. 그렇다고 해도 누구나 설정과 소설이 다르다고 느낄 겁니다. 적어도 문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소설이 무엇인지 배우죠. 문학 교과서가 정의하는 소설이 아주 협소한 범위라고 해도, 우리는 이런 정의를 이용해 소설과 설정을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문학 비평 서적들을 이용해 우리는 여러 기준들을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첫문장, 심리 묘사, 내면 묘사, 등장인물 관계, 시점, 작가의 목소리, 의식의 흐름, 문장 구조, 단어 선택, 기타 등등.
이런 것들은 설정과 크게 관계가 없습니다. 설정을 구상할 때, 작가는 무슨 단어를 집어넣을지 고민하지 않을 겁니다. 설정을 구상할 때, 작가는 시점을 고민하지 않을 테고, 심리 묘사에 치중하지 않을 테고, 수식어를 넣을지 머리를 쥐어뜯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이런 것들은 소설 내용과 크게 관계가 없습니다. 작가가 의성어를 우회적으로 묘사하거나 '크와와왕'이라고 직접 묘사한다고 해도, 그건 소설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죠. "스테고사우루스는 우렁차게 울부짖었다."와 "스테고사우루스는 크와와왕~ 울부짖었다."라는 두 문장에서 내용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두 문장 속에서 결국 스테고사우루스는 울부짖습니다.
하지만 첫째 문장은 좀 더 건조하고, 둘째 문장은 훨씬 생생하죠. 어쩌면 이렇게 누군가는 묻을지 모릅니다. "아니, 왜 스테고사우루스가 크와와왕~ 울부짖어야 하지? 스테고사우루스가 우르르릉~ 울부짖을 수 있지 않을까?" 맞습니다. 스테고사우루스는 크와와왕~ 울부짖거나 우르르릉~ 울부짖을 수 있을 겁니다. '크와와왕'이나 '우르르릉' 같은 의성어는 주관적인 표현이고, 누군가는 이런 주관적인 표현이 어색하다고 느낄지 모르죠. 작가가 객관적인 분위기를 중시하고 싶다면, '우렁찬'이라는 수식어는 '크와와왕' 같은 의성어보다 나을 겁니다.
이런 객관적인 표현과 주관적인 표현은 소설 형식에 가깝습니다. 똑같은 내용을 전달한다고 해도, 작가는 서로 다른 형식을 선택할 수 있죠. "햇님이 활짝 웃는 어떤 쥐라기 아침에 아기 스테고는 강가를 거닐었어요."와 "태양이 떠오른 어떤 쥐라기 아침에 스테고사우루스 새끼는 강가를 걸었다."는 똑같은 내용을 전달합니다. 두 문장 속에서 결국 쥐라기 오전에 어린 스테고사우루스는 강가를 걷습니다. 하지만 느낌은 완전히 다르죠. 게다가 오직 한국어를 이해하는 독자만 이런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가 이걸 다른 언어로 옮긴다면, 느낌은 크게 달라지겠죠. 이런 것 역시 소설 형식에 가깝습니다. 설정을 구상할 때, 작가는 이런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면, 작가는 시점과 단어와 표현과 문장을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을 묘사할 때, 작가는 상황을 직접 설명하거나 비유적으로 우회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직접적인 설명과 비유적인 우회를 선택해야 합니다. 소설을 쓸 때, 작가는 끊임없이 그런 선택들에 부딪힙니다. 작가가 능숙하게 이런 선택들을 넘어갈 수 있다면, 작가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것은 이른바 글빨, 필력이죠. 안타깝게도 좋은 설정이 있다고 해도 작가는 설정에서 글빨을 뽑아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풍부하고 좋은 설정은 무조건 좋은 소설로 이어지지 않아요.
다행히 SF 소설들은 필력보다 발상을 중시합니다. 필력이 다소 엉망이라고 해도, 발상이 참신하다면, 많은 SF 독자들은 그 소설을 좋아할 겁니다. 심지어 어떤 독자들은 필력 따위보다 발상을 선호할 겁니다. 필력을 원하는 독자들은 SF 소설이 아니라 주류 문학을 읽을지 모르죠. 그래서 SF 작가 지망생들은 계속 설정에 매달리고, 사람들은 설정과 소설이 다르다고 조언하고, 이런 굴레는 계속 돌고 돌겠죠. 그렇게 세상은 즐거운 굴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