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폭력의 분출 본문
<최후의 인간>, <타임 머신>, <애프터 런던>, <해변에서>, <트리피드의 날>, <물에 잠긴 세계>, <나는 전설이다>, <혹성 탈출>, <지옥의 질주>, <로드>, 기타 등등…. SF 소설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예전부터 확고한 영역을 구축했습니다. 이 분야는 수많은 명작들을 내놨고, 다양한 하위 장르를 흩뿌렸고, 현실을 향해 쓰거나 비관적인 경고를 내뱉었어요. 종종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다른 장르들과 합칩니다.
<타임 머신>은 인류 멸망을 노래하지만, 동시에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점칩니다. <트리피드의 날>은 괴수물이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앞을 못 보는 재앙 문학입니다. <나는 전설이다>는 좀비 소설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죠. (원래 이 소설은 좀비가 아니라 흡혈귀를 이야기하죠.) 하지만 이런 소설들은 모두 인류 문명이 붕괴했다는 공통적인 소재를 이용합니다. 그래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그 존재만으로도 파격적이고 전복적입니다. 이 장르는 현재 지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누리는 인류가 무조건 멸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전에 <대재앙 이후의 세계>에서 말했던 것처럼 원인은 많고 많습니다.
SF 작가들은 이 찬란하고 대단한 인류 문명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외계에서 운석이 날아오거나, 치명적인 전염병이 퍼지거나, 강대국들이 핵 미사일을 쏘거나, 환경이 극도로 오염되거나, 갑자기 기후가 바뀌거나, 새로운 종이나 기계 문명이 탄생하거나, 기타 등등…. 이것들 중 몇 가지는 정말 현재 인류를 위협하고, 핵 전쟁이나 환경 오염은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덕분에 여러 SF 장르들 중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현실에 가장 크게 경고하는 장르입니다.
만약 소설 작가가 현실의 음울하고 추악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들추고 싶다면,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고민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SF 작가가 아니라 이른바 주류 문학 작가들마저 가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시도하곤 합니다. "인류가 멸망했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외친다면, 사람들은 모두 그 목소리에 주목할 겁니다. 그 목소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 대규모로 멸망했다고 외치기 때문입니다. SF 장르는 온갖 해괴한 상상력을 발휘하지만, 그 중에서 유일무이하게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인류가 망했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이 장르는 정말 극단까지 다다를 수 있어요.
디스토피아 장르에서 인류는 암울하게 살지만 멸망하지 않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디스토피아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혼동하지만, 그 둘은 다릅니다. 저 역시 그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겠으나, 몇 가지 기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스토피아는 암울한 이야기지만, 겉보기는 상당히 화려합니다. <뉴로맨서>는 엄청나 대도시와 최첨단 기술을 묘사합니다. 이 소설에서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번성했죠. 그저 사회 구조가 문제이고, 밑바닥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인류가 암울하게 살아간다는 것과 인류가 멸망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실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상류층이나 중산층은 아주 행복하고 부유하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적어도 상류층은 꽤나 부유한 삶을 유지하겠죠. 솔직히 관점을 조금 바꾸면, 이미 현실은 디스토피아입니다. 거의 10억 명에 이르는 인구가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블로그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이 글을 읽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세상이 평화롭고 온전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은 평화로운 적이 없었고, 제국주의 시대 이후 그런 비극은 훨씬 심각해졌죠.
디스토피아와 달리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인류는 멸망합니다. 찬란한 문명은 산산히 흩어집니다. 그래서 디스토피아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겉모양은 서로 다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디스토피아는 화려합니다. 마천루는 하늘을 찌를 듯하고, 별별 최첨단 기술이 문명을 뒷받침하고, 상류층은 어마어마한 부귀영화를 누립니다. 1960~70년대의 기념비적인 소설들 이후 3류 사이버펑크는 이런 것들을 흔히 써먹습니다. 반면,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인류 문명의 겉모양은 상당히 퇴색합니다.
<애프터 런던>에서 식물들이 런던을 차지하고 인류는 원시 상태로 돌아갑니다. <나는 전설이다>에서 도시는 적막하고 행인들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타임 머신>에서 다양한 건물들이 사라졌고, 동물들은 멸종했습니다. <물에 잠긴 세계>에서 사방은 그저 물바다이고, 열대 밀림과 해양 파충류들이 도시를 독차지했습니다. <지옥의 질주>에서 사방은 황폐하고, 이상 기후가 들이닥치고, 도로는 폭력배들의 천국입니다. <로드>에서 독자는 흐리고 짙은 하늘과 불타버린 세계와 검댕과 폭설만 볼 수 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이런 공간적 이미지에 치중합니다.
작가와 독자는 이런 멸망한 세상에서 극단적인 결과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이성적이고 문명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재난> 같은 소설이 강조하듯 우리가 문명적인 이유는 문자 그대로 문명이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문명이 사라진다면? 우리 인류는 당장 야만인으로 몰락할까요? 글쎄요, 이 세상에는 법이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명이 몰락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화목한 공동체에서 살아갈지 모르죠.
사실 이 세상에는 여러 생태 공동체나 전환 마을이 있습니다. 심지어 디거스 운동이나 파리 코뮌이나 러시아 혁명처럼 사람들은 지옥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합니다. ("코뮌 만세!") 남아메리카나 남태평양의 여러 원시 부족들은 이른바 '문명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현대 문명인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문명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공동체 전부를 돌보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룹니다. 오히려 현대 문명은 인류를 옥죄는 중일지 모릅니다. 문명은 붕괴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게 옳은 길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문명이 붕괴하면, 분명히 수많은 사람들은 혼란 속에 빠질 겁니다. 현대 인류가 각종 문명에 기대기 때문에 문명이 붕괴하면 사람들은 엄청난 난리법석을 일으키겠죠. 사람들은 막다른 골목이나 벼랑에 몰릴 테고, (문명 세계에서 감출 수 있었던) 속내를 과감하게 보여줄 겁니다. 그래서 작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쓰고 독자는 그걸 읽습니다. 문명을 들추고 사람들의 속내를 읽기 위해. 코뮨 공동체는 이런 상황을 기회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다른 사람들은 악몽이라고 생각하겠죠.
전쟁이 발발하면, 인간들의 온갖 추악한 비극이 드러납니다. 누군가는 먹거리를 위해 몸을 팔고, 누군가는 아예 인간을 잡아먹고, 누군가는 수없이 강간을 저지르고, 누군가는 재미로 사람을 죽이거나 고문합니다. 만약 이런 전쟁이 전세계로 퍼지고 심지어 문명이 붕괴한다면…. 이런 추악한 비극들은 눈덩이처럼 커질 겁니다. 여러 작가들과 독자들은 그걸 보기 위해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쓰거나 읽을 겁니다. "나는 저 비극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이런 심리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관통합니다. 어떤 점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에는 가학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당연히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두드러지는 요소는 '생존자'와 '폭력'입니다. 누군가는 혼란 속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누군가는 거기에서 살아남기 원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싸움은 빈번하게 벌어집니다. 물론 여러 문학들이 폭력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작가는 폭력의 필요악을 고찰하고, 어떤 작가는 볼거리를 위해 폭력을 활용합니다. 싸움 구경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죠. 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문명이 멸망했기 때문에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싸워야 할지 모릅니다. 아무리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싸워야 합니다.
작가가 주인공을 싸움터로 몰아가고 싶다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탁월한 선택입니다. 싸워야 할 이유가 도처에 널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군사 소설이나 전쟁 소설 역시 싸움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런 소설들은 전투를 보여줄 뿐이고 생존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생존은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돌연변이 괴물이 공격하거나 허기가 위장을 갉아먹거나 방사능 중독이 온몸에 퍼지거나, 주인공은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걸 도와주는 문명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주인공은 마음껏 폭력의 광기와 흥분을 분출할 수 있습니다. 소심한 주인공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전문적인 싸움꾼이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숱한 창작물에서 주인공이 싸움꾼이 되지 않는다면 목숨을 담보하지 못합니다. 작가는 엄청난 폭력을 제공할 수 있고, 독자는 거기에서 흥분과 스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가 애써 고민하지 않아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폭력의 명분과 근거는 충분히 부여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작가와 독자가 실컷 폭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단조롭고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신나는 폭력과 광기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게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폭력을 실컷 제공하고, 수많은 독자들은 거기에 열광할 겁니다. 만약 현대 문명이 멸망하고, (아무 폭력이 없이) 훨씬 조화롭고 평등한 문명이 시작된다면, 아마 작가들과 독자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그리 열광하지 않을 겁니다. 처절한 생존과 사투와 폭력을 원하는 작가와 독자에게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있습니다. 그건 우리를 저 열광적인 세계로 안내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