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파격적인 발상과 생체 함선이라는 로망 본문
[만약 이게 생체 잠수함이라면, 이건 생태계 변화, 생물 다양성, 생체 개조와 쉽게 이어질 수 있겠죠.]
SF 소설은 흔히 '발상의 문학'이라고 불립니다. 파격적인 발상이 SF 소설의 밑거름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유명한 SF 소설들은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발판으로 삼습니다. 뻔하고 뻔한 발상으로도 재미있는 SF 소설을 쓸 수 있으나, 위대한 사이언스 픽션은 혁신적인 설정을 대동하곤 합니다. 심지어 문학적인 완성도가 미흡해도 설정이 파격적이라면 그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의 본질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앤디 위어의 <마션> 같은 소설은 뭐 엄청난 문학성 때문에 인기를 끌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엄중하고 기발한 과학 실험 덕분에 하드 SF 소설의 대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정만 독특하다고 해서 그 설정을 이용한 소설이 반드시 인기를 끌라는 법은 없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어떤 소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런 소재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고, 반대로 일부러 그런 소재를 피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파격적인 설정은 SF 소설의 좋은 밑거름이지만, 좋은 밑거름이 항상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않습니다. 흠, 사실 밑거름은 구리구리한 냄새가 많이 납니다. 그런 밑거름 때문에 사람들이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런 냄새를 싫어하죠.
개인적으로 생체 함선이 이런 밑거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가상의 생태계 설정을 좋아합니다. 아울러 가상의 거대 생명체 설정도 좋아합니다. 생태계가 생명체들의 거시적이고 복잡한 상호 작용인 것처럼 거대 생명체는 생명의 거시적이고 경이적인 면모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주 거대한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 생명체는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그 거대한 생명체의 신진 대사는 어떤 형태일까요. 만약 우리가 생체 함선을 만든다면, 그 함선은 일종의 거대 생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거대 생명체를 조종하기 위해 보다 작은 생명체들을 거대 생명체 안에 집어넣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 생체 함선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특한 생태계를 이룰 겁니다. 로버트 소여가 어떤 소설에서 쓴 것처럼 생체 함선과 승무원들은 (마치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처럼) 서로 영향을 미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스콧 웨스터펠드는 부유 고래 비행선 레비아탄을 창작했습니다. 이 부유 고래 비행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레비아탄> 소개문을 보면, 이 부유 고래 비행선을 하나의 생태계로 부릅니다. 물론 레비아탄과 수많은 동물들이 진짜 생태계를 구성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영양 교환이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거대한 동물 속의 작은 동물들을 보면, 일종의 생태계적 상상력을 부추깁니다.
하지만 생체 함선은 그리 인기가 많지 않습니다. 분명히 여러 SF 작가들이 생체 함선을 이야기함에도 생체 함선은 기계 함선만큼 인기를 누리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흔히 3대 그랜드 마스터로 불리는)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은 생체 함선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작가들은 수많은 기계 우주선들을 이야기했으나, 생체 함선은 주요 소재로 등극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생체 함선이 너무…. 독특할 뿐이고 로망이 없다고 할까요. 사람들은 우주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최첨단 기계 우주선만을 떠올립니다.
생체 우주선은 뭔가 기괴하고 징그럽고 괴상한 느낌을 풍깁니다. 승무원들이 생체 우주선 안에 들어간다면, 살아있는 동물의 몸 속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거대한 동물의 몸 속에 들어간다…. 음, 그리 달가운 느낌은 아니군요. 이게 무슨 피노키오나 요나의 이야기인가 싶습니다. 레비아탄처럼 멋진 생체 함선이 없지 않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생체 함선을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체 함선은 인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생체 함선은 <워해머 40K>의 타이라니드 같은 징그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겠죠.
게다가 기계 우주선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기계 우주선은 소설 속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어쨌든 인류는 각종 기계 우주선을 우주로 쐈습니다. 심지어 기계 무인 탐사선은 태양계를 벗어났죠. 하지만 인류는 생체 우주선이나 그 비슷한 뭔가를 한 번도 만든 적이 없습니다. 생체 무인 탐사선도 없습니다. 생체 우주선은 너무 허황된 이야기 같고, 그래서 별로 로망을 풍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뭐, 저도 생체 우주선을 좋아하지만, 그건 우주선이 좋기 때문이 아닙니다. 독특한 생태계를 좋아하기 때문에 생체 우주선을 더불어 좋아할 따름입니다. 따라서 어떤 작가가 우주선을 이야기한다면, 그 작가는 기계 우주선을 이야기할 겁니다. 독자들이 우주선 이야기를 읽기 원한다면, 기계 우주선 이야기를 읽을 겁니다. 아무리 피터 해밀턴이나 스티븐 백스터나 옥타비아 버틀러가 생체 함선 소설을 썼어도 생체 함선 이야기는 결코 대세가 될 수 없을 겁니다. 어쩔 수 없죠. 저 같은 독자는 그저 <레비아탄> 같은 소설로 만족해야 합니다.
문화 비평가 콜린 윌슨은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자신의 진정한 로망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콜린 윌슨은 작가가 자신의 로망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결코 좋은 소설, 혼이 풍기는 소설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생체 함선을 로망이라고 생각할까요.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생체 함선을 로망이라고 생각할까요. 누군가가 생체 함선 이야기를 쓴다면, 그 발상은 독특하다고 평가를 받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리 인기를 끌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