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신종 돌고래의 동물 권리 운동 본문
소설 <스타타이드 라이징>의 주인공은 인간과 돌고래입니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그냥 돌고래가 아니라 유전자 조작을 거친 신종 돌고래입니다. 인간처럼 똑똑하기 때문에 우주선을 조종하거나 다양한 학문을 연구할 수 있죠. 하지만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이 동물적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신종 돌고래들은 고래 특유의 성격을 버리지 못합니다. 소설은 이런 돌고래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핍니다. 돌고래마다 내면의 본능에 각자 다르게 이끌리는데, 어떤 돌고래들은 굉장히 폭력적으로 행동합니다. 누군가는 인간과 협력하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인간을 뛰어넘고 싶어하죠. 저는 이 소설을 보면서 신종 돌고래들이 천연적인 돌고래들을 어떻게 여길지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천연 돌고래를 그냥 우둔한 친척 정도로 여길지 모릅니다. 우리 인간은 고릴라나 보노보와 매우 가깝지만, 사실 그들을 동족으로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차라리 강아지를 (우리 인간과 별다른 친족 관계는 아니지만)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겁니다.
게다가 인간들은 고릴라나 보노보를 우리에 가두고 구경합니다. 우리는 고릴라가 인간과 가깝다는 사실을 머리로 파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릴라의 처지를 가슴 아파하거나 안타깝게 느끼지 않습니다. 고릴라는 좁은 우리에 갇혀 살지만, 우리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죠. 상대는 그냥 동물이니까. (뭐, 어차피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동정하지 않는 마당에 고릴라 같은 동물 따위에 연민을 느낄 리 없겠죠.) 아마 신종 돌고래도 천연 돌고래를 그렇게 바라볼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고릴라를 그냥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신종 돌고래도 천연 돌고래를 그냥 동물이라고 생각할지 몰라요.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업리프트 시리즈 중 하나지만, 저는 <스타타이드 라이징> 이외에 다른 소설들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시리즈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조명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해당 소설만 고려한다면, 신종 돌고래가 딱히 천연 돌고래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신종 돌고래가 천연 돌고래의 착취나 멸종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가령, 최근에 울산 구청이 돌고래를 함부로 다룬 사건이 논란입니다. 구청은 생태 학습이니 뭐니 떠들지만, 사실 그냥 돈벌이를 위한 동물 쇼에 불과하겠죠. 동물원이라는 게 사실 생태 학습이랑 거리가 멀죠. 자본주의 산업의 일부일 뿐입니다. 만약 신종 돌고래가 이런 사건을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습니다. 생명 윤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동족 의식까지 느끼지 못할 듯합니다. 어쩌면 신종 돌고래는 천연 돌고래를 위해 동물 권리 운동을 벌일지 모르죠. 우리 인간이 보기에 돌고래가 돌고래를 위해 운동하는 것 같겠지만, 신종 돌고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겠죠. 이런 상황 설정이야말로 SF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종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SF 소설은 그런 사고 실험을 가능하게 해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