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티.렉스>, 우익보다 좌익과 채식은 어울린다 본문
[이 예고편은 초식동물보다 포식자, 육식동물을 왕이라고 부릅니다.]
"사자는 야생에서 고기를 먹는 동물이다. 소는 야생에서 풀을 먹는 동물로 30년을 산다. 야생의 모든 동물은 살아 있는 음식을 먹는다. 인간이 질병과 비만으로 고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살아 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죽은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이 문장들은 '야생'을 언급합니다. 야생, 이 단어는 자연 생태계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야생과 자연 생태계를 연결하기는 아주 쉽습니다. 환경 운동들은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기 원합니다. 부유한 자본가 계급이 너무 많은 석탄들, 석유들을 태우기 때문에, 21세기 초반, 지구 가열화는 위험한 수준입니다. 이 재앙은 생태계를 파괴합니다.
기후 변화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환경 운동들은 이 재앙을 해결하기 원합니다. 동시에, 이 운동들은 야생 동물들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입니다. 호랑이부터 바다 거북까지, 환경 운동들은 야생 동물들이 번성하기 원합니다. 이 사례가 증명하는 것처럼, 야생과 자연 생태계를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야생 동물들이 자연 생태계를 구성하기 때문에, 양쪽을 분리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독자들이 생태학 서적들을 펼친다면, 이 서적들은 야생 동물들이 생태계를 구성한다고 설명할 겁니다. 오, 심지어 선사 생태계조차 다르지 않습니다. 야생과 선사 생태계는 연결됩니다.
브라키오사우루스부터 케라토사우루스까지, 켄트로사우루스부터 스피노사우루스까지, 이 공룡들은 야생 동물들입니다. 이 동물들은 중생대 생태계를 구성했습니다. 비록 이 생태계가 사라졌다고 해도, 비록 홀로세 생태계와 중생대 생태계가 너~~~무 다르다고 해도, 심지어 이 차이조차 야생과 생태계가 떨어진다고 증명하지 못합니다. 브라키오사우루스부터 케라토사우루스까지, 켄트로사우루스부터 스피노사우루스까지, 이 공룡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야생과 자연 생태계는 필연적인 관계, 본질적인 관계입니다. 그리고, <산 음식, 죽은 음식>은 야생을 언급합니다. 이게 생태학 서적인가요?
더글라스 그라함은 <산 음식, 죽은 음식>을 썼습니다. 들소처럼, <산 음식, 죽은 음식>이 야생(동물)을 언급하기 때문에, 생태학이 이 서적의 주된 주제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산 음식, 죽은 음식>이 야생 동물들을 연구한다고 해도, 생태학은 주된 주제가 아닙니다. 이 서적에서 생태학보다 영양분들은 주된 주제입니다. <산 음식, 죽은 음식>은 인간이 육식동물, 잡식동물보다 채식동물에 가깝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곡물들, 야채들보다 (열대) 과일들을 먹기 위해 인간은 진화했습니다. <산 음식, 죽은 음식>은 고기, 생선보다, 곡물, 야채보다, (열대) 과일이 좋은 먹거리라고 주장합니다.
이게 사실인가요? 인간에게 고기, 생선보다, 곡물, 야채보다, (열대) 과일이 좋은 먹거리인가요? 심지어 통곡물조차 그저 두 번째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많은 채식인(베지테리언)들이 현미밥을 좋아한다고 해도, <산 음식, 죽은 음식>은 통곡물보다 과일이 첫 번째라고 주장합니다. 이 서적이 타당한가요? 과일보다 통곡물이 좋지 않나요? 흠, 글쎄요. 어쩌면 <산 음식, 죽은 음식>은 타당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과일보다 통곡물은 좋은지 모릅니다. 비록 <산 음식, 죽은 음식>이 타당하지 않다고 해도, 비록 통곡물보다 과일이 좋다고 해도, 이 서적은 야생, 생태계, 먹거리가 연결된다고 보여줍니다.
기름진 대지에서 식물들은 성장합니다. 광합성 덕분에, 이 녹색 생명체들은 영양분들을 생산합니다. 이 영양분들을 섭취하기 위해 초식동물들은 식물들을 먹습니다. 그 자체로서, 이 동물들은 영양분들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육식동물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서, 이 동물들은 영양분들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호랑이부터 스피노사우루스까지, 육식동물들은 다른 동물들을 사냥하고 고기를 먹습니다. 육식동물이 다른 동물들을 죽이기 때문에, 인류 문화들은 이 야수들이 강자들이라고 인식합니다. 아무리 육식동물이 다른 동물들을 죽인다고 해도, 자연적으로, 언젠가 이 포식자는 죽을 겁니다.
아무리 육식동물이 강자라고 해도, 언젠가 이 강자는 죽습니다. (기름진) 대지에서 분해자들은 이 죽은 육체를 처리합니다. 대지에서 죽은 육식동물은 영양분들이 됩니다. 이 기반에서 식물들은 성장합니다. 초식동물들은 이 녹색 생명체들을 먹습니다. 이 관점에서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을 먹습니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먹고,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을 먹는 것처럼, 자연 생태계는 '순환'을 좋아합니다. 이 순환은 먹이 그물망입니다.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이 그물망에서 먹거리는 핵심입니다. 자연 생태계가 먹이 그물망이기 때문에, 이 그물망에서 먹거리가 핵심이기 때문에, 생태계는 먹거리입니다.
자연 생태계는 풍요로운 영양분들입니다. 적어도, 양쪽은 깊은 관계, 중요한 관계입니다. 생태학자들은 영양분 순환 과정을 배제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이 과정을 배제하지 않는 것처럼, <산 음식, 죽은 음식>은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산 음식, 죽은 음식>이 생태학 서적이 아니라고 해도, 이 서적은 생태계와 먹거리가 연결된다고 반영합니다. 비록 더글라스 그라함이 생태학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산 음식, 죽은 음식>은 이 과학과 영양분들(의 순환 과정)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반영합니다. 이 블로그는 다르지 않습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이 블로그에서 SF '생태학'은 주된 주제입니다.
[생태계와 먹거리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육식보다 채식은 훨씬 나은 먹거리 문화입니다.]
생태계와 먹거리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블로그에서 SF '생태학'이 주된 주제이기 때문에, 저는 먹거리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아무리 이 블로그에서 표준적인 생태학보다 SF 생태학이 주된 주제라고 해도, (표준적인 생태학처럼) SF 생태학과 먹거리는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중생대 생태계조차 이 관계를 증명합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아주 커다란 인기를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니스트 클라인은 <레디 플레이어 원>을 썼습니다. 2018년, 이 소설의 실사 영화는 개봉했습니다. 실사 영화로서, <레디 플레이어 원>은 <쥬라기 공원>의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보여줍니다. 이 수각류가 커다란 인기를 자랑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 스타를 섭외했을 겁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사이언스 픽션(SF)입니다. 적어도, <쥬라기 공원>처럼, 이 영화는 다른 SF 영화들을 오마쥬합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오마쥬하는 것처럼, <쥬라기 공원>은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비록 이 영화가 전통적인 SF 계보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비록 이 영화가 (전통적인 사이언스 픽션보다) 대중적인 테크노 스릴러에 가깝다고 해도, 분명히, <쥬라기 공원>은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현실에서 살아있는 티라노사우루스와 조우하기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고생물학 덕후들이 원한다고 해도, 그들은 살아있는 티라노사우루스와 조우하지 못합니다. 현실에서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달리, <쥬라기 공원>의 세계에서 이건 가능합니다.
인간과 살아있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조우하는 것처럼, 현실과 <쥬라기 공원>은 다릅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쥬라기 공원>은 '다른 세계'가 됩니다. 이 관점에서 스페이스 오페라와 <쥬라기 공원>은 다르지 않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외계 행성에서 보행 전차는 장거리 미사일들을 쓩쓩쓩~ 날린다."고 묘사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이게 가능한가요? 외계 행성에서 보행 전차가 장거리 미사일들을 쓩쓩쓩~ 날릴 수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비록 비극적인 전쟁들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현실에서 이 전쟁들은 지구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현실과 달리, 스페이스 오페라는 여러 전쟁들이 지구를 넘어선다고 묘사합니다. 현실과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릅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른 세계'가 됩니다. 특히, 이 세계는 (향상된) 첨단 기술들을 요구합니다. 만약 이 기술들이 진보하지 않는다면, 보행 전차를 제작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비단 이 무기만 아니라 우주선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향상된) 첨단 기술들이 진보하지 않는다면, 우주선을 건조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외계 행성에서 보행 전차는 싸우지 못합니다. 다른 세계로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향상된) 첨단 기술들을 요구합니다. <쥬라기 공원>은 비슷합니다. 이 세계는 향상된 유전 공학을 요구합니다. 만약 이 (유전) 기술들이 진보하지 않는다면, 티라노사우루스를 복제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른 세계와 (향상된) 첨단 기술들을 결합합니다. <쥬라기 공원>은 다른 세계와 (향상된) 유전 공학을 결합합니다. 이 교집합 덕분에, 스페이스 오페라와 <쥬라기 공원>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사이언스 픽션에 속하는 것처럼, <쥬라기 공원>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 세계가 사이언스 픽션에 속하는 것처럼, 현재 생태계와 선사 생태계는 너~~~무 다릅니다. (만약 양쪽이 똑같다면, <쥬라기 공원>은 사이언스 픽션이 아닐 겁니다.) 현재 생태계와 선사 생태계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호랑이(현재 생태계)와 티라노사우루스(선사 생태계)가 비슷한 위상이 되지 않나요? 그건 아닙니다. 호랑이는 밀림의 왕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왕이라고 느낄 겁니다. 이 야수처럼, 티라노사우루스는 공룡들의 왕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수각류가 왕이라고 느낄 겁니다. 심지어 고생물학자들조차 이 수각류가 왕이라고 인정합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렉스입니다. 이 단어는 왕을 뜻합니다. 다른 공룡들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왕입니다. 브라키오사우루스보다, 켄트로사우루스보다, 가스토니아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왕입니다. 이 수각류가 왕이기 때문에, <레디 플레이어 원>은 다른 공룡들보다 이 왕을 보여줄 겁니다. 이 영화처럼, <티.렉스>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건 고생물학 다큐멘터리입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티라노사우루스를 연구합니다.
<티.렉스>의 예고편은 이 수각류를 왕이라고 부릅니다. 브라키오사우루스보다, 켄트로사우루스보다, 가스토니아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왕입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티.렉스>의 예고편이 이 수각류를 왕이라고 부르나요? 왜 다른 공룡들보다 티라노사우루스가 렉스가 되나요? 왜 브라키오사우루스보다, 켄트로사우루스보다, 가스토니아보다, 이 수각류가 왕이 되나요? 육식은 대답인지 모릅니다. 아무리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장대한 육체를 자랑한다고 해도, 이 용각류는 식물들을 먹습니다. 비록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식물들을 먹기는 가능합니다. 이 용각류처럼, 켄트로사우루스는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켄트로사우루스가 날카로운 골판들, 가시들을 자랑한다고 해도, 이 공룡은 식물들을 먹습니다. 비록 켄트로사우루스가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식물들을 먹기는 가능합니다. 이 용각류처럼, 가스토니아는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스토니아가 단단한 갑옷을 자랑한다고 해도, 이 공룡은 식물들을 먹습니다. 비록 가스토니아가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식물들을 먹기는 가능합니다. 브라키오사우루스, 켄트로사우루스, 가스토니아와 달리, 티라노사우루스는 다른 동물들을 죽입니다. 만약 이 수각류가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고기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필연적으로, 티라노사우루스는 죽여야 합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동물을 죽입니다. 이 수각류처럼, 매운탕은 우럭을 죽입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다른 동물들을 죽이기 때문에, 이 수각류는 강자가 됩니다. (티라노사우루스처럼, 필연적으로, 호랑이는 죽여야 합니다.) 지배 계급으로서, 왕은 강자입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강자이기 때문에, 왕이 강자이기 때문에, 양쪽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티라노사우루스와 왕이 비슷한 위상이기 때문에, <티.렉스>는 이 수각류를 지배 계급이라고 부릅니다. 티라노사우루스와 달리, 브라키오사우루스는 강자가 아닙니다. 이 용각류는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습니다. 브라키오사우루스처럼, 켄트로사우루스, 가스토니아는 강자가 아닙니다. 이 공룡은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습니다.
<티.렉스>의 예고편은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왕이라고 인정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이 용각류가 식물들을 먹기 때문입니다. 브라키오사우루스처럼, <티.렉스>의 예고편은 켄트로사우루스, 가스토니아가 왕이라고 인정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이 공룡이 초식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가스토니아와 달리, 티라노사우루스는 육식동물입니다. 특히, 이 수각류는 최고 포식자(알파 프레데터)입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고기를 먹기 때문에, 이 수각류는 왕이 됩니다. 만약 티라노사우루스가 고기를 먹지 않았다면, 브라키오사우루스처럼, 켄트로사우루스, 가스토니아처럼, 이 수각류는 렉스가 아니었을 겁니다.
문자 그대로, <티.렉스>는 티라노사우루스가 렉스가 된다는 뜻입니다. 렉스는 왕입니다. 왕은 지배 계급입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고기를 먹기 때문에, 이건 육식과 지배 계급이 비슷한 위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육식과 지배 계급이 비슷한 위상이 되기 때문에, 좌익과 육식은 어울리지 않는지 모릅니다. "신은 없다. 주인도 없다." 오귀스트 블랑키는 주장했습니다. 이 혁명가는 좌익(아나키즘)에 속합니다. 좌익 혁명가로서, 오귀스트 블랑키는 지배 계급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비단 이 혁명가만 아니라 다른 많은 좌익 혁명가들 역시 비슷합니다.
일반적으로, 좌익은 지배 계급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좌익과 달리, 우익은 지배 계급을 떠받듭니다. 자본주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익 지식인들은 이 경제를 떠받듭니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분석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 계급은 지배 계급입니다. 지배 계급으로서, 자본가 계급은 임금 노동자 계급을 착취합니다. 자본가 계급이 착취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커다란 고통에 빠집니다. 비록 이 사람들이 커다란 고통에 빠진다고 해도, 우익 지식인들은 자본주의를 떠받듭니다. 이 사례가 증명하는 것처럼, 우익과 지배 계급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티.렉스>가 반영하는 것처럼, 육식과 지배 계급은 다르지 않습니다.
적어도, 육식과 지배 계급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티.렉스>의 예고편은 양쪽을 연결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반영합니다. 좌익보다 우익과 지배 계급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육식과 지배 계급을 연결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좌익보다 우익과 육식은 어울립니다. 아, 물론, '우익-육식'은 그저 문화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이건 객관적인 사실보다 문화적인 해석입니다. 비록 이게 그저 문화적인 해석에 불과하다고 해도, 우익보다 좌익은 수평적인 관계, 평등한 관계를 선호합니다. 자본가 계급이 임금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처럼, 좌익보다 우익은 수직적인 관계를 떠받듭니다.
매운탕은 우럭(동물)을 죽입니다. 만약 우럭이 죽지 않는다면, 매운탕을 끓이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어떤 매운탕들이 우럭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해도, 광어, 꽃게, 참돔, 새우처럼, 이 요리들은 동물을 죽일 겁니다. 인간이 매운탕을 끓이기 때문에, 이 요리는 인간과 동물이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동물을 지배하기 때문에, 인간이 지배 계급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동물이 피지배 계급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음…, 매운탕을 끓이기는 가능합니다. 매운탕과 달리, 통곡물은 동물을 죽이지 않습니다. 비록 인간이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귀리를 먹기는 가능합니다.
채식인(베지테리언)들은 인간과 동물이 수평적인 관계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동물을 죽이기 원하지 않습니다. 매운탕이 우럭(동물)을 죽이기 때문에, 통곡물이 죽이지 않기 때문에, 채식인들은 전자보다 후자를 선호합니다. 좌익이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하기 때문에, 채식인들이 통곡물을 선호하기 때문에, 양쪽은 어울립니다. 좌익과 달리, 우익은 수직적인 관계를 선호합니다. 매운탕이 우럭을 죽이는 것처럼, 육식은 인간과 동물이 수평적인 관계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관점에서 우익과 육식은 비슷합니다. 이건 그저 문화적인 해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이건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티.렉스>가 반영하는 것처럼, 육식과 지배 계급을 연결하기는 쉽습니다. 우익 지식인들이 자본주의를 떠받드는 것처럼, 이 이념은 지배 계급을 떠받듭니다. 우익과 달리, 좌익은 지배 계급을 타파하기 원합니다. 이 관점에서 좌익보다 우익과 육식은 비슷합니다. 비록 이게 문화적인 해석이라고 해도, 채식인들은 인간과 동물이 수평적인 관계라고 주장합니다. 자본가 계급이 임금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처럼, 우익은 수평적인 관계보다 수직적인 관계를 떠받듭니다. 채식인들이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하기 때문에, 우익이 수직적인 관계를 떠받들기 때문에, 으음…, 양쪽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익보다 좌익과 채식, 수평적인 관계는 어울립니다.]
채식인들이 인간과 동물이 수평적인 관계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은 인간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기 원하지 않습니다. 환경 운동은 채식을 선호하기 위한 이유, 명분이 될 수 있습니다. 환경 운동과 채식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 사례들은 드물지 않습니다. 아무리 채식인들이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기 원한다고 해도, 21세기 초반, 인류 문명은 세계화 자본주의에게 종속됩니다. 엘론 머스크가 너무 많은 온실 가스들을 배출하는 것처럼, 세계화 자본주의는 너무 많은 석탄들, 석유들을 태웁니다. 이 경제 때문에, 지구 대기 중에서 너무 많은 폐기물(온실 가스)들은 증가합니다.
이 폐기물들은 태양열을 가둡니다. 지구 대기가 이 열을 가두기 때문에, 이 행성의 평균 온도는 상승합니다. 이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기후들은 발생합니다. 이 기후들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때문에, 대규모 멸종은 다가옵니다. 비록 생물 다양성이 커다란 위기에 빠진다고 해도, 우익 지식인들은 세계화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어휴~, 그들은 진짜 지식인들이 아닙니다. 이 지식인들은 그저 엉터리 사기꾼들에 불과합니다. 만약 어떤 지식인들이 세계화 자본주의를 인정한다면, 이 경제가 지구 가열화이기 때문에, 이 지식인들은 사기꾼들일 겁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구 가열화인 것처럼, 우익 지식인들이 그저 엉터리 사기꾼들에 불과한 것처럼, 우익과 환경 운동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이념과 달리, 좌익은 세계화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원합니다. 이 경제가 지구 가열화이기 때문에, 좌익은 이 행성급 재앙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채식인들이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기 원하기 때문에, 좌익이 세계화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원하기 때문에, 우익보다 채식과 좌익은 어울립니다. 아무리 양쪽이 어울린다고 해도, 이건 모~~~든 좌익이 채식을 선호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으음…, 아직 채식과 좌익은 비슷한 단어가 아닙니다.
많은 좌익들은 고기 요리들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비록 매운탕이 우럭(동물)을 죽인다고 해도, 비록 이 요리가 수평적인 관계보다 수직적인 관계라고 해도, 많은 좌익들은 매운탕을 비판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야생) 동물보다 인간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여전히, 많은 좌익들에게 (야생) 동물 권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계화 자본주의가 사라진다고 해도, 동물 해방은 머나먼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이 여정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좌익과 채식은 100% 똑같지 않습니다. 비록 양쪽이 다르다고 해도, 우익보다 좌익에게는 채식으로 연결되기 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 <티.렉스> 예고편: Giant Screen Films,
http://www.youtube.com/watch?v=jXI-FdCZBM4
※ 사진 <Vegetable Salad …> 출처: Bekir Umut Vural,
http://www.pexels.com/photo/vegetable-salad-in-a-bowl-16111855/
※ 사진 <Vegetables On Plate> 출처: Engin Akyurt,
http://www.pexels.com/photo/vegetables-on-plate-2531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