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칠드런 오브 맨>, 테오와 카의 관계 본문
※ 이 게시글은 코맥 매카시가 쓴 소설 <로드>와 영화 <칠드런 오브 맨>과 비디오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의 결말을 누설합니다.
소설 <로드>와 영화 <칠드런 오브 맨>과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는 서로 비슷한 장르이고 비슷한 내용을 다룹니다. 세 소설과 영화와 게임은 모두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동시에 <로드>와 <칠드런 오브 맨>과 <라스트 오브 어스>는 방랑하는 어른 남자와 아이를 강조합니다. 무너진 인류 문명 속에서 어른 남자와 아이는 사방을 방랑합니다. 사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는 <로드>와 <칠드런 오브 맨>과 <라스트 오브 어스> 이외에 이런 방랑하는 어른 남자들과 아이들이 많습니다. 스티븐 킹이 쓴 소설 <안개>, 영화 <일라이>, 비디오 게임 <데이 라이트> 역시 이런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죠.
소설 <안개>는 광기 어린 집단 속에서 아이가 위험에 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영화 <일라이>에서 밀라 쿠니스가 연기한 솔라라는 아이보다 처녀에 가까우나, 남자 어른 일라이를 따라 방랑하죠. <데이 라이트>에서 아빠와 딸은 서로 헤어졌으나, 전반적으로 이 게임 속에서 딸을 찾기 위해 아빠는 방랑합니다. 무너진 인류 문명, 방랑하는 남자 어른, 연약한 아이. 여러 포스트 아포칼립스들 속에서 이런 것들은 좋은 소재가 됩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건 아이들이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아이들은 세상을 모르고 약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이끌어야 합니다. 그건 어른들의 임무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이끌고 보호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파멸할 겁니다. 하지만 인류 문명이 무너졌다면, 어른들은 자신들의 앞가림을 처리하느라 바쁠 겁니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목숨들을 지키느라 바쁠 겁니다. 이런 암울하고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끌고 보호하지 못하겠죠. 온갖 폭력들이 아이들을 노린다고 해도, 어른들은 그걸 막지 못하겠죠. 아이들이 파멸할 때, 사람들은 훨씬 경악에 빠집니다. 아이들은 미래입니다. 아이들은 미래 문명을 유지해야 합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순수합니다. 적어도 사람들은 아이들이 순수하다고 여기죠. 그건 중대한 착각일지 모르나, 대중적인 통념은 아이들이 순수하다고 여깁니다. 만약 온갖 폭력들이 그런 아이들을 짓밟는다면, 그건 아주 충격적인 결과가 될 겁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지켜야 합니다. 특히, 현대 사회가 가부장 문화이기 때문에 남자 어른들은 훨씬 커다란 책임감을 느낄 겁니다. 영화 <테이큰>은 이런 가부장 문화에서 비롯했을 겁니다. 영화 <아저씨> 역시 비슷할 겁니다. <로드>와 <칠드런 오브 맨>과 <라스트 오브 어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주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은 이런 소재들을 다루겠죠. 이런 소재들이 어른 남자가 아이를 지키는 상황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겉모습이 비슷하다고 해도, 세부적인 주제와 설정들은 다릅니다. <로드>는 아버지가 느끼는 두려움을 강조합니다. 인류 문명은 무너졌고, 도처에는 폭력들이 있습니다. 언제 무시무시한 폭력이 어린 아들을 덮칠지 아버지는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신이 만든 아름다움이라고 느끼나, 온갖 폭력들은 그런 아름다움을 짓밟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낍니다. 아버지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언제 폭력이 어린 아들을 짓밟을지 모르기 때문에. <로드>처럼, <라스트 오브 어스>는 아버지와 어린 딸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로드>와 달리, 조엘에게 엘리는 진짜 딸이 아닙니다. 엘리는 유사 딸에 가깝죠. 조엘과 엘리가 연인이 된다고 해도, 여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대중적인 통념은 근친을 금기시하나, 적어도 이건 근친이 아니죠. 조엘과 엘리가 연인이 된다고 해도, 문제는 엘리가 어린 아이라는 사실일 겁니다. 그래서 조엘과 엘리는 유사 아버지와 유사 딸이 됩니다. 하지만 조엘과 엘리는 모두 거칠고 틱틱거립니다. 무너진 세상에서 틱티거리고 투덜거리는 동안 조엘과 엘리는 서로 가까워집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어떻게 무너진 세상에서 아버지와 딸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지 보여줍니다. 나중에 조엘은 아예 유사 아버지보다 진짜 아버지를 넘죠.
<칠드런 오브 맨>에는 아버지와 아이 관계가 없습니다. 무너진 문명 속에서 테오는 카를 보살핍니다. 하지만 테오와 카는 아버지와 아이 관계가 아닙니다. 테오는 방랑하는 어른 남자이고, 카는 소녀이나, 그렇다고 해도 카는 아이가 아닙니다. 카는 아주 어른스럽고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카에게 테오는 동반자에 가깝습니다. 아니면 테오는 소중한 것을 지키는 호위 무사가 되어야 합니다. 반지 원정대가 반지 운반자를 지키는 것처럼. 그래서 테오가 카와 함께 방랑한다고 해도, <칠드런 오브 맨>은 <로드>와 <라스트 오브 어스>와 많이 다릅니다. 만약 <로드>에서 소년을 위해 남자가 자신을 희생하거나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 엘리를 위해 조엘이 자신을 희생한다면, 그건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를 보여줄 수 있겠죠.
하지만 <칠드런 오브 맨>에서 테오가 자신을 희생한다고 해도, 테오는 아버지를 연기하지 못합니다. 물론 어른에게도 아버지가 있습니다. 어른에게는 더 늙은 아버지가 있죠. 누군가는 테오와 카가 늙은 아버지와 어른이 되는 딸이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테오는 너무 당황합니다. 너무 당황하기 때문에 테오는 아이를 이끄는 아버지가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틱틱거린다고 해도, 조엘은 폭력적인 문명을 듬직하게 헤쳐나갈 수 있고 엘리를 이끌 수 있습니다. 테오에게는 이런 듬직함이 없죠. 테오는 다급한 상황들에 질질 끌려갑니다. 테오는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죠.
<로드>는 아버지로서 시작하고 아버지로서 끝납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로서 조엘은 시작하고, 중간에 아주 많이 틱틱거리나, 결국 조엘은 다시 아버지가 됩니다. 하지만 테오는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로서 테오는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테오는 자신이 아버지라고 의식하지 못합니다. 아기를 받기 위해 허둥대는 테오는 조엘과 너무 다릅니다. 조엘은 허둥대지 않습니다. 듬직한 아버지는 허둥대서는 안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엘은 듬직한 아버지입니다. 테오에게는 가부장적인 남성이 될 기회가 없습니다. 이건 꽤나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안개>와 <데이 라이트>에서도 이미 남자 어른들은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아이를 이끄는 아버지가 될 수 있죠.
테오는 그런 역할과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갑자기 테오가 카를 이끈다고 해도, 테오는 아버지가 되지 못하죠. <로드>와 <라스트 오브 어스>와 <안개>와 <데이 라이트>와 다른 수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은 아버지들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가부장 문화 속에서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은 가부장 관념을 훨씬 극대화할지 모르죠. 결국 어른 여자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어른 여자들은 그저 죽거나 사라질 뿐입니다. 어머니들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해도, 어머니는 아이를 지키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들이죠. 이런 관점에서 <칠드런 오브 맨>과 테오는 독특하죠. 테오는 가부장 문화를 유지하지 않아요.
어쩌면 이건 카가 아이나 소녀보다 모성에 가깝기 때문일 겁니다. 카가 소녀라고 해도, 영화 속에서 이미 카는 소녀를 벗어나야 합니다. 카는 또 다른 생명을 책임져야 하고, 먹여야 하고, 키워야 합니다. <로드>의 소년 및 <라스트 오브 어스>의 엘리와 달리, 카는 누군가를 먹여야 합니다. 엘리는 누군가를 먹이지 않고 보살피지 않습니다. 엘리가 쓰러진 조엘을 먹이고 보살핀다고 해도, 엘리는 소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조엘이 아팠기 때문에 엘리는 간호했을 뿐입니다. 조엘이 회복한 이후, 조엘과 엘리는 다시 유사 아버지와 유사 딸이 됩니다. <로드>에서 남자와 소년은 단 한 번도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테오는 자신이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테오가 아버지가 되고 카를 이끌고 싶다고 해도, 이미 카는 또 다른 생명을 책임져야 합니다. 테오가 아버지가 된다고 해도, 테오는 <로드>의 남자 및 <라스트 오브 어스>의 조엘과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테오는 아버지보다 동반자나 일행에 가까워요. 똑같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어른 남자와 아이를 다룬다고 해도, 이렇게 <칠드런 오브 맨>은 <로드>와 <라스트 오브 어스>와 다른 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들과 다릅니다. 카가 모성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카는 소년과 다르고 엘리와 다릅니다. 소년과 엘리는 자신이 직접 누군가를 먹여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로드>와 <칠드런 오브 맨>과 <라스트 오브 어스>는 모두 어른 남자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로드>는 소년이 아니라 남자의 상념을 글자들로 표현합니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 카메라는 카가 아니라 테오를 쫓습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엘리보다 조엘을 조종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칠드런 오브 맨>에서 테오가 듬직한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카가 누군가를 먹여야 하기 때문에, 테오와 카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테오와 카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역시 여기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시간은 길지 않으나, 잠시 <칠드런 오브 맨>은 할머니와 아기를 보여줄 수 있는지 모르죠. <로드>와 <라스트 오브 어스>는 할머니와 아기를 쉽게 강조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