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제노 타이탄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들 본문
[문자 그대로 제노 타이탄은 압도적인 로망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로망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비디오 게임 <문명: 비욘드 어스>에는 이른바 거대 괴수 3종 세트가 있습니다. 3종 세트는 공성 벌레, 크라켄, 제노 타이탄입니다. 거대 괴수 3종 세트는 모두 로딩 화면을 장식합니다. 얼음 벌판에서 공성 벌레는 하늘 높이 솟구치고 거대한 위용을 자랑합니다. 신비로운 바닷속에서 크라켄은 투박하고 장엄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뜨거운 용암 지대에서 분노한 화산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제노 타이탄은 무시무시하고 파괴적인 인상을 내비치죠. 특히, 제노 타이탄과 인간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제노 타이탄은 자신의 거대한 몸뚱이를 훨씬 강조할 수 있습니다. 게임 제작진은 거대 괴수 3종 세트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성 벌레와 크라켄과 제노 타이탄을 로딩 화면에 집어넣었겠죠.
하지만 공성 벌레와 크라켄과 달리, 제노 타이탄은 천연적이고 자연적이고 야생적인 거대 괴수가 아닙니다. 제노 타이탄은 조화 인류 세력이 만든 생체 병기입니다. 거대 괴수 3종 세트 중에서 (공성 벌레와 크라켄과 달리) 제노 타이탄은 유일한 생체 병기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공성 벌레와 크라켄을 조종하지 못하거나 아주 제한적으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반면, 게임 플레이어는 제노 타이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공성 벌레나 크라켄이 도시나 수송선에 접근할 때마다, 게임 플레이어는 마음 속으로 기도할 겁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공성 벌레와 크라켄이 그냥 지나가라고 기도하겠죠. 만약 공성 벌레가 도시를 깨부수거나 크라켄이 수송선을 침몰시킨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욕설을 뱉고 저장 게임을 불러올지 모릅니다. 만약 크라켄이 적대 해안 도시에서 촉수들을 휘두른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환호성을 지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크라켄이 아군 도시에 다가온다면, 곧바로 환호성은 욕설과 짜증이 될 겁니다. 크라켄은 야생이고, 게임 플레이어(인류 세력)는 야생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게임 플레이어가 거대 괴수를 좋아한다고 해도, 크라켄이 아군 해상 도시를 후려칠 때, 게임 플레이어는 욕설을 뱉고 크라켄을 원망하겠죠. 아무리 게임 플레이어가 거대 괴수를 로망이라고 여긴다고 해도, 공성 벌레가 귀중한 초반 보병 부대를 깔아뭉갤 때, 게임 플레이어는 공성 벌레를 저주하고 게임을 포기할지 모릅니다. 반면, 제노 타이탄은 통제된 야생입니다. 조화 인류 세력은 제노 타이탄을 만들고 마음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아군 도시 옆에 제노 타이탄이 있을 때, 제노 타이탄은 아군 도시를 깨부수는 재앙이 아닙니다. 제노 타이탄은 아군 도시를 지키는 든든한 살아있는 장벽이 됩니다.
공성 벌레와 크라켄과 제노 타이탄이 똑같은 거대 괴수라고 해도, 제노 타이탄은 다른 두 괴수와 다릅니다. 공성 벌레와 크라켄은 게임 플레이어에게 재앙이나 저주가 될 수 있으나, 제노 타이탄은 언제나 든든하게 게임 플레이어를 지킬 겁니다. 제노 타이탄은 그 거대한 몸뚱이와 날카로운 앞발 낫으로 적군 도시나 적군 병기들을 깨부술 겁니다. 아, 뭐, 제노 타이탄은 느립니다. 다른 조화 병력들이 후다닥 날아다닐 때, 제노 타이탄은 그저 슬금슬금 기어다닐 뿐이죠. 제노 타이탄이 적대 도시에 진입한다면, 적대 도시는 반파를 각오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노 타이탄이 너무 느리기 때문에 (세력 균형이 많이 기울지 않았다면) 그런 상황은 쉽게 벌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산맥이나 언덕이나 협곡이 있다면, 도로들이 없다면, 적대 도시로 향하는 동안, 제노 타이탄은 신나게 두들겨맞을지 모르죠. 적대 도시에 도착할 때, 제노 타이탄은 만신창이가 될 테고, 적대 도시는 간단히 제노 타이탄에게 로켓들을 날릴 수 있겠죠.
하지만 왜 조화 세력이 무조건 제노 타이탄을 적대 도시에 보내야 할까요. 행성 생태계가 각성하는 동안, 조화 세력은 살아있는 장벽으로서 제노 타이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조화 세력이 주요 도시 주변에 도로망을 건설하고 녹색 독기를 팍팍 뿌린다면, 아무도 살아있는 장벽 제노 타이탄을 뚫지 못할 겁니다. 행성 궤도에서 록토퍼스가 하늘거린다면, 그건 금상첨화가 되겠죠.
게임 후반부에 공성 벌레와 크라켄은 더 이상 인류 세력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강력한 전차들과 순양 전함들과 결전 병기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공성 벌레와 크라켄은 광휘를 잃습니다. 여전히 공성 벌레와 크라켄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나, 그 자체로서 이런 거대 괴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인류 세력은 크라켄이 헤엄치는 경험치라고 생각할 테고, 적극적으로 크라켄을 처치하기 원하겠죠. 인류 문명이 진보적으로 발전할 때, 야생 포식동물은 더 이상 인류 문명을 위협하지 못합니다. 이는 현실과 마찬가지죠. 과거 사람들은 야생 포식동물들을 두려워했습니다.
19세기 근대적인 진보 이전에 야생 포식동물들은 현실적인 위협이었으나, 이제 아무도, 적어도 현대 도시 시민들은 그게 위협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향유 고래를 바라보는 동안, 16세기 범선 선원들은 자신들이 정말 거대 괴수를 바라본다고 느꼈을 겁니다. 향유 고래는 범선을 침몰시킬 수 있고, 숱한 선원들을 물귀신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16세기 범선 선원들은 강력한 엔진으로 작동하는 20세기 포경선이 작살포를 펑펑 날릴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겠죠. 그래서 그들은 향유 고래에게서 거대 괴수를 볼 수 있었을 겁니다. 향유 고래를 목격할 때, 범선 선원들은 향유 고래가 정말 범선을 침몰시킬지 모른다고 벌벌 떨었을지 몰라요. 그건 현실적인 위협입니다.
[과거 사람들에게 향유 고래는 거대 괴수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20세기 사람들에게는….]
하지만 20세기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시각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16세기 선원들에게 범선은 함선이었습니다. 그리고 향유 고래는 함선에게 심각한 피해를 미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향유 고래들이 정말 군용 범선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미쳤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향유 고래는 16세기 범선을 들이받고 침몰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환경 오염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에 향유 고래는 오늘날보다 훨씬 거대했겠죠. 16세기 사람들은 향유 고래에게서 거대 괴수라는 가능성을 얼마든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사람들에게 범선은 그저 과거의 향수에 불과합니다. 돛을 단 요트는 호화로운 취미이고, 아무도 이게 진짜 함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0세기 사람들은 막강한 구축함과 순양 전함과 잠수함과 항공 모함이 함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향유 고래는 더 이상 거대 바다 괴수가 아닙니다. 향유 고래는 그저 바닷속을 헤엄치고 오징어를 잡아먹는 일개 포식동물에 불과합니다. 향유 고래를 바라볼 때, 사람들은 거대 괴수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인류 문명에서 향유 고래는 전율적인 지위를 잃었습니다. 현대 도시 시민들은 향유 고래가 함선을 들이받는 바다 괴수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20세기 구축함에게 향유 고래 따위가 상대가 되겠어요.
19세기 근대적인 진보 이후, 향유 고래는 거대 괴수에서 야생 동물로 추락했습니다. 추락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추락은 부정적인 어감이죠. 향유 고래는 그저 향유 고래에 불과합니다.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고 해도, 추락이라는 부정적인 어감을 덧붙일 이유는 없겠죠. 하지만 현대 문명에서 향유 고래는 더 이상 거대 괴수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향유 고래가 거대 괴수로 이어진다고 해도, 양쪽의 연결 고리는 다소 희미해졌습니다. <하트 오브 더 씨> 같은 영화를 보는 동안, 현대 도시 시민들은 향유 고래가 장엄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겠으나, 동시에 그게 과거지사라고 여길 겁니다. 현대적인 유람선을 타는 동안 향유 고래를 무서워하는 승객들은 없겠죠.
어쩌면 언젠가 인류 문명은 망할지 모릅니다. 인류 문명이 망한다면, 사람들은 중세 시대나 고대 시대로 돌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그때 사람들은 향유 고래에게서 다시 거대 괴수를 연상할지 모르죠. 19세기 근대적인 진보가 거대 괴수를 없앴다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다시 거대 괴수를 부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인류 문명이 망할지 아무도 그걸 알지 못합니다. 언젠가 인류는 멸종할 겁니다. 인류가 영원불멸하겠어요. 설사 인류가 유년기를 끝내고 새로운 생물종이나 새로운 지적 존재가 된다고 해도, 인류라는 정체성이 꾸준히 이어진다고 해도,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질 겁니다.
어쩌면 미래 인류는 꿈틀거리는 거대한 유기체 덩어리일지 모르죠. 거대한 유기체 덩어리는 행성 생태계를 흡수하고, 아주 총체적인 집단 지성이 될지 모르죠. 이런 것은 꽤나 멋진 로망일 겁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이런 규모로 비약해야 합니다. 고작 사이보그나 정신 업로드가 트랜스휴머니즘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인간 의식을 기계에 전송한다면, 고작 그게 트랜스휴머니즘이 되겠어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저 상상에 불과합니다. 언제 인류 문명이 멸망하거나 새롭게 도약할지 아무도 모르죠. 현대 인류 문명에서 향유 고래는 거대 괴수라는 연장선을 잃었습니다.
이것처럼 <문명: 비욘드 어스>에서 게임 후반부에 인류 세력들이 크게 진보할 때, 공성 벌레와 크라켄은 위용을 잃습니다. 크라켄이 항공 모함 함대에 접근하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들은 얼굴을 찡그리거나 기도하지 않을 겁니다. "뭐야, 이건? 해상 유닛들의 경험치인가?" 이렇게 게임 플레이어들은 생각하겠죠. 하지만 제노 타이탄은 다릅니다. 적대 세력의 제노 타이탄이 아군 도시에 접근할 때, 게임 플레이어들은 얼굴을 찡그릴 겁니다. "아, 나는 망했네. 저 망할 떡대 괴수는 수도를 날려버릴 거야." 공성 벌레와 크라켄과 달리, 오히려 게임 후반부에 제노 타이탄은 빛날 수 있습니다. 제노 타이탄은 진보의 결과입니다.
제노 타이탄이 살아있는 공성 전차나 든든한 장벽이 될 때, 게임 플레이어는 미소를 지을 겁니다. 거대 괴수를 좋아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겠죠. 얼마나 로망입니까. 게임 플레이어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거대 괴수.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거대 괴수가 나타날 수 있을까요. 아무도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미래 인류는 정말 거대 생체 병기를 운용할지 몰라요. 누가 그걸 장담하겠어요. 16세기 범선 선원들이 강력한 20세기 포경선을 상상하지 못한 것처럼, 21세기 인류는 25세기 인류가 만드는 거대 생체 병기를 상상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21세기 인류에게 제노 타이탄은 고작 스페이스 오페라 설정에 불과하나, 25세기 인류에게 이건 현실일지 모르죠.
하지만 아무도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거대 괴수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지 모르죠. 왜 인류가 병기로서 숱한 금속 기계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물을 이용해야 할까요. 전투 병기로서 생체 조직은 금속 기계를 뛰어넘지 못할지 모르죠. 현대 인류 문명에서 전차가 기마병을 밀어낸 것처럼, 생체 조직은 더 이상 전투 병기가 되지 못할지 모르죠. 탄저균 폭탄 같은 생화학 무기나 폭발물 탐지견 같은 탐지 병기 이외에 거대 동물은 더 이상 전장에 나타나지 못할지 모르죠. 제노 타이탄은 그저 스페이스 오페라 설정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제노 타이탄 같은 병기와 달리, 이런 거대 바다 괴수는 인류 문명에게 속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제노 타이탄은 거대 생체 병기입니다. 거대 생체 병기는 전쟁에서 떨어지지 못합니다. 전쟁은 비극입니다. 전쟁은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계급 구조에서 비롯하는 비극이죠. 그래서 전쟁을 벌일 때, 지배 계급은 언제나 삐뚤어진 애국심을 강조합니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에서 얼마나 많은 자본주의 지배 계급들이 쇼비니즘을 강조했습니까. (자본주의와 싸우는 세력들 역시 쇼비니즘을 강조했으나, 전쟁을 먼저 일으킨 쪽은 자본주의 세력들이죠.) 제노 타이탄 같은 거대 괴수를 이야기할 때, SF 설정은 언제나 전쟁과 폭력을 언급해야 합니다.
사실 거대 괴수는 본질적으로 폭력과 떨어지지 못할지 모릅니다. 거대 괴수라는 원형에는 언제나 폭력이 있을지 모릅니다. 거대 괴수가 포식동물에게서 비롯했기 때문입니다. 자연 다큐멘터리 서적 <신의 괴물>에서 데이빗 쾀멘은 어떻게 인간을 잡아먹는 포식동물이 문화와 관념에 영향을 미치는지 들여다봅니다. 사람들이 거대 괴수를 상상할 때, 이런 문화와 관념은 거기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그래서 거대 괴수를 창작할 때마다, 사람들은 포식동물들을 연구하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덧붙이겠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없는 거대 괴수를 누가 상상하겠습니까? 그런 거대 괴수는 존재할 수 있으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자랑하는 거대 괴수들은 훨씬 많겠죠.
파괴는 거대 괴수의 전부가 아니나, 그건 분명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만약 포식동물들이 인간의 문화와 관념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거대 괴수는 상당히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흔히 사람들이 연상하는 거대 괴수는 거대한 몸집, 날카로운 이빨들이나 발톱들, 막강한 파괴력이죠. 종종 거대 괴수는 불을 뿜거나 빔을 쏘거나 기타 다른 초능력들을 선보일 수 있고요. 이빨과 발톱은 제한적인 파괴력이나, 화염이나 빔이나 다른 초능력들은 훨씬 광범위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어요. 그래서 모스라처럼 이빨과 발톱을 강조하지 않는 괴수 역시 폭력을 휘두를 수 있죠. 사람들은 포식동물에게 더욱 폭력적인 특징을 덧붙이고 싶었고, 거대 괴수들은 그저 물어뜯거나 할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먼저 거대 괴수는 커다란 포식동물이 되어야 합니다. 모스라를 창작할 때, 영화 제작진은 '여성적이고 평화로운 괴수'를 만들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모스라에게는 이빨과 발톱이 없죠. 모스라는 일반적인 거대 괴수가 아닙니다. 모스라는 독특한 (여성적이고 평화로운) 거대 괴수입니다. 일반적인 거대 괴수는 모스라와 달라야 합니다. 현실 속의 포식동물들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대 괴수를 커다란 포식동물로 만들 수 있죠. 19세기 이후, 근대적인 진보를 거치는 동안, 사람들은 아무르 호랑이나 향유 고래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근대적인 진보를 거쳤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의 인식 속에서 무시무시한 포식동물들은 매혹적으로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여전히 커다란 육식공룡이나 커다란 고대 상어는 많은 인기를 끌죠. 시간이 몇 세기를 더 지난다고 해도, 무시무시한 포식동물은 원초적인 공포에서 벗어나지 않을 테고, 커다란 육식공룡이나 커다란 고대 상어는 계속 인기를 누릴지 모릅니다. 제노 타이탄에게는 이런 원초적인 공포가 있습니다. 다른 여러 거대 괴수들처럼, 제노 타이탄은 이빨과 발톱을 갖추었습니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앞발 낫은 흉악하고 원시적이고 파괴적인 무기죠. 제노 타이탄은 갯가재에서 비롯했습니다. 제노 타이탄은 100m짜리 과장된 갯가재죠. 비록 갯가재는 작은 포식동물에 불과합니다. 갯가재는 최상위 포식자, 알파 프레데터가 아니죠. 하지만 포식동물로서 갯가재는 훌륭한 무기를 갖추었고, 제노 타이탄은 그걸 뻥튀기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제노 타이탄을 통해 그런 원초적인 공포와 폭력을 전쟁에 투영할 수 있습니다.
공성 벌레와 크라켄에게도 원초적인 공포와 폭력이 있으나, 그건 인류가 통제하지 못하는 공포와 폭력입니다. 그리고 진보는 이런 원초적인 폭력을 쓰러뜨릴 수 있어요. 하지만 조화 인류 세력은 제노 타이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고, 제노 타이탄은 공성 벌레와 크라켄과 다른 감성을 풍깁니다. 그 자체로서 거대 괴수는 폭력이나, 거대 괴수 병기는 그런 폭력을 한층 내세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기 때문에. 공성 벌레와 크라켄은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아요. 하지만 제노 타이탄은 전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게 생체 병기의 본질이기 때문에. 거대 괴수 속의 폭력이라는 본질이 전쟁으로 이어졌을 때, 제노 타이탄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폭력은 똑같지 않습니다. <문명: 비욘드 어스>를 플레이하는 동안, 어떤 게임 플레이어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환경 오염 때문에 지구 문명은 망했어. 외계 행성에서 우리는 자연 환경을 보호해야 해. 하지만 다른 순수와 우월 세력은 그걸 싫어하고 조화 세력을 공격하지. 그래서 조화 세력은 자신을 방어해야 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조화 세력은 전쟁에 참가하고 제노 타이탄을 만들어야 해. 이건 방어 행동이고 자기 방어야. 이건 방어적인 폭력이야. 방어적인 폭력은 후천적이고 파생적이지. 따라서 조화 세력은 용서를 받을 수 있어."
이런 논리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흑인 노예가 백인 주인을 찢어죽이거나, 제3세계 정부가 미국 정부를 비판하거나, 여자들이 가부장 문화를 지랄병처럼 극단적으로 공격할 때, 우리는 그걸 방어적이고 후천적이고 파생적인 폭력이라고 간주할 수 있어요. <대지의 저주 받은 사람들>에서 프란츠 파농과 장 폴 사르트르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 자체로서 흑인 야만인들은 야만인들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 폴 사르트르가 프랑츠 파농의 사상을 곡해했다고 말할지 몰라요.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방어적이고 후천적이고 파생적인 폭력을 규정할 수 있죠. 조화 세력과 제노 타이탄은 그런 폭력에 속하는지 모릅니다.
[판도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나비 부족과 타나토어는 살육들을 저지릅니다. 이게 '폭력'일까요?]
소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에서 외계인들은 방어적이고 후천적이고 파생적인 폭력을 상징합니다. 외계인들은 폭력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구인들이 삼림을 수탈했고 외계인들을 착취했기 때문에 외계인들은 저항해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외계인들은 폭력을 터득했죠. 어쩌면 외계인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새로운 폭력에 접어들지 모릅니다. 그들은 대대적으로 학살을 벌일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게 온전히 외계인들의 잘못인가요? 외계인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대대적인 학살이 벌어지나요? 그건 아니죠. 지구인들은 선천적인 폭력을 저질렀고, 후천적이고 파생적인 폭력을 촉발했습니다. 폭력에 악순환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선천적인 폭력과 파생적인 폭력을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소설 작가 어슐라 르 귄이 파생적인 폭력을 긍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슐라 르 귄은 장 폴 사르트르에게 반대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장 폴 사르트르에게 반대한다고 해도, 분명히 어슐라 르 귄은 파생적인 폭력을 묘사했습니다. 르 귄은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게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 속에 흑인 노예들과 제3세계 정부들과 극단적인 여자들이 있기 때문에. SF 독자들은 이걸 <문명: 비욘드 어스>의 조화 세력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의 외계인들과 <문명: 비욘드 어스>의 조화 세력은 똑같이 환경 오염(삼림 수탈, 기후 변화)에 민감하죠.
따라서 게임 플레이어가 (조화 세력의) 제노 타이탄이 방어적이고 후천적인 폭력이라고 간주한다면, 그건 틀리지 않을 겁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저지른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제노 타이탄은 사소한 폭력이 될지 모르죠. 하지만 다른 거대 생체 병기들은? SF 세상에는 제노 타이탄 이외에 다른 생체 병기들 역시 있습니다. 그런 모든 거대 생체 병기가 오직 방어적이고 후천적으로 폭력으로 이어지나요? 방어적인 폭력이 거대 생체 병기의 고유한 특성인가요? 거대 생체 병기와 방어적인 폭력 사이에 필수적인 연결 고리가 있나요?
스콧 웨스터펠드가 쓴 <베헤모스>에는 베헤모스라는 결전 해양 촉수 괴수 병기가 있습니다. (어따, 길다란 수식어입니다.) 베헤모스는 순양 전함 괴벤을 공격하고 다른 유보트를 집어삼킵니다. 베헤모스는 영국 해군 소속이고, 영국 해군의 결전 생체 병기 같습니다. 하지만 영국이 피해자인가요? 영국이 '자기의 땅에서 유배를 당한 피해자들'인가요?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 영국은 가해자죠. 영국을 비롯해 유럽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다툼을 벌였고, 1차 세계 대전은 그런 결과죠. 따라서 베헤모스는 방어적이고 파생적인 폭력이 되지 못합니다.
만약 인도 해군이 베헤모스를 이용해 영국 해군을 공격한다면, 그건 파생적인 폭력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국제 정세에서 영국 해군은 수탈을 당한 피해자가 아니고, 베헤모스는 파생적인 폭력이 되지 못합니다. 반면, 제노 타이탄은 분명히 파생적인 폭력입니다. 그 이유는 제노 타이탄이 생체 병기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노 타이탄을 만든 조화 세력이 극단적으로 환경 오염에 반발하기 때문이죠. 자연 생태계와 진화를 연구하는 동안, 조화 세력은 거대 괴수 병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거대 괴수 병기를 만들기 위해 조화 세력은 자연 생태계와 진화 역사를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거대 괴수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거대 괴수 제노 타이탄은 결과죠.
거대 괴수 팬들은 똑같이 베헤모스와 제노 타이탄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양쪽 모두 똑같이 결전 괴수 병기입니다. 게다가 양쪽 모두 생김새는 야생의 흉악함 그 자체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로망스러울 수 있는지…. 하지만 두 괴수 병기를 뒷받침하는 사상이 다르기 때문에 거대 괴수 팬들은 두 괴수에게서 서로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아무리 제노 타이탄이 파생적인 폭력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폭력은 좋지 않습니다. 오직 전장에서 제노 타이탄 같은 거대 괴수는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조화 세력이 다른 세력들과 싸우지 않았다면, 조화 과학자들은 제노 타이탄을 만들지 않았겠죠.
오직 전장에서 거대 괴수라는 로망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거대 괴수를 그저 상징이나 비유로 축소하는 편이 나을지 모릅니다. 제노 타이탄 같은 거대 괴수를 현실에 접목하고 싶다면, 우리는 거대 괴수가 아니라 다른 생태적인 상상력을 찾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무시무시한 포식동물이 거대 괴수를 낳았다면, 거대 괴수는 파괴라는 영역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지 모르죠. 그래서 거대 괴수는 언제나 폭력을 담보해야 할지 모릅니다. 폭력이 중요한 정체성이기 때문에 현대 인류 문명은 더 이상 거대 괴수를 연상하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폭력을 다시 불러낼 수 있을 때, 인류 문명이 망하거나 거대 생체 병기가 등장할 때, 사람들은 다시 거대 괴수를 연상할 수 있겠죠.
게다가 제노 타이탄은 다른 어떤 폭력이 아니라 억압적인 계급 구조에서 비롯하는 폭력이죠. 만약 SF 설정이 이런 논리적인 흐름에 닿을 수 있다면, 생태적인 상상력을 현실과 접목하고 싶을 때, 거대 괴수 병기는 열외가 되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SF 설정은 전투가 없고 폭력이 없는, 거대 생체 장비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노 타이탄이 결전 병기가 아니라 중장비 역할을 맡는다면, 폭력은 끼어들지 않겠죠. 도시를 짓거나 운하를 개척할 때, 살아있는 중장비로서 제노 타이탄은 건설적인 역할을 맡을지 모르죠.
[공성 벌레와 제노 타이탄은 똑같은 거대 괴수이나, 양쪽은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근대적인 진보가 도래하기 전에, 아니, 근대적인 진보 이후에도, 먹고 살기 위해 인류는 소나 말을 이용했습니다. 여전히 코끼리는 중장비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이건 동물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죠. 하지만 만약 유전 공학이 정말 살아있는 중장비를 만들 수 있다면? 생물적인 욕구가 없는 거대 동물이나 고통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는 거대 동물은 좋은 중장비가 될지 모르죠. 그런 거대 동물 중장비가 효율적인지 아무도 그걸 장담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거대 동물 중장비가 존재한다면, 폭력이나 전투나 학살 없이, 억압이나 수직적인 계급 없이, SF 설정은 거대 괴수 장비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그 자체로서 생물적인 욕구가 없는 거대 동물이 동물 권리를 침해한다고 여길지 몰라요. 여기에는 여러 찬반 양론들이 있겠죠. 조화 세력은 자연 환경을 보호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제노 타이탄 같은 유전 공학 결과가 자연 환경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까요? 제노 타이탄은 유전자 조작 작물이나 가축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일지 모릅니다. 만약 제노 타이탄이 외계 행성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면, 그건 어마어마한 생태적인 재앙이 될지 몰라요. 인류는 유전 공학을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노 타이탄은 단순한 작물이나 가축이 아닙니다. 조화 세력에게 제노 타이탄을 사용할 명분이 충분히 있을까요? 이게 <트리피드의 날> 같은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공성 벌레와 크라켄과 제노 타이탄이 똑같이 거대 괴수 3종 세트라고 해도, 이렇게 제노 타이탄과 다른 두 괴수는 다릅니다. 이 게시글이 특정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여러 관점들에서 게임 플레이어들은 제노 타이탄을 바라볼 수 있겠죠. 게다가 비록 부정적인 특징들이 있다고 해도, 제노 타이탄은 꽤나 매력적인 설정입니다. 제노 타이탄은 조화 세력의 꽃일지 모릅니다. 이게 그저 무식한 떡대 최강 괴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사상들을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게임 제작진이 조화 세력의 결전 병기를 보행 전차나 육상 구축함으로 설정했다면…. 그것 역시 흥미로웠을지 모르나, 그건 제노 타이탄보다 덜한 매력을 드러냈을지 모릅니다. 조화 세력은 자연 환경을 보호하기 원하고, 제노 타이탄은 거대 괴수입니다. 자연 생태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거대 괴수에게 이를 수 있어요. 조화 세력과 제노 타이탄은 그런 흐름을 대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