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유토피아보다 변화의 시작 본문
19세기 소설 <뒤 돌아보며>부터 21세기의 비디오 게임 <비욘드 어스>까지, 사이언스 픽션은 언제나 유토피아와 이상 사회를 논하곤 했습니다. 아니, 사실 유토피아는 오직 사이언스 픽션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고대 철학자들도 얼마든지 이상 사회를 이야기했고, 중세 철학자들도 다르지 않았죠. 유토피아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 이전부터 존재했고, 자신만의 궤적을 꾸준히 그렸습니다. 하지만 산업 혁명과 계몽주의는 유토피아 소설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다주었고, 덕분에 유토피아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 안으로 들어왔죠. 작가들은 정교하고 논리적인 체계와 과학 기술을 이용해 이상 사회를 그리려고 합니다. 당연히 사회주의 철학도 여기에 끼어듭니다. 이미 언급한 <뒤 돌아보며>는 사회주의 체계를 묘사하고, <비욘드 어스>에서도 프랑스 좌파를 따르는 독일 정당이 나오죠. 아마 사회 민주주의 정당인가 봅니다. 사실 칼 마르크스부터 역사 발전을 이야기했고, 미래에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거라고 계산했죠.
이런 유토피아 소설은 사회주의자들이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사회주의 공동체는 아직 등장한 적이 없습니다. 파리 코뮌, 소비에트 연방, 비아 캄페시나, 녹색당 등은 자본주의 반대 운동의 결과물이지만, 사회주의자들이 바랐던 공동체와 일치하지 않죠.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주의 공동체가 정확히 어떤 모습이냐고 묻습니다. 일련의 SF 소설들은 거기에 대답할 수 있어요. 사실 SF 소설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미국을 상상하다> 같은 책도 유토피아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주의자에게 "유토피아를 만들고 싶어하느냐?"고 묻습니다. 음, 유토피아…. 좋죠.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유토피아를 이룩할 수 있을까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서 유토피아가 도래할까요. 솔직히 저는 꽤나 회의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폭력과 갈등과 내분과 오염을 완전히 근절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만약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도 유토피아 따위는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글쎄요, 사회주의 공동체는 자본주의 세상보다 조금 낫겠죠. 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천국 따위를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밑바닥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후 변화의 악영향을 조금이나마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주의 세상에서도 오염과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나마 자본주의 세상보다 기회가 많겠죠. 유토피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 약간의 기회. 그게 중요하죠. 그게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