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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끝과 우주 항해의 로망 본문

SF & 판타지/비경 탐험

유년기의 끝과 우주 항해의 로망

OneTiger 2017. 5. 16. 20:00

[게임 <스텔라리스> 예고편의 한 장면. 우리가 유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해도, 우주 항해는 신비롭습니다.]



"그저 막연히 우주에 나가고 싶었다." 소설 <기시감>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지도 교수와 면담할 때, 주인공이 저런 대사를 꺼냅니다. 주인공은 평범한 대학생이었으나 모종의 사정으로 다른 외계 문명을 방문하는 우주선 게이트에 학술 연구원으로 탑승합니다. 지도 교수는 왜 주인공에게 우주로 떠나고 싶은지 물었고, 주인공은 저렇게 대답합니다. 개인적으로 저 대사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기시감>은 우주 탐사물이나 우주 전쟁물이 아닙니다. 외견은 우주 탐사 소설처럼 보이지만, 진짜 중요한 주제는 인공지능입니다. 우주선을 관장하는 인공지능 로가디아에 관한 이야기죠.


그래도 저 대사가 인상적인 까닭은 사이언스 픽션의 최종적인 목적지는 바로 우주이기 때문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많은 것들을 탐구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우주 저 너머로 눈을 돌립니다. 우주는 심원의 영역이고, 인류는 아직 거기에 닿지 못했습니다. 심해는 우주만큼 신비롭다고 하지만, 거리를 따져본다면 심해는 우주에게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달이나 화성은 물론이고,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는 것과 심해로 잠수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아직 심해 연구소나 해저 기지는 없지만, 지구 궤도에 떠있는 국제 우주 정거장과 심해 속의 연구 기지는 서로 다른 느낌을 풍길 겁니다. 그리고 저는 심해 연구 기지보다 국제 우주 정거장이 훨씬 장대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풍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은 외부 우주가 아니라 내부의 인간을 봐야 한다고 말할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류의 미래가 그저 우주만은 아니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 말이 맞을지 모릅니다.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고, 과연 인류가 저 머나먼 우주로 우주선을 띄울지 알 수 없습니다. 현재 각종 우주 사업들이 한창 진행되는 중이고, 심지어 우주 시민들까지 모집되는 중이지만, 정말 인류가 깊고 깊은 우주를 항해하거나 다른 외계 행성을 개척할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인류는 영원히 지구에서 벗어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인류는 우주의 항해자가 되는 것보다 지구에서 더 진보된 삶을 갈망할지 모릅니다. 기술적 특이점이나 인류의 멸망 혹은 진화는 우주 항해보다 훨씬 놀랍게 보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뻔한 사이버펑크 소설처럼 기술적 특이점은 우주 항해보다 훨씬 더 많이 인류를 바꿀지 모릅니다. 인류가 살덩이를 벗어나고 가상 공간 속에서 하나의 통합체가 될지 모르죠. 그것도 일종의 '유년기의 끝'일 겁니다. 혹은 생체학적 특이점 때문에 <블러드 뮤직>처럼 인류가 거대한 생명 통합체에 녹을지 모르죠. 그것도 유년기의 끝이겠군요.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것들이야말로 진짜 원대한 이상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저 역시 인류의 통합, 멸망, 진보 등은 우주 항해만큼 흥미롭고 매력적인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인간인 만큼, 인류라는 종 자체의 미래에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주 항해는 인류보다 우주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유년기의 끝'만큼 뭔가 압도적인 느낌을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결국 우리 인류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 궁금합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 유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사이버네틱 기술, 유전자 조작, 거대한 전쟁이나 질병이 그 시발점이 될지 어떨지…. 만약 정말 인류가 유년기를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떤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지….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면, 사실 우주 항해 따위는 별로 중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우주보다 인간의 후예(?)가 훨씬 중요하죠. 어차피 우리가 유년기를 벗어난다면, 우주 항해는 보다 순조롭게 이루어질지 모릅니다. 소설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인류는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이룩했는데, 이것 역시 인류가 유년기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인류는 보다 순조롭게 안드로메다 성운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죠. 이 소설에서 주안점은 우주 항해가 아니라 유년기의 끝입니다. (이 경우에는 사회학적으로 유년기에서 벗어났군요.)



그래도 저는 우주 항해야말로 사이언스 픽션의 순수한 로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주 항해는 궁극적인 로망이 될 수 없어도 순수한 로망입니다. 유년기의 끝이 궁극적인 로망이라면, 우주 항해는 순수한 로망입니다. 왜냐하면 우주 항해는 (존 클루트가 말했던) 공간적인 확장, 그러니까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한, 저 미지의 장소를 향해 나가는 과정…. 그것은 그 자체로 마음 깊숙한 곳을 찌릅니다. 이런 비유가 어울릴지 모르지만,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주인공은 바다를 보며 '아무도 가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그 너머를 향해 떠나고 싶다.'고 노래합니다. 우주 항해는 그런 노래의 바람과 비슷합니다. 어쩌면 이건 너무 어린 취향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린 취향으로 보일 만큼, 저는 우주 항해는 순수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류는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요. 우주에 나가면, 태양풍이 우주선을 도와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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