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월드 오브 투모로우>, 자본주의-남성(폭력)-매운탕 본문
[자본주의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포도보다 매운탕을 선호하는지 모릅니다.]
"여자야. 여자야. 너는 아직 모르지. 울고 있구나. 여자야. 약해지면 안 돼. 기다려야지. 여자야. 흔들리면 안 돼. 여자야. 여자야. 약해지면 안 돼~♬" 비록 이 노래가 자본주의를 비판한다고 의도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건 지배적인 경제입니다. 특히, 21세기 초반, 인류 문명은 세계화 자본주의에게 종속됩니다. 이 경제에서 여자들은 사회적인 약자들입니다. "여자야. 여자야. 약해지면 안 돼~♬" 비록 이 노래가 비판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가부장 경제입니다. 가부장 경제로서, 자본주의는 여자들을 착취(차별)합니다. 자본주의가 착취하기 때문에, 여자들은 사회적인 약자들이 됩니다.
어라~, 어떻게 자본주의가 여자들을 착취하나요? 어떻게 이게 가부장 경제가 되나요? 자본주의는 사회화, 공공화보다 민영화(사유화), 개인화를 선호합니다. 이 경제 때문에, 인류 문명에서 많은 것들은 사회화, 공공화보다 민영화(사유화), 개인화에게 종속됩니다. 육아는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아무도 아기들을 돌봐주지 않는다면, 200년 이후, 인류 문명은 무너질 겁니다. 호모 사피엔스 생물종으로서, 인류는 멸종할 겁니다. 육아 없이, 인류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육아는 원초적인 노동입니다. 아무리 이게 원초적인 노동이라고 해도, 이건 개인화에게 종속됩니다.
인류 문명이 세계화 자본주의에게 종속되기 때문에, 이 경제가 사회화, 공공화보다 민영화(사유화), 개인화를 선호하기 때문에, 육아는 사회적인 노동보다 개인적인 노동이 됩니다. 특히, 이건 여자의 개인적인 노동이 됩니다. 여자가 아기를 낳고 아기를 먹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임신, 출산, 수유와 육아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육아가 개인적인 노동보다 사회적인 노동이라면, 임신, 출산, 수유와 육아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양쪽이 떨어지기 때문에, 비록 남자보다 여자가 아기를 낳는다고 해도, 육아는 여자를 구속하지 않습니다. 육아와 상관없이, 오호~, 여자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이게 가능하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사회적인 노동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 경제 때문에, 육아는 사회적인 노동보다 개인적인 노동이 됩니다. 임신, 출산, 수유와 육아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가정에서 여자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정이 구속하기 때문에, 여자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여자를 구속하기 위해, 가부장 편견들은 지배적인 관념이 됩니다. 이 편견들이 여자를 차별하기 때문에, 여자는 사회적인 약자입니다. 여자가 사회적인 약자이기 때문에, 아…, 자본주의에서 끔찍한 성 범죄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범죄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가부장 경제입니다.
이건 오직 자본주의만 가부장 경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류 문명에서 가부장 편견들은 너무, 너~~~무 오래된 역사입니다. 적어도, 거대 문명과 가부장 편견들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소비에트 연방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공산주의로서, 소비에트 연방은 자본주의를 비판합니다. 적어도, 마르크스-레닌주의로서, 소비에트 연방과 자본주의 사회는 대립합니다. 비록 양쪽이 대립한다고 해도, 가부장 편견들에서 소비에트 연방은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편견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구속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증명하는 것처럼, 음…, 거대 문명 역사는 가부장 문명의 역사입니다.
비록 가부장 편견들에서 소비에트 연방이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21세기 초반 오늘날, 마르크스-레닌주의보다 신자유주의는 인류 문명을 지배합니다. 인류 문명이 세계화 자본주의에게 종속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지배적인 이념이 됩니다. 21세기 초반, 세계화 자본주의는 대규모 가부장 경제입니다. 이 경제 때문에, 가부장 편견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규모 가부장 경제로서, 페미니즘에게 자본주의는 가장 위험한 상대입니다. 양쪽이 대립하는 것처럼, 가부장 경제로서, 자본주의와 남성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여자를 차별하기 위해 가부장 편견들은 남자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자본주의에서 가부장 편견들이 지배적인 관념이기 때문에, 여자를 차별하기 위해 이 관념이 남자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남성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남성'은 그저 문화적인 해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가 사회적인 노동보다 개인적인 노동을 선호하는 것처럼, '자본주의-남성'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양쪽이 연결되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폭력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전쟁은 가장 대규모 폭력입니다. 인류 문명에서 다른 많은 폭력들보다 전쟁은 훨씬 대규모 폭력입니다. 게다가, 이건 비단 대규모 폭력만 아니라 가부장 폭력이기도 합니다.
인류 문명 역사에서, 많은 사례들은 남자들이 전투들을 지휘한다고 증명합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북부부터 남부까지, 동부부터 서부까지, 남자들, 남자들, 많은 남자들은 많은 전투들을 지휘합니다. 관우 운장부터 한니발 바르카까지, 헤르만 괴링부터 무타구치 렌야까지, 남자들과 전투들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건 모~~~든 전투가 여자들을 배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전쟁들에서 여자들은 전투원들이 됩니다. 특히, 사이언스 픽션(SF), 판타지에서 이 사례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부터 서사 판타지(에픽 판타지)까지, 장교부터 병사까지, 전쟁은 여자들을 포함합니다.
[이 사이언스 픽션(디젤펑크)에서, '여자'로서, 프랭키 쿡은 비행 항공 모함을 지휘합니다.]
<스카이 캡틴 앤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2004년 실사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사이언스 픽션(디젤펑크)입니다. 적어도, 디젤펑크로서, <스카이 캡틴 앤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사이언스 판타지에 속할 수 있습니다. 이 실사 영화가 사이언스 픽션이 되든, 사이언스 판타지가 되든, 이 디젤펑크에서 프링키 쿡은 중요한 등장인물입니다. 이 등장인물은 '여자'입니다. '여자'로서, 프랭키 쿡은 비행 항공 모함을 지휘합니다. 오오~,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여자가 항공 모함을 지휘한다고 묘사합니다. 프랭키 쿡처럼, 사이언스 픽션(사이언스 판타지)에서 전쟁과 여자를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심지어 스페이스 오페라조차 다르지 않습니다. 이건 아주 대규모 전쟁입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가 사이언스 픽션(사이언스 판타지)에 속하는 것처럼,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관점에서 <월드 오브 투모로우>와 스페이스 오페라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아무리 양쪽이 비슷하다고 해도,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우주 전투기를 묘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프랭키 쿡이 비행 항공 모함을 지휘한다고 해도, 전투기들은 우주를 향하지 않습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에서 전투기 싸움은 행성(지구) 수준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이 디젤펑크와 달리,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우주 전투기를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우주 전투기들은 우주를 향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전투기 싸움은 행성 수준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월드 오브 투모로우>와 스페이스 오페라가 똑같은 범주(사이언스 판타지)에 속한다고 해도, 전자보다 후자는 훨씬 대규모 전투를 연출합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에서 전투기 싸움이 행성(지구)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 것처럼,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이게 가능할 수 있는 것처럼, 전자보다 후자는 훨씬 대규모 전투를 연출합니다. 이 대규모 전투는 여자들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강화복 병사부터 전투기 조종사까지,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전쟁과 여자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세계는 오직 남자들만 전쟁에 참여한다고 묘사하지 않습니다. 비단 스페이스 오페라만 아니라 서사 판타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서사 판타지들은 던전 탐험들입니다.
던전 탐험은 전투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고대 유적부터 지하 동굴까지, 야만적인 오크부터 혐오스러운 흡혈귀까지, 전투는 커다란 부분입니다. 만약 던전 탐험이 핵 앤 슬래시를 의도한다면, 전투는 가장 커다란 부분,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겁니다. 이 부분은 여자들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성기사부터 마법사까지, 드루이드부터 도적까지, 던전 탐험은 전투와 여자를 연결합니다. 특히, 게임으로서, 던전 탐험은 여자 모험가를 생성하기 위한 기회를 선사합니다. 성기사부터 마법사까지, 수도사부터 레인저까지, 게임 플레이어는 여자 모험가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원한다면, 전사부터 마법사까지, 오직 여자들만 모험가 일행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가 프랭키 쿡을 묘사하는 것처럼, 이 '여자' 등장인물이 비행 항공 모함을 지휘하는 것처럼, 전쟁과 여자를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비단 <월드 오브 투모로우>만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 서사 판타지(던전 탐험)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전투기 조종사부터 삼림 레인저까지, 전쟁과 여자를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게 어렵지 않다고 해도,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디젤펑크입니다. 디젤펑크로서, 현실과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머나먼 관계입니다. 20세기 초반, 비행 항공 모함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현실과 달리, <월드 오브 투모로우>에서 비행 항공 모함은 존재합니다.
현실과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다릅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다른 세계'가 됩니다. 비단 <월드 오브 투모로우>만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 서사 판타지(던전 탐험) 역시 똑같습니다. 현실에서 우주 전투기는 날아다니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삼림 레인저는 야생 동물을 소환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스페이스 오페라(서사 판타지)는 다릅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서사 판타지(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른 세계'가 됩니다. 아무리 여자가 우주 전투기에 탑승한다고 해도, 아무리 여자가 삼림 레인저가 된다고 해도, 이건 현실이 아닙니다. 아무리 프랭키 쿡이 항공 모함을 지휘한다고 해도, 이 등장인물은 진짜가 아닙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가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이 디젤펑크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자 등장인물은 비행 항공 모함을 지휘할 겁니다. 서사 판타지(스페이스 오페라)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자는 삼림 레인저(가 되고 전투기 조종사)가 됩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와 달리, 스페이스 오페라(서사 판타지)와 달리, 현실에서 전쟁과 여자를 연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자와 달리, 전쟁과 남자를 연결하기는 너무 쉽습니다. 관우 운장부터 한니발 바르카까지, 헤르만 괴링부터 무타구치 렌야까지, 남자들과 전투들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전쟁은 가장 대규모 폭력입니다. 남자와 전투가 연결되기 때문에, 남성은 폭력입니다.
남자들과 전투들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가장 대규모 폭력이기 때문에, 남성과 폭력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남성은 폭력입니다. 적어도, 남성과 폭력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와 남성을 연결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남성과 폭력을 연결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폭력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비단 가부장 경제만 아니라 폭력 경제이기도 합니다. 아, 물론, 어떤 사례들은 여자들이 전쟁에 참여한다고 증명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이 터진 이후, 소비에트 연방에서 여자 조종사들은 '밤의 마녀들'이 되었습니다. '밤의 마녀들'은 여자 폭격기 조종사들을 뜻합니다.
[던전 탐험(서사 판타지)처럼, <월드 오브 투모로우>, 이 디젤펑크는 다른 세계입니다.]
소비에트 여자 조종사들이 나치 병사들을 폭격하는 것처럼, 어떤 사례들은 여자들이 전쟁에 참여한다고 증명합니다. 아무리 밤의 마녀들이 나치 병사들을 물리쳤다고 해도, 소비에트 군대에서 여자들보다 남자들은 훨씬, 훨~~~씬 커다란 부분입니다. 소비에트 군대 이외에, 미국 군대, 영국 군대, 나치 군대, 일본 제국 군대에서 여자들은 전투원들이 아니었습니다. 연합군, 주축군과 상관없이, 거의 유일하게, 소비에트 군대에서 여자들은 전투원들이 되었습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와 달리, 아무리 여자 조종사들이 나치 병사들을 물리쳤다고 해도, 전쟁과 여자를 연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게 쉽지 않은 것처럼, 여성보다 남성은 전쟁입니다. 전쟁이 가장 대규모 폭력이기 때문에, 여성보다 남성은 폭력입니다. 자본주의와 남성을 연결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폭력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남성은 자본주의와 폭력을 연결하기 위한 고리가 됩니다. 양쪽이 연결되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육식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어랄라~, 이유가 무엇인가요? 어떻게 자본주의와 육식을 연결할 수 있나요? 대답은 너무 간단합니다. 호랑이는 육식동물입니다. 아니, 이 야수는 최고 포식자(알파 프레데터)입니다. 최고 포식자로서, 호랑이는 다른 동물들을 죽입니다.
호랑이는 고기를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합니다. 만약 이 야수가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고기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게 쉽지 않기 때문에, 호랑이는 영양분들을 섭취하지 못합니다. 살아가기 위해 호랑이는 다른 동물들을 죽여야 합니다. 이건 폭력입니다. 포식자로서, 육식동물로서, 호랑이와 폭력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비단 이 야수만 아니라 다른 포식자들, 육식동물들 역시 똑같습니다. 호랑이와 달리, 현실에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인류가 나타나기 전에,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사라졌습니다. 이 관점에서 호랑이와 티-렉스는 너무 다릅니다.
생태학자들은 살아있는 호랑이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이 야수와 달리, 고생물학자들은 살아있는 티라노사우루스를 연구하지 못합니다. 이건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호랑이와 티라노사우루스는 너무 다릅니다. 비록 양쪽이 다르다고 해도, 호랑이와 폭력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티라노사우루스와 폭력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수각류는 고기를 먹습니다. 만약 티-렉스가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고기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게 쉽지 않기 때문에, 티-렉스는 영양분들을 섭취하지 못합니다. 살아가기 위해 이 최고 포식자는 다른 동물들을 죽여야 합니다.
이건 폭력입니다. 비록 호랑이와 티라노사우루스가 너무 다르다고 해도, 심지어 이 수각류조차 육식동물과 폭력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증명합니다. 티라노사우루스와 달리, 스테고사우루스는 초식동물입니다. 이 공룡에게는 커다란 골판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골판들은 방패들인지 모릅니다. 비록 스테고사우루스에게 방패들이 없다고 해도, 이 공룡에게는 날카로운 꼬리 가시들이 있습니다. 날카로운 가시들(커다란 골판들)처럼, 스테고사우루스는 전투적인 공룡입니다. 아무리 이 공룡이 전투적인 형태를 자랑한다고 해도, 날카로운 가시들(커다란 골판들)은 사냥하기 위한 무기가 아닙니다.
날카로운 가시들(커다란 골판들)은 육식동물을 물리치기 위한 무기입니다. 비록 스테고사우루스가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식물들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하기는 가능합니다. 이게 가능한 것처럼, 스테고사우루스와 폭력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비단 이 공룡만 아니라 코뿔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코뿔소가 육중하다고 해도, 아무리 이 동물이 날카로운 뿔을 자랑한다고 해도, 이 뿔은 사냥하기 위한 무기가 아닙니다. 비록 코뿔소가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식물들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하기는 가능합니다. 코뿔소(초식동물)와 폭력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스테고사우루스가 초식동물이기 때문에, 이 공룡과 폭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채식과 폭력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호랑이가 고기를 먹기 때문에, 이 야수가 다른 동물들을 죽이기 때문에, 육식과 폭력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와 폭력을 연결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육식과 폭력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육식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으음…, 적어도, 채식보다 육식과 자본주의는 어울립니다. 사과, 포도, 복숭아, 참외보다 자본주의와 돈까스는 어울립니다. 돈까스는 돼지를 죽입니다. 이건 폭력입니다. 현미, 보리, 옥수수보다 자본주의와 매운탕은 어울립니다.
매운탕은 우럭을 죽입니다. 이건 폭력입니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이기 때문에, 이 경제에서 많은 사람들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본주의가 구속하기 때문에, 사과, 포도, 복숭아, 참외보다 이 경제와 돈까스가 어울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전자보다 후자를 선호하는지 모릅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사과, 포도, 복숭아, 참외가 시시한 먹거리들이라고 인식한다면, 만약 이 사람들이 돈까스가 훨씬 나은 먹거리라고 느낀다면, 이유는 자본주의인지 모릅니다. 이 경제에서 지배적인 관념이 비롯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현미, 보리, 옥수수보다 매운탕이 훨씬 낫다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돈까스는 폭력(남성)입니다. 옥수수는 폭력(남성)이 아닙니다.]
돈까스, 매운탕은 폭력(남성)입니다. 복숭아, 옥수수는 폭력(남성)이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남성 경제, 폭력 경제이기 때문에, 이 경제에서 지배적인 관념이 비롯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복숭아, 옥수수보다 돈까스, 매운탕이 훨씬 낫다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아, 물론, 이건 과학적인 사실보다 문화적인 해석입니다. 이 해석은 그저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회학자들은 '자본주의-남성-전쟁-폭력-호랑이-돈까스'가 논리적인 분석이 아니라고 비판하는지 모릅니다. 비록 '자본주의-남성-전쟁-폭력-호랑이-돈까스'가 그저 문화적인 해석에 불과하다고 해도, 이 경제는 남성입니다.
분명히, 자본주의는 가부장 경제입니다. 사회화, 공공화보다 사유화, 개인화가 많은 것들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문화적인 해석보다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육아는 예외가 아닙니다. 아무리 이게 원초적인 노동이라고 해도, 사회화, 공공화보다 사유화, 개인화는 육아를 구속합니다. 자본주의 때문에, 육아는 여자의 개인적인 노동이 됩니다. 자본주의에서 여자는 가정에게 종속됩니다. 여자를 착취하기 위해, 이 경제에서 가부장 편견들은 지배적인 관념이 됩니다. 이 관념이 남성을 떠받들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가부장 경제입니다. 가부장 경제로서, 자본주의와 폭력(전쟁)은 연결됩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와 달리, 스페이스 오페라(서사 판타지)와 달리, 현실에서 여성보다 남성은 전쟁입니다. 다른 폭력들보다 전쟁이 가장 대규모 폭력이기 때문에, 남성은 폭력이 됩니다. 자본주의에서 가부장 편견들이 지배적인 관념이 되기 때문에, 이 관념이 남성을 떠받들기 때문에, 남성과 폭력이 연결되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폭력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비단 자본주의만 아니라 육식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호랑이가 고기를 먹기 때문에, 이 야수와 폭력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티라노사우루스조차 다르지 않습니다. 이게 그저 문화적인 해석에 불과한가요?
자본주의와 폭력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기 때문에, 육식과 폭력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육식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포도, 복숭아, 보리, 옥수수보다 돈까스, 매운탕을 선호하는지 모릅니다. 비록 '자본주의-남성-전쟁-폭력-호랑이-돈까스'가 그저 문화적인 해석에 불과하다고 해도, 이 해석은 논리적인 분석들, 과학적인 사실들을 연결합니다. 비록 어떤 사회학자들이 이 해석을 비판한다고 해도, 분명히, 자본주의는 여자를 억압합니다. 분명히, 전쟁은 남성입니다. 분명히, 육식과 폭력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 사진 <Grapes, Green …> 출처: Designer-Obst,
https://pixabay.com/photos/grapes-green-grapes-green-healthy-2902601/
※ 영화 <월드 오브 투모로우> 스틸샷 출처:
http://www.imdb.com/title/tt0346156/mediaindex/?ref_=tt_mv_sm
※ 사진 <Yellow and Red …> 출처: Markus Winkler,
http://www.pexels.com/photo/yellow-and-red-corn-on-the-crates-5609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