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왜 고생물학자는 공룡 동물원을 비판하지 못했나 본문
[고생물학자는 여기에 놀라기보다 이걸 비판해야 했을 겁니다. 아주 강하게.]
공룡 소설에서 누가 주인공을 맡아야 할까요. SF 작가가 공룡 소설을 쓴다면, 누구를 주인공으로 설정해야 할까요. 아마 해답은 공룡 학자, 그러니까 고생물학자일지 모릅니다. 사실 여러 SF 소설들은 고생물학자를 비롯해 동물학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소설 <잃어버린 세계>에서 챌린저 교수는 동물들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소설 <메그>에서 조나스 테일러는 잠수부이자 메그를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소설 <공룡과 춤을>에서 선사 시대로 돌아간 브랜든 새커리 역시 고생물학자이고 박물관 큐레이터입니다.
이들은 모두 주인공이고, 주인공답게 고생물을 열심히 설명합니다. 챌린저는 스테고사우루스를 비롯한 각종 동물들에 관해 열심히 뻐꾸기를 날립니다. <메그>에서 주인공 조나스 테일러는 원래 잠수부였으나 고생물학자가 되고, 역시 메그와 각종 해양 동물들에 관해 열심히 뻐꾸기를 날립니다. <공룡과 춤을>에 등장하는 브랜든 교수는 공룡을 매우 매우 사랑하는 공룡 애호가입니다. 공룡을 연구하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인 듯합니다.
챌린저와 브랜든은 공룡을 아주 아주 사랑하는 동물학자입니다. 조나스 테일러는 비록 동물들을 사랑하지 않으나, 동물 전문가입니다. (사실 조나스가 겪은 사고를 고려한다면, 왜 조나스가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 꽤나 불운한 인물입니다.) 이처럼 이들은 동물을 연구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른바 이빨을 제대로 깔 수 있습니다. 덕분에 고생물학 지식이 없는 독자들은 공룡에 관해 이해할 수 있죠.
소설 <쥬라기 공원>에서 앨런 그랜트 역시 비슷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실사 영화가 흥행했기 때문에 앨런 그랜트는 가상의 고생물학자로서 꽤나 유명해졌죠. 그랜트 역시 공룡을 매우 매우 사랑하는 양반이고, 그래서 열심히 공룡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랜트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분명히 그랜트는 공룡 소설 속의 전형적인 주인공이나, 작가는 앨런 그랜트보다 아이언 말콤을 더 편애하는 듯합니다. 아이언 말콤은 고생물학자도 아니고 동물학자도 아닙니다. 수학자죠. 방정식을 풀고 혼돈 이론을 다룹니다. 아마 쥬라기 공원에 방문하기 전까지 말콤은 공룡들에 관해 제대로 몰랐을 겁니다. 고생물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했겠죠.
이 소설이 뭔가 공룡에 관해 이야기할 때, 소설은 아이언 말콤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앨런 그랜트를 이용합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설명들은 말콤에게서 나옵니다. 소설은 쥬라기 공원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아이언 말콤은 그런 주제를 대변합니다. 앨런 그랜트가 공원에 관해 판단하지 못했을 때, 아이언 말콤은 이미 쥬라기 공원이 잘못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심지어 말콤은 초기부터 공원을 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말콤은 공원을 운영하는 존 해먼드와 강렬하게 대립합니다. 아예 공원을 폐쇄해야 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앨런 그랜트는 이런 선견지명이 없었습니다. 말콤이 열심히 해먼드와 싸웠을 때, 그랜트는 아무 말하지 않았습니다. 명망이 높은 고생물학자임에도 인공적인 공룡 동물원에 관해 판단을 유보했어요. 오히려 공룡을 잘 모르는 아이언 말콤이 그랜트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공원을 폐쇄하라고 주장했죠. 게다가 속편 <잃어버린 세계>에서 그랜트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역시 말콤이 등장하고, 주도적으로 소설의 주제를 전파합니다.
왜 그랜트는 말콤에게 밀릴까요. 왜 그랜트는 뒤늦게 공원에 반대할까요. 아마 작가는 그랜트가 모험을 위한 인물로만 적합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사실 <쥬라기 공원>과 <잃어버린 세계>에서 말콤은 액션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앨런 그랜트나 사라 하딩이 훨씬 더 많은 액션을 차지해요. 작가는 뭔가 과학적인 이론으로 공룡 동물원이 위험하다고 말하기 원했고, 그래서 고생물학자가 아니라 수학자를 내보낸 것 같습니다. 수학자는 혼돈 이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수학을 이용해 보다 순수하게 체계를 분석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고생물학자와 수학적 혼돈 이론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건 <쥬라기 공원>이 드러내는 한계죠. 동물원의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내기 위해 반드시 수학에 기댈 필요는 없을 겁니다. 생태주의 철학을 조금 배워도 얼마든지 동물원이 부정적인지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마이클 크라이튼은 그런 생태주의를 알지 못했겠죠. 그래서 아마 나중에 <공포의 제국>에서 그렇게 지구 온난화를 찬양했을지 모르겠군요. 지식인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