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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토피아 뉴스>는 그저 단순한 '공상 과학 소설'인가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에코토피아 뉴스>는 그저 단순한 '공상 과학 소설'인가

OneTiger 2017. 5. 18. 20:00

종종 <유리알 유희> 같은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사상 철학 서적이라는 푸념을 받습니다. 사실 이런 소설들은 극적인 전개나 줄거리보다 특정한 사상을 길게 풀어놓는 것에 주목하죠. <백경> 같은 소설도 겉보기에는 해양 모험물이지만, 그 알맹이는 사상 철학 서적에 가깝습니다. 주인공 선원이 고래 머리를 보며 칸트를 운운하는 장면은 거의 뭐…. 따지고 보면, 윌리엄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우리말 번역자 박홍규 교수는 아예 사회주의 철학 설명까지 달아놨습니다.


사실 박홍규 교수가 이 소설을 번역한 이유는 그저 소설을 출판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을 널리 퍼뜨리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윌리엄 모리스 본인도 딱히 소설을 쓰고 싶다거나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을 겁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소설 <뒤 돌아보며>의 사회주의 군대화를 보고 분노했기 때문에 <에코토피아 뉴스>를 썼다고 하죠. 그래서 모리스는 소설을 썼을 뿐입니다. <뒤 돌아보며>의 사상에 반박하고 자신의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모리스는 조지 버나드 쇼처럼 문학가가 되기를 꿈꾸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박홍규 교수는 머리말에서 <에코토피아 뉴스>의 이런 특성을 짧게 설명합니다. <에코토피아 뉴스>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고 소설의 정체성보다 사상 철학 서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박홍규 교수는 '이 소설은 유토피아 로망스이고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더군다나 공상 과학 소설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에코토피아 뉴스>는 유토피아 로망스입니다. 아니, 그런데 잠깐. 박홍규 교수는 이 소설이 SF로 불리는 공상 과학 소설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에코토피아 뉴스>는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니다…. 네, 그렇게 볼 수 있겠죠.


만약 SF 소설이 외계인과 우주선과 광선총을 뜻한다면, <에코토피아 뉴스>는 절대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SF 소설의 범주를 외계인과 우주선과 광선총으로만 한정한다면, 그건 너무 평면적이고 단순한 분류일 겁니다. 흔히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을 우주 전쟁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스타 워즈>나 <파이어플라이> 같은 것만 생각하죠.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2001 우주 대장정>을 생각하는 정도에서 멈춥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의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의 소재는 그저 우주선이나 광선총이나 외계인이나 돌연변이나 로봇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은 인류가 어떤 미래를 실현할지 궁금해했고, 그 궁금증을 소설 속에 담았습니다. 인류가 외계인을 만나고 그들의 사회를 탐구하는 소재는 이미 19세기 이전에도 등장했습니다. 그 소설 속의 외계인은 딱히 천문학적이거나 우주 생물학적이지 않습니다. 어차피 철학자들은 우주 생물학보다 사회학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런 소설들은 외계인이나 미래 체계를 설명했고, 따라서 그런 소설들은 사이언스 픽션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겁니다. 뭐, 어차피 <스타 워즈>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도 우주 생물학에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관객들의 볼거리를 위해 우주 괴수 따위를 내보낼 뿐이죠. 저는 하드 SF 소설이야말로 SF 장르의 정수라고 생각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이 반드시 과학적 고증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그냥 상상 과학적으로 보이면 그만입니다. 고전 소설들 속의 외계인이 그냥 인간과 똑같이 보인다고 해도 그것 역시 상상 과학적이죠.



사이언스 픽션의 하위 장르에는 사변 소설이나 사회학 소설이 있습니다. 사실 이미 언급한 <유리알 유희> 또한 사변 소설에 속하고, 따라서 <유리알 유희>도 SF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헤르만 헤세는 자신이 SF 소설을 쓴다는 생각 따위를 하지도 않았겠죠. 하지만 헤세가 뭐라고 생각했든 헤세는 SF 소설(사변 소설)을 썼어요. 윌리엄 모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가 <빼앗긴 자들>이나 <안드로메다 성운>, <녹색 화성> 같은 소설을 SF 소설이라고 분류한다면, <유리알 유희>나 <에코토피아 뉴스>도 얼마든지 SF 소설이 될 수 있어요.


얼마 전에 저는 게임 <비욘드 어스>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미래 문명의 지도자가 되어 이상 사회를 실현합니다. 이게 <에코토피아 뉴스> 같은 소설의 골격과 무엇이 다르겠어요. 하지만 박홍규 교수는 <에코토피아 뉴스>가 공상 과학 따위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음, 이건 번역자의 실수겠지만, 저는 이런 실수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SF 문화는 상당히 척박합니다. 이런 척박한 SF 문화 속에서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라든가 사이언스 픽션의 비좁은 범주는 얼마든지 벌어질법한 실수입니다. 저는 코맥 매카시의 <로드>가 SF 소설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아니, <로드>가 SF 소설이 아니라면, 도대체 <로드> 이전의 그 수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들은 뭐가 되는 걸까요.



<에코토피아 뉴스>는 어엿한 SF 소설입니다. 적어도 <에코토피아 뉴스>는 다른 SF 유토피아 소설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런 유토피아 로망스는 사이언스 픽션의 울타리에서 나가지 않거나 그리 멀리 가지 않습니다. 검마 판타지가 스페이스 오페라의 친절한 이웃인 것처럼 유토피아 로망스는 사이언스 픽션의 오랜 선배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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