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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Q>와 빌레라는 파생적인 폭력 본문

사회주의/형이상학 비판

<에반게리온 Q>와 빌레라는 파생적인 폭력

OneTiger 2018. 10. 10. 17:20

여러 측면들에서 <에반게리온 Q>는 다른 <에반게리온> 시리즈와 다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서드 임팩트일 겁니다. <에반게리온 Q>는 서드 임팩트가 일어난 이후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는지 보여줍니다. 서드 임팩트라는 전세계적인 사건 때문에 <에반게리온 Q>에는 더 이상 일상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인공 이카리 신지와 친구들이 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일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계는 무너졌고, 무너진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갈등하고 싸웁니다. 서드 임팩트 때문에 네르프는 분열한 것 같고, 수많은 인원들은 빌레라는 저항 조직을 따로 창설합니다.


지휘관은 카츠라기 미사토이고, 미사토는 익숙한 네르프 인원들과 함께 네르프에게 대항합니다. 이카리 신지는 빌레가 네르프라고 오해했으나, 미사토는 빌레가 에반게리온들을 파괴하는 조직이고 네르프를 무너뜨리기 원한다고 설명하죠. 이전 시리즈에서 서로 갈등한다고 해도, 이카리 겐도, 카츠라기 미사토, 이카리 신지, 아스카 같은 등장인물들은 모두 네르프 소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카츠라기 미사토를 비롯해 여러 등장인물들은 빌레 소속이고, 적극적으로 네르프에 저항합니다.



언뜻 빌레는 거대 악당 무리에 저항하는 선한 세력 같습니다. 적어도 카츠라기 미사토는 이카리 겐도보다 밝고 투명한 등장인물이고, 게다가 전작 <에반게리온: 서>와 <에반게리온: 파>에서 미사토는 신지를 격려했고 응원했습니다. TV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달리, 미사토는 한층 어른스럽고 신지에게 희망찬 미래를 당부합니다. 문제는 빌레 지휘관으로서 미사토가 꽤나 냉정하게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신지는 영문을 알지 못했으나, 미사토는 에바 초호기에 탑승하지 말라고 강요하고 일방적으로 신지를 몰아붙입니다. 리츠코와 아스카와 마야 같은 등장인물들 역시 신지에게 설명하지 않고, 신지는 자신이 고립되었다고 느낍니다.


심지어 빌레는 신지의 목숨을 위협합니다. <에반게리온 Q>가 자세한 내막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왜 미사토를 비롯해 빌레가 신지를 협박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짜고짜 신지를 협박하는 미사토는 별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네르프는 악당 조직이고, 빌레는 네르프를 물리치는 저항 조직일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많은 관객들은 긍정적으로 빌레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어떤 관객들은 네르프처럼 빌레가 극단적인 조직이라고 비판합니다. 빌레 역시 절대 선한 조직이 아니고,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전 시리즈까지 카츠라기 미사토는 극단적인 등장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신극장판에서 미사토는 훨씬 어른스러워졌고, 신지를 가장 힘차게 응원했어요. 왜 이렇게 미사토가 바뀌었을까요? 왜 빌레가 극단적으로 신지를 협박할까요? <에반게리온 Q>가 많은 정보들을 감추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저 추측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추측은 어느 정도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TV 시리즈와 신극장판에서 네르프는 계속 숱한 음모들을 꾸밉니다. 때때로 그런 음모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위기에 처합니다. 에반게리온들을 보유했고 사도들을 처치할 수 있기 때문에 네르프는 국제 정세를 뒤흔들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서드 임팩트 이후, 네르프는 훨씬 거대하고 음흉하고 막강한 조직이 되었을지 모르죠. 관객들은 네르프가 워낙 막강한 조직이기 때문에 빌레가 극단적인 방법을 감수한다고 추측합니다. 거대하고 음흉한 조직에 맞서기 위해 빌레 역시 극단적인 방법들을 동원하는 것 같습니다. 포스 임팩트를 막을 수 있다면, 카츠라기 미사토를 비롯해 빌레는 훨씬 끔찍한 짓거리를 저지를지 모릅니다. 아직 빌레는 위험한 선을 넘지 않았으나, 언제 그들이 선을 넘어갈지 아무도 알지 못하죠.



그래서 어떤 관객들은 네르프와 빌레가 똑같이 악당 조직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네르프와 빌레가 절대 수평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네르프는 서드 임팩트의 가해자이고, 빌레는 피해자일지 모릅니다. <에반게리온 Q>에서 정말 네르프는 포스 임팩트를 일으키기 원하고, 빌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걸 막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네르프와 빌레에게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관계를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폭력을 저질렀을 때, 우리가 양쪽이 똑같다고 비판해야 할까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가해자는 선천적인 폭력을 저질렀고, 피해자는 후천적인 폭력을 저질렀죠.


흑인 노예가 백인 주인을 처참하게 찢어죽였다면, 우리가 흑인 노예를 비판해야 할까요? 물론 흑인 노예는 폭력을 저질렀고, 그건 비판을 받아야 할 겁니다. 하지만 백인 주인이 흑인 노예를 착취하지 않았다면, 흑인 노예는 폭력을 저지르지 않았겠죠. 자유민이 되기 위해, 적어도 착취를 끝내기 위해 흑인 노예는 백인 주인을 찢어죽여야 했습니다. 따라서 흑인 노예는 후천적인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선천적인 폭력과 등치시키지 못합니다. 폭력에는 순서와 규모가 있습니다. 고고한 허상 속에서 흑인 노예와 백인 주인은 존재하지 않아요.



만약 우리가 흑인 노예와 백인 주인을 똑같이 비판한다면, 그건 형이상학적인 주장이 되겠죠. 폭력을 성찰할 때, 우리는 구조와 관계와 순서와 규모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저항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구조와 관계와 순서와 규모를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가해자처럼 저항자 역시 똑같이 폭력을 저지른 범죄자가 되겠죠. 저항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못한다면, 그건 약자보다 강자에게 유리하겠죠. 우리가 오직 폭력만을 비판한다면, 강자는 그걸 이용해 자신과 약자를 똑같이 등치할 겁니다. 그때 강자와 약자라는 관계는 사라지고, 모든 것들은 순수하게 수평적인 관계를 맺겠죠.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를 똑같이 나쁘다고 비난합니다. 진보 지식인들이라는 사람들조차 고고하고 초역사적이고 초문명적인 기반 위에서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가 똑같이 폭력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에는 분명히 수직적인 계급과 강자와 약자가 존재합니다. 심지어 진보 지식인들조차 절대 그걸 인정하지 않아요. 그건 강자에게 유리하죠. 그래서 진보 지식인들은 강자들에게 이바지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온갖 폭력들과 수탈들과 오염들은 사라지지 않죠. 진보 지식인이라는 인간들이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강자를 옹호하기 때문에.



인류 문명을 제대로 바라보고 싶다면, 이런 초역사적이고 초문명적인 허상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할 겁니다. <에반게리온 Q>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정보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뭐라고 확신하기는 힘드나, 신극장판 4편이 새로운 정보를 내놓기 전까지, 관객들은 이런 시선으로 네르프와 빌레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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