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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자연 대 외계인 침략자', 고유한 특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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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자연 대 외계인 침략자', 고유한 특성

OneTiger 2023. 1. 5. 12:15

[모스라, 어머니 자연은 원초적인 신앙일 수 있습니다.]



신앙은 아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여전히 많은 순례자들이 메카를 방문하는 것처럼, 신앙은 아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신앙이 아주 유구하기 때문에, 인류 문화에서 종교는 아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인류 문화에서 종교가 아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종교 없이, 인류 문화를 논의하기는 너무 어려울 겁니다. 아니, 이건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종교 없이, 어떻게 문학, 역사, 철학을 논의할 수 있나요? 문학, 역사, 철학은 종교와 떨어지지 못합니다. 아무리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첨단 기술들을 자랑한다고 해도, 스페이스 오페라들 역시 신앙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문학, 역사, 철학과 종교가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심지어 스페이스 오페라들조차 신앙을 빠뜨리지 않는 것처럼, 신앙은 인간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왜 인간이 초월적인 것을 숭배하나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신앙이 아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나요? 이 물음은 여러 대답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프랜시스 콘퍼드가 지적하는 것처럼, 여러 대답들은 불안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호랑이는 강력합니다. 호랑이처럼, 인간이 강력한가요? 인간이 호랑이를 물리칠 수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호랑이보다 인간은 약합니다.



물수리는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인간이 날아다닐 수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인간은 날아다니지 못합니다. 바닷속에서 상어는 호흡할 수 있습니다. 상어에게는 여러 지느러미들이 있습니다. 바닷속에서 인간이 호흡할 수 있나요? 인간에게 여러 지느러미들이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비단 호랑이, 물수리, 상어만 아니라 다른 많은 동물들 역시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고 보여줍니다. 비단 야생 동물들만 아니라 다른 자연 현상들 역시 인간이 약하다고 증명합니다. 지진, 화산, 태풍, 해일은 압도적입니다. 이 압도적인 현상들에게 인간은 그저 약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아니,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인간은 불안하다고 느낍니다. 만약 어떤 무서운 것이 인간을 공격한다면, 인간은 이 무서운 것을 막지 못할 겁니다.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인간은 이 무서운 것을 물리치지 못할 겁니다. 인간이 이것을 물리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완벽한 것에게 의지하기 원합니다. 적어도 인간은 초월적인 것에게 의지하기 원합니다. 인간이 초월적인 것에게 의지하기 원하기 때문에, 인간은 초월적인 것을 숭배합니다. 이건 신앙입니다. 무서운 것을 물리치기 위해 인간은 초월적인 것을 믿습니다. 초월적인 것은 무서운 것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불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공포를 물리치기 위해 신앙은 나타났습니다. 신앙은 공포와 싸우고 인간을 보호합니다. 신앙이 공포와 싸우기 때문에, 신앙은 아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이건 언제나 모든 신앙이 공포와 싸운다는 뜻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공포를 물리치기 위해 신앙이 나타나나요? 신앙에게 이 이유가 필연인가요? 오직 이 필연적인 이유만 신앙을 유발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어떤 신앙들이 공포를 물리친다고 해도, 이건 전부가 아닐 겁니다. 신앙은 다른 많은 원인들에게 기반할 겁니다. 성직자들, 신화 전문가들, 인류학자들은 다른 원인들을 설명할 겁니다.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카를 마르크스는 주장했습니다. "종교적인 비참함은 불행한 현실을 표현한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탄식, 무정한 세계의 마음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시장 경제는 빈부 격차를 유발합니다. 시장 경제가 민중들을 착취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부유합니다. 필연적으로 시장 경제는 착취에게 기생합니다. 착취 없이, 시장 경제는 무너질 겁니다. 시장 경제가 착취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기 때문에, 그들은 현실을 넘어서고 천국을 원합니다. 이 사례처럼, 공포와 싸우기보다 불행을 넘어서기 위해 신앙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이 이유(신앙은 공포를 물리친다)가 필연이 아니라고 해도, 비록 이 이유가 전부가 아니라고 해도, 분명히 신앙은 공포를 물리칩니다. 신앙에게는 공포를 물리치기 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들은 악마들을 이야기합니다. 초월적인 것은 악마를 물리칩니다.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인간은 악마를 물리치지 못합니다. 만약 인간이 초월적인 것을 숭배한다면, 초월적인 것이 악마를 물리치기 때문에, 악마는 인간을 괴롭히지 못할 겁니다. 신앙이 악마를 물리치기 때문에, 많은 중세 판타지들은 신실한 성기사가 악마들을 물리친다고 묘사합니다. 신앙은 인간을 보호합니다.

 

성기사가 악마들을 물리치고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처럼, 신앙은 공포를 물리치고 인간을 보호합니다. 비록 더 이상 근대 인간들이 신과 악마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신앙이 아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에, 여전히 중세 판타지들은 성기사가 악마들을 물리치고 약자들을 보호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모스라 대 킹기도라' 역시 이 구도에 속하는지 모릅니다.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 근대 과학은 진보했습니다. 근대 과학이 진보했기 때문에, 판타지는 근대 과학을 수식하고 사이언스 판타지가 될 수 있습니다. '모스라 대 킹기도라', 이 사이언스 판타지 구도에서 킹기도라는 악마, 공포입니다.



[킹기도라는 외계인 침략자입니다. 킹기도라는 훨씬 낯섭니다.]



중세 판타지에서 악마가 공포인 것처럼, 킹기도라는 악마, 공포입니다. 거대 괴수 덕후들은 킹기도라와 악마, 공포가 어울린다고 인정할 겁니다. 하지만 킹기도라가 사이언스 판타지에 속하기 때문에, 킹기도라는 중세 판타지 악마와 다릅니다. 킹기도라는 외계인 침략자입니다. 1898년, 허버트 웰즈가 <우주 전쟁>을 쓴 이후, 외계인 침략자는 주된 주제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이언스 픽션들, 사이언스 판타지들,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외계인 침략자들을 이야기합니다. 단편 소설부터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소규모 분대 전투부터 대규모 전쟁까지, 외계인 침략자, 이 소재는 아주 커다란 인기를 누립니다.

 

문자 그대로, 우주에서 외계인 침략자는 비롯합니다. 화성부터 외계 항성계까지, 우주에서 외계인 침략자는 비롯합니다. 우주는 미지(未知)입니다. 우주가 지구 외부이기 때문에, 우주가 너무 광대하기 때문에, 우주는 미지입니다. 미지는 공포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두려워합니다. 우주가 지구 외부이기 때문에, 우주가 광대하기 때문에, 우주를 이해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아무리 21세기 초반이 첨단 기술 시대라고 해도, 아직 유인 우주선은 이웃 화성에 닿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21세기 초반이 첨단 기술 시대라고 해도, 인류 문명은 그저 탐사 로봇들만 날렸을 뿐입니다.



아무리 21세기 초반이 첨단 기술 시대라고 해도, 원시 부족이 오직 지구에만 속하는 것처럼, 여전히 인류 문명은 오직 지구에만 속합니다. 아직 인류 문명은 우주에 닿지 못합니다. 아직 인류 문명이 우주에 닿지 못하기 때문에, 우주는 미지입니다. 우주가 미지이고, 미지가 공포이기 때문에, 우주는 공포입니다. 우주가 공포이기 때문에, 만약 우주에서 외계인 침략자가 비롯한다면, 다른 침략자들보다 이 외계인 침략자는 훨씬 무서울 겁니다. (특히, 만약 머나먼 우주에서 외계인 침략자가 비롯한다면, 이 외계인 침략자는 훨씬 무서울 겁니다.) 그래서 외계인 침략자들은 커다란 인기를 누리는지 모릅니다.

 

이건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이 외계인 침략자를 가장 무서운 침략자라고 느낀다는 뜻이 아닙니다. 공포는 객관적인 사실보다 주관적인 감성입니다. 주관적인 감성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호랑이는 생명체이다. 생명체는 진화한다." 이 설명은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이 객관적인 사실은 고정적입니다. 아무도 이 사실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부정한다면, 어쩌면 이 사람들은 사기꾼들일 수 있습니다. "호랑이는 너무 무섭다. 상어보다 호랑이는 훨씬 무섭다." 이 주장은 주관적인 감성입니다. 이 주관적인 감성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감성을 부정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호랑이보다 상어가 훨씬 무섭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무서운 호랑이처럼, 무서운 외계인 침략자는 주관적인 감성입니다. 호랑이보다 상어가 훨씬 무서울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외계인 침략자보다 다른 침략자들이 훨씬 무섭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무서운 외계인 침략자가 주관적인 감성이라고 해도, 분명히 우주는 미지입니다. 원시 부족이 우주에 닿지 못했던 것처럼, 아직 21세기 초반 인류는 우주에 닿지 못합니다. (특히, 21세기 초반 인류는 머나먼 우주에 닿지 못합니다.) 광대한 우주가 지구 외부이기 때문에, 외계인 침략자에게는 가장 무서운 침략자가 되기 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외계인 침략자에게 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단편 소설부터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소규모 분대 전투부터 대규모 전쟁까지, 외계인 침략자는 아주 커다란 인기를 누리는지 모릅니다. <인디펜던스 데이>, 이 SF 영화는 좋은 사례일 겁니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전형적인 외계인 침략자들을 보여줍니다. (머나먼) 우주에서 이 침략자들은 비롯했습니다. 우주에서 이 침략자들이 비롯했기 때문에, 지구 인류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지구 인류가 그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훨씬 무서울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훨씬 낯선' 침략자들입니다. 외계인 침략자에게는 '낯선 침략자'가 되기 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외계인 침략자들이 거대 우주선들, 우주 전투기들을 동원한다고 묘사합니다. 다른 많은 사이언스 픽션들 역시 외계인 침략자들이 놀라운 기술들을 동원한다고 묘사합니다. 이 외계인 침략자들과 달리, 킹기도라는 거대 괴수입니다. (특히, 킹기도라는 용(龍), 드래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킹기도라를 외계인 침략자보다 거대 괴수라고 분류할 수 있습니다. 외계인 침략자보다 킹기도라와 거대 괴수는 가까울 수 있습니다. 킹기도라가 거대 괴수이기 때문에,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많은 외계인 침략자들과 킹기도라는 다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주, 머나먼 미지에서 킹기도라는 비롯했습니다.

 

킹기도라, 이 외계인 침략자는 인류 문명을 공격합니다. 킹기도라는 훨씬 무서운 침략자입니다. 적어도 킹기도라는 '훨씬 낯선' 침략자입니다. 킹기도라가 훨씬 무섭기 때문에, (킹기도라가 훨씬 낯설기 때문에) 인류 문명은 킹기도라를 물리치지 못합니다. 비록 인류 문명이 킹기도라를 물리치지 못한다고 해도, 초월적인 것은 킹기도라를 물리칠 겁니다. 인류보다 고지라는 훨씬 초월적입니다. 고지라가 훨씬 초월적이기 때문에, 고지라는 신격 위상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고지라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고지라는 인류를 보호하기 원하지 않습니다.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고지라는 킹기도라와 싸웁니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훨씬 낯선' 침략자들을 보여줍니다.]



고지라처럼, 모스라와 킹기도라는 대립합니다. 비록 인류 문명이 킹기도라를 물리치지 못한다고 해도, 초월적인 것은 킹기도라를 물리칠 겁니다. 인류보다 모스라는 훨씬 초월적입니다. 모스라가 훨씬 초월적이기 때문에, 모스라는 신격 위상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고지라와 달리, 많은 사람들은 모스라를 숭배합니다. 모스라는 인류를 보호하기 원합니다. 특히, 인펀트 원주민들은 모스라를 숭배합니다. 모스라는 인펀트 원주민들을 보호하기 원합니다. 고지라와 달리, 모스라는 신앙일 수 있습니다. 모스라가 신앙이고 킹기도라가 공포이기 때문에, '모스라 대 킹기도라'는 '신앙 대 공포', 이 구도를 재현할 수 있습니다.

 

중세 판타지에서 성기사가 지옥 악마들을 물리칠 때, 중세 판타지는 신앙이 공포를 물리친다고 이야기합니다. 성기사와 지옥 악마들처럼, 모스라와 킹기도라가 싸울 때, 이건 신앙과 공포가 싸운다고 구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킹기도라는 사이언스 판타지입니다. (어떤 SF 독자들은 사이언스 픽션과 사이언스 판타지를 다르다고 구분할 겁니다.) 지옥 악마들과 달리, 우주, 머나먼 미지에서 킹기도라는 비롯했습니다. 지옥 악마들보다 킹기도라는 훨씬 무서운 침략자입니다. 적어도 악마들보다 킹기도라는 훨씬 낯선 침략자입니다. 성기사와 달리, 모스라, 이 신앙은 훨씬 무서운 침략자, 훨씬 낯선 침략자와 싸웁니다.



게다가, 모스라는 단순한 신앙이 아닙니다. 모스라는 어머니 자연, 대지 모신, 자연의 여신입니다. 마리야 김부타스는 "태초에 여신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태초와 여신이 이어지는 것처럼, 여신은 가장 원초적입니다. <여신의 언어>는 여신이 가장 원초적이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여신이 가장 원초적이기 때문에, 이건 모성 사회가 주류였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원시 사회는 모성 사회였습니다. 적어도 원시 사회는 모성 사회에 가까웠습니다. 가부장 사회는 인류 사회 본질이 아닙니다. 인류 사회는 모성 사회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진 시노다 볼린 역시 <여신의 언어>에게 동의했습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진 시노다 볼린과 달리, 미셸 로잘도, 루이즈 램피어는 회의적이었습니다. 미셸 로잘도, 루이즈 램피어처럼, 다른 역사학자들, 인류학자들, 고고학자들, 신화 전문가들은 <여신의 언어>를 엉터리 사이비라고 비난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여신의 언어>와 <가족, 사유 재산, 국가의 기원>은 비슷합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원시 사회가 모성 사회, 공산주의 사회라고 주장했습니다. 원시 사회, 모성 사회, 공산주의 사회는 겹칩니다. 가부장 사회는 인류 사회 본질이 아닙니다. 이미 원시 인류가 모성 사회,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했기 때문에, 근대 인류는 모성 사회, 공산주의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역사학자들, 인류학자들, 고고학자들, 신화 전문가들은 <가족, 사유 재산, 국가의 기원>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원시 공산주의 모성 사회를 그저 황금 시대, 황당무계한 유토피아에 불과하다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여신의 언어>와 <가족, 사유 재산, 국가의 기원>은 비슷합니다. 비록 <여신의 언어>가 타당하지 않다고 해도, 분명히 어머니 자연, 대지 모신, 자연의 여신은 아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분명히 어머니 자연은 원초적인 신앙일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어머니 자연이 원초적인가요? 호랑이는 동물(생명체)입니다. 물수리는 동물입니다.

 

상어는 동물입니다. 호랑이, 물수리, 상어처럼, 인간은 동물입니다. 인간이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은 생명체입니다. 인간, 이 생명체는 영양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물수리는 물고기를 사냥합니다. 물수리처럼, 인간은 어떤 것을 먹고 영양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만약 인간이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살아가지 못할 겁니다. 물질대사(신진대사)는 가장 기본적인 생명 현상입니다. 그 어떤 예외 없이, 살아가기 위해 인간은 영양분을 섭취합니다. 인간이 영양분을 섭취하기 때문에, 라흐마준처럼, 인간에게는 먹거리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인간이 먹거리를 얻나요? 생태계는 먹거리들을 선사합니다.



자연이 먹거리를 선사하기 때문에, 인간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관계(자연-인간)는 엄마-아기와 비슷합니다. 자연이 먹거리를 선사하고 인간을 먹이는 것처럼, 엄마는 모유를 생산하고 아기를 먹입니다. 자연과 엄마는 비슷합니다. 자연과 엄마가 비슷하기 때문에, 어머니 자연, 대지 모신, 자연의 여신은 아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마리야 김부타스가 여신을 설명할 때, 마리야 김부타스는 오직 어머니 자연만 가리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연-여자가 물질대사를 강조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문화들은 자연과 여자를 연결합니다. 모스라 역시 어머니 자연입니다. 그래서 모스라는 원초적입니다.

 

모스라는 단순한 신앙이 아닙니다. 모스라는 원초적입니다. 중세 판타지 성기사가 원초적인가요? 중세 판타지에서 성기사가 원초적인 자연을 가리키나요? 그건 아닙니다. 많은 성기사들은 정의, 희망, 구원을 가리킵니다. 성기사와 원초적인 자연은 깊은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모스라가 어머니 자연인 것처럼, 중세 판타지는 어머니 자연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성기사들은 어머니 자연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기사가 신을 숭배한다고 해도, 성기사는 정의의 신, 희망의 신, 구원의 신을 숭배할 겁니다. 아무리 성기사와 모스라가 신앙을 가리킨다고 해도, 성기사보다 모스라는 원초적인 신앙입니다.

 

 

[모스라와 달리, 성기사는 원초(原初)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모스라는 원초적인 신앙입니다. 킹기도라는 훨씬 낯선 침략자입니다. '모스라 대 킹기도라'는 '원초적인 신앙이 훨씬 낯선 공포를 물리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모스라 대 킹기도라는 원초적인 감성, 훨씬 낯선 감성을 풍깁니다. 그래서 모스라 대 킹기도라는 고유한 특성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이언스 픽션들, 사이언스 판타지들, 스페이스 오페라들에서 외계인 침략자들은 커다란 인기를 누립니다. <우주 전쟁>부터 <인디펜던스 데이>까지, 많고 많은 사례들은 외계인 침략자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례들이 '자연의 여신이 훨씬 낯선 침략자를 물리친다'고 보여주나요?

 

이 사례들은 드물 겁니다. 이 사례들이 드물기 때문에, 모스라 대 킹기도라는 고유한 특성을 자랑합니다. 만약 자연의 여신이 외계인 침략자를 물리친다면, 이 싸움은 고유한 특성을 자랑할 겁니다. 이건 언제나 모든 자연의 여신이 긍정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에코 페미니즘은 가부장 편견들이 자연의 여신을 왜곡한다고 경계할 겁니다. 2022년 9월 19일 게시글(링크)이 설명했던 것처럼, 가부장 제도에서 어머니는 위험한 상징인지 모릅니다. 시장 경제가 가부장적이기 때문에, 시장 경제와 어머니 자연은 대립합니다. 만약 인류 사회가 모성 사회를 원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사라져야 합니다.



시장 경제는 오직 '어머니' 자연만 왜곡하지 않습니다. 시장 경제는 어머니 '자연' 역시 파괴합니다. 시장 경제는 기후 변화를 유발합니다. 기후 변화는 생물 다양성을 파괴합니다. 아니, 아무리 우리가 기후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생물 다양성 감소는 위험한 수준입니다. 세계 시장 경제는 생물 다양성을 파괴합니다. 세계 시장 경제가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기 때문에, 코비드-19는 세계 재앙이 되었습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시장 경제를 분쇄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세계적인 전염병은 많고 많은 사람들을 비참한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생태학 참사입니다.

 

특히, 기후 변화는 가장 위험한 생태학 참사입니다. 어머니 자연은 먹거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인간에게 먹거리는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기후 변화는 살인적인 폭염을 유발합니다. 살인적인 폭염이 발생하기 때문에, 농장 곡물들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농장 곡물들이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심각한 위기에 빠집니다. 이건 세계 시장 경제가 많은 사람들을 심각한 위기에 빠뜨린다는 뜻입니다. 세계 시장 경제에게는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훨씬 많은 이윤들을 축적하기 위해 시장 경제는 기후 책임을 외면합니다. 자유주의는 파렴치합니다.



※ Evolution of Heisei Mothra in Roblox Games 출처: Mrs Senem,
https://www.youtube.com/watch?v=TQG_pXJV_7Y

※ 게임 <고지라> 스크린샷 출처: SuperGodzillaGaming,
https://www.youtube.com/watch?v=WmOiZGXyhjQ

※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스틸샷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B1E7h3SeMDk

※ 사진 <… Pizza on Plate> 출처: Pixabay,
https://www.pexels.com/photo/cheese-close-up-cooking-crispy-26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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