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아퀼론 항공모함의 징그러운 몸뚱이 본문
[생체 공중 항공모함 아퀼론. 일반적으로 거대하고 부푼 살덩이는 별로 로망스럽지 않겠죠.]
예전에 저는 사람들이 거대 생체 병기를 혐오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거대 생체 병기는 혐오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례로 소설 <레비아탄>의 부유 고래 비행선을 언급하곤 했습니다. 레비아탄 비행선은 겉보기에 딱히 징그럽지 않습니다. 혐오스러울 구석이 없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레비아탄 표면의 파이프나 엔진 등을 징그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레비아탄 비행선은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생겼죠. 레비아탄 비행선은 잘 생긴 축에 속합니다.
반면, 레비아탄과 함께 거대 생체 병기로 등장하는 베헤모스는 그리 잘 생겼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소설 속의 어떤 등장인물은 베헤모스가 심해의 기괴한 이미지를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일반적인 관점으로 봐도 베헤모스는 그리 멋지거나 잘 생겼다고 말하기 어려울 겁니다. 뭐, 괴물 종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베헤모스 같은 괴수에게 열광하겠죠. 하지만 만인에게 사랑을 받을 외모는 아니에요. 어쩌면 작가 스콧 웨스터펠드는 일부러 베헤모스를 기괴하게 설정했을 수 있습니다. 거대 전함을 침몰시키는 심해의 야수…. 이런 야수는 뭔가 기괴하거나 으스스하게 보여야 할 겁니다. 그래서 웨스터펠드는 베헤모스를 기괴하게 묘사했을 수 있어요.
그래도 레비아탄이나 베헤모스는 '동물의 형상'을 유지합니다. 레비아탄은 거대한 향유 고래처럼 생겼고, 베헤모스는 (흉측하지만) 심해어와 두족류의 짬뽕처럼 생겼습니다. 하지만 거대 생체 병기 중에는 이런 '동물의 형상'이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저 살덩이가 둥실둥실 떠다니거나 헤엄쳐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비욘드 어스>의 아퀼론 공중 항공모함은 좋은 사례입니다. 레비아탄 비행선처럼 아퀼론 공중 항공모함은 살아있는 함선입니다. 하지만 아퀼론은 특정한 생김새가 없습니다.
아퀼론은 그저…. 거대하고 부풀은 살덩이, 종양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거대한 종양 덩어리 아래에 함교와 엔진과 추진기가 달렸습니다. 과학자들은 마치 종양을 급속도로 키우는 것처럼 부유하는 살덩이를 키웠습니다. 이 살덩이는 광합성이나 열반응으로 엄청난 동력을 생산할 수 있고, 기술자들은 이 살덩이에 각종 기기를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아퀼론 항공모함이 탄생했죠. 이 기괴한 항공모함은 분명히 생체 병기지만, 심지어 과학자들마저 이걸 생명체로 불러야 하는지 헛갈립니다. 과학자들은 나름대로 이 생명체를 애정으로 키웠다고 하지만, 솔직히 그리 정감이 가는 모양새는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생명이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과연 사람들이 정말 생명 현상을 그렇게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할지 의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기괴한 생물들이 가득합니다. 굳이 SF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기괴한 생물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장 우리 몸뚱이만 살펴봐도 그런 생물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마 선충이나 요충에게서 생물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솔직히 동물학자들도 진드기 따위에게 별로 애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혐오할 겁니다. 과학 연구를 위해 기생충을 일부러 삼키는 학자들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 학자들의 행동이 얼마나 공감을 얻겠어요.
기생충 이외에도 온갖 점액, 피, 기름, 근육, 세포, 미생물 등은 사람들에게 그리 공감을 얻지 못할 겁니다. 텔레비전 속의 아이돌 가수들은 예쁘거나 멋지게 보이지만, 그들의 내부 장기는 뭐 그리 예쁘거나 멋지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생명은 싱그러운 녹음이나 화려한 산호초만이 아닙니다. 괴물 같은 씬벵이나 초롱아귀도 분명히 생명 현상이죠. 하지만 거대 생체 병기들은 개조된 생명체이기 때문에 점액, 피, 종양, 장기 등이 두드러지게 보일 수 있습니다. 어떤 생체 병기들은 자연의 기괴한 이미지를 본뜰 수 있습니다.
베헤모스나 아퀼론은 생체 병기의 기괴한 이미지를 반영합니다. 괴물 같은 동물이나 고름과 종양을 반영합니다. 베헤모스나 아퀼론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를 더 언급할 수 있습니다. 렉스 우주선은 이런 징그러운 생체 병기의 대표적인 사례일 듯합니다. 우리 자신이 생명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생명체에게 거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피해를 끼칠 것처럼 생긴 동물과 병적으로 보이는 생명체에게 강렬한 혐오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선충 같은 기생충에게 혐오를 느끼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겨우살이 같은 기생 식물에게 혐오를 느끼는 사람들은 비교적 적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기계에게 그런 징그러움이나 혐오를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기계도 얼마든지 징그럽게 보일 수 있으나, 기계는 자연적이지 않습니다. 기계의 원리와 작동법은 생명체와 다릅니다. 기계는 본질적으로 생명체와 다르고, 그래서 우리는 그런 기계를 징그럽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창작가들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멋지고 웅장한 생체 병기를 설정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창작가들도 뭔가 생체적인 특징을 부각하기 원하고, 그래서 기괴한 생체 병기를 주로 설정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