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아르카디가 정말 인공 중력을 사랑했는가 본문
소설 <붉은 화성>에서 개척 과학자들은 화성에 개척 도시를 짓습니다. 그들은 성공적으로 개척 도시를 세우고, 나중에 수많은 지구인들은 화성으로 이주합니다. 하지만 개척 과학자들이 화성에 도착했을 때, 화성은 불모지였습니다. 황량한 불모지에서 그들은 모든 것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임시 주거지를 세우고, 농장을 만들고, 주변을 탐사하고, 부상자를 치료하고, 행성 기후를 바꾸기 위해 개척 과학자들은 눈코뜰새 없이 바빴습니다. 그들 중에서 나데즈다 프란차인은 가장 바빴습니다. 나데즈다가 중장비들을 다룰 수 있었고 기계 공학에 능숙했기 때문입니다.
개척 과학자들은 당장 임시 주거지를 '건설'해야 했고, 나데즈다 프란차인은 훌륭한 건설 기술자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뭔가 문제들에 부딪힐 때, 그들은 애타게 나데즈다를 찾았고, 나데즈다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데즈다 프란차인은 비단 화성 거주지만 아니라 포보스 기지 문제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일부 개척 과학자들은 화성이 아니라 포보스 위성으로 날아갔습니다. 포보스 위성이 중계 기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포보스에서 낮은 중력 때문에 개척 과학자들은 고생합니다. 나데즈다는 지표를 따라 순환하는 궤도를 만들라고 충고합니다.
이런 충고 덕분에 충분한 중력 속에서 포보스 개척 과학자들은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포보스 기지를 이끄는 팀장 아르카디 보그다노프는 무선으로 나데즈다에게 말합니다. "나데즈다 프란차인, 사랑해! 사랑한다고!" 나데즈다는 시큰둥하게 반응합니다. "너는 내가 아니라 중력을 사랑하겠지." 하지만 나중에 나데즈다 프란차인과 아르카디 보그다노프는 정말 연인이 됩니다. 포보스 임무가 끝난 이후, 포보스 개척 과학자들은 화성으로 내려옵니다. 나데즈다와 아르카디는 함께 어울립니다. 나데즈다는 임시 주거지를 안내하고, 두 사람은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아르카디가 비행선을 타고 떠날 때, 나데즈다는 아르카디와 동행합니다. 화성 기후를 바꾸기 위해 아르카디는 온실 가스 발생 장치들을 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르카디는 비행선을 타고 떠나고, 여기에 나데즈다는 동행합니다. 이건 거의 신혼 여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비행선은 사방을 여행하고, 비행선 안에는 오직 두 사람뿐입니다. 나데즈다와 아르카디는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섹스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비행선 안에서 아르카디는 다시 (진지하게) 말합니다. "나데즈다, 사랑해." 이건 수줍고 설레는 사랑 고백입니다. 아무도 이걸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독자들 역시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게 첫째 고백인가요? 비행선 안에서 아르카디가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이게 첫째 고백이 되나요? 어쩌면 아르카디는 이미 나데즈다를 사랑한다고 고백했을지 모릅니다. 나데즈다가 중력 문제를 조언했을 때, 아르카디는 "사랑해!"라고 외쳤습니다. 이건 사랑 고백이었는지 모릅니다. 예전부터 아르카디는 나데즈다를 좋아했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적당한 기회는 없었습니다. 아르카디는 고백하기 위한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데즈다는 어려운 중력 문제를 해결했고, 아르카디는 이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나데즈다는 아르카디가 중력을 사랑한다고 시큰둥하게 반응했으나, 어쩌면 아르카디는 중력보다 나데즈다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따라서 이건 사랑 고백입니다. 비행선 안에서 아르카디가 고백하기 전에, 이미 포보스 위성 기지에서 아르카디는 고백했는지 모릅니다. 중력 문제가 좋은 핑계가 되었기 때문에, 아르카디는 중력을 빙자했고 나데즈다에게 고백했는지 모릅니다. 사실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데이트를 신청하기 위해 사람들은 구실을 찾곤 합니다. 로맨스 장르에서 이런 장면들은 드물지 않습니다. 로맨스 장르에서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수많은 구실들을 찾습니다.
진 웹스터가 쓴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서 저비스 팬들턴은 제루샤 애벗에게 대학교 안내를 부탁합니다. 제루샤는 아무 의심 없이 저비스를 안내합니다. 제루샤는 대학교 학생이고, 저비스는 손님이고, 그래서 제루샤는 자신이 저비스를 안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학교를 둘러보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냅니다. 이건 데이트와 다르지 않습니다. 제루샤는 자신이 저비스와 데이트한다고 느끼지 않았으나, 제루샤 역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고 느낍니다. 저비스가 안내를 부탁했을 때, 저비스가 정말 오직 대학교만을 구경하기 원했을까요?
왜 저비스가 다른 사람들보다 구태여 제루샤에게 안내를 부탁했을까요? 어쩌면 저비스는 정말 사심 없이 안내를 부탁했는지 모릅니다. 저비스는 데이트를 염두에 두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수많은 독자들은 학교 안내가 데이트라고 생각할 겁니다. 학교 안내는 핑계였고, 사실 저비스는 제루샤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원했는지 모릅니다. 학교 안내는 그저 구실에 불과했을 겁니다. 마스다 미리가 쓰고 그린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는 삽화를 곁들인 연애 수필입니다. 이 수필에서 어떤 남자 직원은 동료 여자 직원에게 새해 카드를 보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카드 안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여자 직원은 이게 무슨 뜻인지 해석합니다.
이 문구는 그저 덕담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덕담을 나누기 위해 남자 직원은 카드에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적었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여기에는 다른 뜻이 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남자 직원은 여자 직원에게 호감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남자 직원은 여자 직원에게 새해 카드를 건넸는지 모릅니다. 사실 여자 직원은 남자 직원을 좋아합니다. 여자 직원은 카드 문구가 사랑 고백이라고 해석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해석하기 위한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는 너무 평범한 인사입니다. 아무도 이게 사랑 고백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여자 직원은 느낌표(!)에 주목합니다.
여자 직원은 어쩌면 느낌표가 사랑 고백인지 모른다고 해석합니다.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남자 직원은 "잘 부탁드립니다."보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적었을 겁니다. 이게 올바른 해석인가요? 이게 이른바 초해석이 아닌가요? 연애 수필은 남자 직원의 마음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연애 수필은 1인칭 시점으로 오직 여자 직원의 심리만 서술합니다. 독자 역시 이게 정말 사랑 고백인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독자는 그저 추측할 뿐입니다.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서 저비스 팬들턴이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연애 수필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는 남자 직원의 마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만약 <키다리 아저씨>와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가 저비스와 남자 직원의 마음을 보여줬다면,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을 겁니다. 독자는 학교 안내가 데이트이고 새해 인사가 사랑 고백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독자는 제루샤와 저비스가 데이트하고 여자 직원과 남자 직원이 사귈 거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소설과 수필이 직접 마음을 보여준다면, 모호한 감정들은 사라질 겁니다. 모호한 감정들이 사라진다면, 풋풋하고 설레는 분위기 역시 사라질 겁니다. 왜 사랑이 풋풋하고 설레나요?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사실 <키다리 아저씨>에서 제루샤는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주 뒤늦게 제루샤는 사랑을 깨닫습니다. "정말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나?" 이런 모호한 감성은 풋풋하고 설레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완전한 형태로서 사랑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강렬한 첫인상과 첫만남은 완전한 형태의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으나, 종종 사랑은 강렬한 첫인상보다 은은한 이슬비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빨간 먹물이 종이에 번지는 것처럼, 점차 사랑은 마음을 물들입니다.
완전한 형태로서 사랑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로맨스 작가는 직접적인 보여주기보다 간접적인 묘사를 선택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종종 로맨스 장르에서 직접적인 보여주기보다 간접적인 묘사는 훨씬 낫습니다. 행동이나 표정이나 눈빛이나 암시가 애틋한 마음을 전할 때, 단도직입적인 사랑 고백보다 이것들은 훨씬 낫습니다. 포보스 기지에서 아르카디가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이건 단도직입적인 고백보다 애틋한 암시였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아르카디는 정말 충분한 중력을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키다리 아저씨>와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보다 이건 훨씬 미묘하고 복잡합니다.
<붉은 화성>은 하드 SF 소설입니다. 하드 SF 소설로서 <붉은 화성>은 '어렵고 딱딱한' 고증들을 늘어놓습니다. '풋풋하고 애틋한' 암시는 이런 '어렵고 딱딱한' 고증들 사이에 쉽게 끼어들지 못할 겁니다. 딱딱한 고증과 애틋한 암시는 쉽게 어울리지 못할 겁니다. <키다리 아저씨>와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에서 저비스와 남자 직원은 정말 데이트를 원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포보스 기지에서 아르카디는…. 흠, 글쎄요, 누가 알 수 있나요. 문학은 수많은 해석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르카디는 나데즈다를 사랑했거나 인공 중력을 사랑했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