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시즌스 애프터 폴>, 계절들을 이용하는 생태계 퍼즐 본문
[붉은 여우는 계절들을 바꾸고 숲은 다양한 모습들을 선보입니다. 이런 장면은 정말 그림 동화 같습니다.]
비디오 게임 <시즌스 애프터 폴>은 퍼즐과 플랫포머를 결합했습니다. 게임 주인공은 어떤 붉은 여우입니다. 붉은 여우는 그저 야생 동물에 불과했으나, 영적인 존재와 만난 이후, 여우는 마법적인 존재가 됩니다. 4계절 수호자 정령들을 만나기 위해 마법적인 여우는 울창하고 거대하고 복잡한 숲을 탐험합니다. 거대한 숲은 미로입니다. 미로를 돌파하기 위해 여우는 마법을 부려야 합니다. 마법적인 존재로서 여우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여우가 계절을 바꿀 때, 숲 생태계는 바뀌고, 여우는 미로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만약 호수에서 여우가 높은 벼랑 위로 뛰어오르고 싶다면, 여우는 호수를 얼려야 합니다. 여우가 계절을 겨울로 바꾼다면, 호수는 얼어붙을 겁니다. 단단한 빙판 위에서 여우는 벼랑을 향해 뛰어오를 수 있겠죠. 만약 멀리 도약하기 위해 여우가 길다란 덩굴을 밟아야 한다면, 여우는 계절을 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봄이 약동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움츠린 덩굴은 길다랗게 몸을 뻗을 겁니다. 여우는 길다란 덩굴을 이용해 도움닫기하고 멀리 뛸 수 있겠죠. 여름에 어떤 식물은 많은 물을 뿜고 그런 물은 호수 수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수위가 높아졌을 때, 여우는 호수를 얼리고 빙판 위에서 도약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숲 속 생태계는 퍼즐과 비슷합니다. 계절이 바뀔 때, 다양한 식물들과 주변 환경들 역시 바뀝니다. 다양한 식물들과 주변 환경들이 바뀔 때, 여우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 어떤 나무는 훨씬 높이 자랍니다. 여우는 그런 나무를 기어올라가고 훨씬 높은 벼랑으로 올라갈 수 있겠죠. 계절이 바뀔 때, 기류 역시 바뀌고 거대한 나뭇잎을 날릴 수 있습니다. 여우가 나뭇잎에 올라탄다면, 알라딘이 마법 양탄자를 탄 것처럼, 여우는 높은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겠죠. 계절이 바뀔 때, 어떤 식물은 엄청난 수분을 머금습니다. 여우가 식물을 누른다면, 식물은 물을 토할 테고, 그건 다시 주변 지형을 바꾸는 눈폭탄이 될 수 있겠죠.
게임 플레이어는 어떻게 여우가 주변 환경을 바꾸고 미로를 통과할 수 있을지 관찰해야 합니다. 제목처럼, <시즌스 애프터 폴>은 계절들과 숲 속 생태계들을 이용한 퍼즐들을 선보입니다. 숲 속 생태계는 변화무쌍하고 유기적입니다. 일반적인 플랫포머 게임에서 주변 환경은 그저 장벽이나 발판에 불과합니다. 일반적인 플랫포머 게임에서 주변 환경은 별로 바뀌지 않고, 설사 주변 환경이 바뀐다고 해도, 그것들은 유기적이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플래포머 게임에서 주변 환경은 상호 작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가 유기적인 것처럼, <시즌스 애프터 폴>에서 주변 환경은 상호 작용하고 계속 바뀝니다.
<시즌스 애프터 폴>에서 거대한 숲 속은 그저 단순한 미로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숲 속은 살아있는 미로입니다. 계절들이 바뀔 때마다, 거대한 숲 속은 서로 다른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찾아올 때, 식물들은 서로 다르게 반응합니다. 붉은 여우는 모든 조합을 활용해야 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어떻게 생태계가 바뀌는지 관찰하고 그런 변화를 이용해야 합니다. 어쩌면 '생태계'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시즌스 애프터 폴>에는 영양분이 흐르는 과정이 없습니다. 계절들이 바뀔 때 자연 환경이 서로 다른 모습들을 드러낸다고 해도, 영양분이 흐르는 과정이 없다면, 그건 생태계가 아니겠죠.
하지만 거대한 숲 속이 아주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시즌스 애프터 폴>은 정말 생태계를 구현한 것 같습니다. 환경 변화를 무슨 단어로 표현하든, 게임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변화들에 감탄할 겁니다. 자연 생태계를 강조하기 위해 게임 그림체는 신비롭고 아기자기합니다. 수채화 같은 게임 그래픽은 거대한 숲 속에 섬세하고 아름답고 서정적인 감성을 더합니다. <시즌스 애프터 폴>의 스크린샷은 비디오 게임이 아니라 그림 동화 같습니다. 누군가가 스크린샷을 본다면, 그 사람은 <시즌스 애프터 폴>이 그림 동화라고 오해할지 모릅니다.
게임 배경 음악은 경쾌합니다. 종종 어둡거나 묵직한 음악 역시 나오나, 전반적으로 배경 음악은 경쾌한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붉은 여우는 활기차게 돌아다닙니다. 주변 환경 그림처럼, 붉은 여우 역시 귀엽습니다. 여우가 종종걸음을 치거나 캥캥거리고 울거나 끙끙거리며 벼랑에 매달리거나 앞발을 핥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특히, 살랑거리는 꼬리가 꽤나 길기 때문에 여우가 달리는 장면은 역동적입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수채화 같은 숲 속 풍경과 귀여운 여우만 바라본다고 해도, 그건 절대 지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기적인 게임 플레이가 재미있지 않다고 해도, 수채화 같은 풍경과 귀여운 여우는 게임 플레이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겠죠. 어떤 사람들은 <오리와 눈먼 숲>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겠으나, <오리와 눈먼 숲>과 달리, 전반적으로 <시즌스 애프터 폴>은 액션보다 퍼즐을 강조합니다. <오리와 눈먼 숲>에는 치열한 액션들과 전투들이 있으나, <시즌스 애프터 폴>에는 전투가 없습니다. 붉은 여우에게는 아무 무기가 없습니다. 사실 여우를 공격하는 적들 역시 없습니다. 몇몇 까다로운 플랫폼 액션 이외에 유일한 어려움은 미로입니다.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차분하게 미로를 풀 수 있다면, 전투 없이 붉은 여우는 4계절 수호자 정령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가장 커다란 문제들 중에서 하나는 '지도'일 겁니다. 거대하고 울창한 숲은 복잡한 미로입니다. 따라서 게임 플레이어는 어디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걸 잊는다면, 엉뚱한 장소에서 한참 동안 게임 플레이어는 헤맬 겁니다. 아쉽게도 이 게임은 지도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경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 역시 게임 플레이겠죠. 길치 게임 플레이어는 지도를 직접 그려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방대한 숲 속 미로를 그리기는 너무 어렵겠죠. 만약 <시즌스 애프터 폴>에 지도 기능이 있다면, 게임은 훨씬 수월해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게임 플레이어는 지도 때문에 게임이 너무 시시하다고 느낄지 모르죠.)
게다가 언제나 이런 퍼즐 게임이 그런 것처럼, 게임 플레이어가 답을 알지 못한다면, 하루 종일 게임 플레이어는 무한 루프에 빠질지 모릅니다. 봄을 여름으로 바꾸고, 여름을 가을로 바꾸고, 덩굴을 건드리고, 캥캥거리고 울고, 이런 식물을 건드리고, 저런 식물을 관찰하고, 비밀 통로를 훑어보고, 그렇다고 해도 막다른 길은 풀리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이런 짓거리를 반복한다면, 게임 플레이어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겠죠. 뭐, 그것 역시 퍼즐 게임을 플레이하는 재미겠죠. 수채화 같은 숲 속을 감상하는 동안 게임 플레이어는 마음을 가라앉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시즌스 애프터 폴>을 봤을 때, 저는 게임 <웨이킹 마스>를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양쪽 모두 플랫포머와 생태계 퍼즐을 결합했기 때문입니다. <웨이킹 마스>에서 복잡한 화성 동굴을 돌아다니는 동안 리앙 박사는 화성 식물상과 동물상으로 조합해야 합니다. <시즌스 애프터 폴>에서 복잡한 숲 속을 돌아다니는 동안 붉은 여우는 계절들을 바꾸고 주변 생태계를 바꿔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웨이킹 마스>와 <시즌스 애프터 폴>은 서로 비슷합니다. 게다가 양쪽 모두 특별한 액션과 전투가 없습니다. <웨이킹 마스>와 <시즌스 애프터 폴>은 액션과 전투보다 생태계 퍼즐에 치중합니다.
<웨이킹 마스>에는 체력 수치가 있으나, 체력 수치에 커다란 의미는 없습니다. 곳곳에 치유하는 꽃들이 있기 때문에 리앙 박사는 빨리 체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시즌스 애프터 폴>에는 아예 체력 수치가 없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붉은 여우의 체력을 걱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가 생태계 퍼즐을 풀지 못한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무한 루프에 빠질 겁니다. <웨이킹 마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두 게임은 비슷한 생태계 퍼즐 플랫포머입니다. 물론 생물 다양성의 상호 작용을 구현하기 때문에 <시즌스 애프터 폴>보다 <웨이킹 마스>는 훨씬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에 가깝습니다.
[이것 역시 생태계 퍼즐과 플랫포머를 조합했습니다. 하지만 SF 게임은 계절들을 함부로 바꾸지 못하겠죠.]
<시즌스 애프터 폴>은 판타지이고, <웨이킹 마스>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SF 팬들은 판타지와 사이언스 픽션을 서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두 장르를 비교할 때, SF 팬들은 왜 사이언스 픽션이 독특한지 훨씬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겠죠. 판타지와 사이언스 픽션은 이웃 사촌입니다. 한편으로 어떤 관점에서 판타지와 사이언스 픽션은 정반대입니다. 따라서 <반지 전쟁>과 <에코토피아 뉴스>와 <엔들리스 레전드>와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를 비교하는 것처럼, <시즌스 애프터 폴>과 <웨이킹 마스>를 비교한다면, 이런 비교에는 유용한 가치가 있을 겁니다. <시즌스 애프터 폴>은 계절들을 바꿉니다. 이건 퍼즐의 핵심입니다.
<시즌스 애프터 폴>이 판타지이기 때문에 이 게임은 계절들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웨이킹 마스> 같은 SF 게임에게 그건 불가능한 설정입니다. 아무리 사이언스 픽션이 상상 과학을 발휘한다고 해도, 어떻게 계절들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설사 배명훈 소설 <첫숨>이 묘사하는 것처럼, 인공 강우가 국지적인 인공 생태계를 바꿀 수 있다고 해도, 그런 설정으로 <시즌스 애프터 폴> 같은 퍼즐 게임을 만들기는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계절 변화와 환경 변화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SF 게임이 있을까요. 그런 SF 게임이 있다고 해도, 갑자기 환경이 너무 빨리 바뀐다면, 심지어 인공 생태계조차 거기에 적응하지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