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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스타크래프트 2>의 점막 종양들과 풍성한 생명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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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2>의 점막 종양들과 풍성한 생명력

OneTiger 2018. 8. 14. 18:59

[게임 <제노블룸> 예고편의 한 장면. '스스로 번성하는 질서'는 생태계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이죠.]



<심파크>나 <벤처 아크틱>, <타이토 에콜로지> 같은 비디오 게임들은 생태계 시뮬레이션 장르에 속합니다. 이런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의 특징이 뭘까요? 여러 특징들이 있겠으나, 저는 '스스로 번성하는 질서'가 중요한 특징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타이토 에콜로지>에서 제가 몇몇 풀과 나무를 심고, 꿀벌들을 배치하고, 버섯들을 흩뿌린다면, 그것들은 스스로 번성하고 생태계를 조성할 겁니다. 제가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도, 풀들과 나무들은 꽃들을 틔울 테고 열매들을 맺을 겁니다. 꿀벌들은 꽃가루들을 나를 테고, 버섯들은 부산물들을 처리할 겁니다.


그렇게 생명체들은 상호작용하고, 생태 구역을 가득 채울 겁니다. 저는 <타이토 에콜로지>로 몇몇 실험 결과를 확인했고, 게임 플레이어가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연 생태계가 스스로 번성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쉘터 2> 같은 생태계 게임에서 토끼들이나 뇌조들이나 버섯들이 나타나는 현상과 다릅니다. <쉘터 2>는 그저 무작위로 생태계 구성 요소들을 생성할 뿐입니다. <쉘터 2>에서 생태계 구성 요소들은 스스로 번성하지 않습니다. 게임은 그런 것들을 무작위로 생성합니다.



반면, <타이토 에콜로지>에서 생태계 구성 요소들은 스스로 번성합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들은 상호작용하고 거대해집니다. 물론 비디오 게임은 그저 비디오 게임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타이토 에콜로지>가 생태계 시뮬레이션 장르라고 해도, 이 게임은 자연 생태계를 완전히 구현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생물 다양성을 훨씬 늘리고 싶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적극적으로 생태 구역에 개입해야 합니다. 작은 풀씨부터 거대한 나무까지, 작은 들쥐부터 거대한 코끼리까지, 생물 다양성을 복잡하게 구성하고 싶다면, 게임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어디가 붕괴하거나 지나치게 확장하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히 <타이토 에콜로지>는 스스로 번성하는 풍성한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레이첼 카슨이 가르친 것처럼, 우리가 자연 생태계에 감동하는 이유는 그런 풍성한 생명력 때문일 겁니다. 그것들이 스스로 번성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뻗어나가고, 지구 전체에서 거대한 상호작용을 조성하기 때문에. 설사 일부가 붕괴한다고 해도, 그것들이 다시 번성하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이른바) 어머니 자연에게서 생명력과 치유력을 느낄 겁니다. 저는 이게 오직 심층 생태주의만이 누릴 수 있는 감동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심층 생태주의가 아니라고 해도, 다른 생태 철학이나 생태 과학 역시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지모신'이나 '어머니 자연'이라는 표현은 너무 낭만적이고, 저는 이런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어머니 자연이 여성과 자연이 똑같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여성과 자연은 본질적으로 똑같고, 이는 에코 페니미즘의 중요한 기반 이론들 중 하나죠. 이는 모든 에코 페미니즘이 여기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 역시 이런 이론에 동의하지 않고요.


하지만 너무 낭만적이고 문학적인 비유라고 해도, 어머니 자연은 왜 자연 생태계가 감동적인지 알려줄 수 있는 표현입니다. 영성을 찾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어머니 자연에게 감동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기생충이나 질병 역시 어머니 자연에 속한다고 말할지 몰라요. 아, 그렇죠. 기생충이나 천연두에게 감동을 받는 사람들은 별로 없겠죠. 심층 생태주의 역시 기생충이나 천연두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우리가 오직 우리에게 유리한 자연만을 선택한다고 해도, 분명히 어머니 자연은 놀랍습니다. 그 풍성한 생명력과 치유력은 분명히 감동적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비너스 조각이 유방과 둔부를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자연을 상징하는 비너스 조각은 유방과 둔부를 강조해야 할지 모릅니다. 유방이 아이에게 영양분을 먹일 수 있고, 둔부(자궁)가 생명의 씨앗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명을 낳기 때문에. 영양가 높은 젖이 흘러넘치는 풍만한 두 젖가슴과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기름진 둔부는 어머니 자연의 가장 큰 특징일지 모르죠. 하지만 이런 측면은 자칫 성적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두 젖가슴과 둔부(보지)를 강조하는 시선은 여자를 그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존재로 떨어뜨릴지 모릅니다. 그런 시선은 수많은 성 차별들과 성 폭행들을 일으키겠죠.


애석하게도 어머니 자연은 그런 폭력으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비키니 수영복이 어디를 가리는지 생각해보세요. 왜 브래지어와 팬티가 가장 중요한 속옷이 되었는지 생각해보세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 자연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머니 자연이라는 표현에 어느 정도 감동적인 측면이 있다고 해도, 저는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머니 자연은 성 폭행으로 이어질지 몰라요. 물론 이런 표현은 그 자체로서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진짜 문제는 억압적인 가부장 사회 구조입니다. 사실 가부장 사회 구조가 사라진다면, 어머니 자연이라는 표현은 성 차별과 성 폭행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모르죠. 문학적인 표현 따위가 중요하겠어요. 진짜 중요한 것은 사회 구조입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대지모신 테 피티. 번성하는 생명은 어머니 자연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자연 생태계를 뭐라고 표현하든, 분명히 <타이토 에콜로지>는 풍성한 생명력이나 원대한 치유력이나 어머니 자연을 보여줍니다. 비록 단순한 비디오 게임이나, <타이토 에콜로지>는 그런 감성을 선사합니다. (무작위 생성이기 때문에 <쉘터 2> 같은 게임에는 그런 경향이 약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정말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타이토 에콜로지>나 어머니 자연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저는 실시간 전략 게임 <스타크래프트 2>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흠, 누군가는 <타이토 에콜로지>와 어머니 자연과 <스타크래프트 2>가 무슨 관계인지 물을지 모르겠군요. <스타크래프트 2>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실시간 전략 게임은 분명히 <타이토 에콜로지>와 아무 관계가 없겠죠. 제가 <스타크래프트 2>를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저그 여왕이라는 유닛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그 여왕은 아라크니드 왕족이나 여왕 제노모프에게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저그 여왕은 저그 군체를 관리하고 번식시키고, 알들을 낳거나 애벌레들을 키우거나 저그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이는 별로 특이하지 않은 설정입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2>는 실시간 전략 게임입니다.



실시간 전략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유닛들은 전투 유닛들일 겁니다. 저글링들이나 무리 군주나 울트라리스크가 상대 기지를 공격할 때, 저그 게임 플레이어는 승리를 거머쥘 수 있겠죠. 저글링들이나 무리 군주나 울트라리스크와 달리, 저그 여왕은 전투 유닛이 되지 못합니다. 저그 여왕은 강력한 산성 가시를 날리고 원거리 공격할 수 있으나, 점박 밖에서 이동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주력 병력이 되지 못해요. 저그 여왕이 상대와 싸운다고 해도, 여왕은 그저 둥지를 방어하는 신세에 불과하죠. 저그 여왕은 전투 유닛이 아니라 보조, 관리, 방어 유닛입니다.


하지만 이런 측면 때문에 저그 여왕은 다른 실시간 전략 게임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독특한 유닛이 되었습니다. 저그 군체를 낳고 키우는 존재로서 저그 여왕은 정말 풍성한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저그 여왕의 기술들은 풍성한 생명력이나 치유력을 바탕에 깔고, 덕분에 저그 군체는 거대하게 번식하고 확장할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저그 여왕을 이용해 저그 군체를 전반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여왕은 번식의 핵심이고, 저그 생명력과 치유력의 핵심입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저그 여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저그 군체는 제대로 번식하지 못할 테고, 테란이나 프로토스에게 밀릴 겁니다.



저그 여왕의 기술들은 하나같이 생명력, 번식, 치유로 이어집니다. '애벌레 생성'은 추가 애벌레들을 부화시키는 기술입니다. 애벌레 생성 덕분에 부화장은 추가 애벌레들을 3~4마리 더 늘릴 수 있고, 그렇게 저그 군체는 빠르게 불어날 수 있어요. 게임 플레이어들은 꾸준히 애벌레들을 늘려줘야 하고, 그 덕분에 저그 군체는 압도적인 회전력을 보여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는 빠른 손놀림을 요구합니다.) '수혈'은 저그 여왕이 다른 저그 생명체들이나 저그 건물을 치료하는 기술입니다. 저그 건물 역시 생명체이기 때문에 여왕은 건물들을 치료할 수 있어요. 여왕들이 많을 때, 여왕들은 울트라리스크 같은 튼튼한 유닛들을 꾸준히 치료하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여왕들은 서로 치료할 수 있고, 수혈 덕분에 여왕들은 (다른 전투 유닛들 없이) 저그 둥지를 지킬 수 있죠.


가장 재미있고 독특한 기술은 점막 종양 생성일 겁니다. <스태크래프트> 시리즈에서 점막(creep)은 저그가 뿌리는 끈적끈적한 물질입니다. 점막은 살아있는 양탄자이고, 지표면을 넓게 뒤덮습니다. 그 자체로서 점막은 저그 군체의 일부이고, 단순한 부산물이 아닙니다. 점막은 저그 건물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저그 유닛들에게도 영양분을 공급하고, 저그 유닛들을 빠르게 이동시킵니다. 점막 위에서 저그 유닛들은 정말 훨훨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점막이 넓어진다면, 저그 유닛들은 훨씬 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본거지와 확장 기지들이 멀리 떨어졌다고 해도, 점막이 서로 연결되었다면, 저그 부대는 다른 기지들로 빨리 달려갈 수 있습니다. 점막 안에서 저그 여왕 역시 빠르게 달릴 수 있고, 둥지를 지키거나 다른 저그 부대들을 치료할 수 있어요. 당연히 테란이나 프로토스 부대는 점막 안으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죠. 테란이나 프로토스 부대는 점막 밖으로 저그 부대를 유인하느라 애씁니다. 테란이나 프로토스 부대가 점막 안으로 잘못 들어간다면, 저그 부대는 순식간에 상대 병력을 우르르 둘러쌀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점막 역시 분명히 저그 군단의 일부이기 때문에 점막은 저그 군단에게 시야를 제공합니다. 점막이 전장에 넓게 퍼진다면, 저그 게임 플레이어는 상대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훤히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테란이나 프로토스 게임 플레이어는 점막을 줄이기 원하고, 점막을 최대한 제거하고 싶어합니다. 점막을 제거하고 싶다면, 테란이나 프로토스 부대는 점막 종양들을 터뜨려야 합니다. 점막 종양은 점막을 주변에 퍼뜨리는 고정 생명체입니다. 점막 종양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나, 다른 점막 종양을 낳을 수 있어요. 여왕이 점막 종양을 하나 낳는다면, 그 점막 종양은 다른 종양을 낳고, 그 종양은 또 다른 종양을 낳고, 그렇게 점막 종양들은 꾸준히 퍼질 수 있죠.



[저그 여왕은 알들을 낳고, 점막 종양들을 낳고, 다른 저그 유닛들을 치유하고, 생명력을 상징할 수 있죠.]



이론적으로 점막 종양들은 무한히 스스로 생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테란이나 프로토스 부대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기 때문에 점막 종양들은 전장 전체를 뒤덮지 못해요. 그렇다고 해도 저그 게임 플레이어는 최대한 점막을 넓게 펴야 하고, 그래서 끊임없이 점막 종양들을 퍼뜨립니다. 저그 게임 플레이어가 유리할 때, 점막은 전장에 전반적으로 퍼지고, 아예 전장을 보라색으로 물들입니다. 희한하게도 점막 종양들은 스스로 퍼집니다. 구태여 저그 게임 플레이어가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도, 점막 종양들은 스스로 번성합니다.


이는 실시간 전략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광경입니다. 실시간 전략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어가 간섭하지 않음에도 스스로 번성하는 유닛이나 건물이 있나요? 저는 실시간 전략 게임들을 잘 모르나, 이런 유닛이나 건물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실시간 전략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어들은 적극적으로 비용을 소모하고 유닛들을 생산하고 건물들을 지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그 점막 종양은 다릅니다. 저그 게임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론적으로) 점막 종양들은 스스로 번성하고 전장을 보라색으로 물들입니다.



이런 광경을 봤을 때, 저는 머릿속에 <타이토 에콜로지>를 떠올렸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도, <타이토 에콜로지>에서 식물상은 사방팔방으로 스스로 번성합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그 점막 종양들은 사방팔방으로 스스로 번성합니다. 양쪽은 똑같이 스스로 번성하는 생명력입니다. 양쪽은 비슷합니다. 비록 저그 점막 종양은 그저 진부한 절지류 외계인 설정에 불과하나, 이는 분명히 독특한 유닛(건물)이고, 실시간 전략 게임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입니다. 동시에 이는 스스로 번성하는 생태계와 비슷하죠.


저는 실시간 전략 게임을 잘 모르고, <스타크래프트 2>가 재미있는 게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그 여왕 때문에, 저그 점막 종양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2>는 독특한 게임 같습니다. <문명: 비욘드 어스>처럼 생태주의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전략 게임조차 이런 설정을 구현하지 않았죠. 물론 <문명: 비욘드 어스>에는 녹색 독소들이 있고, 조화 세력은 독소들을 퍼뜨리고 이를 점막 종양처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녹색 독소들은 스스로 번성하는 생명체가 아니죠. <엔들리스 레전드> 같은 게임에서 야생을 걷는 자들은 녹색 생태계를 사랑하고 숲 속에서 뛰어난 방어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야생을 걷는 자들은 스스로 번성하는 녹색 생태계를 가꾸지 못하죠.



그래서 저그 여왕과 점막 종양은 독특합니다. 저그 여왕은 생명력과 치유력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군단 숙주나 무리 군주 역시 이런 성향일지 모릅니다. 군단 숙주와 무리 군주 모두 지속적으로 다른 저그 생명체들(식충과 공생충)을 낳습니다. 그래서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무리 군주가 공짜 저그 유닛들을 줄줄이 낳는다고 표현하더군요. 하지만 점막 종양은 식충이나 공생충보다 훨씬 독특합니다. 점막 종양들이 스스로 전장을 뒤덮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저그 여왕에게서 <타이토 에콜로지>를 연상합니다.


뭐, 물론 레이첼 카슨의 가르침과 <타이토 에콜로지>와 저그 여왕은 서로 다릅니다. 레이첼 카슨의 가르침과 <타이토 에콜로지>는 서로 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 저그 여왕은 완전히 다른 성향이죠. 저그 점막이 인류 문명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누가 기생충들이나 천연두가 번성하는 모습에서 레이첼 카슨이나 어니스트 시튼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저그 점막은 기생충들이나 천연두보다 훨씬 인류 문명에게 적대적인 생명체입니다. 설사 저그 점막이 스스로 번성하는 생명력을 보여준다고 해도, 이것이 선사하는 감동은 그저 거기에서 멈출 뿐이겠죠.



그렇다고 해도 저는 이런 설정 구현이 재미있고 독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그 점막의 번성에 따라 저그의 승패가 기우는 상황 역시 재미있고요. 게임 제작자들이 이런 생명 번성 체계를 비디오 게임에 집어넣는다면, 그건 참 재미있을 겁니다. 가령, 만약 <몬스터 헌터>에서 도스란포스들이 정말 짝짓기하고 새끼들을 낳고 아프토노스들을 잡아먹는다면? 만약 캡콥이 그런 규칙을 집어넣는다면, 게임은 훨씬 복잡한 양상을 자랑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들이 그걸 반길지 모르겠습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사냥 액션 게임이고, 게임 플레이어들은 번성하는 생태계 따위에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겠죠.


예전에 <엠퍼러: 배틀 포 듄>이 인기를 끌었을 때,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모래벌레가 짜증난다고 반응했습니다. 갑자기 거대한 모래벌레가 기갑 부대를 덥썩 집어삼킬 수 있기 때문이죠. 그건 아라키스 행성의 생태계를 구현한 규칙이었으나, 게임 플레이어들은 모래벌레가 없는 환경에서 순수하게 전술을 펼치기 원했습니다. 실시간 전략 게임 플레이어에게 생태 철학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자연 생태계는 이런 게임 플레이어들에게 그저 장애물에 불과하겠죠.



[저그 여왕은 인상적인 설정이나, 이런 게임은 번성하는 생태 철학을 이끌어내지 못하겠죠.]



저그 게임 플레이어들 역시 점막 종양에서 생태적인 주제를 이끌어내지 않을 겁니다. 저그 게임 플레이어들에게 점막은 그저 빨리 넓혀야 할 장판에 불과하겠죠. 저는 저그 여왕 플레이가 아주 기초적인 생태 시뮬레이션 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애벌레들을 늘리고, 다른 저그 부대들을 치료하고, 특히, 점막 종양들을 낳고 점막을 넓히는 모습은 일반적인 전략 게임과 달라요. 그렇다고 해도 여기에는 생태적인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건더기가 너무 없습니다. 저그 여왕이 보여주는 풍성한 생명력과 치유력은 그저 본격적인 전투를 위한 뒷받침일 뿐이죠.


스스로 번성하는 생태계가 없다고 해도, 생태적인 주제를 논의하고 싶다면, 게임 플레이어들은 <스타크래프트 2>보다 <문명: 비욘드 어스>를 고르는 편이 나을 겁니다. 적어도 <문명: 비욘드 어스>에 건더기가 있기 때문이죠. 저그 군단이 생체 병기들이라고 해도, 저그 군단이 생체 공학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들이 이걸 이용해 생태 철학을 사유할 수 있을까요? 그런 게임 플레이어들이 많을까요? 저그 여왕이나 군단 숙주나 무리 군주가 독특한 유닛이라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들이 생명 현상의 아름다움을 고찰할 수 있을까요? 뭐, 게임 플레이어들은 게임 플레이에 충실하겠죠.



저그 여왕이나 군단 숙주나 무리 군주가 독특한 유닛이라고 해도, 게임 플레이어들이 여기에서 생태 철학을 이끌어내고 싶다면, 오직 게임만으로 무리일 겁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생태적인 주제를 전개하는 SF 소설들을 읽어야 할 겁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그런 SF 소설들을 읽는다면, 저그 여왕이나 무리 군주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질지 모르죠. 하지만 그건 게임 플레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테고, 아무도 저그 여왕에게 생태적인 주제를 접목하기 원하지 않겠죠. <스타크래프트 2> 설정집이 뭐라고 설명하든, <군단의 심장>의 저그 캠페인이 뭐라고 떠들든, 저그 게임 플레이어들이 뭐라고 설정 놀음하든, 실시간 전략 게임은 실시간 전략 게임에 충실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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