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세상 숲>이 외계 생태계를 자세히 묘사했다면…. 본문
[영화 <아바타>처럼,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이 외계 생태계를 묘사했다면….]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가 개봉했을 때, SF 독자들은 이 영화가 르 귄의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과 비슷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아바타>와 <세상 숲>을 비교하는 의견을 가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구인들의 외계 행성 침공, 원주민들의 고통, 생태계 파괴와 자원 수탈 등등. 이런 점들이 비슷하죠. 개인적으로는 프랭크 허버트의 <듄>이 훨씬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해서 <아바타>가 <세상 숲>이나 <듄>을 고스란히 모방했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사실 이런 부류의 이야기는 흔합니다. 유럽 강대국들은 실제로 오랫동안 식민지를 지배했고, 현실에서도 자원 수탈과 인종 학살과 생태계 파괴가 벌어졌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세상 숲>을 참고했는지 알 수 없으나, 카메론은 이 소설만 아니라 실제 제국주의 역사도 참고했을 겁니다. 게다가 예전에 말한 것처럼 <세상 숲>은 그저 제국주의를 떠드는 SF 소설이 아닙니다. 그런 소설은 많고 많아요. 이 소설은 폭력의 파생을 꼬집었습니다. 하지만 <아바타>는 그런 고찰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이 영화는 놀라운 시각 효과와 웅장하고 신비로운 밀림을 보여줍니다. 이런 밀림 여행이야말로 <아바타>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솔직히 이 영화에서 제국주의나 식민지 수탈 같은 줄거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려하게 빛나는 생물들과 거대한 육식동물과 울창하고 복잡한 경관이 훨씬 중요합니다. 관객들은 정말 외계 행성의 밀림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고, 제임스 카메론은 그런 감성을 노렸을 겁니다.
솔직히 외계 밀림이 너무 신비롭고 아름답기 때문에 암울하고 피 비린내 나는 제국주의 피해가 조금 무뎌진다고 할까요. 그런 면모도 좀 엿보입니다. 물론 그 거대한 나무가 무너질 때 저도 주먹을 불끈 움켜쥘 수 밖에 없었으나, 제임스 카메론 본인도 주제나 줄거리보다 외계 밀림 디자인에 더 공을 들였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아바타>가 그저 볼거리만 풍부한 영화라는 뜻은 아닙니다. 영화는 영화만의 가치가 있으니까요.
오히려 저는 르 귄이 애스시 숲을 좀 더 자세히 묘사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이왕 외계 행성을 보여준다면, 그 행성의 식생이나 생태계를 상상하는 것도 즐겁잖아요. 허버트가 아라키스 생태계를 상상한 것처럼요. 르 귄도 그런 즐거움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너무 주제 전달에만 집중한 것 같습니다. 이 점이 약간 아쉽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