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서던 리치> 시리즈와 엄마 괴수 모스라 본문
[거대 괴수가 정말 남성적인 로망일까요.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거대 괴수가 남자의 로망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남자의 로망'은 크고 파괴적인 것을 뜻하겠죠. 이건 꽤나 이상한 사고 방식입니다. 왜 남자가 크고 파괴적인 것을 좋아해야 하나요? 어떤 남자가 장수 거북이나 혹등고래나 자이언트 세콰이어를 좋아한다면, 그 남자는 남자가 아닐까요? 장수 거북이나 혹등고래나 자이언트 세콰이어는 분명히 거대합니다. 거대 괴수처럼 이것들은 거대한 생명체들이죠. 하지만 이것들은 파괴적이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장수 거북이 해파리들을 잡아먹는다고 해도, 장수 거북의 입 안에 무시무시한 가시들이 가득하다고 해도, 아무도 장수 거북이 파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장수 거북은 장엄하고 우아하죠.
어떤 남자들은 이런 장엄함과 우아함을 좋아할 겁니다. 그런 남자들은 아주 많을지 몰라요. 이런 남자들이 남자가 아닐까요. 사실 크고 파괴적인 것은 남자의 로망이 아니라 '남성'의 로망이겠죠. 그리고 '남성'은 생물적인 남자가 아니라 가부장적인 편견입니다. 가부장 문화는 남자가 파괴적이라고 간주합니다. 자꾸 가부장 문화는 그런 속성들을 남자들에게 밀어넣고 파괴적인 속성과 생물적인 남자를 연결하죠. 사실 두 가지 사이에 아무 상관 관계가 없음에도, 가부장 문화는 편견을 만듭니다.
남자들의 근력은 여자들보다 강합니다. 육체적인 스포츠 대결에서 이런 차이들은 아주 잘 드러나죠. 하지만 근력이 강하다고 해도, 남자들이 무조건 파괴적이어야 하나요? 두 가지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두 가지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해도, 가부장 문화는 강한 근력과 파괴적인 속성을 연결하고 남성적인 속성을 만듭니다. 지배 계급이 노동과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침략 전쟁을 일으킬 때, 이런 가부장 문화는 아주 유용하죠. 파괴를 강조할 수 있기 때문에. 여자들과 남자들이 함께 안전하고 평화롭게 사회에 참가할 때, 지배 계급은 노동력을 착취하지 못하고 침략 전쟁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가부장 문화는 억압적인 사회 구조를 떠받치는 유용한 수단이죠. 가부장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남자가 남성적이어야 한다고 배우고 남자가 크고 파괴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배웁니다. 그런 믿음은 거대 괴수가 남자의 로망이라는 편견으로 이어지죠. 사실 거대 괴수 역시 무조건 파괴적일 이유는 없습니다. 아주 거대한 동물이 존재한다고 해도, 왜 그 동물이 무조건 뭔가를 파괴해야 하나요? 두 가지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나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 지구에서 흰긴수염고래는 가장 거대한 동물이나, 흰긴수염고래가 아주 파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 겁니다.
남자, 거대 괴수, 파괴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습니다. 억압적인 가부장 문화와 파괴적인 볼거리 때문에 그저 세 요소들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아주 지독한 고정 관념이기 때문에 당분간 '남자의 로망이 파괴적인 거대 괴수'라는 오해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건 꽤나 아쉬운 상황이나, 거대 괴수들 중에서 이런 편견에 저항하는 사례는 아예 없지 않습니다. 소설 <빛의 세계>를 비롯해 <서던 리치> 시리즈는 아주 좋은 사례일 겁니다.
1편 <소멸의 땅>부터 3편 <빛의 세계>까지, <서던 리치> 시리즈는 끊임없이 기이한 야생 동물들이나 레비아탄이나 메갈로돈이나 거대 괴수를 암시합니다. 그런 암시가 암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소 섭섭합니다. 이질적인 자연 생태계가 늘어난다면, 등장인물들이 계속 거대 바다 괴수를 의식한다면, 그건 진짜 거대 바다 괴수가 활약하는 좋은 발판이 될지 모르죠. 하지만 <서던 리치> 시리즈는 계속 멍석을 깔 뿐이고 멍석 위에서 신나게 한바탕 놀지 않아요. 거대 괴수 팬들은 <서던 리치> 시리즈가 섭섭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죠. 하지만 그런 섭섭한 특징을 감안한다고 해도, <서던 리치> 시리즈는 놀라운 영감들로 가득합니다.
[거대 괴수가 직접 나오지 않음에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X 구역은 신비롭습니다.]
표지 그림들이 야생 동물이나 야생 식물을 기이하게 묘사하는 것처럼, <서던 리치> 시리즈는 이질적인 자연 생태계를 조성합니다. <서던 리치> 시리즈는 이런 이질적인 자연 생태계의 어딘가에 거대 바다 괴수가 있다고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이 소설 시리즈는 거대 괴수가 이것저것 때려부수는 장면들을 직접 묘사하지 않습니다. <서던 리치> 시리즈는 어딘가에 거대 괴수가 있다고 암시하고 암시하고 암시하고 다시 암시합니다. 그런 암시들과 속삭임들은 기묘한 꿈으로 이어집니다. 독자들은 거대 바다 괴수를 직접 만나지 못합니다. 독자들은 암시들과 속삭임들을 이용해 꿈꾸어야 합니다.
<서던 리치> 시리즈는 단서들을 제공합니다. 이 소설 시리즈는 멍석을 깝니다. 독자들은 단서들을 이용해 거대 괴수를 상상해야 하고 멍석 위에서 직접 한바탕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서던 리치> 시리즈는 노골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때때로 직접 보여주는 것보다 암시하는 것은 훨씬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영상보다 텍스트는 이런 암시에 훨씬 어울립니다. 영상은 뭔가를 직접 보여주나, 텍스트는 추상적인 것들을 이야기하죠. 그래서 영화 <소멸의 땅>은 소설 <소멸의 땅>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할 겁니다. 거대 괴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거대 괴수는 신비로워질 수 있습니다.
<서던 리치> 시리즈는 거대 괴수를 보여주지 않아요. 이건 섭섭한 특징이 되는 동시에 자극이 될 수 있죠. 소설들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계속 자극들을 받고, 그런 자극들은 원대한 상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꽤나 번거로운 과정일지 모릅니다. 직접 보는 것은 상상하는 것보다 쉽습니다. 하지만 원대함은 다소 뒤쳐질지 모르죠. 어떤 독자는 이런 자극들에서 거대 괴수를 직접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떤 독자는 이런 자극들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르죠. 반면, 어떤 독자는 이런 방법이 감질난다고 말할 겁니다. 어떤 독자는 좀 더 화끈하고 직접적인 묘사를 바랄지 모르죠. 하지만 분명히 <서던 리치> 시리즈는 SF 소설이 거대 괴수를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거대 괴수는 장대한 자연 생태계를 떠도는, 저 깊고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보이지 않는 존재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런 방법은 거대 괴수라는 존재의 위엄을 훨씬 부각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거대 괴수가 그저 도시를 때려부수는 존재에 불과하다면, 거대 괴수와 <우주 전쟁>에 나오는 삼발이 사이에는 아무 차이가 없을지 모릅니다. 왜 거대 괴수와 화성 삼발이가 달라야 할까요? 거대 괴수의 가장 큰 특징이 뭘까요? 화성 삼발이는 기계입니다. 반면, 거대 괴수는 유기체 동물입니다. 거대 괴수는 생명 현상이고, 생명 현상은 생물 다양성과 자연 생태계로 이어져야 할 겁니다. <서던 리치> 시리즈는 수많은 야생 동물들과 적막하고 광활한 자연 풍경 묘사를 이용해 거대 바다 괴수를 이질적인 자연 생태계에 집어넣었습니다. 오히려 이건 거대 바다 괴수를 이용하는 정석일지 모릅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를 파괴하는 거대 괴수는 그저 거대 괴수를 빙자한 화성 삼발이에 불과할지 모르죠.
거대 괴수가 파괴적이고 남성적이라는 진부함을 깨기 위해 <서던 리치> 시리즈는 또 다른 특징을 선보입니다. 이 소설 시리즈에서 주연 등장인물은 여자(생물학자/유령새)입니다. 남자 등장인물(컨트롤) 역시 중요하게 나오나, 생물학자/유령새는 훨씬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죠. 생물학자는 자연 생태계와 교감하고, 유령새 역시 거대 바다 괴수를 이해하느라 애씁니다. 거대 괴수가 나온다고 해도, 주연 등장인물들이 무조건 전투적인 남자들이 이유는 없겠죠. 작가 제프 밴더미어는 <혁명하는 여자들>을 편집했어요. 따라서 독자들이 <혁명하는 여자들>과 <서던 리치> 시리즈를 비교한다고 해도, 그건 무리한 비교가 아니겠죠.
만약 SF 팬들이 보다 전형적인 거대 괴수들에서 이런 특성을 찾고 싶다면…. 어쩌면 이런 측면은 모스라와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모스라는 거대 괴수가 파괴적이라는 고정 관념을 뒤집죠. 모스라는 고지라를 비롯한 숱한 파괴적인 괴수들과 다릅니다. 그래서 여자 관객들은 모스라를 선호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관점에서 모스라와 <서던 리치> 시리즈는 상통할 수 있을 겁니다. 설사 모스라에 가부장 문화를 비판하는 깊은 고민이나 성찰이 없다고 해도, 모스라는 그걸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었습니다. <서던 리치> 시리즈처럼, 누군가가 일본 특촬 괴수를 이용해 가부장 문화를 비판하고 싶다면, 모스라는 가장 탁월한 선택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서던 리치> 시리즈처럼, 언젠가 누군가는 모스라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