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생체 우주선이 생태 철학으로 이어지는 방법 본문
[만약 이런 함선이 개조 생명체에 가깝다면, 이건 생태 철학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외계 야수나 거대 괴수나 개조 동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이 생태 철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소설 <인간 종말 리포트>에서 각종 개조 동물들은 자연 생태계를 교란합니다. 사실 개조 생명체는 그저 SF 소설만 이야기하는 문제가 아니죠. 이미 에드워드 윌슨 같은 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 생명체가 위험할지 모른다고 비판했습니다. 저는 사회 생물학이 우생학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나, 에드워드 윌슨의 저런 비판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개조 생명체처럼 거대 괴수나 외계 야수는 생태 철학을 부각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겠죠. 영화 <고지라>는 핵 발전소가 위험하다고 경고할 수 있습니다. 게임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에서 미래의 녹색당 테라 살붐은 외계 야수에게 좀 더 친근합니다. 환경 아포칼립스에서 개조 동물이나 돌연변이 괴수는 특별한 소재가 아니라 아주 전형적인 소재입니다. 아울러 저는 생체 선박에 관심이 많습니다. 생체 비행선, 생체 잠수정, 생체 우주선 등등. 저는 동물이나 식물이나 생체 조직으로 이루어진 선박에 관심이 많아요.
이런 생체 선박은 생태 철학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거대 괴수가 환경 오염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처럼 생체 선박과 생태 철학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두 가지는 아주 얕은 관계만 맺거나 아예 관계가 없을까요. 글쎄요, 그건 SF 작가가 설정하기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SF 작가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생체 비행선이나 생체 우주선으로 환경 오염이나 동물 권리나 생물 다양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스팀펑크 소설에서 생체 기술자들이 거대한 부유 동물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죠. 사람들은 거대한 부유 동물에 선체를 매달고, 그걸 비행선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사람들이 너무 자주 생체 비행선을 이용한다면, 부유 동물은 많이 괴로울 테고, 그건 동물 권리 문제로 이어지겠죠. 게다가 만약 부유 동물이 문명에서 벗어나고 자연 생태계에 끼어든다면? 그건 환경 오염이 될 겁니다. 녹색당 같은 단체들은 사람들이 생체 비행선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시위할지 모르죠. 피터 싱어 같은 철학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체 비행선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책을 쓸 겁니다. 현실 속에서 이미 코끼리 사육은 동물 권리 및 생태 철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습니다. 부유 동물과 생체 비행선 역시 그럴 수 있겠죠.
미래 인류가 생체 조직들을 이용해 생체 우주 탐사선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죠. 생체 우주 탐사선은 어떤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탐사하는 동안 적대적인 외계 로봇 우주선과 마주쳤습니다. 적대적인 로봇 우주선은 생체 우주선을 공격했고, 생체 우주선은 어떤 외계 행성에 추락합니다. 만약 생체 우주 탐사선이 지상에 추락하고 크게 부서진다면, 개조된 생체 조직들이 사방에 퍼질지 모릅니다. 그것들은 자연 생태계를 교란할지 모르죠. 기계 우주선 역시 자연 환경을 오염시킬지 모르나, 기계 우주선은 개조된 생체 조직들만큼 자연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누군가가 이미 그런 소설을 썼을지 모르겠어요. 미국이나 유럽, 일본 시장에는 워낙 기발한 소설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생체 우주선이 자연 생태계를 교란하는 이야기 역시 이미 나왔을지 모르죠. 이렇게 생체 비행선이나 생체 우주선은 생태 철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생체 우주선은 유전자 조작 생명체를 비유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인간 종말 리포트>에 나오는 이상한 개조 동물들과 생체 우주선은 서로 비슷합니다. 인간이 생명체를 크게 개조한 결과죠.
환경 오염을 비판하기 위해 마가렛 앳우드가 돼지구리를 이용한 것처럼 SF 작가는 생체 우주선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돼지구리와 생체 우주선이 서로 다르다고 말할지 모르겠군요. 맞아요. 아무리 똑같이 개조 생명체라고 해도, 일개 가축과 거대한 우주 탐사선이 서로 똑같은 위상이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주 탐사선이 개조 생명체라면, 돼지구리처럼 우주 탐사선은 자본주의에 물든 유전 공학을 비판할 수 있을지 모르죠.
하지만 거대한 부유 동물이나 부서진 생체 우주선은 부정적인 매개체입니다. 생태 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해 SF 작가가 생체 우주선을 긍정적인 매개체로 이용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럴 수 있을 겁니다. SF 작가들은 유전자 조작이나 기후 위성을 이용해 기술적 유토피아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생체 우주선은 기술적 유토피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겁니다. 천연 재료가 화학 합성 재료보다 깨끗한 것처럼 어쩌면 생체 우주선이 기계 우주선보다 매연이나 공해, 산업 폐기물에서 훨씬 자유로울지 모르죠. <에코토피아 비긴스>가 자동차를 버리고 마차를 선택한 것처럼 SF 작가는 생체 우주선이 기계 우주선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비유들을 떠나…. 생체 우주선 자체가 생태 철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38억 년 동안 지구 안에서 생명체는 장대한 역사를 걸었습니다. 생명체는 수많은 진화들을 거쳤고, 결국 인공적인 생체 우주선이 되었습니다. 이런 장대한 역사는 생태 철학과 멋지게 조합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남한에서 이런 소설을 찾기는 어렵군요. 어쩌면 그런 소설이 이미 나왔음에도 제가 우둔하게 아직 읽지 못했는지 모르죠. 하지만 제가 읽지 않은 소설들이 많으나, 생체 우주선이 주력으로 등장하는 생태 철학 소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런 소설이 나왔다면, 듀나나 고장원 같은 비평가, JoySF 같은 동호회가 이야기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어요. 제가 쓰고 싶어도 저는 글재주가 별로 없습니다. 누가 좀 써줬으면, 참 좋겠어요. 누가 이런 이야기를 쓴다면, 정말 좋겠어요. 김보영 같은 작가가 써준다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