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사회 구조를 외면하는 이야기가 사회 문제를 고발할 수 있는가 본문
창작가들은 거대한 이야기에 욕심을 내곤 합니다. 이는 모든 창작가가 그렇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는 창작가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21세기는 세계화 시대이고, 우리는 세계화를 목격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시각은 넓게 뻗었고, 그래서 창작가들은 거대한 이야기에 욕심을 냅니다. 세상에 폭력이 만연하고, 살기가 고달프고, 세상물정이 각박해지고, 그래서 우리는 폭력을 고찰해야 하고, 어쩌구 저쩌구…. 소설 창작 사이트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수많은 창작가들은 고달픈 세상살이와 폭력과 범죄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시각은 거대하나, 사유는 거대하지 않습니다. 창작가들은 고달픈 세상살이와 폭력과 범죄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기 원하나, 그들의 시선은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영역으로 작아집니다.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싶다면, 작가는 사회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회 문제를 살피겠다고 장담하는 작가들은 개인적이고 도덕적으로 영역으로 퇴행합니다. 강간이나 성 소수자 문제가 절대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문제가 아님에도.
사이비 광신도들이 동성애인들을 비난하는 것처럼, 대통령 후보가 히히덕거리며 동성애를 모욕하는 것처럼, 강간이나 성 소수자 문제는 절대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사회 문제이고, 사회 문제는 사회 구조적인 관점으로 이어져야 할 겁니다. 저는 개인적인 고민에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고민은 중요합니다. 저는 모든 창작가가 무조건 사회적인 고민을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고민은 근본적인 문제를 절대 파악하지 못하고, 피상적인 수준에 그칠 겁니다. 왜 대통령 후보가 히히덕거리며 동성애를 모욕할까요? 이게 그저 대통령 후보 개인의 자질일까요?
왜 대통령 후보 토론회라는 공적인 매체에서 그런 개인이 히히덕거릴 수 있을까요? 왜 우리가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봐야 합니까? 왜 우리가 대통령을 뽑아야 하죠? 성 소수자 문제는 이런 문제들로 이어집니다. 이는 성 소수자 문제를 이야기하는 창작물이 무조건 이런 문제들을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고민 역시 중요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고민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절대 해결하지 못합니다. 대통령 후보를 비판하고 싶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구적인 근대화가 시작했는지 파고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거기까지 내려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숱한 창작가들은 거기까지 내려가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겁니다. 페미니즘이 잘 팔리는 상품이기 때문에 성 소수자를 이야기하는 창작가들이 많을 겁니다. 그 창작가들은 자신들이 진지하게 성 소수자 문제를 고민한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창작가들이 진지하게 소설을 쓸 수 있을까요? 그저 창작가가 히히덕거리는 대통령 후보 개인을 비판한다면, 모든 문제가 끝나나요? 성 소수자 문제가 그저 개인적인 고민만으로 이어져야 하나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성 소수자들은 지옥 같은 순간들을 경험할지 모릅니다. 강간이나 폭력이나 성 소수자 문제는 그저 재미있는 소설 소재만이 아닙니다. 성 소수자 문제는 유희거리나 장난감이나 술안주나 치기 어린 사유 대상이 아닙니다. "남들도 다 페미니즘이나 성 소수자를 떠드니까, 나도 한 번 떠들어볼까?" 소설 창작 사이트에는 이런 시도들이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들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이야기를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하고 다시 반복합니다. 그건 현실을 바꾸지 못하나, 다들 그걸 열심히 반복합니다. 별다른 고민 없이.
더욱 큰 문제는 그런 개인적인 고민들이 폭력적인 사회 구조를 옹호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폭력적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아주 폭력적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면, 저항하지 않는 행동은 암묵적인 동의로 이어집니다. 현실이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에 중립은 기득권을 암묵적으로 옹호합니다. 만약 현실이 평평한 운동장이라면, 중립은 중립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주 기울어졌고, 그래서 중립은 기득권을 옹호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고민을 늘어놓는 창작가들은 자신들이 기득권을 옹호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그걸 지적할 때, 심지어 그들은 벌컥 화를 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다고, 자신들이 옳다고 벌컥 화를 냅니다. 그렇게 그들은 권력의 앞잡이가 됩니다. 설사 그들이 좋은 사회를 만드느라 진심으로 애쓴다고 해도, 그들은 권력의 앞잡이가 됩니다. 왜? 그들이 사회 구조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회 구조를, 이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사회 구조를 아주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시각을 넓히고 싶다면, 우리는 사유 역시 넓혀야 할 겁니다.
특히, SF 소설은 이런 점에 취약합니다. 본질적으로 SF 소설은 세계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주류 문학은 그저 개인만을 이야기할 수 있으나, SF 소설은 본질적으로 세계까지 확장해야 합니다. 만약 SF 작가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아주 필수적으로 사회 구조를 들여다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다들 거대한 설정을 짜느라 바쁘고, 사회 구조에 관심이 없어요. 저는 그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창작가들이 사회 문제 어쩌구 떠든다면, 저는 그런 창작가들의 똥침을 찔러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