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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형이상학 비판

서열 놀이를 비판하는 주장들

OneTiger 2018. 7. 9. 19:19

예전에, 그러니까 대략 20년 전에 "로보캅과 터미네이터가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라는 물음이 유행했습니다. 사실 이런 서열 놀이는 별로 특이하지 않습니다. 싸움박질은 언제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많은 사람들은 온갖 맞상대들을 언급했습니다. 대중적인 SF 영화들에서 로보캅과 터미네이터는 가장 인기가 많고, 따라서 사람들은 두 전투적인 사이보그가 싸운다면 누가 이길지 논의했겠죠. 당연히 이런 서열 싸움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로보캅이 다소 굼뜨고 터미네이터가 재빠르기 때문에 터미네이터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게다가 로보캅과 달리, 터미네이터는 완전한 기계이고 생체적인 약점이 없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로보캅이 좀 더 육중하기 때문에 로보캅이 터미네이터를 이길 거라고 주장할지 모르죠. 솔직히 정답 따위가 중요하겠어요. 이런 것은 결론이 나지 않는 논의이고, 그저 재미를 위한 놀이에 불과하죠.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놀이가 폭력을 미화한다고 비판할지 모릅니다. 사실 대규모 전투를 이야기하는 창작물들은 언제나 그런 비판에 직면합니다. 서열 놀이 역시 그런 비판에 직면할 수 있겠죠.



하지만 서열 놀이를 비판할 때, 우리는 서열 놀이 그 자체가 아니라 더 넓은 배후를 들여다봐야 할 겁니다. 서열 놀이가 유행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폭력적이고 착취적이기 때문에 이런 논의 역시 유행하는지 모르죠. 당연히 폭력적인 사회에서는 폭력 놀이가 유행할 겁니다. 폭력적인 사회는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겁니다. 아니, 폭력적인 사회는 폭력을 예찬하거나 신나게 팔아먹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아주 폭력적입니다. 유럽 백인들이 제3세계 원주민들을 학살하거나 다국적 기업들이 기후 변화를 불러온다고 해도, 그걸 지적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폭행한다고 해도, 여전히 남자들의 목소리는 여자들의 목소리보다 큽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폭력 사회이고, 폭력 사회에서 폭력적인 놀이가 유행하는 현상은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폭력조차 상품이 되고, 뭐든지 상품으로 만들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폭력을 아주 신나게 팔아먹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열 놀이가 유행한다고 해도, 그건 절대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SF 세상에는 현실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것들이 많습니다. 거대 괴수와 거대 로봇이 싸우는 장면은 그걸 대표합니다. 현실 속에는 수많은 싸움들이 있으나, SF 장르는 그걸 훨씬 뻥튀기할 수 있습니다. 엄중한 고증을 떠나서 거대 괴수와 거대 로봇이 싸우는 장면은 그 자체로서 압도적인 장관입니다. 덕분에 SF 세상에는 온갖 거대한 전투들이 존재하고, 거기에서 파생된 서열 놀이들이 유행합니다. 로보캅과 터미네이터가 싸우는 서열 놀이 역시 그것들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런 서열 놀이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서열 놀이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건 진짜 전투가 아니고 진짜 싸움이 아닙니다.


만약 하루 종일 우리가 우주 구축함과 우주 드래곤(!)이 싸우는 장면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건 아무도 죽이지 않습니다. 그런 서열 놀이는 폭력을 미화하거나 폭력성을 포장할지 모릅니다. 그런 위험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걸 비판하는 의견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서열 놀이는 설정 놀음입니다. 로보캅과 터미네이터가 치고 받고 싸운다고 해도, 그건 그저 놀이일 뿐입니다. 따라서 서열 놀이를 비판하고 싶다면, 비판적인 사람들은 훨씬 멀리 나가야 합니다.



문제는 현실입니다. 언제나 문제는 이런 문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서열 놀이가 폭력을 미화한다고 비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폭력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타파하지 않는다면, 그런 비판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폭력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 존재한다면, 그런 폭력을 미화하는 서열 놀이는 계속 나타날 겁니다. 따라서 서열 놀이를 비판하기 원하는 사람은 폭력적인 사회 구조를 함께 언급해야 할 겁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서열 놀이를 비판한다고 해도, 그건 반쪽짜리 비판이 되겠죠.


이는 자본주의 체계가 폭력적인 놀이를 양산하거나 폭력적인 문화를 조장하는 유일무이한 원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자본주의는 폭력을 불러내는 유일한 원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폭력을 조장하는 가장 큰 원인들 중 하나이고,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는 사람은 폭력을 이야기하지 못할 겁니다. 기후 변화 같은 행성적인 폭력을 언급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서열 놀이 따위를 비판할 수 있겠어요. 그건 웃기는 비판이죠. 문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중요한 것은 거울이 아니라 거울에 비치는 대상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거울에 비치는 대상이 아니라 거울을 비판합니다. 이는 별로 의미가 없는 비판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거울을 깨끗하게 닦는다고 해도, 사과를 비추는 거울은 사과를 보여줄 겁니다. 그건 거울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과가 있기 때문에 거울은 그저 사과를 비출 뿐입니다. 사과가 아니라 다른 대상을 보고 싶다면, 사람들은 메론이나 포도나 바나나를 거울 앞에 놔야 할 겁니다. 그때 거울은 다른 대상들을 비출 수 있겠죠. 사람들이 사과를 복숭아로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람들이 사과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그건 아무 소용이 없겠죠. 서열 놀이를 비판하는 주장 역시 똑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폭력적인 현실 대신 로보캅과 터미네이터를 떠드는 이야기를 비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현실이 아니라 이야기를 비판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뿐입니다. 현실 없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하드 SF 작가들이 머리를 굴린다고 해도, 하드 SF 작가들은 진짜 인간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를 그리지 못합니다. 하드 SF 작가들이 오직 현실(지구라는 현실)만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거시적인 하드 SF 소설부터 로보캅과 터미네이터가 싸움박질하는 서열 놀이까지, 이런 문화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비롯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현실에 속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을 쉽게 비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로보캅과 터미네이터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이고, 진짜 현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들을 쉽게 비판합니다. 그런 것들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우리를 바꿔야 하나, 우리는 오직 그런 것들만 욕할 뿐이고 우리를 바꾸지 않죠. 그래서 꼬리를 무는 뱀처럼 로보캅과 터미네이터를 욕하는 목소리는 오직 환원적인 주장만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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