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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비경 탐험 소설과 문명의 침략 본문

SF & 판타지/비경 탐험

비경 탐험 소설과 문명의 침략

OneTiger 2017. 9. 17. 20:00

[이런 비경 탐험 이야기는 문명이 비경을 침략한다는 내용으로 쉽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구글 이미지에서 '로스트 월드 (Lost Worlds)'를 검색했습니다. 여러 사진들과 그림들이 주르륵 뜹니다. 고대 유적, 해저 도시, 울창한 밀림, 깊고 깊은 동굴, 각종 야생 동물들이나 공룡들, 또 다른 문명…. '로스트 월드'는 이런 것들을 대변합니다. 말 그대로 비경이죠. 현대 문명을 벗어나는, 또 다른 세계들. 그 세계는 고대 아틀란티스일지 모르고, 공룡들이 우글거리는 열대 밀림일지 모릅니다. 저는 소재에 따라 이런 사진들과 그림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재에 따라 비경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뜻입니다.


하나는 문명적인 비경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적인 비경입니다. 고대 아틀란티스는 문명적인 비경입니다. 자, 어떤 작가가 아틀란티스를 이용해 SF 소설을 씁니다. 소설 속에서 어떤 해양 탐사대는 잠수정을 타고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갑니다. 그 탐사대는 이상한 해저 동굴을 발견하고, 그 안에 들어갑니다. 해저 동굴은 길게 이어지고, 탐사대 잠수정은 그 동굴을 계속 따라갑니다. 어느 새 그 동굴은 거대한 지하 세계로 이어집니다. 그 지하 세계는 지상처럼 드높습니다. 당연히 탐사대는 두 눈을 크게 뜨겠죠. 게다가 이 세계에는 아주 찬란한 문명이 존재합니다.



그 문명은 바로 아틀란티스였습니다. 고대 아틀란티스는 강성한 문명을 자랑했으나, 아틀란티스 사람들은 너무 위험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그 결과, 천재지변이 벌어졌고, 아틀란티스는 깊고 깊은 땅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해양 탐사대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놀라운 문명을 둘러봅니다. 문제는 다른 탐사대들이 계속 해저 동굴로 들어오고, 그 중에서 어떤 인물들은 고립된 문명을 정복하기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틀란티스 사람들은 정복자들과 열심히 싸우고…. 뭐, 이런 줄거리는 아주 상투적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과 쥘 베른과 에드가 버로우즈를 적절히 뒤섞는다면, 이런 소설이 튀어나오겠죠.


어쨌든 이 소설에서 해양 탐사대는 현대 문명과 인연이 없는 세상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발견'이 아닙니다. 이미 그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문명을 이룩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문명적인 비경 탐험물입니다. 현대 문명은 또 다른 문명을 마주쳤어요. 문명과 문명이 만났습니다. 그 문명은 현대 문명과 단절되고 고립되었죠. 이런 소설들은 인류학이나 고고학을 중요하게 여기고, 얼마나 잔인하게 문명이 다른 문명을 침략할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반면, 자연적인 비경 탐험이 있습니다. 자, 다시 어떤 SF 작가가 소설을 씁니다. 소설 속에서 인류는 기이한 차원 관문을 발견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관문을 지난다면, 우주적 항로를 통해 다른 행성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 행성은 지구와 비슷하나, 전혀 다른 풍경을 자랑합니다. 당연히 인류는 이 낯설고 멋진 신세계를 조사하고 싶을 겁니다. 그래서 인류는 여러 탐사대들을 꾸립니다. 탐사대들은 차원 관문을 통과하고, 외계 행성의 울창한 밀림에 도착합니다. 탐사대들은 각자 흩어지고, 여러 지역들을 둘러봅니다.


그 와중에 여러 사건들이 발생할 겁니다. 어쩌면 흉악한 외계 괴수가 탐사대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어떤 탐사대는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생물들과 교감할지 모릅니다. 어떤 탐사대는 표본을 수집하기 위해 사냥에 열중할지 모르죠. 그래서 외계 야수들이 탐사대에게 복수할지 모르죠. 탐사대들은 이 외계 밀림을 개발해야 하거나 보존해야 하는지 토론할 겁니다. 누군가는 밀림을 개발하기 원할 테고, 누군가는 밀림을 보존하기 원할 테죠. 당연히 대기업들은 밀림에서 이윤을 얻기 원할 테고, 환경 보호 단체는 새로운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기 원할 겁니다.



이런 SF 소설 역시 아주 상투적입니다. 알프레드 반보트와 벤 보바와 킴 로빈슨을 적절히 뒤섞는다면, 이런 소설이 튀어나오겠죠. 이런 SF 소설 역시 비경 탐험을 묘사하나, 여기에 '문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뭔가는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 인류는 꿀벌들이 벌집을 짓거나 리카온들이 무리를 짓거나 각종 나무들이 숲을 이뤄도 그걸 문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우리와 비슷한 지적 존재들이 뭔가를 만들어야 마침내 그건 문명이 됩니다. 대신 우리는 이런 외계 밀림을 야생이라고 부를 겁니다.


하지만 (문명적인 비경 탐험이 그랬던 것처럼) 이런 자연적인 비경 탐험 역시 얼마나 잔인하게 문명이 자연을 파괴하는지 묘사할지 모릅니다. 고전적인 사이언티픽 로망스부터 테크노 스릴러를 거쳐 스페이스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경 탐험 소설들은 그런 주제를 이야기하죠. 물론 종종 문명적인 비경 탐험과 자연적인 비경 탐험을 완전히 구분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가령, <작은 친구들의 행성>은 문명적인 비경 탐험일까요, 자연적인 비경 탐험일까요. 어쨌든 이런 소설 역시 (또 다른 문명이나 자연을 침입하는) 인류 문명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따지고 보면, 수많은 비경 탐험 소설은 현대 문명이 다른 뭔가를 침입한다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모든 비경 탐험 소설이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별을 쫓는 사람들>이나 <라마와의 랑데부>는 '문명과 침략'이라는 주제와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비경 탐험 소설은 '문명과 침략'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하기에 제일 알맞은 형식인 듯합니다. 아마 현실에서 탐험은 침략과 정복으로 이어졌고, SF 작가들도 그런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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