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비경 탐험물의 매력 본문
[게임 <노 맨스 스카이>의 한 장면. 이런 풍경은 비경 탐험의 매력을 멋지게 드러냅니다.]
이반 예프레모프는 <안드로메다 성운>의 후기에서 자신이 역동성, 활동, 모험에 관심이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예프레모프는 모험 소설에 관심이 많았고, 이야기 속에 역동성과 활동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야기의 배경은 충분히 이국적이어야 했고, 인간들을 둘러싼 자연 중에서 뭔가 특이하고 희한한 것들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예프레모프는 여행가이자 학자였기 때문에 이런 자료들을 수집하기가 어렵지 않았죠. 아니, 어쩌면 이런 자료들을 자주 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탐험이나 활동, 희한한 자연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을 겁니다.
만약 열대 우림을 연구하는 생태학자가 글을 쓴다면, 그 학자는 대도시의 일상을 이야기하기보다 밀림 속의 동식물이나 벌레들의 삶을 설명할 겁니다. 환경 사회학자가 글을 쓴다면, 그 학자는 다른 사회학자들과 달리 문화나 노동, 정치보다 환경 오염에 주목할 겁니다. 아마 예프레모프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예프레모프는 과학자였고, 자연계에 관심이 많았고, 당연히 이국적인 자연계를 이야기의 배경으로 설정했겠죠.
저는 <안드로메다 성운> 이외에 예프레모프의 다른 소설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양반이 실제로 무슨 소설들을 썼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소설 후기를 읽어보면, 자연계의 특별한 사건들을 소재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비단 이 양반만 아니라 여러 SF 작가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글을 씁니다. SF 장르는 자연 과학에 관심이 많고, 그래서 이국적인 세계, 머나먼 행성, 낯선 차원으로 탐험을 떠납니다. 존 클루트는 확장과 이동, 탐험이 SF 장르의 특성을 이룬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잃어버린 세계>의 번역자 후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왕년의 고전적인 허버트 웰즈, 쥘 베른, 아서 코난 도일, 휴고 건즈백 등이 비경 탐험물을 즐겨 썼던 것처럼 지금도 SF 작가들은 외계와 우주를 바라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류가 지구를 너무 샅샅이 탐험했기 때문에 더 이상 비경 탐험은 매력적인 소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피터 잭슨이나 조던 로버츠 같은 영화 감독은 "1930년대나 1970년대야말로 모험과 탐사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감독들은 1930년대나 1970년대의 탐사대가 해골섬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21세기 인류는 더 이상 탐험할 구석이 없다는 뜻이겠죠.
어쩌면 저런 사람들의 말이 옳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21세기의 비경 탐험물은 심해나 우주로 진출하나 봅니다. 아직 인류는 심해나 우주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인류는 당분간 태양계 바깥은 물론이고 저 머나먼 행성들에도 가보지 못할 겁니다. 따라서 비경 탐험물의 로망은 아직 충분히 살아있다고 봅니다. 아울러…. 탐험할 지역은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자연계는 탐사의 대상입니다. 인류는 지구를 샅샅이 정복했을지 몰라도 아직 생태계의 세부적인 사항이나 원리를 알지 못하죠. 그런 자연의 경이를 SF 소설에 계속 집어넣는 것도 비경 탐험만큼 놀랍고 흥미로울 겁니다. 정복만이 능사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