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블라인드 사이트> - 의식을 해체하는 우주 탐사물 본문
소설 <블라인드사이트>는 피터 와츠가 쓴 외계 탐사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어떤 외계 존재가 지구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지구에 이런저런 흔적을 남겼으나, 다시 우주로 돌아갔습니다. 당연히 지구인들은 난리법석을 피웁니다. 지적 존재가 외계에서 찾아왔고, 심지어 지구에 다양한 흔적들을 남겼어요. 누가 이런 상황에서 침착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인류는 외계 존재가 정확히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왜 지구에 찾아왔는지, 왜 흔적들을 남겼는지, 인류는 전혀 모릅니다. 말 그대로 그들은 미지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외계 생명체들을 조사하는 탐사대를 파견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중차대한 임무를 아무에게나 맡기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인류가 외계 존재들을 조사하고 싶다면, 탐사대는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갖춰야 할 겁니다. 게다가 상당한 위험이 따르겠죠. 인류는 전문적인 영역과 위험을 모두 고려했고, 그래서 상당히 희한한 인물들을 탐사대에 배정합니다. 이 인물들은 반쪽짜리 인간들입니다. 반은 생체이고, 반은 기계입니다. 이런 사이버네틱 인물들이 탐사대를 구성하고, 이 탐사대는 정체 모를 외계 존재를 향해 떠납니다.
이 소설은 겉보기에 우주 탐사 이야기입니다. 사실 외계 생명체들은 꽤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우주 탐사대 역시 독특한 느낌을 풍깁니다. 아니, 독특하다는 표현은 너무 단순하군요. 이 탐사대는 외계 존재들만큼 기괴합니다. 반쪽짜리 인간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 사이버네틱 인물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뛰어난 전문가들이나, 인류는 생체와 기계가 절반씩 섞인 인물들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인물들이고, 그래서 인류는 이 위험한 탐사에 그들을 집어넣었습니다.
탐사 대원은 모두 4명이고, 생물학자와 언어학자, 군인 그리고 심지어 흡혈귀입니다. 우선 생물학자는 자신의 신체를 절반쯤 기계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각종 기계들을 동시에 조종하고, 한꺼번에 이것저것 연구할 수 있습니다. 군인 역시 비슷합니다. 각종 무인기들을 조종할 수 있고, 동시에 자기 자신도 전투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탐사대 우주선에서 군인은 혼자 싸우지 않고, 대부분 전투를 무인기들에게 맡깁니다. 문자 그대로 이 군인은 무인기들을 수족처럼 부립니다. 무인기들이 군인이고, 군인이 무인기들 같습니다.
신체를 기계처럼 바꾼 생물학자와 군인도 대단하나, 언어 전문가는 한 술을 더 뜹니다. 무려 인격을 4개나 보유했기 때문입니다. 이 언어 전문가는 4개의 인격을 번갈아 불러낼 수 있습니다. 몸뚱이 하나 속에서 인격 4개가 오손도손 살아가는 중이죠. 인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낯선 존재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 탐사 대원 세 명 중에서 이 언어학자가 가장 희한하더군요. 그리고 흡혈귀는 이 세 대원들을 지휘합니다. 흡혈귀는 탐사대 우주선을 지휘하는 선장이고 탐사 대장입니다. 흡혈귀. 이름 그대로 흡혈귀입니다. 전형적인 흡혈귀입니다. 피를 빨아먹고, 십자가를 무서워하고, 상당히 냉철하고, 기타 등등.
인류는 흡혈귀에게 별로 애정이 없고, 그래서 이 위험한 탐사에 아무렇지 않게 흡혈귀를 집어넣었을 겁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인류는 반쪽짜리 인간들과 흡혈귀를 외계 존재에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안심하지 못했고, 이 탐사대를 감시하는 관찰자를 하나 보냅니다. 소설 주인공은 종합가라고 불리는 관찰자입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이 종합가는 탐사 대원이 아닙니다. 생물학자와 언어 전문가와 군인과 흡혈귀를 감시하는 감독관입니다.
감시하는 직책답게 이 종합가는 절대 탐사 대원들과 개인적으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탐사대에서 계속 겉돌고 탐사 대원들을 분석합니다. 종합가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분석합니다. 종합가가 탐사 대원들과 대화할 때, 종합가는 그저 잡담만 나누지 않습니다. 탐사 대원이 저도 모르게 떠드는 단어와 저도 모르게 휘두르는 손짓까지, 모두 분석 대상입니다. 셜록 홈즈가 걸어다니는 추리 기계인 것처럼 종합가는 살아있는 분석 기계이고 항상 모든 것을 분석하려고 애씁니다. 이 분석가 역시 반쪽짜리 인간입니다. 두뇌를 절반쯤 기계로 대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종합가로 명성을 날릴 수 있으나, 반쪽짜리 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이런 인물들이 하나로 뭉쳤고, 적막한 우주를 항해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외계 생명체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인물들만 이야기해도 소설책 하나를 거뜬히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우주 탐사 이야기는 외계 생명체들에게 엄청난 비중을 할애하나, <블라인드사이트>는 외계 생명체만큼 탐사 대원들에게 비중을 쏟습니다. 반쪽짜리 인간들은 진짜 인간들 사이에서 이미 이방인입니다.
사이버네틱을 추구하는 소설들이 그렇듯, <블라인드사이트> 역시 자아와 의식을 해부합니다. 이 소설은 겉보기에 우주 탐사 이야기이나, 사이버펑크를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신체를 절반쯤 기계로 바꾼 생물학자나 군인은 사이버펑크를 드러내기에 아주 좋은 인물들이죠. 4개 인격을 번갈아 운영하는 언어 전문가 역시 다르지 않고요. 이 인물들은 자아와 의식이 얼마나 허무하거나 문학적인 수사에 불과한지 해체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자아나 의식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합니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정말 소유한 것처럼.
우리는 영혼이나 마음이라는 단어 역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죠. 영혼이나 마음이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하지만 영혼이나 마음은 그저 비유나 상징에 불과합니다. 정신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고, 진짜 영혼은 존재하지 않아요. 따라서 자아나 의식 역시 그런 비유나 상징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나 깊이 이해할까요.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모두 완전히 통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대로 모른다면, 어떻게 함부로 자아나 의식이라는 단어들을 읊조릴 수 있을까요.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는 영혼, 마음, 자아 같은 단어들을 아무 생각도 없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마음이 아프다고 말해도 마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몸을 해부해도 마음은 존재하지 않아요. 심장은 심장일 뿐이고, 그건 마음이 아니죠. 오히려 마음은 두뇌가 작동하는 과정이겠죠.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개념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상당히 비유적이거나 상징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블라인드사이트>는 바로 그런 비유나 상징이 허울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외부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맹점이 있고, 우리 역시 진화 과정에서 탄생한 생명체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신이나 뭐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을 좀 더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영혼을 비롯한 수많은 요소들을 때려박았습니다. 하지만 <블라인드사이트>는 그런 요소들을 신나게 날려버리고, 영혼이나 자아 같은 요소들이 허상임을 증명하기 위해 밑바닥까지 파고 듭니다. 이 소설은 절대 어느 정도 타협하지 않고, 바닥을 뚫을 때까지 돌진합니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외계 생명체들은 별로 필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생물학자나 군인이나 흡혈귀가 인생 역정을 늘어놓는다면, 그것만으로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외계 생명체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탐사 대원들은 그들을 분석해야 하고, 그 와중에 자신이 누구인지 회고할 수 있습니다. 외부를 바라보고 싶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먼지가 낀 안경으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어림도 없을 겁니다. 세상을 바라보기 전에 안경에서 먼지들을 닦아야 합니다. 외계 생명체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탐사 대원들은 안경에서 먼지를 닦을 수 있습니다.
탐사 대원들은 외계 생명체들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왜 자신들이 제대로 외계 생명체를 바라볼 수 없는지 고민합니다. 그 와중에 영혼이나 자아 같은 허상들은 무참하게 사라집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영혼이라는 개념이 인간을 완성할 것처럼 수많은 철학자들이나 성직자들은 열정적으로 떠드나, <블라인드사이트>는 그런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볼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 지적은 독자의 영혼마저 쓰라리게 벗기는 듯합니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 왜 에드워드 윌슨 같은 양반이 사회 생물학 같은 헛소리를 떠드는지 이해가 갑니다. 정말 철학이고 사회학이고 나발이고, 진화 생물학만이 인류를 분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에드워드 윌슨은 맹목적으로 진화 생물학에 매달렸겠죠. 이런 소설을 읽으면, 그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당연히 헛소리는 헛소리입니다.) 하지만 사회 생물학에 빠질 만큼 깊이가 있고 날카로운 분석 과정과 달리 결론은 좀 허무합니다. 작가는 여러 분석들을 통해 주인공이 보다 원숙한 인물로 성장하도록 묘사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날카로운 분석에 너무 힘을 쏟은 듯합니다.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은 다소 모호하고, 약간 비약적입니다. 설정과 줄거리가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줄거리는 설정을 힘겹게 쫓아갑니다. 사실 소설 중반부까지 설정과 줄거리는 제대로 어울렸으나, 그 이후 설정은 줄거리를 제치고 혼자 신나게 달립니다. 주인공이 원숙해지는 도중 그런 비약이 펄펄 뜁니다. 작가가 좀 더 이야기를 길게 늘이고,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을 좀 더 많이 묘사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을 제외한다면, 독자가 시종일관 입을 다물지 못할 소설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 번역된 영어권 하드 SF 소설들 중에서 이처럼 기괴하고 어렵고 독특한 소설이 별로 없을 듯하군요. 특히, 흡혈귀라는 판타지 설정을 하드 SF 속에서 능수능란하게 분석하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작가는 각종 판타지 설정 아래에 하드 SF 설정을 앞뒤가 딱딱 맞도록 집어넣습니다. 후반부의 부록 역시 그런 설정들을 뒷받침하고요. 어떻게 피터 와츠는 이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감탄사를 반복했군요. (너무 어렵다는 짜증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