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불사 판매 주식 회사> - 상품화된 내세와 시간 여행의 결합 본문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불사를 꿈꾸었습니다. 사람들은 유한한 생명을 연장하기 원했고, 영원히 살기 바랐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불로초와 젊음의 샘을 찾기 원했죠. 신을 창조했을 때, 사람들은 신에게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투영했습니다. 그래서 신은 죽지 않아요. 당연히 이런 욕망은 환상 소설들에게 온갖 영감들을 불어넣었고, 작가들은 영원히 살아가는 외계인이나 초인이나 기계 지성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외계인은 느리게 살아가고, 모든 것을 천천히 사고하고 판단합니다. 어떤 초인은 영원한 삶이 외롭다고 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 광경을 바라봅니다.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어떤 기계는 세상을 꿰뚫어보는 지성이 되는 것 같습니다. 죽음과 영생은 숱한 논란들을 일으키고, 불사 판매 회사 역시 그렇겠죠. 만약 영생이 정말 존재하고, 회사가 돈을 받고 영생을 판다면? 만약 사람이 육체를 버리고, 내세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면? 로버트 셰클리가 쓴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이런 내용을 다룹니다.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내세가 정말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사람들이 육체를 떠나고 내세에서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립니다.
영생을 다루는 소설들은 많으나, 그런 소설들은 어떻게 생명체가 영원히 살 수 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자주 마법이나 신성에 의존하죠. 아니면 아예 설명을 빼놓거나.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내세를 엄중하게 설명하지 않으나, 마법이나 신성 같은 수단에 기대지 않아요. 이 소설은 영생이나 내세나 유령과 이어지는 온갖 전설들과 신화들을 부정하지 않으나, 동시에 그것들이 자연 과학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자연 과학적인 설명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생과 내세를 둘러싼 온갖 윤리적이고 종교적이고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논의들입니다.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자연 과학적인 설정을 짧게 곁들인 이후, 내세 판매가 불러일으키는 온갖 논의들을 줄줄이 늘어놓습니다. 인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수많은 신화들과 종교들과 철학들과 과학들은 죽음이 무엇인지 열심히 설명했어요. 신화,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에서 죽음과 영생은 아주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사실 죽음과 영생이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종교나 철학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지 모릅니다.
당연히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그런 논의들을 신나게 풀어놓습니다. 소설 속에서 내세는 분명히 존재하고, 사람들은 육체적인 죽음 이후 영혼적인 둘째 삶을 살아갑니다. 현실 속의 우리는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나, 소설 속의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죽음은 그저 영혼적인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에요. 이는 꽤나 단순한 문구처럼 보이나, 삶을 송두리째 뒤엎는 어마어마한 사상을 함축합니다. 뭔가를 행동할 때, 사람들은 언제나 결과를 예상합니다. 결과를 예상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겠죠.
적어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사람들은 결과를 예상하느라 애씁니다. 인생에서 궁극적인 결과가 뭘까요. 유한한 인생에서 궁극적인 결과는 죽음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거나 계획하든, 결국 우리는 죽음에 직면해야 합니다. 죽음은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궁극적으로 흔들어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죽음을 상정하고, 유한한 인생이 끝난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요. 하지만 만약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육체적인 죽음 이후, 인간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지금까지 온갖 신화들과 종교들과 철학들(과 과학들)이 고민한 문제는 도루묵이 될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죽음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를 뒤흔들었어요. 만약 그런 생각이 틀렸다면, 인간이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다면, 아주 커다란 혼란이 번질지 모릅니다.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그런 혼란상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은 전통적인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가능성에 열광합니다. 종교와 과학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체적인 삶에 가치가 없다고 회의하고, 어떤 사람은 영혼을 이용해 새로운 작업을 시도합니다. 과학자들은 내세를 증명했으나, 종교는 절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세를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새로운 종교들을 창시합니다. 무슨 상황이 들이닥쳐도, 결국 사람들은 종교를 창시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절대 종교를 포기하지 않는 것 같아요. 과학자들은 내세를 증명했으나, 아직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해요. 종교들은 그런 틈을 비집고 들어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에 내세를 끼워맞추고, 그래서 온갖 내세관들을 만듭니다. 백인에게는 백인의 내세관이 있고, 흑인에게는 흑인의 내세관이 있어요. 유일신 종교에는 유일신의 내세관이 있고, 다신교에는 다신적인 내세관이 있죠. 이런 논의들은 인류 문명을 둘러싼 사고 방식들을 여기저기 집어 던집니다.
한편으로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시간 여행 소설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과거에서 미래로 전이하고, 미래에서 새로운 사회에 부딪힙니다. 그 사회는 내세를 인정하고 거기에 따라 바뀝니다. 내세를 인정하는 사회를 보여주기 위해 로버트 셰클리는 일부러 시간 여행이라는 방법을 빌린 것 같습니다. 다짜고짜 내세가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이런 방법이 더욱 효과적이겠죠. 소설 주인공은 두 번 충격을 받습니다. 첫째, 주인공은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을 거슬렀습니다. 둘째, 내세를 인정하는 사회에서 주인공은 살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사회상을 보여주기 위해 로버트 셰클리는 시간 여행이라는 방법을 빌렸고,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공(과 독자들)은 똑같이 낯선 사회를 둘러봐야 합니다. 독자들이 어리둥절한 것처럼 소설 주인공 역시 어리둥절합니다. 독자와 소설 주인공은 서로 비슷한 입장이고, 그래서 작가는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낯선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시간 여행은 꽤나 편리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여러 SF 작가들은 시간 여행을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옥타비아 버틀러가 쓴 <킨> 같은 소설이 시간 여행을 빌리지 않았다면, 훨씬 충격이 약해졌을지 모르겠어요.
숱한 시간 여행 소설들은 주인공을 낯선 세계로 내팽개칩니다. 시간 여행은 엄청난 단절을 다루는 장르입니다. 만약 갑자기 어떤 인간이 100년 뒤에 도달한다면, 그 인간이 거기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요. 아마 꽤나 힘들 겁니다. 기술이 아주 빠르게 사회 구조와 문화를 바꾸는 미래 사회에서는 더욱 적응하기 어렵겠죠. 만약 갑자기 제가 100년이나 200년 뒤로 날아간다면…. 그 세계가 유토피아가 아니라면, 저는 지독한 향수에 걸릴지 모릅니다.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그런 충격을 수다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보여줍니다.
영생을 제외한다고 해도, 시간 여행 소설로서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정신 없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게다가 시간 여행과 영생은 하나로 합쳐지고, 그런 충격은 소설 주인공과 독자를 그대로 놔두지 않습니다. 로버트 셰클리는 현란하거나 폭발적인 문체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능청스럽고 수다스럽고 우스꽝스럽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번번이 문제에 부딪힙니다. 과거 인간이 미래 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급박한 와중에도 소설은 여유를 잃지 않고, 사색들을 빼놓지 않아요. 게다가 소설은 자신이 드러내는 구시대적인 관습을 소설 주인공의 탓이라고 우길 수 있겠군요.
문제는 내세를 보장하는 미래 사회가 여전히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기반한다는 사실입니다. 내세는 분명히 존재하나, 아무나 함부로 내세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내세로 들어가기 위해 특별한 기계가 필요하고, 기계를 소유한 회사는 아주 비싼 가격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 수련이나 특별한 훈련을 이용해 내세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건 절대 쉽지 않은 방법입니다. 내세 기계가 훨씬 안전한 방법이죠. 따라서 기독교 <성경>이 말하는 것과 달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부자들입니다. 만약 내세가 천국이라면, 대부분 부자들만 내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기계가 육체와 영혼을 분리할 수 있다면, 영혼을 다른 육체에 집어넣을 수 있겠죠. 미래 사회에서 부자들은 마음대로 영혼을 전이하고, 젊고 건강한 육체를 구입합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영혼을 내세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대신 그들의 육체를 구입합니다. 영혼과 육체, 저승와 이승, 인생과 인간적인 관계는 모두 금전 계약과 돈벌이가 됩니다. 그런 기술은 또 다른 돈벌이를 낳고, 그건 또 다시 다른 돈벌이가 됩니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영혼이나 내세 역시 상품화를 피하지 못합니다.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저승과 자본주의 디스토피아를 합쳤어요.
하지만 다른 많은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그런 것처럼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자본주의를 자세히 분석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소설은 자본주의가 저지르는 폭력과 모순을 보여주나, 그걸 강렬하게 비판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자본주의를 풍자하나, 그 수준은 별로 심각하지 않습니다.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인류를 무익하고 해롭고 이기적인 종이라고 간주하나, 자본주의에게 수술칼을 들이대지 않아요. 하지만 왜 오직 부자들만 내세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할까요? 어떻게 부자는 부자가 되었을까요? 왜 다른 사람들이 부자가 되지 못했을까요?
전통적으로 왕이나 귀족이나 성직자는 흥청망청 돈을 쓸 수 있었습니다. 현대 문명이 그런 구시대적인 관습을 완전히 타파했을까요? 현대 문명에서 번지르르하게 살아가는 재벌들이 어떻게 재벌이 될 수 있었을까요?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이런 물음들에 대답하지 않아요. 이 소설은 인류 문명과 상품화한 내세를 열심히 떠드나, 자본주의를 비판할 생각이 없고, 분석할 능력이 없습니다. 로버트 셰클리는 자본주의 디스토피아를 기발하게 상상했고 중요한 사색들을 늘어놓았으나, 분석이나 비판은 없어요.
그건 나쁘지 않습니다. 작가가 자본주의 디스토피아를 쓴다고 해도, 무조건 자본주의를 비판하거나 분석할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불사 판매 주식 회사>가 그렇게 분석하고 비판했다면, 훨씬 사변이 깊어졌을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는 SF 소설들이 그렇게 많음에도,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소설은 별로 없는 듯합니다. 제가 언급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례는 프레드릭 폴이 쓴 <우주 상인>이나 <세상 밑 터널>일 겁니다. 가장 좋은 사례는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나 어슐라 르 귄 같은 작가가 쓴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 소설일 테고요.
하지만 이런 소설들은 그저 일부에 불과하고, 다른 수많은 작가들은 그저 자본주의를 열심히 관망하거나 이용할 뿐입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저는 그게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SF 작가들이 그 너머를 바라본다면, SF 소설들은 훨씬 전복적인 장르가 될 겁니다. 영혼과 내세를 상품화한다. 기발한 발상이 아닙니까. SF 작가는 이런 기발한 발상을 이용해 자본주의 체계가 얼마나 심하게 폭력적인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SF 작가들은 그런 기회를 놓치곤 합니다. SF 작가들은 현대 문명을 피상적으로 바라봐요.
그렇다고 해도 <불사 판매 주식 회사>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낯선 세상은 당황스럽고, 소설 주인공은 계속 난관들에 부딪히고, 분위기는 능청스럽고 수다스럽습니다. 발상은 기발하고, 사색들은 적재적소에서 독자들에게 생각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런 소설에게는 멋진 SF 소설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