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몬스터가 괴수를 제대로 가리킬 수 있는가 본문
[2005년 <킹콩> 컨셉 아트. 이런 것은 몬스터가 아니라 '생물 다양성'입니다. 생물 다양성.]
몬스터버스는 <고지라>와 <콩: 해골섬>과 기타 괴수 시리즈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건 고지라와 킹콩과 모스라와 라돈 같은 괴수들을 함께 엮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용어죠. 몬스터버스는 몬스터 유니버스를 줄인 말이고, 여기에서 몬스터는 고지라나 킹콩이나 모스라 같은 괴수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몬스터는 괴수입니다. 하지만 정말 괴수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몬스터가 적절한 단어일까요? 몬스터가 괴수를 제대로 가리킬 수 있을까요?
몬스터와 괴수는 다릅니다. 몬스터버스가 주목하는 괴수들, 고지라, 뮤토, 스컬크롤러, 킹콩, 모스라, 라돈 등은 야생 동물이나 공룡처럼 생겼습니다. 시리즈를 지탱하는 가장 큰 주역인 킹콩은 진짜 야생 동물입니다. 원작 영화 <킹콩>에서 킹콩은 공룡들과 싸우는 거대한 야생 동물이었죠. 도시에서 킹콩은 죽고, 그래서 영화 비평가들은 킹콩이 문명에게 죽는 야생이라고 평가합니다. 고지라 역시 야생 동물(육식공룡)처럼 생겼고, 야생을 대변합니다. 영화 예고편이나 영화 감독(가렛 에드워즈)은 아예 자연의 힘(포스 오브 네이처!) 운운했고요. 따라서 고지라나 킹콩은 야생을 대변하는 괴수들입니다. 하지만 몬스터라는 단어는 이런 느낌이나 의미를 표현하지 못합니다. 몬스터는 그저 괴물일 뿐이죠.
몬스터는 야생 동물을 비롯해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유령, 흡혈귀, 미라, 좀비, 해골 병사, 식인귀, 연쇄 살인마, 악마를 비롯해 온갖 부정적인 것들은 몬스터가 될 수 있습니다. 야생 동물은 그저 몬스터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구글링으로 몬스터라는 단어를 검색한다면, 사람들은 온갖 징그럽거나 흉악한 괴물들을 구경할 수 있을 겁니다. 데이빗 쾀멘 같은 작가는 그런 괴물들이 어느 정도 야생 동물을 반영한다고 말하겠죠. 인간은 야생 동물의 뿔과 이빨, 털가죽, 근력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악마나 식인귀에게 그런 요소들을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악마나 식인귀는 야생 동물의 머나먼 친척일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스컬크롤러와 악마는 다릅니다. 스컬크롤러는 야생 동물을 뻥튀기한 결과이나, 악마는 스컬크롤러보다 훨씬 추상적인 영역으로 나갔어요. 악마는 야생을 대변하지 못하고, 훨씬 추상적인 존재이고, 신화의 영역을 넘어가죠. 몬스터버스는 킹콩이나 고지라나 모스라를 신적인 위상으로 간주하고, 그런 시각을 장엄하게 펼칩니다. 하지만 결국 킹콩이나 고지라나 모스라는 물질 세계에 기반하는 유물론적인 존재입니다. 서로 다른 위상에서 스컬크롤러와 악마는 존재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스컬크롤러와 악마를 똑같이 몬스터라고 부를 수 있겠어요. 그래서 몬스터라는 단어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몬스터와 괴수는 다릅니다. 괴수는 어떤 거대한 동물을 가리키고, 악마나 흡혈귀나 좀비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죠.
문학적인 비유는 포악한 악마나 흡혈귀를 야수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문학 표현들은 정말 거대하고 사나운 악마를 야수라고 부르죠.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같은 스토리텔링 게임은 중후한 표현으로 흡혈귀의 야수성 운운합니다. 알프레드 테니슨은 자연이 피로 물든 '이빨과 발톱'이라고 말했어요. <호랑이>라는 시에서 윌리엄 블레이크는 어떻게 이 세상에 호랑이 같은 포악한 야수와 양 같은 순한 동물이 있는지 물었죠. 하지만 문학적인 비유는 그저 비유에 불과합니다. <호랑이>처럼 신을 상정한 이후 우리가 야수성을 언급한다면, 그건 오리무중에 빠지겠죠. 이건 신을 상정했기 때문에 <반지 전쟁>이 고정적이고 피상적인 자연과 우드 엘프를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죠.
문학 표현이 흡혈귀를 야수라고 부를 때, 그건 포악한 공격성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서 야수가 포악한가요? 야수와 포악한 공격성 사이에 긴밀한 연결 고리가 있나요? 왜 호랑이가 포악할까요? 왜 호랑이가 포악한 존재가 되었을까요? 그건 생물 다양성 때문입니다. 생물 다양성 속에서 진화하는 동안 호랑이는 은밀하고 강력한 최상위 포식자, 알파 프레데터가 되었습니다. 이런 생물 다양성이 사라진다면, 호랑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동물원 우리 속에서 어슬렁거리는 호랑이를 보세요. 이게 포악한 공격성인가요? 수명이 다할 때까지 동물원 호랑이는 공격성을 드러내지 못할지 모릅니다.
동물원 속의 호랑이는 그저 살아있는 전시 모형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동물원은 감옥입니다. 모든 동물원은 사라져야 합니다. 이런 감옥이 생태적인 감성을 키워준다는 사고 방식은 망상에 가까울 겁니다.) 호랑이는 야생 동물입니다. 생물 다양성이 있기 때문에, 자연 생태계가 있기 때문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호랑이는 진화할 수 있었습니다. 호랑이에게서 밀림과 다른 야생 동물들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그저 살아있는 전시 모형만 구경할 뿐일 겁니다. 흡혈귀의 야수성 역시 똑같습니다. 생물 다양성 없는 야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야수라는 정체성 그 자체는, 호랑이라는 존재 그 자체는 생물 다양성에서 비롯했습니다.
하지만 흡혈귀의 야수성 운운할 때, 문학 표현은 생물 다양성을 날려먹고 오직 호랑이의 공격성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야수를 언급하고 싶다면, 우리는 야수가 속한 생물 다양성을 함께 언급해야 합니다. 문학 표현은 악마와 흡혈귀에게 갖다붙일 표현을 호랑이게서 끄집어냈으나, 그건 궁색한 방법이고 자연을 바라보는 단편적인 시각이죠. 몬스터라는 단어는 이런 단편적인 시각을 반영합니다. 몬스터는 생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부 부분들만 취사 선택하고, 그걸 부정적인 측면으로 포장하죠. 고지라나 킹콩이나 모스라 역시 취사 선택하나, 적어도 몬스터버스는 자연 환경(포스 오브 네이처)에 접근하느라 애씁니다. 흡혈귀나 악마나 좀비에게는 그런 것이 없어요.
괴수라는 단어 역시 문제점이 있습니다. <고지라> 시리즈나 <울트라맨> 시리즈에는 야생 동물과 관계가 없는 여러 외계인들이나 악마들이 등장합니다. 그것들 역시 괴수라고 불립니다. 발탄 성인은 괴수라고 불리나, 야생 동물과 관계가 없죠. 고지라나 킹콩, 모스라, 에비라와 달리 발탄 성인의 겉모습 역시 야생 동물처럼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킹콩이나 고지라는 야생에서 출발하는 존재이고, 몬스터버스 역시 외계인이나 악마보다 야생을 대변하는 존재에게서 비롯했습니다. 누군가가 고지라와 모스라와 발탄 성인과 젯톤을 똑같이 괴수라고 부른다면, 그건 오류일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괴수는 몬스터보다 나은 단어입니다. 괴수 역시 야생을 확실하게 상징하는 단어가 되지 못하겠으나, 적어도 괴수는 흡혈귀나 미라나 좀비를 배제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몬스터는 그렇지 않죠. 몬스터는 너무 많은 것들을 포함합니다. 괴수 역시 많은 것들을 포함하는 단어이나, 몬스터는 괴수보다 훨씬 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킹콩이나 스컬크롤러를 몬스터라고 부른다면, 그건 오류가 될지 모릅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논의가 고작 단어 하나에 너무 집착한다고 비판할지 모르겠습니다. 맞아요. 이런 논의는 너무 단어 하나에 집착하는 중일지 모르죠. 스컬크롤러와 좀비가 똑같이 몬스터라고 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상은 서로 다르겠죠.
게다가 훨씬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영어권에는 몬스터라는 단어를 대신할 수 있는 단어가 없습니다. 스컬크롤러를 몬스터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뭐라고 영어권 사람들이 스컬크롤러를 불러야 할까요. 괴수는 적절한 단어이나, (장르 팬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은 괴수라는 단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스컬크롤러는 괴수가 아니라 괴물일 겁니다. 영어권 사람들은 괴수라는 단어를 훨씬 더 모르겠죠. 영어권 장르 팬들은 카이주(괴수)라는 단어를 사용하나, 카이주는 인지도가 낮은 단어입니다. <고지라>나 <콩: 해골섬> 같은 영화 역시 카이주라는 단어 대신 몬스터라는 단어를 계속 말하고요.
따라서 몬스터버스나 몬스터 무비 같은 용어는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쥬라기 월드> 같은 영화 역시 계속 몬스터 무비라고 불리겠죠. 공룡과 좀비가 똑같이 몬스터라고 불리는 상황은 아쉬우나, 뭐, 재미있는 영화가 나온다면, 몬스터나 카이주 같은 단어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단어가 관념을 규정한다고 해도, 재미있는 영화들이 계속 나온다면, 사람들은 그 반대 현상을 관념으로 규정할지 모르죠.
※ 개인적으로 몬스터버스에서 가장 보고 싶은 괴수는 모스라입니다. 고지라나 킹기도라, 라돈과 달리, 모스라는 절지류(곤충) 괴수이기 때문이죠. 어쩌면 수컷 무토와 모스라가 비슷할지 모르겠어요. 디자이너가 수컷 무토를 좀 더 고친다면, 나방 괴수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원작 영화에서 모스라는 꽤나 화려한 괴수이고, 몬스터버스 역시 그런 화려함을 반영할지 모릅니다. 그게 무슨 모습일지…. 솔직히 짐작하기가 어렵군요. 예고편조차 모스라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실사 영화가 어떻게 모스라의 '여성적이고 평화로운' 성향을 묘사할까요. 여기에서 여성적이라는 표현은 (여자라는 성별이 아니라) 가부장 문화와 정복 욕구 같은 폭력에 반대한다는 뜻이 될 겁니다. 거대 괴수가 이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 있을까요. 관객들이 그걸 인지할 수 있을까요. 사실 소미인은 그런 역할을 맡았으나, 몬스터버스에 소미인은 나오지 못할 테고, 어쩌면 영화 주인공 소녀는 모스라와 적극적으로 교감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전편 <고지라>와 달리, <고지라: 괴수왕>은 소녀를 내세우는지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