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모스라>의 소미인들과 식민지 수탈 본문
[소미인들은 많은 것들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제3세계. 식민지 원주민. 여자라는 약자.]
영화 <고지라: 괴수왕>에서 소미인은 꽤나 까다로운 설정일 겁니다. <고지라: 괴수왕>에는 모스라가 나옵니다. 모스라와 소미인들은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관계입니다. 일본 원작 시리즈에서 소미인들은 모스라와 교감할 수 있고 모스라를 부를 수 있죠. 소미인은 인간들과 모스라를 이어주는 존재입니다. 그 덕분에 <모스라> 시리즈와 <고지라> 시리즈는 소미인들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심지어 설정이 아주 극단적으로 바뀐 <고지라: 괴수 행성> 애니메이션 시리즈조차 소미인들을 빼놓지 않았죠. 문제는 소미인들이 SF 설정이 아니라 판타지 설정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고지라: 괴수 행성> 시리즈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소미인들을 SF 설정에 집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지라: 괴수왕>이 그럴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고지라: 괴수 행성>은 파격적인 설정들을 인정사정 없이 뿌립니다. 고지라는 지구 인류 문명을 멸망시켰고, 거대 괴수들 역시 다른 외계 행성들을 파괴했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이후, 고지라는 지구 생태계와 완전히 동화했고, 고지라는 정말 걸어다니는 자연 생태계가 되었습니다. 이런 파격적인 설정들 위에서 <고지라: 결전 기동 증식 도시>는 소미인들을 이야기해요.
따라서 <고지라: 결전 기동 증식 도시>는 소미인들을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었고 SF 설정에 집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고지라: 괴수왕>은 그런 극단적인 설정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고지라: 괴수왕>에서 거대 괴수들은 정말 압도적이나, 다른 설정들은 21세기 초반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죠. 만약 이런 영화에 소미인들이 나타난다면, 그건 꽤나 어색한 모습일지 모릅니다. 이런 영화에서 갑자기 작은 여자 요정들이 인간들과 대화하고 모스라를 소환한다면…. 영화 분위기는 크게 깨지고, 관객들은 왜 갑자기 SF 영화가 판타지로 날아가는지 의아해할지 모르죠.
게다가 <고지라: 괴수왕>은 네 주연 괴수들 중에서 모스라를 가장 많이 감추는 중입니다. 고지라, 라돈, 킹기도라는 어느 정도 윤곽들을 드러냈으나, 모스라는 (애벌레와 엄마 모두)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죠. 고지라, 라돈, 킹기도라와 달리, 모스라의 성향이 꽤나 다르기 때문에 영화 제작진은 모스라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영화 제작진이 이런 성향에 소미인들을 추가한다면, 그건 훨씬 이질적인 설정이 될지 몰라요. 어쩌면 <고지라: 괴수왕>에서 모스라는 소미인들 없이 인간들과 교감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영화 주인공은 소녀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소미인들 대신 영화 주인공은 모스라와 교감해야 하는지 모르죠. (사실 블록버스터 괴수 영화들에서 이런 비전투적인 소녀 주인공은 드문 사례죠.)
하지만 소미인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고지라: 괴수왕>은 중요한 주제 하나를 놓칠지 모릅니다. 소미인들은 그저 모스라를 부르는 요정들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1961년 원작 <모스라>에서 소미인들은 식민지 수탈을 비판하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1954년 <고지라>는 전략 병기를 비판하는 영화입니다. 비록 1961년 <모스라>는 <고지라>와 다른 분위기를 선보이나, 근대적인 진보의 어두운 그림자는 모스라가 살아가는 인펀트 섬을 그냥 놔두지 않았습니다. 인펀트 섬은 전략 병기 실험에서 자유롭고 깨끗하나, 인펀트 섬은 고립된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자본주의 문명에게서 영향을 받는 공간이죠.
게다가 마침내 자본주의 문명은 인펀트 섬을 침략합니다. 인간 상품화, 여자라는 성별, 제3세계 원주민은 분명히 식민지 수탈을 비판할 수 있어요. 자본주의가 소미인들을 전시한 것처럼, 유럽 백인들은 제3세계 사람들을 '전시'한 적이 있죠. 식민지 수탈 상황에서 백인은 원주민을 전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3세계 식민지 수탈은 19세기 근대적인 진보와 떨어지지 못하죠. 식민지 수탈이 19세기 진보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자체로서 19세기 근대적인 진보, 자본주의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제임스 블로트 같은 학자는 이걸 아주 속시원하게 까고 까고 다시 깝니다. 얼마나 근대적인 진보가 가식적이고 폭력적인지, 비오는 날에 먼지들을 날리는 것처럼, 제임스 블로트는 편견들과 고정 관념들을 두들겨 팹니다.
<모스라>에서 자본주의는 제3세계(소미인들)를 납치하고 전시합니다. 이건 어느 정도 <킹콩>과 비슷한 특징입니다. 서구 자본주의 문명이 킹콩을 납치하고 전시한 것처럼, 일본 자본주의는 소미인들을 납치했고 그래서 모스라는 분노합니다. 이건 야만(소미인들)과 자연(모스라)이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구도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1933년 <킹콩>, 심지어 2005년 <킹콩>조차 킹콩과 원주민들은 적대적이었습니다. 2018년에 이르러서야 실사 영화의 해골섬 원주민들은 간신히 거대 괴수와 공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1961년에 인펀트 원주민들은 거대 괴수와 공존하는 중이었어요.
어쩌면 <모스라>가 옛날 영화임에도, 1961년 <모스라>는 2005년 <킹콩>보다 훨씬 선구적이고 평등한 전망을 제시하는지 모릅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보세요. <아바타>에서 나비 부족들이 대지모신을 부르는 장면과 <모스라>에서 인펀트 주민들이 모스라에게 노래하는 장면은 거의 비슷합니다. <아바타>와 <모스라>는 똑같이 생태적이고 모성적인 신성을 경외하죠. 이런 묘사는 제3세계 원주민을 신비화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바타> 같은 21세기 영화가 제시하는 전망을 이미 오래 전에 <모스라>는 담았어요.
[소미인들처럼, 판도라 나비 부족 역시 원주민 학살과 식민지 수탈을 상징할 수 있겠죠.]
많은 관객들은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가 생태와 평등을 묘사한다고 칭찬합니다. <모스라> 역시 비슷한 호평들을 받아야 할 겁니다. <모스라>가 옛날 영화이기 때문에 <모스라>는 훨씬 많은 호평들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죠. 비록 <킹콩>과 <모스라>와 <아바타>에서 생태 철학들은 피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나, 세 영화들은 어느 정도 자본주의 비판, 식민지 수탈, 제3세계, 야만과 자연을 이야기해요. 그리고 <모스라>는 <킹콩>과 <아바타>보다 선구적인 전망을 보여줬죠. 영화 제작진이 그걸 의식하지 않았다고 해도, 모스라가 모성적인 괴수이기 때문에, 1961년 <모스라>는 저도 모르게 그런 전망을 내놓았는지 모르죠.
그 자체로서 1961년 <모스라>는 꽤나 획기적인 거대 괴수 영화이고, 동시에 이 영화는 수많은 함의들을 품었습니다. 비록 영화 제작진이 그걸 의식하지 못했다고 해도, 누군가가 이걸 재해석한다면, 그것 역시 획기적인 거대 괴수 영화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고지라: 괴수왕>이 그런 재해석에 근접할 수 있을지 그건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모스라>가 식민지 수탈을 비판한다고 해도, 모스라 그 자체는 판타지 설정입니다. 만약 소미인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런 식민지 수탈에서 모스라는 더욱 멀어질지 모릅니다.
1961년 <모스라>가 식민지 수탈과 근대적인 진보를 비판할 수 있다고 해도, 모스라 그 자체에는 그런 함의가 없어요. 이건 모스라가 드러내는 단점일지 모르죠. 소미인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고지라: 괴수왕> 역시 이런 단점을 드러낼지 모릅니다. 주인공 소녀가 식민지 수탈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이제까지 <고지라: 괴수왕>은 소미인들이나 인펀트 주민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1차 예고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킹콩> 영화들이 나올 때마다 <킹콩> 영화들은 해골섬 원주민들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킹콩> 영화들은 문명 대 자연을 이야기할 수 있었죠.
1961년 <모스라>는 <킹콩> 영화들보다 훨씬 선구적인 안목을 보여줬습니다. <고지라: 괴수왕>에서 모스라가 나온다면, 이런 안목을 계승할 수 있을까요. 이제 모스라는 더 이상 고지라와 떨어지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고, 고지라처럼 모스라는 전략 병기와 환경 오염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모스라가 판타지 설정에 기반했다고 해도,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아주 당연히 모스라는 SF 설정에 편입했습니다. 사실 <고지라>가 SF 설정에 기반했다고 해도, 거대 괴수는 꽤나 황당무계한 상상력입니다. 몇 십 미터짜리 동물이 도시를 파괴하고 현대 병기들을 씹어먹는다면, 누가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숱한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SF 설정을 이용한 판타지 설정인 것처럼, 거대 괴수들 역시 SF 설정을 이용한 판타지 설정일지 모르죠. 고지라가 방사열선을 뿜는 장면은 드래곤이 화염 숨결을 뿜는 장면과 별로 다르지 않죠. 그래서 모스라가 SF 설정에 편입했다고 해도, 그건 별로 놀랍지 않을 겁니다. 고지라가 SF 설정에 기반했다고 해도, 고지라와 모스라 사이는 별로 멀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고지라: 괴수왕> 역시 모스라를 보여줄 수 있었죠. 하지만 제3세계 원주민은 <모스라>가 이야기하는 고유한 요소입니다. 모스라가 고지라 설정에 편입한다고 해도, 이런 고유한 요소가 사라져야 할까요.
영화 평론가들은 <킹콩>이 문명 대 자연을 강렬하게 묘사했다고 격찬하나, <모스라>는 <킹콩>보다 훨씬 원대한 전망을 보여주는지 모릅니다. (이런 평론은 주류가 아닐 테고, 이건 꽤나 아쉬운 점입니다.) 하지만 소미인들이 판타지 설정에 가깝기 때문에 <고지라: 괴수왕>은 이런 설정을 버려야 할지 모릅니다. 이런 설정이 사라진다면, 모스라는 더 이상 식민지 수탈을 비판하지 못하겠죠. <고지라: 괴수왕>은 1961년 <모스라>가 보여준 획기적이고 생태적인 전망을 계승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사실 모스라가 고지라 설정에 편입하는 이후, 여러 <고지라> 시리즈, 가령, <고지라: 파이널 워즈>에서도 모스라는 식민지 수탈을 이야기하지 않았죠.
거대 괴수들이 서로 격돌하기 때문에 <고지라: 괴수왕>은 1961년 <모스라>보다 <고지라: 파이널 워즈>에 훨씬 가까울 겁니다. 따라서 <고지라: 파이널 워즈>처럼 <고지라: 괴수왕>은 1961년 <모스라>의 생태적인 전망을 이어가지 않겠죠. 만약 <고지라: 괴수왕>이 흥행한다면, 영화 배급사 레전더리는 단독 모스라 영화를 계획할지 모릅니다. 그런 영화는 1961년 <모스라>를 계승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단독 모스라 영화가 나올 수 있을지…?
21세기 초반 현재 시점에서 모스라는 꽤나 복합적인 의미들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아직 <모스라> 영화들은 이런 복합적인 의미들을 제대로 종합하고 정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에 복합적인 의미들은 흩어졌고, 아직 아무도 그것들을 정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고지라: 괴수왕> 역시 그것들을 정리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런 의미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질 때, 모스라는 정말 날개들을 활짝 펼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관점에서 거대 괴수 팬들은 단독 모스라 영화가 나오기 바라야 할지 모릅니다.
[언젠가 소미인들은 성 상품이나 마스코트를 넘는 훨씬 중요한 상징이 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