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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라이프>는 촉수 괴물보다 우주 정거장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라이프>는 촉수 괴물보다 우주 정거장

OneTiger 2018. 6. 10. 19:00

[진짜 볼거리는 흐느적거리는 외계 괴물이 아니라 이런 비일상적인 구조물일지 모릅니다.]



"저 우주에는 다툼이나 편견이나 국가적인 분쟁이 아직 없습니다. 우주의 위험들은 우리 모두에게 적대적입니다. 우주를 정복하는 일은 인류에게 최선이고, 이렇게 평화적으로 협력하는 기회는 절대 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영화 <라이프> 예고편에는 이런 문구가 등장합니다. 이 문구는 예고편 서두를 장식했습니다. 이는 존 케네디가 연설한, 이른바 <달 연설>의 일부일 겁니다. 인류가 평화롭게 우주로 진출한다는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아마 <라이프>는 이런 문구를 집어넣었을지 모릅니다. 저는 영화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라이프> 본편에 저 문구가 나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라이프>는 인류가 적대적인 외계 생명체와 만나고 한바탕 핏빛 소동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라이프>가 훨씬 하드하다고 해도, <라이프>는 <주홍빛의 불협화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라이프>는 하드 SF 영화처럼 보이나, 근본적인 이야기(외계 생명체와의 싸움)는 <주홍빛의 불협화음>과 비슷하죠. 우주 정거장 사람들은 적대적인 외계 생명체를 만나고, 죽음의 공포를 체험합니다. 따라서 저 문구는 우주가 절대 평화롭지 않고 외계 생명체 같은 위험을 포함한다는 복선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라이프>가 선보이는 이야기 구조는 꽤나 고전적입니다. 인류는 우주로 진출하고, 적대적인 외계 생명체를 만나고, 한바탕 핏빛 소동을 일으키고, 전멸하거나 간신히 외계 생명체를 물리칩니다. 예전부터 SF 작가들은 이런 이야기를 자주 썼습니다. 알프레드 반 보그트를 제외한다고 해도, 이런 이야기를 찾기 어렵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라이프>가 너무 진부한 이야기라고 비판할지 모릅니다. 그런 비판은 틀리지 않겠죠. 사람들이 더 이상 제노모프 같은 외계 야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왜 <라이프> 같은 영화를 봐야 할까요. <라이프> 같은 영화에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아마 외계 생명체 이야기를 좋아하는 SF 관객들은 <라이프> 같은 영화를 재미있게 볼 겁니다. 하지만 다른 관객들은 외계 생명체가 인간을 해치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라이프>에게 어떤 가치가 아예 없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야기 구조가 똑같다고 해도 우주 사업은 계속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라이프>는 우주 정거장을 아주 세심하게 조명합니다. 어쩌면 (외계 촉수 생명체가 아니라) 우주 정거장을 구경하기 위해 <라이프>를 관람하는 관객들이 있을 겁니다. 사실 <에일리언>이 인기를 끌었을 때, 수많은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제노모프가 아니라) 노스트로모 화물선 인테리어에 반했습니다.



<라이프> 같은 영화가 드러내는 볼거리는 비단 외계 촉수 괴물만이 아닐 겁니다. 수많은 관객들은 우주 정거장 디자인과 설정과 인테리어와 시설을 보기 원할 겁니다. 수많은 관객들은 비상 사태에 처했을 때 우주 정거장 사람들이 뭐라고 느끼는지 보기 원할 겁니다. 어쩌면 <라이프> 같은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는 (촉수 괴물이 아니라) 우주 정거장일지 모릅니다. 아마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SF 팬들은 얼마든지 우주 다큐멘터리에서 우주 정거장을 볼 수 있다. 왜 구태여 SF 팬들이 이런 영화를 보는가?" 이는 일리가 있는 물음입니다. SF 팬들은 우주 다큐멘터리에서 우주 정거장을 볼 수 있죠. 하지만 왜 SF 팬들이 상상력을 덧붙이면 안 될까요.


우리는 이렇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주 정거장에서 아주 커다란 재난이 터진다면, 우주 정거장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반응할까요? 우주 정거장이라는 이질적인 환경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기이한 재난에 대처할까요? 네, 중요한 점은 그겁니다. 중요한 점은 촉수 괴물이 아니라 우주 정거장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성과 반응입니다. 촉수 괴물은 그런 감성과 반응을 이끄는 매개체입니다. 촉수 괴물 그 자체에게 어떤 가치가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SF 관객들은 우주 정거장 사람들을 보고 싶어할 겁니다.



<라이프> 같은 영화를 볼 때, 관객이 너무 촉수 괴물에게 집중한다면, 다른 요소들을 놓칠지 모릅니다. 그렇게 영화를 관람한다면, 관객은 <라이프>가 시시하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라이프>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촉수 괴물이 아닐 겁니다. 우주 정거장 설정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 역시 중요할 겁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은 촉수 괴물보다 훨씬 중요할지 모릅니다. <라이프> 이외에 다른 창작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그저 시각 효과를 퍼붓고 뭔가를 때려부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게 사이언스 픽션이라면, 왜 SF 독자들이 구태여 소설들을 읽겠어요?


사이언스 픽션은 과학 기술을 이용해 일상을 비일상으로 끌어올립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이 뭐라고 느끼는지 조명합니다. 그래서 SF 독자들은 소설을 읽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선사하는 재미는 그런 것입니다. <어벤저스>나 <트랜스포머>처럼 신나게 때려부수는 영화 역시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이 선사하는 핵심적인 재미는 그런 것을 뛰어넘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라이프> 같은 영화에게는 어떤 가치가 있을 겁니다. <주홍빛의 불협화음>을 썼을 때, 알프레드 반 보그트는 21세기 초반과 같은 우주 사업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라이프>가 우주 사업을 그린다고 해도, 그런 설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라이프> 예고편은 존 케네디의 연설을 보여줍니다. 존 케네디는 우주 사업에서 국가적인 다툼이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우주 사업 자체는 착취에서 비롯했습니다. 자본주의는 냉전을 불렀고, 그런 냉전은 다시 우주 사업 경쟁을 불렀죠. 자본주의는 우주까지 시장을 넓히느라 애쓰는 중이고요. <라이프>가 그런 착취를 이야기할까요? 영화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이언스 픽션이 우주를 바라본다고 해도, 그런 시각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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