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뒤 돌아보며>와 <에코토피아 뉴스>의 국가관 본문
유쾌한 사이언스 판타지부터 엄중한 하드 SF 소설까지, 수많은 SF 소설들은 다양한 종족들을 이야기합니다. 외계인들, 다른 차원의 지적 존재들, 기계 지성들, 개조 생명체들, 기타 여러 종족들은 SF 소설들을 수놓습니다. 인간들은 그런 존재들과 교류하고, 그들은 인간들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그들에게서 장점을 찾거나 단점을 찾죠. SF 소설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이야기하고, 그래서 비주류적인 사고 방식을 강조할 수 있어요. 게다가 전혀 다른 사회 구조를 이룬 인간들 역시 외계인처럼 보일지 몰라요. 똑같이 인간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사회 구조에서 산다면, 서로 이질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죠.
13세기 사람들은 21세기 사람들이 외계인 같다고 생각할 겁니다. 21세기 사람은 (인류가 32세기까지 살아남는다면) 32세기 사람들이 외계인 같다고 생각하겠죠. 그런 관점에서 유토피아 문학들 속의 사람들 역시 외계인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겁니다. 현실 속의 우리들에게 <뒤 돌아보며>나 <에코토피아 뉴스> 같은 소설 속의 사람들은 외계인과 마찬가지겠죠. 재미있는 점은 <뒤 돌아보며>나 <에코토피아 뉴스>는 똑같이 사회주의 유토피아 소설이나, 서로 국가관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뒤 돌아보며>는 비교적 국가에 긍정적이나, <에코토피아 뉴스>는 그렇지 않아요. 어쩌면 <뒤 돌아보며>와 <에코토피아 뉴스>의 사회주의자들은 서로를 비판할지 몰라요. 저는 윌리엄 모리스가 <뒤 돌아보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사회주의를 비롯한 좌파 사상들 역시 서로 다른 국가관을 드러냅니다. 어떤 사상은 국가에 긍정적이고, 어떤 사상은 부정적이에요. 그리고 20세기는 국가를 긍정하는 유럽 사회 민주주의와 소비에트 연방 공산주의가 좌파를 대변하는 시대였죠. 좌파라고 주장하는 거대한 두 세력이 국가를 긍정한 것처럼 국가 이데올로기는 상당히 강력합니다.
하지만 좌파 사상이 정말 20세기를 반성하고 싶다면, 정말 좌파적으로 되고 싶다면, 국가 이데올로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겁니다. 우리는 국가가 필수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나, (장 자크 루소가 지적한 것처럼) 국가는 지배 계급을 지탱하는 기구이고, 애국심은 국민들을 수탈하는 수단에 불과하죠. 국가 안에는 엄연히 수직적인 계급 구조가 있고, 그래서 모든 국민은 똑같은 국민이 아닙니다. 국가 안에는 재벌이 있고 빈민이 있습니다. 국가 안에는 기세등등한 남자가 있고 성 노리개가 되는 여자가 있습니다. 국가 안에는 자연 환경을 수탈하는 기업들이 있고, 산업 폐기물을 짊어져야 하는 지역 주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배 계급은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배 계급은 국민을 위한다고 주절거리나, 국민은 똑같은 국민이 아닙니다. 국가는, 근대적인 민족 국가는 자신의 덩치를 키우기 원하고, 그런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국민들을 제거합니다. 덩치를 키우기 위해 국가는 강자들을 편들고,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약자들을 제거해요. 수구 세력과 보수 우파 세력 모두 다르지 않습니다. 온건 좌파는 이름만 좌파일 뿐이고, 사실 보수 우파를 편들죠.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의 민주당이나 사회당 역시 각종 자유 무역 협정이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나 환경 오염에 앞장섭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고, 지역 마을에 돌이키지 못할 상처들을 남겨요. 자유 무역 협정이나 지역 공동체 파괴는 수구 꼴통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역시 온건한 보수 우파들이 얼마든지 지역 공동체를 짓밟을 수 있음을 보여주죠. 지배 계급은 애국심을 외치나, 수직적인 계급 구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애국심은 허울에 불과합니다. 나라가 가난한 국민들을 폭행하고 수탈한다면, 왜 국민이 나라를 지켜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국가 이데올로기 이전에 수직적인 계급 구조입니다.
올림픽이나 국제적인 행사가 열릴 때마다 각종 언론들은 애국심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런 애국심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국제적인 경기에서 남한 선수가 우승했다고 가정하죠. 그래서? 남한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밑바닥 사람들에게 뭔가가 돌아오나요? 산업 재해 노동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나요? 몸을 파는 가난한 여자들이 포주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지역 주민들이 환경 오염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남한 선수가 금메달을 딴다고 해도, 산업 재해 노동자들과 가난한 창녀들과 오염된 지역 마을에 땡전 한푼 돌아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한 선수가 금메달을 딸 때마다, 각종 언론들은 국가 경사라고 외칩니다.
어떻게 국민이 아무 이득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국가 경사가 될까요. 국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지배 계급이나 언론이 미화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아요. 국가가 존재한다면, 오직 수탈하고 통치하는 기구만 존재할 뿐이죠. 하지만 국가 이데올로기는 굉장히 강력합니다. 심지어 어른들이 국가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때문에 어린 아기들조차 아무 생각 없이 애국심을 외치고 국가에 복종하죠. 인간은 국가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지배 계급에게서 국가 이데올로기를 주입 받습니다. 애국심은 세뇌적인 도구이고, 올림픽 같은 것들은 그런 도구를 뒷받침하죠.
그래서 저는 <에코토피아 뉴스>가 <뒤 돌아보며>보다 좀 더 깊이 고민했다고 생각합니다. <뒤 돌아보며> 역시 좋은 소설이고 많은 장점들이 있으나, 강력한 국가 관료 제도를 묘사할 때 에드워드 벨라미는 좀 실수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