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뒤 돌아보며>와 사회주의적 기본 소득 본문
"무슨 권리로 한 개인이 자기 몫을 주장합니까?"
"인간성이죠. 자기 몫을 주장할 권리는 그 사람이 인간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몫을 가져간다는 뜻입니까?"
"물론이죠."
위 대화는 소설 <뒤 돌아보며>에 등장합니다. 이 소설을 번역한 아고라 출판사는 책 띠지에 저 대화를 실었고요. 왜 출판사는 수많은 대화들 중 저걸 골랐을까요. 왜 저걸 띠지에 실었을까요. 아마 저 대화가 소설 내용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일 겁니다. 가장 대표성이 있는 대화이기 때문이겠죠. <뒤 돌아보며>는 사회주의 국가를 묘사하는 소설이고, 소설 주인공은 시간을 거슬러 미래 사회주의 국가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시간 여행자가 제일 먼저 제기한 물음은 임금 방식이었습니다.
시간 여행자는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비단 시간 여행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 먹고 사는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죠.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밑바탕에 깔린, 가장 근본적인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안내자는 시간 여행자에게 임금 따위가 없다고 말합니다. 시간 여행자는 어떻게 임금 없이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지 물어요. 그때 안내자는 모든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몫을 주장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는 사회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핵심적인 철학 중 하나입니다. 기본 소득과 비슷하죠.
따라서 기본 소득은 사회주의 사상 속에서 일찍 등장했습니다. <뒤 돌아보며>는 1888년에 나왔습니다. 19세기에 사회주의 운동이 한창 전진하는 동안 출간된 책입니다. 따라서 사회주의 사상 속에서 기본 소득은 20세기나 21세기에 등장한 개념이 아닙니다. 이미 19세기에 사회주의 사상은 기본 소득을 포함했죠. 기본 소득 자체가 사회주의 사상은 아니나, 고전적인 사회주의 사상 속에서 기본 소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핵심적인 내용은 생산 수단의 사회적 공유이고, 그래서 전통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은 기본 소득을 활발하게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본 소득의 기원을 반드시 우파적인 주장 속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게다가 기본 소득에 반대하는 레파토리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레파토리와 똑같죠.) 그렇다고 해도 <뒤 돌아보며>가 설명하는 기본 소득이 오늘날의 기본 소득과 똑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서로 노동이라는 개념을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뒤 돌아보며>는 파격적인 노동 조건을 내세웠으나, 전통적인 노동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죠. 반면, 오늘날의 기본 소득 지지자들은 노동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따라서 모든 사람은 기본 소득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솔직히 <뒤 돌아보며>가 이야기하는 계획 경제는 다소 관료적입니다. 좋든 싫든 사람들은 무조건 노동해야 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의무적으로 이런저런 업무들을 맡아야 합니다. 정부는 모든 업무를 관할하고, 노동하지 않는 사람은 소득을 얻지 못합니다. 물론 노동 구조는 아주 파격적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업무에만 매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업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업무를 찾기 위해 정부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고, 누구나 쉽게 업무를 바꿀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아주 일찍 퇴직할 수 있습니다.
<뒤 돌아보며>는 고리타분한 19세기 사고 방식과 자유분방한 노동 구조를 함께 보여주죠. 그렇다면 우리는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릴 수 있을 겁니다. 관료적인 부분을 버리고, 자유분방한 노동 구조와 기본 소득이라는 개념을 취할 수 있겠죠. 게다가 한 인간이 오직 인간이라는 이유로 소득을 얻는다는 개념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합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소수 지배 계급이 다른 수많은 인민들을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민들은 소수 지배 계급에게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인민들은 자유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민들이 노예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고 방식은 기본 소득을 반대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정부가 기본 소득을 지급한다면, 사람들은 게을러지고 일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은 사람들을 지배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아주 흔하죠. (사실 이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전형적인 레파토리죠.) 하지만 정말 사람들이 게을러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득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를 합니다. 때때로 그런 작업은 엄청난 비용이나 시간이나 고생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작업을 열심히 합니다. 그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산에 올라가고, 돌을 조각하고, 코스츔을 입고, 동물을 키우고, 음식을 요리하고, 기타 등등.
사람들은 뭔가를 합니다. 만약 정부가 기본 소득을 지급한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작업들을 더욱 열심히 할 수 있겠죠. 그런 변화는 상당한 혼란을 동반할지 모릅니다. 저는 아주 거대한 혼란이 올 거라고 예상해요. 하지만 그건 착취적인 혼란이 아니라 자유를 향해 이동하는 혼란이겠죠. 게다가 더욱 근본적으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통치할 권한이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자본가들이 생산 수단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요? 왜 일부 자본가들만 막대한 생산 수단을 차지할까요? 누가 그들에게 생산 수단을 줬습니까? 왜 인류 문명을 관통하는 노예, 식민지, 소작농, 하인, 천민 같은 요소들이 존재할까요?
사실 기본 소득이라는 개념 자체도 문제들이 많습니다. 기본 소득은 소수 자본가들이 다수 노동자들을 통치하는 억압적인 구조를 깨뜨리지 않아요. 인류 문명이 달성해야 하는 장기적인 목표는 계획 경제일 겁니다. 인류 문명은 계획 경제를 달성하고, 그 너머로 항해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장 뭔가를 실천할 수 있다면, 우선 그것을 실천해야 할 겁니다. 기본 소득은 아주 쉬운 개념이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개념이죠. 그래서 저는 완전히 보편적인 기본 소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