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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다크 페이트>의 그레이스와 생체 비행선 본문

SF & 판타지/개조 생명체들

<다크 페이트>의 그레이스와 생체 비행선

OneTiger 2020. 9. 7. 20:05



만약 생체 개조 기술과 비현실 설정이 결합한다면, 이건 바이오펑크일 겁니다. 바이오펑크에서 생체 개조 기술은 핵심 소재입니다. 만약 어떤 소설에서 인조인간과 인간이 섹스하고 아기를 낳는다면, 이 소설은 바이오펑크일 겁니다. 만약 어떤 영화에서 유전자 조작 식물들이 퍼지고 지구 생물권이 망한다면, 이 영화는 바이오펑크일 겁니다. 만약 어떤 게임에서 생체 비행선과 공중 철갑함이 서로 열심히 두들겨팬다면, 이 게임에서 공중 철갑함은 스팀펑크이고, 생체 비행선은 바이오펑크일 겁니다. 인조인간과 붕괴한 지구 생물권과 생체 비행선은 생체 개조 기술과 비현실을 결합합니다.

 

바이오펑크가 생체 개조와 비현실을 결합하기 때문에, 바이오펑크는 육체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섹스는 육체적인 관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 섹스가 가장 육체적인 관계라고 간주합니다. 인조인간과 인간이 섹스하기 때문에, 인공 육체가 새로운 생명을 낳기 때문에, 이 바이오펑크는 육체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도입부가 인공 육체를 주목하는 것처럼, 바이오펑크에서 육체는 필수적인 소재입니다.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호랑이와 물수리와 장수 거북이 육체적인 존재인 것처럼, 인간은 유기체 동물입니다. 이건 인간이 먹고 산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식량은 필수적입니다. 만약 유전자 조작 식물들이 자연 생태계를 교란한다면, 이건 농업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테고, 농업이 망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굶주릴 겁니다. 육체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먹고 살아야 하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지기 때문에, 농업은 망하고, 인간은 굶주립니다. 이 절박한 상황은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라고 강조합니다. 이 세상에서 많고 많은 사람들은 다양성을 자랑하나, 아무리 사람들이 다양성을 자랑한다고 해도, 다양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간은 먹고 삽니다. 인간은 뭔가를 먹어야 합니다.

 

인간이 무엇을 먹든, 인간은 영양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육체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생명체입니다. 생명체에게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신진 대사입니다. 아무리 포스트 모더니즘이 타자(他者)를 열심히 떠벌인다고 해도, 신진 대사 앞에서 타자성이고 나발이고 없습니다. 극지 이누이트 할머니부터 열대 아마존 소녀까지, 아라비아 사막의 이성애자 남자부터 동아시아 해안의 동성애자 여자까지, 인간은 먹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먹든, 식량들은 다양할 수 있으나, 신진 대사 그 자체는 아주 중요한 공통점입니다. 심지어 이건 생물종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존재로서 수마트라 호랑이는 먹고 삽니다.



만약 인간 여자가 굶주린 아기 호랑이에게 젖가슴을 내민다면, 아기 호랑이는 젖꼭지를 빨 겁니다. 인간 여자가 아기 호랑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처럼, 육체적인 욕구, 신진 대사는 생물종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먹고 사는 문제가 생물종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인간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똑같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식량을 스스로 만들지 못합니다. 하늘에서 식량은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가공하기 때문에, 인간은 식량을 얻습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열매를 따고, 버섯을 줍고, 물고기를 낚기 때문에, 인간은 식량을 얻습니다. 자연 없이, 식량은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기후 범죄를 저지르고, 기후 범죄가 이상 기후로 이어지고, 심각한 이상 기후 때문에, 농업이 망하고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처럼, 자연이 망가진 이후, 식량은 없습니다. 자연 없이, 식량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 환경을 공유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연을 공유할 때, 사람들은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이건 오직 바이오펑크만 육체를 논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이오펑크 없이, 우리는 육체를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습니다. 많은 철학자들은 유물론을 설명하나, 이 철학자들은 SF 소설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SF 소설들 없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유물론과 육체의 정치학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SF 소설 없이, 마르크스주의자는 육체의 정치학을 설명할 수 있으나, 바이오펑크가 생체 개조 기술에게 비현실 설정을 덧붙이기 때문에, 바이오펑크는 육체의 정치학을 훨씬 강조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인조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인조인간과 인간이 섹스하고 아기를 낳는다면, 현실에서 이 사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설정은 육체가 무엇인지 새롭게 조명할 겁니다. "아니, 세상에! 만약 인조인간과 인간이 아기를 낳는다면, 이 아기가 인조인간인가? 아니면 이 아기가 인간인가? 이 아기가 어디에 속하지?" 이렇게 사람들은 아기가 인조인간이거나 진짜 인간인지 물을 수 있습니다.

 

가장 육체적인 관계가 아기를 낳기 때문에, 이 물음은 육체를 주목합니다. 다행히 현실에서 유전자 조작 식물들은 지구 생물권을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유전자 조작 식물들이 지구 생물권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린다면, 이 사건은 육체적인 존재로서 인간을 강조할 겁니다. "그래, 인간은 유기체 동물이야. 인간은 먹고 살아야 해. 자연 없이, 인간은 굶주릴 거야. 인간은 자연에게 의지해야 해. 인간은 자연을 공유해야 해." 망가진 지구 생물권은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래서 파올로 바치갈루피와 마가렛 앳우드는 바이오펑크 소설들, 유전 공학과 식량 위기를 썼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비행선이 먹고 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행선은 살아있지 않습니다. 이건 물체입니다. 물체는 먹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행선이 연료를 채운다고 해도, 우리는 이게 먹고 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생체 비행선은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로서 생체 비행선에게는 육체가 있습니다.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생체 비행선은 신진 대사 과정을 거칩니다. 생체 비행선은 뭔가를 먹고 소화합니다. 소설 <레비아탄>이 보여주는 것처럼, 심지어 신진 대사 과정은 생체 비행선 내부의 생태계 순환일 수 있습니다. 육체는 생태계이고, 여러 생명체들은 공생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비행선이 먹고 산다고 생각하지 않고, 생체 비행선이 신진 대사 과정을 거치고, 이 신진 대사가 내부 생태계 순환일 수 있기 때문에, 이건 육체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생체 비행선과 공중 철갑함이 서로 열심히 두들겨팬다면, 공중 철갑함이 함포를 쏠 때, 생체 비행선은 포탄을 얻어맞고 피를 흘릴 겁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비행선이 피를 흘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체 비행선이 날카로운 대형 작살을 날리고, 대형 작살이 공중 철갑함을 꿰뚫는다고 해도, 철갑함은 비명을 지르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습니다. 철갑함은 기계입니다. 반면, 생체 비행선은 생명체입니다.





생체 비행선과 공중 철갑함은 생명체와 기계를 대조하고, 이 대조는 생명체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인조인간과 유전자 해킹이 육체를 강조하는 것처럼, 생체 비행선은 육체를 강조합니다. 비단 인조인간과 유전자 해킹과 생체 비행선만 아니라 전반적인 바이오펑크는 육체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주류 문학보다 바이오펑크 소설은 훨씬 특별합니다. 판타지 소설보다 바이오펑크 소설은 훨씬 특별합니다. 심지어 SF 장르에서조차 스페이스 오페라와 시간 여행과 대체 역사보다 바이오펑크는 특별합니다. 바이오펑크가 육체를 강조하고, 우리가 육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바이오펑크는 훨씬 특별합니다.

 

인간에게는 여러 측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측면들 중에서 육체적인 측면은 가장 원초적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육체적인 측면이 뒷받침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갑니다. 정신적인 것, 관념적인 것보다 육체적인 것, 물질적인 것은 훨씬 중요합니다. 소설 없이, 인간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인간이 실비 제르맹의 <밤의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은 살아갑니다. 하지만 식량 없이, 인간은 살아가지 못합니다. 만약 인간이 식량을 먹지 않는다면, 인간은 굶어죽을 겁니다. 그래서 생존 게임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식수와) 식량입니다. 많은 생존 게임들은 다른 무엇보다 식량을 중시합니다.



1994년 비디오 게임 <울프>에서 늑대들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늑대들이 사냥하지 않는다면, 늑대들은 굶어죽을 겁니다. 비디오 게임 <쉘터 2>에서 엄마 스라소니는 계속 사냥하고 아기들을 먹입니다. 만약 엄마 스라소니가 먹거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아기들은 굶어죽을 겁니다. <길고양이 이야기>에서도 식량은 가장 중요합니다. <엔들링>에서도 엄마 붉은 여우는 먹거리를 끊임없이 찾습니다. 만약 엄마 붉은 여우가 먹거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아기들은 쓰러질 겁니다. 이렇게 생존 게임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시사합니다. 인간에게도 먹는 문제는 가장 중요합니다.

 

늑대와 스라소니와 붉은 여우가 육체적인 존재인 것처럼,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붉은 여우가 유기체 동물인 것처럼, 인간은 유기체 동물입니다. 붉은 여우는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소설 없이, 붉은 여우가 살아가는 것처럼, <밤의 책> 없이, 인간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량 없이, 붉은 여우와 인간은 굶어죽습니다. 생존 게임으로서 <엔들링>은 여우와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라고 시사합니다. 이건 문화 없이 인류 사회가 존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류 사회와 문화는 떨어지지 못합니다. 이건 육체적인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위에서 문화 생활은 존재합니다.



육체적인 것은 토대입니다. 관념적인 것은 상부 구조입니다. 상부 구조가 토대에게 기반하는 것처럼, 관념적인 것은 육체적인 것에게 기반합니다. 분명히 관념적인 것은 중요하나, 관념적인 것이 상부 구조이고, 상부 구조가 토대(육체적인 것)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육체적인 것은 훨씬 중요합니다. 인간 여자가 아기 호랑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처럼, 붉은 여우와 인간에게 식량이 똑같이 필수적인 것처럼, 육체적인 것은 원초적입니다. 그리고 셋째 문단이 설명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식량은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식량을 얻기 위해 인간은 노동해야 하나, 인간 노동은 식량을 스스로 만들지 못합니다.

 

자연 환경 속에서 인간은 노동하고, 노동은 식량을 얻습니다. 인간이 열매를 따든, 버섯을 줍든, 물고기를 낚든, 벌꿀을 빨든, 풍요로운 자연 없이, 인간은 굶주립니다. 자연이 식량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연에게서 농업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파올로 바치갈루피와 마가렛 앳우드가 자연 생태계 오염과 식량 위기를 함께 논의하는 것처럼, 농업은 자연에게 기반합니다. 이 관점에서 농장은 인공 생태계입니다. 자연 없이, 인간이 굶주리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자연 환경을 공유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유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 사유 재산을 신나게 떠벌입니다. 자본주의는 민영화, 사유화를 떠벌입니다.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는 자연 환경 공유를 혐오하고 조롱합니다. 자본주의가 공유 사회를 배제하고 사유화를 떠벌이기 때문에, 오직 특정한 인간들만 자연 환경을 소유하고,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은 만성적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굶주립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은 치명적인 전염병에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밥은 보약입니다. 이건 그저 농담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굶주리는 사람이 병마와 싸울 수 있나요? 충분한 영양분 없이, 인간이 병마를 이길 수 있나요? 이건 불가능합니다. 만성적인 빈곤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치명적인 전염병보다 한끼 식사를 훨씬 걱정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 19 사태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사태는 치사율 100%가 아닙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전염병에 걸린다고 해도, 이 사람은 무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식량 없이, 인간은 절대 살아남지 못합니다. 전염병 사태가 심각하든 아니든, 인간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코로나 19 사태가 판데믹 등급으로 올라간다고 해도, 결국 인간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 민영화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먹지 못합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은 병마를 이기지 못합니다. 비단 코로나 19 사태만 아니라 다른 질환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밥은 보약입니다.



오늘날 이른바 먹방은 엄청난 인기를 누립니다. 일반 브이로그부터 인기 아이돌 가수까지, 먹방들은 엄청난 인기를 누립니다. 리얼리티 TV 쇼들 역시 먹거리 방송을 편성하고 우리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라고 시사합니다. 인간이 탕후루를 먹든 모듬회를 먹든, 인간은 뭔가를 니얌니얌~ 먹어야 합니다. 먹거리 방송보다 인조인간, 유전자 해킹, 생체 비행선을 비롯해 바이오펑크는 육체의 정치학을 훨씬 부각합니다. 우리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이고, 바이오펑크가 육체의 정치학을 부각하기 때문에, 생체 비행선과 공중 철갑함이 격돌할 때, 어떤 사람들은 공중 철갑함보다 생체 비행선을 응원할지 모릅니다.

 

비디오 게임 <적색 경보 2>에서 소비에트 대왕 오징어와 자유 진영 함선이 싸울 때, 빨갱이 대왕 오징어가 육체적인 존재이고, 자유 진영 함선이 기계이기 때문에,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자유 진영 함선보다 소비에트 오징어, 육체적인 존재를 응원할지 모릅니다. 영화 <터미네이트: 다크 페이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인간보다 기계(터미네이터)는 압도적입니다. 인간은 기계를 이기지 못합니다. 인간은 터미네이터와 대등하게 싸우지 못합니다. 언제나 터미네이터는 인간을 압도합니다. 심지어 카일 리스 같은 노련한 미래 병사조차 터미네이터와 대등하게 싸우지 못합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카일 리스는 T-800과 대등하게 싸운 적이 없습니다. 카일 리스는 T-800을 기습할 수 있으나, 승리의 깃발은 카일 리스(인간)에게 기울지 않습니다. T-800(기계)은 카일 리스를 몰아붙입니다. 영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에서 T-800(기계)은 T-1000(기계)과 대등하게 싸웁니다. 비록 T-800보다 T-1000이 훨씬 우수하다고 해도, T-800이 기계이기 때문에, 아군 기계와 적군 기계는 대등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만약 <터미네이터 2>에서 미래 인류가 또 다른 인간 병사를 과거로 보냈다면, 아무리 이 미래 병사가 노련하다고 해도, T-1000에게 인간 병사는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터미네이터> 1편과 2편이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은 기계를 상대하지 못하고, 기계는 인간을 압도합니다. 전반적인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이 구도는 거의 바뀌지 않습니다. 반면,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새로운 구도를 제시합니다. <다크 페이트>는 나약한 인간 vs. 압도적인 기계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새로운 설정을 집어넣습니다. 그레이스는 인간입니다. 기본적으로 그레이스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강화 인간, 개조 인간입니다. 일반적인 인간보다 강화 인간 그레이스는 훨씬 뛰어난 물리적인 능력을 자랑합니다. 그레이스는 초인 같습니다. 아니, 그레이스는 초인입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초인입니다. 초인으로서 캡틴 아메리카는 육체적인 개조를 거쳤습니다. 스파이더맨은 초인입니다. 스파이더맨은 육체적인 개조를 거쳤습니다. 헐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캡틴 아메리카와 스파이더맨과 헐크는 바이오펑크 설정에 속합니다. 그레이스 역시 바이오펑크 설정에 속합니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초인입니다. 초인, 강화 인간으로서 그레이스는 터미네이터와 대등하게 싸웁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최초로 인간(그레이스)은 기계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다크 페이트>는 인간, 초인, 기계라는 세 유형들을 제시합니다. 이건 그레이스가 터미네이터를 압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레이스가 초인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그레이스는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그레이스는 기계 터미네이터를 압도하지 못합니다. 고통 없이, 터미네이터는 계속 싸울 수 있으나, 인간으로서 그레이스는 움찔거리거나 고통스러워하거나 경직됩니다. 아무리 사라 코너보다 그레이스가 낫다고 해도, 그레이스보다 칼은 훨씬 듬직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칼은 기계이나, 그레이스는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만약 어떤 관객들이 그레이스가 매력적이라고 느낀다면, 이 관객들은 유물론, 육체적인 측면을 주목하는지 모릅니다. 생체 비행선과 공중 철갑함은 생명과 기계를 대비하고 육체를 강조합니다.



생체 비행선과 공중 철갑함처럼, 소비에트 대왕 오징어와 자유 진영 함선은 생명과 기계를 대비하고 육체를 강조합니다. 소비에트 대왕 오징어와 자유 진영 함선처럼, 그레이스와 Rev-9는 생명과 기계를 대비하고 육체를 강조합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등장인물로서 그레이스에게는 여러 단점들이 있으나, 생체 비행선과 공중 철갑함처럼, 소비에트 대왕 오징어와 자유 진영 함선처럼, 개조 생명체로서 그레이스가 기계 Rev-9와 싸우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 특성이 매력적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맥켄지 데이비스의 연기는 아주 강렬합니다. 이야아~)



※ 사진 <Bird Wings Fluttering Nature Animal Berries> 출처: homecare119,

pixabay.com/photos/bird-wings-fluttering-nature-104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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