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내 곁에 있어 줘>, 조앤 롤링, 저자 의도와 작품 세계 본문
[조화 분파(패스 오브 하모니)와 자본주의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가야트리 스피박과 엠마 보바리는 다릅니다. 두 사람에게는 많은 차이들이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허구(픽션)일 겁니다. 현실에서 가야트리 스피박은 존재합니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현실에 속합니다. 가야트리 스피박과 달리, 현실에서 엠마 보바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엠마 보바리는 현실에 속하지 않습니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진짜 인간입니다. 엠마 보바리는 진짜가 아닙니다. 이 인간은 가짜입니다. 이 인간은 소설 등장인물(캐릭터)입니다. 만약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창조하지 않았다면, 이 등장인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등장인물은 귀스타브 플로베르에게 종속됩니다.
엠마 보바리(등장인물)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소설가)에게 종속되는 것처럼, 등장인물은 소설가에게 종속됩니다. 비단 엠마 보바리만 아니라 다른 많은 등장인물들 역시 똑같습니다. 등장인물이 소설가에게 종속되기 때문에, 독자가 등장인물을 해석하는 동안, 독자는 소설가 의도를 존중해야 합니다. 소설가가 창조하기 전에, 등장인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설가가 창조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은 존재합니다. 소설가가 등장인물을 창조하는 동안, 소설가는 의도를 반영할 겁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소설가)가 엠마 보바리(등장인물)를 창조하는 동안, 이 소설가는 자신의 의도를 반영했을 겁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자신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처럼, 다른 소설가들이 등장인물들을 창조하는 동안, 이 소설가들 역시 그들의 의도들을 반영할 겁니다. 독자들이 이 등장인물들을 해석하는 동안, 독자들은 이 의도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소설가 의도는 등장인물을 해석하기 위한 첫째 기준입니다. 모범적인 독자는 이 첫째 기준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만약 독자가 이 기준을 무시한다면, 독자는 과잉 해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른바 캐해(캐릭터 해석)에서 소설가 의도는 첫째 기준입니다. 비단 등장인물만 아니라 소설 그 자체 역시 똑같습니다. 소설가가 쓰기 때문에, 소설 세계는 존재합니다.
만약 소설가가 쓰지 않는다면, 소설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동안, 소설가는 의도를 반영할 겁니다. 독자가 소설을 해석하는 동안, 소설가 의도는 소설을 해석하기 위한 첫째 기준이 됩니다. 모범적인 독자는 이 첫째 기준, 소설가 의도를 고려합니다. 만약 독자가 이 첫째 기준을 무시한다면, 독자는 과잉 해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소설 세계는 소설가에게 종속됩니다. 세라 자르는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를 썼습니다. 만약 세라 자르가 쓰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라 자르가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세라 자르는 자신의 의도를 반영했을 겁니다.
세라 자르가 썼기 때문에, 이 소설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는 세라 자르 의도를 반영할 겁니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해석하는 동안, 이 소설가 의도는 이 소설을 해석하기 위한 첫째 기준입니다.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에서 제니퍼 해리스, 캐머런 퀵은 주연 등장인물입니다. 만약 세라 자르가 창조하지 않았다면, 제니퍼 해리스, 캐머런 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두 등장인물은 세라 자르에게 종속됩니다. 만약 독자들이 두 등장인물을 해석한다면, 이 소설가 의도는 첫째 기준일 겁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는 것처럼, 제니퍼 해리스에게 이 소설가는 창조신입니다.
제니퍼 해리스가 세라 자르 의도에게 종속되는 것처럼, 소설가 의도에서 등장인물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비단 소설만 아니라 다른 것들 역시 똑같습니다. 소설은 작품입니다. 소설가는 저자입니다. 소설처럼, 만화, 실사 영화, 애니메이션, 연극, 보드 게임, 비디오 게임은 작품(허구)들입니다. 이 작품들은 저자들에게 종속됩니다. 저자가 작품을 창조하는 동안, 저자는 의도를 반영할 겁니다. 작품은 저자 의도를 반영할 겁니다. 저자 의도는 작품을 해석하기 위한 첫째 기준입니다. 만화부터 비디오 게임까지, 작품은 등장인물을 포함합니다. 저자 의도는 등장인물을 해석하기 위한 첫째 기준입니다.
"제니퍼 해리스는 '대동강 라면'을 가장 맛있는 먹거리라고 느낀다." 이 해석이 타당한가요?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는 이것(제니퍼 해리스는 대동강 라면을 가장 맛있는 먹거리라고 느낀다)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만약 세라 자르가 이것을 의도하지 않았다면, 제니퍼 해리스에게 대동강 라면은 가장 맛있는 먹거리가 아닐 겁니다. 독자는 이 라면이 가장 맛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독자가 이 라면을 해석한다면, 이건 과잉 해석일 겁니다. 제니퍼에게 이 라면이 가장 맛있는 먹거리가 아닌 것처럼, 독자는 소설가 의도를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오직 소설가 의도만 전부인가요?
제니퍼 해리스는 세라 자르에게 종속됩니다. 비단 제니퍼 해리스만 아니라 이 소설 세계 역시 세라 자르에게 종속됩니다. 하지만, 언제나 오직 소설가 의도만 소설 세계를 지배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는 마추 픽추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마추 픽추를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 세계에서 이 유적이 존재하지 않나요? 그건 아닙니다. 비록 이 소설이 마추 픽추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도, 이 소설에서 이 유적은 존재할 겁니다. 어랄라~,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소설이 현실을 모방하기 때문입니다. 세라 자르는 이 소설이 현실을 모방한다고 의도했을 겁니다.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 이 소설 세계에서 마추 픽추는 존재할 겁니다.]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가 현실을 모방하기 때문에, 현실과 이 소설은 아주 가깝습니다. 현실에서 마추 픽추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소설 세계에서 이 유적은 존재할 겁니다. 만약 이 세계에서 마추 픽추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계에서 잉카 문명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잉카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건 대체 역사일 겁니다.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는 대체 역사가 아닙니다. 세라 자르는 이 소설이 대체 역사라고 의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라 자르가 현실을 모방하기 의도했기 때문에,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에서 마추 픽추는 존재할 겁니다. 메간테레온 역시 똑같습니다.
메간테레온은 고대 검치 호랑이입니다. 현실에서 메간테레온은 진화했고 멸종했습니다. 세라 자르가 메간테레온을 인식하나요? 만약 이 소설가가 이 검치 호랑이를 인식하지 않는다면,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에서 이 호랑이가 존재하지 않나요? 이 소설가가 메간테레온을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이 소설 세계에서 이 호랑이가 존재하지 않나요? 그건 아닙니다.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가 현실을 모방하기 때문에, 현실과 이 소설이 아주 가깝기 때문에, 이 소설 세계에서 이 호랑이는 존재할 겁니다. 비록 세라 자르가 메간테레온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동물은 존재할 겁니다.
비록 세라 자르가 인식하지 않았다고 해도, 독자는 이 소설 세계에서 메간테레온이 진화했고 멸종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독자가 이 검치 호랑이를 해석하는 것처럼, 세라 자르 의도는 전부가 아닙니다. 오직 세라 자르 의도만 <내 곁에 있어 줘>를 지배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세라 자르는 이 소설을 썼습니다. 현실은 이 소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세라 자르보다 현실이 원대하기 때문에, 비록 세라 자르가 메간테레온을 인식하지 않았다고 해도, 독자는 현실에게 기반하고 이 소설가 의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마담 보바리> 역시 비슷합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19세기 소설가입니다.
스피노사우루스는 백악기 수각류입니다. 20세기 초반, 고생물학은 스피노사우루스를 발굴했습니다. 이건 귀스타브 플로베르(19세기 소설가)가 스피노사우루스를 인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담 보바리>, 이 소설 세계에서 스피노사우루스가 존재하지 않나요? 그건 아닙니다. <마담 보바리>는 현실을 모방합니다. 현실과 이 소설은 아주 가깝습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현실을 모방하기 의도했을 겁니다. 현실에서 스피노사우루스가 진화했고 멸종했기 때문에, <마담 보바리>에서 이 수각류는 진화했고 멸종했을 겁니다. 이건 타당한 해석입니다.
비록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스피노사우루스를 인식하지 않았다고 해도, <마담 보바리>에서 이 수각류는 진화했고 멸종했을 겁니다. 독자는 이것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건 타당한 해석입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보다 현실이 원대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현실에게 기반하고 이 소설가 의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메간테레온, 스피노사우루스가 증명하는 것처럼, 비록 소설가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 의도는 전부가 아닙니다. 독자는 소설가 의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건 독자가 소설가 의도를 100% 무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전히 소설가 의도는 해석하기 위한 첫째 기준입니다.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썼습니다. 만약 조앤 롤링이 쓰지 않았다면, 이 소설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만약 조앤 롤링이 쓰지 않았다면, 호그와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해리 포터,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론 위즐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호그와트부터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까지, <해리 포터> 시리즈는 조앤 롤링에게 종속됩니다. 조앤 롤링 의도는 이 소설 세계를 지배합니다. 독자들은 이것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조앤 롤링 의도는 이 소설 세계를 해석하기 위한 첫째 기준입니다. 조앤 롤링은 트랜스젠더를 차별합니다. 이 의도는 이 세계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겁니다.
만약 어떤 독자들이 이 세계를 좋아한다면, 만약 이 독자들이 트랜스젠더들이라면, 조앤 롤링이 트랜스젠더를 차별하기 때문에, 이 의도가 <해리 포터> 세계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트랜스젠더 독자들은 커다란 고통에 빠질 겁니다. 아무리 <해리 포터> 세계가 트랜스젠더들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세계가 조앤 롤링에게 종속되기 때문에, 조앤 롤링에게서 이 세계가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이 독자들은 커다란 고통에 빠질 겁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아주 광대하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조앤 롤링을 축소하기 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해리 포터> 시리즈는 그저 소설들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블록버스터 실사 영화부터 AAA 비디오 게임까지, <해리 포터> 시리즈는 아주 광대합니다. 조앤 롤링은 엠마 왓슨이 아닙니다. 조앤 롤링은 오픈 월드 게임을 프로그램하지 않습니다. 조앤 롤링은 그저 소설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어떤 독자들은 조앤 롤링, 이 성 차별론자를 축소하기 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조앤 롤링이 그저 소설가에 불과하다고 해도, 분명히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에게 조앤 롤링은 창조신입니다. 조앤 롤링 없이,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절대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 소설가가 썼기 때문에, 이 등장인물은 존재합니다.
[(애석하게도) 조앤 롤링 없이, 이 소설 세계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만약 조앤 롤링이 이 소설들을 쓰지 않았다면, 엠마 왓슨은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를 연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만약 조앤 롤링이 쓰지 않았다면, <신비한 동물 사전>은 개봉하지 않았을 겁니다. 만약 조앤 롤링이 쓰지 않았다면, 호그와트는 오픈 월드 게임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엠마 보바리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에게 종속되는 것처럼, 제니퍼 해리스가 세라 자르에게 종속되는 것처럼, 호그와트는 조앤 롤링에게 종속됩니다. 세라 자르가 제니퍼 해리스를 해석하기 위한 첫째 기준인 것처럼, 호그와트에게 조앤 롤링은 첫째 기준입니다. 트랜스젠더 독자들은 이 소설가 의도를 부정하지 못합니다.
만약 트랜스젠더 독자들이 이 소설가 의도를 무시한다면, 이건 과잉 해석일 겁니다. 작품은 저자에게 종속됩니다. 비단 소설만 아니라 다른 작품(허구)들 역시 똑같습니다. 만화, 실사 영화, 애니메이션, 보드 게임, 비디오 게임은 저자에게 종속됩니다. <아나크로니>는 보드 게임입니다. 이 보드 게임은 사이언스 픽션(SF, 과학적인 허구)입니다. 과학적인 허구는 허구입니다. 이 허구는 게임 제작자들, 마인드크래쉬에게 종속됩니다. <아나크로니>에서 조화 분파(패스 오브 하모니)는 주연 진영입니다. <아나크로니>가 마인드크래쉬에게 종속되기 때문에, 조화 분파는 마인드크래쉬에게 종속됩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조화(하모니) 설정을 해석하는 동안, 마인드크래쉬 의도는 첫째 기준이 됩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 첫째 기준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엠마 보바리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에게 종속되는 것처럼, 제니퍼 해리스가 세라 자르에게 종속되는 것처럼, 마인드크래쉬 의도에서 조화 분파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자 의도는 전부가 아닙니다. 오직 저자 의도만 작품을 지배하지 않습니다. 비록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인식하지 않았다고 해도, <마담 보바리>에서 스피노사우루스는 진화했고 멸종했을 겁니다. 독자들은 스피노사우루스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해석은 타당합니다.
비록 세라 자르가 인식하지 않았다고 해도, <내 곁에 있어 줘>에서 메간테레온은 진화했고 멸종했을 겁니다. 이 해석은 타당합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보다 현실이 원대하기 때문입니다. 세라 자르보다 현실이 원대하기 때문입니다. <아나크로니>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조화 분파는 자연 생태계를 존중합니다. 심지어 조화 분파는 어머니 자연조차 숭배합니다. 비록 이 숭배가 종교보다 이념에 가깝다고 해도, 분명히 조화 분파는 어머니 자연을 따릅니다. 만약 어떤 것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한다면, 조화 분파와 이것은 대립할 겁니다. 자본주의는 자연 환경을 파괴합니다. 분명히 이건 사실입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화석 연료들과 자본주의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년 동안, 화석 연료들은 많은 이윤들을 축적했습니다. 자본주의에게 훨씬 많은 이윤들은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언제나 자본주의는 이윤 극대화에게 집착합니다. 21세기 초반, 재생 에너지들은 많은 이윤들을 축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재생 에너지들을 버렸고 화석 연료들을 선택했습니다. 훨씬 많은 이윤들을 축적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훨씬 많은 상품들을 판매하기 원합니다. 자본주의가 훨씬 많은 상품들을 만드는 동안, 자본주의는 훨씬 많은 화석 연료들을 태웁니다. 이건 기후 재앙이 됩니다.
21세기 초반, 세계화 자본주의가 너무 많은 화석 연료들을 태웠기 때문에, 너무 많은 화석 연료들은 너무 많은 온실 가스들을 배출했습니다. 지구 대기 중에서 온실 가스들은 너무 많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극단적인 기후들은 발생했습니다. 살인적임 폭염부터 기록적인 홍수까지, 이것들은 자연 환경을 파괴합니다. 환경 사회학은 지구 온난화가 생태학 재앙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아무리 환경 사회학이 경고했다고 해도, 훨씬 많은 이윤들을 위해 세계화 자본주의는 화석 연료들을 선택했습니다. 이건 자본주의가 기후 변화, 이 생태학 재앙을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의도적으로, 자본주의는 이 생태학 재앙을 선택했습니다. 자본주의는 너무 악랄합니다. 환경 운동과 자본주의는 공존하지 못합니다. 양쪽은 대립합니다. 환경 운동은 자본주의를 비판해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비판합니다. 그 어떤 이념들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비판합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환경 운동은 공산주의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만약 환경 운동이 공산주의를 참고하지 않는다면, 지구 온난화, 이 생태학 재앙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조화 분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조화 분파는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기 원합니다. 자본주의와 조화 분파는 대립합니다.
환경 운동에게 어머니 자연은 중요한 상징입니다. 환경 운동에서 어머니 자연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조화 분파는 어머니 자연을 숭배합니다. 어머니 자연과 자본주의는 대립합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조화 분파는 공산주의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만약 조화 분파가 공산주의를 참고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조화 분파가 어머니 자연을 숭배한다고 해도, 이건 얄팍할 겁니다. 하지만 마인드크래쉬가 이것을 의도했나요? 마인드크래쉬가 조화 분파와 공산주의가 어울린다고 의도했나요? 이 게임 제작자들이 공산주의를 인정하나요? 아니, 그들은 이것을 의도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이윤 극대화와 자연 환경은 대립합니다. 이건 '현실'입니다.]
마인드크래쉬는 조화 분파와 공산주의가 어울린다고 의도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이 게임 제작자들은 공산주의를 싫어할 수조차 있습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지배적인 관념은 공산주의를 비난합니다. 공산주의를 비난하기 위해 지배적인 관념은 거짓말들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거짓말들이 사실들이라고 착각합니다. 자본주의를 떠받들기 위해 지배적인 관념은 총체적인 진실들을 은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총체적인 진실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마인드크래쉬 역시 비슷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 제작자들은 빨갱이를 비난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게임 제작자들보다 현실은 원대합니다. 비록 세라 자르가 메간테레온을 인식하지 않았다고 해도, 독자들은 이 검치 호랑이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스피노사우루스를 인식하지 않았다고 해도, 독자들은 이 수각류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이 현실에게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세라 자르, 귀스타브 플로베르보다 현실이 원대하기 때문입니다. 마인드크래쉬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 게임 제작자들보다 현실이 원대하기 때문에, 이 게임 제작자들은 <아나크로니>를 지배하지 않습니다. 조화 분파와 공산주의는 어울릴 수 있습니다. 이 해석은 타당합니다.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는 현실을 모방합니다. 세라 자르는 현실을 모방하기 의도했을 겁니다. 이 소설과 달리, <아나크로니>는 과학적인 허구입니다. 조화 분파는 생체 강화복(파종기)을 사용합니다. 현실에서 생체 강화복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현실과 <아나크로니>는 가깝지 않습니다. (비단 <아나크로니>만 아니라 다른 많은 과학적인 허구들 역시 현실을 넘어섭니다.) 비록 현실과 <아나크로니>가 가깝지 않다고 해도, 현실에서 이 세계는 100% 독립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이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면, 조화 분파는 자본주의를 비판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자본주의는 자연 환경을 파괴합니다. 이건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는 자연 환경을 파괴합니다. 자본주의가 훨씬 많은 이윤들에게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라 자르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에서 자본주의는 자연을 파괴할 겁니다. 이 소설처럼, <아나크로니>에서 자본주의는 훨씬 많은 이윤들에게 집착할 겁니다. 이 과학적인 허구에서 자본주의, 이윤 극대화는 자연을 파괴할 겁니다. 이건 필연적인 결과일 겁니다. <아나크로니>에서 이 파괴는 필연적인 결과일 겁니다. 비록 마인드크래쉬가 이 필연을 인식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부장 제도는 전통적인 가족을 중시합니다. 전통적인 가족과 트랜스젠더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가부장 편견들은 트랜스젠더를 차별합니다. 공산주의가 공공 육아를 지지하는 것처럼, 공산주의와 가부장 편견들은 대립합니다. 가부장 편견들이 트랜스젠더를 차별하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가부장 제도를 비판하고 트랜스젠더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비록 과거 공산주의자들이 트랜스젠더를 차별했다고 해도, 비록 어떤 현재 공산당들이 차별한다고 해도, 이 이념과 트랜스젠더는 어울릴 수 있습니다. 조화 분파가 공산주의를 참고하기 때문에, 이 진영과 트랜스젠더는 어울릴 수 있습니다.
마법 학교가 공산주의를 참고하나요? 마법 학교와 이 이념이 필연적인 관계를 맺나요? 그건 아닙니다. 마법 학교와 달리, 환경 운동은 공산주의를 참고해야 합니다. 마법 학교와 달리, 환경 운동과 이 이념은 필연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만약 환경 운동이 공산주의를 외면한다면, 기후 정의는 서발턴들을 돕지 못할 겁니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많은 기후 피해자들이 서발턴들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환경 운동이 공산주의를 참고하기 때문에, 공산주의와 트랜스젠더가 어울리기 때문에, 마법 학교와 달리, 환경 운동과 트랜스젠더는 어울립니다. 그리고 조화 분파는 환경 운동에 속할 수 있습니다.
※ 게임 <아나크로니> 그림 출처:
https://www.kickstarter.com/projects/mindclash/anachrony/description
※ 사진 <Machupicchu Cusco …> 출처: acheiner,
https://pixabay.com/photos/machupicchu-cusco-inca-6022493/
※ 사진 <Plum Blossom …> 출처: MolnarSzabolcsErdely,
https://pixabay.com/photos/plum-blossom-flowers-bee-insect-6169571/